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38화 (38/238)

────────────────────────────────────

성공적인 데뷔

한건우는 집에 돌아가려는 길이었다.

묘하게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

마력이 높으면, 육감도 발달하기 마련이었다.

사람이 없는 골목 쪽에서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조용히 <화식조의 눈>으로 의심스러운 곳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도로 위 허공.

공간에 왜곡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글거렸다.

한건우가 무기집에 손을 넣자마자, 허공에서 미끈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

“!”

한건우는 곧 깨달았다.

차 한 대에 통째로 은신 스킬을 먹여서 스텔스 기능을 만들 정도로, 엄청난 자본과 기술을 가진 조직.

그걸 또 네모나게 각진 클래식 카 스타일로 만드는, 취향이 별난 조직.

‘특수안보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었다.

저번에는 차은비를 내세워서 떠보더니, 이번에는 직접 행차를 하신 모양이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내렸다.

“한건우 플레이어. 잠시 대화 좀 하실까요.”

칼각이 잡힌 제복, 흰 가죽장갑.

잊을 수 없는 거만한 목소리.

특수안보부의 천명환이었다.

“뭐지?”

한건우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25세의 천명환.

세월에 닳기 전의 그는 한건우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오만해보였다.

“대한민국 정부 각성관리청 소속, 천명환입니다.”

‘각성관리청 소속’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한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특수안보부 소속 각성자들은 모두 가짜 직위가 하나씩 있다.

주로 각성관리청이나 각성센터 연구원 등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건우는 그의 목 언저리를 바라보았다.

저 목을 맨손으로 부수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는 아직 한건우에게 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 증오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디 한건우뿐일까.

죄없는 사람들을 장기말로 이용하기 위해, 약점을 만들어서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조직이었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나···.’

한건우의 마음 속에는 폭풍이 불었지만,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한건우가 시간을 끌자, 거절의 의사로 생각한 천명환이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 당신에게 정부와 대화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한건우는 그의 거만함에 코웃음이 나왔지만,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좋다.”

한건우가 반말로 대답하고 차문을 열자, 천명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린 놈이··· S급이라고 유세부리기는.’

천명환은 화를 꾹 참고, 운전을 시작했다.

스텔스 모드도 켜지 않았고, 목적지도 따로 없었다.

근처를 돌다가 대화가 끝나면 내려줄 생각이었다.

“각성관리청에서는 이번 일로 한건우 플레이어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아마 협박이 나올 거다.

“저희가 지켜본 결과, 한건우 씨는 탈법에 가까운 행동을 많이 하시더군요.”

“...?”

한건우가 잠자코 있자, 천명환이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불법 암시장을 이용한다던지, 미등록자로 보이는 자들과 어울린다던지···.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한건우가 암시장에서 한 거래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거기서 판 건 몰래 빼돌린 물건이 아니었다.

미등록자와 만나는 것도 큰 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신고 의무 위반으로 벌금을 내는 정도.

하지만 분명히 한건우의 이미지에는 타격이 있을 것이다.

천명환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우리 손바닥 위다.

이런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천하의 한건우도 기가 죽겠지?’

최상급 각성자, 혹은 그렇게 될 싹이 보이는 각성자들은 이처럼 특수안보부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개인이 아무리 강해도 조직된 정부를 이길 수는 없는 법.

상급 각성자 중에서 정부와 대놓고 척을 지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외국에서는 각성자들이 군벌을 이루거나, 길드가 소국 형태로 독립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고 평화로웠다.

모두 특수안보부의 보이지 않는 개입 덕분이었다.

마치 백조가 수면 밑에서 물장구를 치는 것처럼···.

천명환은 거기에 꽤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건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게 다야?”

“...뭐요?”

천명환이 얼빠진 듯 반문했다.

한건우는 살짝 실망했다.

‘그리핀을 키우는 것까지는 모르나 보군. 그거야말로 불법인데.’

천명환은 당황했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조금 말려드는 느낌이었지만,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저 철없는 플레이어일 뿐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니까 막 나가는 거야.’

“...한건우 플레이어, 어제 어떤 아이에 대해 후견인 신청을  하셨더군요.”

“맞아.”

은설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미등록자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아니, 미등록자가 아닌데.”

“예?”

“스스로 각성자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됐고, 등록 안내도 못 받았으니까.”

한건우가 각성자 관리법 조항의 맹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천명환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흠···. 그 아이는 정부기관에서 찾던 아이입니다. 앞으로 정부의 후견 하에 안전히 보호하겠습니다.”

“당연히, 거절한다.”

천명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한건우 플레이어의 동의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안내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

천명환의 얄미운 얼굴을 보자, 주먹으로 한 대 갈겨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다음 기회가 있겠지.’

한건우는 천명환을 쏘아보며 말했다.

“나도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조금 아는 게 있지.”

“?”

천명환이 이마를 구겼다.

“신천동, 소격동, 영종도.”

“!”

한건우가 말한 세 개의 지명은 특수안보부의 비공식 연구소와 실험실이 있는 곳이었다.

천명환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디서 지명만 주워듣고 와서... 뭐라도 아는 척 허세를 부리는 건가?’

“그리고 내자동.”

“...!”

천명환의 동공이 흔들렸고,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내자동은 특수안보부 본부가 있는 곳이었다.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정부에서도 극소수 고위직뿐이었다.

‘뭘 어디까지 아는 거지? 아니···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천명환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침 차가 신호를 받아 도로에 멈추었다.

“그런 게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피차 별로 안 좋겠지?”

질문을 던진 한건우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차문을 열고 나갔다.

한참 동안 멈추어있던 천명환은 주먹으로 대시보드를 내리쳤다.

‘방심했어···.’

원하는 건 하나도 못 얻고, 밑천만 털렸다.

이걸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

‘때가 무르익었어.’

한건우는 문철민 기자가 쓴 기사를 다시 읽어봤다.

한건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

[“문철민의 문제해결” 특집 (1)] 울릉도 사태로 드러난 ‘야생 마수’ 위험성 - ‘테이밍’ 능력 재조명

지난 25일 경북 울릉군(울릉도)에서 발생한 사태로 야생화된 마수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마수와 관련한 능력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본지는 S급 한건우 플레이어(20, 남)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사태를 안전하게 해결하는 데 테이밍 계열 각성자가 도움을 주었다는 증언을 입수했다.

테이밍 계열 능력을 활용할 경우, 무엇보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손꼽힌다.

국립각성자연구소 배시영 선임연구원은 “해외에서는 이미 테이밍 계열 각성자가 안전관리 활동을 하는 사례가 있다”‎며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사고 현장을 찾은 박승렬 각성관리청장 역시 “다각적인 각성자 지원책으로 빈틈없는 국민 안전 확보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각성자 Pool’ 활용 여부에 대하여 귀추가 주목된다.

<[email protected]

PBS뉴스 문철민 기자>

-----------------------------------------------

얼핏 보기엔 평범한 분석 기사 같았지만, 뜯어볼수록 고단수였다.

“꽤 하는데?”

한건우가 먼저 소재를 떠먹여주긴 했지만, 주는 걸 받아먹는 것도 아무나 못 하는 일이다.

기사가 나간 시점부터 절묘했다.

여론을 다루는 감각이 있는 사람 같았다.

‘미래의 간판 앵커는 다르군.’

며칠째 ‘S급 한건우’를 영웅화하며 올려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듣기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이라고,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

모두가 아는 한건우의 활약에 대한 언급은 줄이고, 새로운 각도로 사건을 조명한다.

그러면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

문철민 기자만 그런 스탠스를 잡은 건 아니었다.

다른 뉴스도 슬슬 정부 비판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책임을 묻는 기사는 쓰기도 쉽고 진부하다.

새로운 희망을 주는 쪽이 더 눈길을 끄는 법이다.

‘테이밍’과 ‘안전’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엮는 솜씨라니.

노골적인 선동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시각도 보여주었다.

전문 연구소나 각성관리청을 끌어들여 신뢰도도 더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멘트가 꼭 테이밍 능력을 옹호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테이밍이 위험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안전한 측면도 있는 건가?

읽는 사람에게 그런 간단한 아이디어만 심어주면 성공이었다.

PBS뉴스는 각성자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언론사였다.

울릉도 사태는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사건이니, 기사를 주목하는 사람도 많았다.

곧바로 기사는 포털 메인을 장식했고,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시민들의 반응은 역시 나쁘지 않았다.

-좋은 성과 기대합니다!

-우리나라는 테이머 없던 거 아니었어? 에프급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있으면 잘 활용하는 게 맞지.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예상한 범위 내였다.

-마수 길들인다고 깝치다가 사람만 잡는 거 아닐지.

-여태 발굴 안하고 뭐하다가 지금 이래. 주가 조작용?

곧 다른 언론사에서 어설프게 따라한 후속 기사도 떴다.

‘기사를 내리려고 하지는 않는군.’

이런 흐름은 테이머를 위험한 존재로 보던 정부의 시각과는 결이 달랐다.

혹시 정부에서 압력이 들어오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차라리 여론이 이쪽으로 가는 게 낫다고 본 걸지도 모른다.

국민 안전에 소홀했다고 욕을 먹는 것보다는, 다른 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게 나으니까.

천명환과 만난 후, 특수안보부 측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추이를 지켜보는 모양이었다.

‘이제 데뷔를 할 때인가?’

한건우는 은설아를 데리고 나왔다.

각성센터로 가는 길이었다.

“각성자 등록하면 저도 ‘플레이어’가 되는 거 맞죠?”

은설아가 물었다.

“그래. 하지만 진짜 균열에는 나중에 들어가는 게 낫겠지? 조금 더 크고 나서.”

“아니오? 방송에서 봤는데 미성년자도 각성자 등록하면 성인이랑 똑같다고 했어요.”

“그건···.”

법은 그랬다.

각성자 등록을 하면 미성년자도 성년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었다.

아마 대체복무도 빨리 시키고, 유사시에 군대로 징병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하지만···.

은설아가 얼른 말했다.

“저도 빨리 균열에 들어갈 거예요. 강해지고 싶어요.”

“왜?”

은설아는 그 이유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눈빛은 확고해보였다.

예전과 똑같이, 몇 겹의 철문을 통과해서 맨 안쪽 방으로 갔다.

<등급 측정실>.

후견인 자격으로 문 앞까지 왔지만, 측정실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은설아가 해맑게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 센터는 못 믿을 곳이지.’

한 번 겪은 게 있던 터라, 한건우는 조용히 외벽에 손을 갖다댔다.

[특성 발동 : 진동 감지]

“측정 시작합니다. 앞에 있는 마석에 손을 대시고-.”

측정실 공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