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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탈출 (7) - 투창은 반드시 명중한다
슈우우우-
그리핀 무리의 수장이 가까워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대장 그리핀은 위압 그 자체였다.
화려한 황금색 목깃은 위풍당당했다.
암컷 그리핀들에게는 없는 것으로, 마치 숫사자의 갈기 같았다.
사실 그리핀은 사자와 비슷한 생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두머리 수컷 한 마리가 무리의 리더가 되어 여러 암컷들을 거느린다.
암컷들은 사냥을 하고, 새끼를 기르기도 한다.
대장 수컷이 맡은 것은, 다른 일족과의 전투였다.
대장 수컷 그리핀은 암컷보다 몸집이 3-4배 정도 컸다.
‘균열 안에 있었다면··· B급? 어쩌면 A급 균열의 주인 정도는 될 수도 있겠군.’
물론 부딪쳐 보기 전에는 확실할 수 없다.
마수의 크기만으로 등급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크르에엑!”
대장 그리핀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멈추었다.
날개에서 일어난 바람이 땅 밑까지 불어와, 거센 바람을 만들 정도였다.
한건우는 2층 건물의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대장 그리핀의 반응이 또렷이 보였다.
축구공만한 눈에는 분명히 분노와 놀람이 깃들어 있었다.
'뇌의 크기가 커서 그런지, 지능이 꽤 높은 것 같군.'
원래 마수는 각성자에게 테이밍된 마수를 보면 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게 마수의 본능이었다.
테이밍된 마수는 인간과 똑같은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장 그리핀은 본능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끼에엑-!”
대장 그리핀이 큰 울음소리를 냈다.
척 봐도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자신의 부인들이 공격해야 할 적으로 느껴지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망설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나 역시 마수는 마수일 뿐이었다.
“키이잇-.”
"키익!"
암컷 그리핀들이 먼저 부리와 발톱을 내밀며 공격성을 드러냈다.
대장 그리핀은 피에 새겨진 본능을 참지 못하고 활강해 내려왔다.
쉬이이익-.
은설아는 무표정으로 두 손을 움직였다.
거기에 따라 암컷 그리핀들이 탄환처럼 튀어나갔다.
“세상에···.”
은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근처를 지키던 이비현이 헛숨을 들이켰다.
동족의 마수가 서로 싸우고 있다니.
좀처럼 보기 힘든 진기한 장면이었다.
'쟤는 대체....'
은설아의 모습도 낯설었다.
좀 전에는 겁먹은 어린아이로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은설아는 놀라울 만큼 능숙하게 12마리의 그리핀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낌새가 이상했다.
이비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딜 보는 거야? 이성이 없는 상태인거야?'
은설아의 검은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입은 꾹 다문 채였다.
"...."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한건우는 짧게 침음했다.
회귀 전 은설아를 죽였을 때, 그녀는 딱 이런 얼굴이었다....
은설아는 그리핀을 이용한 대리 전투를 제법 능숙하게 펼쳤다.
첫 실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12마리의 그리핀에 동시에 이입하고 있는 것이다.
1대 12의 싸움.
언뜻 보기에는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건우는 그렇게 속단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완력이 3배나 강한 사람이 있다면, 3명이 있다고 제압되는 것이 아니다.
3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어야, 겨우 제압할까 말까인 법이다.
마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슈욱-!
턱!
대장 그리핀이 번개처럼 날아가 암컷 한 마리의 목을 물었다.
그리고 강철 같은 부리로 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키익...!”
그리핀 1마리의 목숨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대장 그리핀은 아무렇지 않게 그 사체를 휙 내던졌다.
“끼이잇!”
암컷 그리핀들이 조금 동요했다.
“...!”
은설아 역시 분명히 타격을 받았을 텐데, 그녀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덤덤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남은 건 11마리.
대장 그리핀은 시뻘개진 눈으로 한 마리, 한마리씩 도륙내기 시작했다.
힘과 속도의 차이는 잔인할 정도였다.
마치 닭장 속에 들어간 살쾡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핀의 깃털이 눈처럼 날렸고, 비교적 작은 개체들부터 스러져갔다.
‘안 되겠군.’
파앗-!
한건우는 지붕을 딛고 길게 점프했다.
도움닫기도 없이 제자리에서 점프였지만, 엄청나게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근력 스탯의 위력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특성이나 스킬을 쓰지 않고도, 근력 스탯이 높은 각성자는 움직임이 상당히 자유로웠다.
일반인의 눈에는 마법처럼 보일 정도였다.
터억!
한건우는 공중에 떠 있는 암컷 그리핀의 등 위에 올라탔다.
불시의 습격이었다.
“키이이잇!”
한건우를 태운 그리핀이 사나운 말처럼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설아야!”
한건우가 은설아의 주목을 끌었다.
은설아가 표정 없는 눈으로 한건우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한건우를 태운 그리핀이 점점 반항을 멈추었고, 서서히 잠잠해졌다.
한건우는 그때를 틈타서 앉은 자세를 고쳤다.
그리핀의 두꺼운 목 깃털을 고삐처럼 단단히 잡아 쥐었다.
[올라가자.]
한건우가 그리핀의 목덜미에 대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핀은 제자리에서 날갯짓만 할 뿐,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위로!]
한건우가 경주마를 타는 것처럼 세게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깜짝 놀란 그리핀이 크게 퍼덕였다.
푸드드....
슈우우우-!
그리핀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몸을 젖혔다.
로켓처럼 높이 쏘아지듯 날아올랐다.
"윽."
한건우는 목깃을 세게 부여쥐었다.
그리핀의 비행 솜씨가 능숙했다.
아까 나타났던 새끼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었다.
한건우는 삽시간에 높이까지 올라왔다.
헬기라도 타고 올라온 기분이었다.
"오...."
저 밑으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공터, 교회 지붕, 점점이 날아다니는 그리핀들.
대장 수컷 그리핀이 고개를 꺾어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까지.
훤히 다 보였다.
[그만.]
적절한 높이에 이르자, 한건우가 그리핀을 멈추게 했다.
[멈춰.]
세심한 컨트롤은 되지 않았다.
직접 테이밍을 한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푸르르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허공에 위치를 잡았다.
그리핀이 크게 원을 그리면서 천천히 유영했다.
한건우가 이제부터 할 일은 명확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마창 게이볼그가 들려 있었다.
투창하면 반드시 명중하는 신화급 아이템이었다.
한건우는 두 다리로 그리핀의 등을 죄어 단단히 고정했다.
양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건우는 양손을 동시에 놓고, 창 자루를 단단히 쥐었다.
[특성 발동: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 창을 던지면 맞은 상대방은 회복 불가 디버프를 받는다.
파앗-!
슈우우우우-!
한건우의 손에서 마창 게이볼그가 유성처럼 쏘아졌다.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온 탓일까?
게이볼그의 검은 블레이드는 어느 순간 번쩍 빛나더니, 보이지 않았다.
푸욱-!
콰아아아-!
게이볼그가 목표물에 명중하는 소리가 들렸다.
“!”
한건우는 깃털을 다시 부여잡고, 그리핀에게 말했다.
[내려가자.]
그리핀은 한동안 상공을 날다가, 갑자기 날개를 접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활강했다.
슈우우욱-!
“으윽!”
거의 자유낙하에 가까운 미친 속도였다.
거센 바람이 한건우의 뺨을 때리듯이 치고 지나갔다.
보통의 각성자 같았으면 손을 놓치고 튕겨져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건우는 허벅지로 그리핀을 꽉 조이며 버텼다.
순식간에 대지가 가까워졌다.
펄럭-! 펄럭!
타아앗!
한건우를 태운 그리핀이 속도를 줄이고, 가까스로 충돌을 피해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후우.”
한건우는 그리핀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신화급 아이템을 쓰는 특성 발동 한 번으로, MP는 거의 바닥났다.
자동 회복으로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기에 걱정은 없었다.
‘그 놈은 어떨까.’
창이 꿰뚫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었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다.
“...크르르....”
대장 그리핀의 상태는 처참했다.
마창 게이볼그를 직격으로 맞았다.
창은 몸통을 꿰뚫고 지나가 땅에 깊이 박힌 채였다.
떨어지는 운석이라도 맞은 듯, 근처의 땅바닥이 패여있었다.
상처는 말할 것도 없이 깊었다.
마수의 피가 사방에 난자되어 있었고, 지금도 맥박이 뛸 때마다 분수처럼 마수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폐도 뚫렸는지, 숨소리에서 쌕쌕대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마수의 회복력도 전혀 작용하지 않았고, 피도 멎을 기세가 안 보였다.
목표물이었던 대장 그리핀을 보고, 한건우가 미소지었다.
대장 그리핀의 정신력은 놀라울 만큼 강했다.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다리를 꿈틀거리며 창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암컷 그리핀들이 그 빈틈을 가만히 두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비현도 가볍게 몸을 날렸다.
맹독 시미터로 대장 그리핀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대장 그리핀은 여전히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창으로 꼬챙이처럼 꿰어져 땅에 고정된 상태.
대등한 싸움이 될 리 없었다.
‘좋아.’
마창 게이볼그는 아직 일격필살의 창은 아니었다.
아무리 회복 불가 디버프가 걸린다 해도, 그후에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 못하거나 도망가 버리면 소용이 없었다.
‘투창은 무조건 명중하니까. 무조건 첫 공격에서 타격을 크게 입혀야 해.’
그건 특수안보부(SSS)의 천명환을 통해 배운 것이었다.
마창 게이볼그의 원래 주인이던 천명환.
'지금쯤 마창 게이볼그를 찾아 방황하고 있으려나?'
한건우는 창을 회수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때 대장 그리핀은 최후의 발악을 했다.
“끼에에에에-!”
큼지막한 부리에서 말도 안 되는 울림이 나왔다.
계명성.
일종의 음파 공격이었다.
“악!”
이비현은 재빨리 손으로 귀를 덮었다.
한건우는 거의 본능적으로 보호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발동 : 아이기스의 보호]
-물리적 공격을 제외한 모든 마법, 독, 저주에 대해 신체 보호막을 형성한다.
챙그랑-!
파앗!
공터 전체에 파동이 번지고, 주위 건물들의 유리창이 사정없이 깨졌다.
‘무슨··· 그리핀이 계명성을 써?’
수탉 형태의 마수가 쓰는 것으로만 알았지, 그리핀도 쓰는 줄은 몰랐다.
마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자신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특성과 스탯 빨로 버틴 두 사람과 달리, 암컷 그리핀들은 타격이 심했다.
그렇다는 건···.
“설아야?”
한건우는 불길한 예감에, 은설아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은설아가 멍한 표정으로 서서 휘청거렸다.
거의 기절하기 직전으로 보였다.
은설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풀썩 앞으로 쓰러지려 했다.
종이 인형처럼 힘이 없었다.
한건우가 그녀를 급히 부축했다.
한건우가 이비현을 불렀다.
“이비현, 조심해. 테이밍이 풀렸을 거다.”
테이머가 정신을 잃은 상황.
잠시 복속되었던 마수들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아까처럼 적대적인 관계로 말이다.
“휴···.”
한건우는 한숨을 쉬었다.
‘저 그리핀들을 다 데려가 주고 싶었지만.’
은설아가 정신을 잃어서 못 보는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한건우가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창 자루를 잡으려는 듯한 자세였다.
[특성 발동 : 염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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