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9화 (2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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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탈출 (1)

울릉도로 떠나기 전, 한건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거긴 마켓도 뭣도 없으니, 다 준비해서 가야 해.’

그나마 히드라 꼬리 고기를 섭취하고 자동 회복 능력을 얻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안 그러면 힐링 포션과 아이템을 주렁주렁 사가야 할 판이었다.

마창 게이볼그의 내구도를 점검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건우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길드 매니저 금해준입니다.]

그는 길드의 투자자가 된 이후, 자신을 ‘길드 매니저’라고 자칭하면서 매일 아침 안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어, 그래. 별일 없고?”

[오늘부터는 길드 건물 인테리어를 시작할까 하는데요, 형님이 원하신다면 인테리어 업체 포트폴리오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런 건 네 맘대로 해도 돼.”

[예, 사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하···. 형님. 오늘은 바쁘신가요?]

“그래.”

[균열에라도 들어가십니까?]

“어디 섬에 좀 길게 갔다 오려고. 내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는 안 해도 된다.”

한건우는 금해준에게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금해준이 의아하게 물었다.

[그런데 섬에 어떻게 가시려고요? 섬에는 포털이 없는데···. 설마 배 타고요? 어느 세월에 갑니까.]

“....”

한건우는 배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관광객인 척 해도 되고, 혹여 신분을 검사한다면 <그림자 맹시>로 어디든 몰래 숨어들 수 있으니까.

한건우가 죽인 100명이 넘는 각성자 중에 하늘을 나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니···.

그게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금해준이 뜻밖의 해결책을 내놨다.

[제 헬기 빌려드릴게요.]

“...헬기가 있어?”

한건우는 아직도 금해준의 재력에 적응이 안 된 상태였다.

[네, 그럼요. 조종사도 붙여 드릴게요.]

한건우는 피식 웃었다.

“조종사는 필요 없어.”

**

투두두두두두···.

헬기 프로펠러가 서서히 탄력을 받아 돌기 시작했다.

옆자리에는 사색이 된 이비현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벌써 귀마개용 헤드폰을 쓰고 벨트까지 꽁꽁 매고 있었다.

“조, 조종 면허는 있는 거죠?”

“없어.”

“뭐라구요?”

이비현이 화들짝 놀랐다.

“그래도 할 줄은 알아.”

한건우는 능숙하게 조종간을 당기고 조작했다.

구식 헬기가 아니라,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신식 헬기였다.

회귀 전 특수부대원 시절, 한건우는 온갖 탈것의 조종법을 배웠다.

마침 날씨가 좋으니, 오랜만의 조종도 할 만했다.

이비현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녀는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고 뭔가를 뒤적거렸다.

떨어지면 혼자 살려고 스킬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그것도 잠시, 비행이 안정되자 이비현은 점점 편안함을 되찾았다.

“와···.”

헤드폰을 통해서 이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밑에 짙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지자, 그녀가 탄성을 지른 것이다.

“바다 처음 봐?”

“네.”

진짜 처음 봤을 줄이야.

한건우가 가만히 있자, 이비현이 얼굴을 붉히며 덧붙였다.

“...바다 같은 데는 와볼 일이 없어요.”

어쩐지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한건우는 말을 돌렸다.

“솜브라는 비워 두고 왔어? 대장이 직접 나와도 괜찮겠어?”

“제가 잠깐 없어도 괜찮아요. 전임 대장님이 계시니까요.”

이비현은 전임 대장 유영원을 깊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맹목적으로 따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왜 유영원을 따라서 미등록자의 삶을 사는지, 그것도 의문스러웠다.

“이비현. 넌 왜 미등록자로 지내는 거야?”

<그림자 왕>으로 불렸던 수수께끼의 미등록자.

이비현의 과거는 한건우도 알지 못했다.

미등록자로 사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대개 각성하기 전부터 범죄자라서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거나, 현 정부를 거부하는 사람들로 알고 있었다.

“...각성자 등록을 하면 안 돼요. 한건우 씨도 제 말을 듣는 게 좋았을 거예요.”

“왜?”

한건우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미등록자가 되면 정부나 특수안보부의 손아귀에서는 확실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불편도 컸다.

미등록자는 공식센터나 정부 포털, 길드 이용도 어려웠고, 뭐든지 웃돈을 주고 불법적으로 해야 했다.

“제 부모님이...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으니까요.”

“?”

이비현은 입을 꾹 다물고,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굳이 한건우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한건우도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유영원 대장님이 제 아버지나 다름없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 헬기 안에는 소란스런 침묵이 흘렀다.

“다 왔다.”

목적지인 울릉도가 보였다.

한건우는 마정석 헬기를 착륙할 만한 공터를 찾으면서 생각했다.

‘은설아···. 대체 왜 이런 섬에 살고 있지?’

그건 꽤 특이한 일이었다.

세계에 균열이란 게 생긴 후, 모든 섬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육지로 옮겨 간 것이다.

외딴 섬에는 정부 구조대나 민간 길드 같은 건 없다.

해안 경비대가 있긴 하지만, 도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운 나쁘게 균열이 터지면 몰살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니 외딴 섬에는 대부분 비슷한 이들로 채워졌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고집 센 노인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살고 있는 건가?’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곧 알게 되겠지···.

이비현이 물었다.

“그 찾는다는 사람. 평범한 각성자는 아니죠?”

“응.”

“한건우 씨, 많이 긴장한 것 같네요.”

“내가?”

“네. 한건우 씨가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인데···. 보통 상대는 아닌가 보네요.”

한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한건우는 헬기를 착륙시킬 자리를 살폈다.

'저기가 좋겠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공터가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안 보였다.

마정석 헬기는 이게 좋았다.

마정석만 잘 갈아 끼우면 주유 시설이 필요없으니,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

“후우우···.”

착륙을 앞두고 헬기가 공중에서 제자리에 멈추자, 이비현은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조금 핏기가 돌아왔다.

“그런데, 찾는 사람이 아이라고 했죠? 몇 살인진 모르지만.”

“그래.”

“이상하네요. 여기는 변변한 학교도 안 보이는데요.”

울릉도에는 인구가 극도로 줄어들어서, 작은 분교 하나도 없었다.

“여기 주민이래야 200명 정도밖에 안 돼. 충분히 찾을 수 있어.”

한건우는 은설아의 얼굴도 알고 있으니, 못 찾을 걱정은 별로 없었다.

조금 안 좋은 상태일 때 보긴 했지만···.

그때 이비현이 망원경처럼 생긴 아이템을 꺼냈다.

각성자나 마수를 탐지할 수 있는 파인더로, 투명한 마석으로 연마한 렌즈가 달려있었다.

그녀가 헬기 아래 펼쳐진 땅을 살펴볼 때, 한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소용없어.”

한건우의 말을 듣고도, 이비현은 기어이 파인더로 섬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꼭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같았다.

“정말이네요···. 정부 계측기로 봐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더니.”

파인더와 정부 계측기는 같은 원리를 가진 아이템이니, 똑같이 안 보이는 게 당연했다.

이상하게도 동해 주변에서는 아이템을 이용한 탐지가 잘 되지 않았다.

이계의 마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그 반대였다.

모든 곳에서 마기가 탐지되어서 구별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비현, 아이템에 너무 의존하면 안 돼.”

한건우는 조용히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발동 : 화식조의 눈]

한건우의 홍채가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동공이 깊어지고, 먼 바다의 물결 하나하나까지 뚜렷이 보였다.

온 이계를 통틀어 시력이 가장 뛰어난 마수, 화식조의 시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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