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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바뀌고 있다
‘유영원···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가.’
암흑 균열에 있던 마수의 알.
유영원이 목숨을 걸고 가지러 간 것을 보고, 뭔가 알고 있다고 짐작은 했다.
‘예지능력으로는 월드클래스였다고 했던가.’
회귀 전, 정부 실험실 연구원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렇게 미래를 잘 보는데, 왜 여기 잡혀왔는지 모르겠다는 비웃음과 함께.
“그렇다면 그 알에서 나중에 뭐가 나올지도 알고 있나?”
한건우는 유영원을 살짝 떠봤다.
대답을 피할 거라고 생각했다.
뜻밖에 유영원은 쉽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제가 본 미래에서는... 그 알은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지도 모르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
“대장님?”
이비현이 화들짝 놀랐다.
원래 유영원은 예지 내용을 절대로 미리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한건우였다.
그 말은 마치, 한건우가 회귀한 것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거짓 간파>를 사용한 건 당연했다.
‘미래가 바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다.
자신이 본 예지와 조금이라도 다른 일이 일어났다면, 미래가 바뀌고 있다고 의심할 수 있겠지.
그렇게 넘어가려 했는데, 뭔가 마음에 걸렸다.
유영원의 말에는 앞뒤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유영원이 예지로 본 마지막 장면은... 암흑 균열에서 나를 만난 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뒤의 미래를 어떻게 본 거지?’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이라면 모를까, 모두 진실로 확인된 말이었다.
한건우는 혼란을 느끼며 유영원을 쏘아보았다.
하얗게 센 백발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얼굴.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거짓 간파> 특성도 한계는 있었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속마음은 알 도리가 없으니.
‘대체 뭐야··· 뭐가 진짜인 거지?’
하지만, 둘 다 가능한 가설이 하나 있었다.
‘유영원이 본 예지의 시간 흐름이, 내가 겪은 시간과 같은 거라면?’
한건우가 회귀 전 겪었던 미래, 그리고 회귀 후 암흑 균열에 들어온 한건우.
유영원이 본 예지는 그 순서에 따른 것이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었다.
어차피 세상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는 법.
한건우는 한없이 뻗어나가는 생각을 끊고,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한건우는 이해보다 적응이 빠른 사람이었다.
“뭐··· 알겠어. 그럼 내가 의뢰한 건은 어떻게 찾는다는 거지?”
“마수의 알을 부화시킬 사람을 찾는 게 맞으시다면, 좀더 범위를 좁혀볼 수 있습니다.”
정보 조직이라 그런지, 그 나름대로 각성자를 찾는 노하우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건우의 귀가 솔깃해졌다.
“좁혀볼 수 있다?”
“예. 마수의 알을 부화시킬 정도라면, 마수 친화력이 극한에 가깝다는 겁니다. 거기다 자연각성을 한 상태라면, 이미 마수들과 함께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가.”
한건우가 그녀를 죽였을 때, 그녀는 이미 마수와 한 몸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마수와 함께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예. 말씀하신 대로 인적이 드문 곳일 겁니다.”
“그래, 산 속이겠지.”
“글쎄요···. 산 속에 마수들이 여러 마리 몰려있으면 정부의 계측기에 탐지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걸 보면.”
유영원은 높낮이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제 생각에는 내륙에서 먼 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동해 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해는 계측 신호가 잘 안 잡히기 때문입니다.”
“섬...이라고?”
뜻밖의 장소였다.
한건우가 그녀의 최후를 보았던 곳은 태백산 언저리였다.
그녀는 집도 없이 산맥을 따라 이동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 전에도 산 속에 있었을 줄 알았다.
“동해바다 한가운데의 섬은, 울릉도와 독도뿐이죠. 어린아이라면 혼자 살지는 않을 겁니다. 먼저 울릉도에 가보려고 합니다.”
“울릉도···?”
한건우는 그 말을 듣자 짚이는 게 있었다.
회귀 전, 스무 살의 겨울.
그러니까 올해 겨울 무렵이다.
뉴스에서는 울릉도에서 일어난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 네, 여기는 울릉도, 집단 변사 사건 현장입니다.
정부 구조대가 파견되었으나, 섬 전체에 생존자는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울릉도에 살던 주민 약 200여 명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근처에 균열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누가 봐도 마수에게 당한 흔적 같았다.
워낙 무섭고 끔찍한 사건이라, 언론을 타고 한참 동안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동해바다 속에 균열이 터져서, 마수가 휩쓸고 간 것 아닐까?’’
‘하늘을 나는 마수들이 잠깐 내려왔다 간 걸지도 몰라.’
목격자도, 증거도 없는 사고 현장.
정부 구조대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시체만 겨우 수습하고 돌아왔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다른 섬에 살던 주민들을 육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아하, 그랬던 건가.’
그 사건은 아마 그녀의 소행이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울릉도가 맞는 것 같아. 나도 같이 간다.”
“같이 가는 건 곤란해요. 한건우 씨와 움직이면 지나치게 눈에 띄어요.”
이비현이 합리적인 반대를 했지만, 한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정체를 잘 숨기면 돼.”
“그래도···.”
이비현이 한 번 더 말리려 했지만, 한건우의 단호한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
집에 돌아온 한건우는, 여동생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윤아, 나 멀리 좀 갔다 올 것 같아.”
“얼마나 멀리?”
지윤은 벌써 화들짝 놀라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조금? 그래도 자주 연락할게.”
“오빠, 위험한 건 절대로 하면 안 돼. 혹시 위험할 거 같으면 바로 숨어야 돼. 알겠지?”
한건우는 웃음이 나왔다. S급 플레이어가 이런 말을 듣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윤은 오늘따라 계속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지윤은 아직 고등학교도 가지 않은 어린 소녀였다.
‘그 애도 지윤이랑 동갑쯤이려나···.’
한건우는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비스트 마스터> 특성의 주인, 은설아.
그녀는 한건우의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특수부대 일을 하면서 다른 각성자를 죽였을 때는 이렇게 마음이 쓰인 적이 없었다.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른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도 있었다.
한건우가 죽인 각성자들은 대부분 위험한 악당이었다.
수많은 민간인을 해친 사람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죽이면, 작전 성공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죄책감이 들 이유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은설아도 민간인을 해쳤던 건 마찬가지였던 듯한데···.
그래도 왠지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은설아의 목숨을 끊고 나서, 한건우는 한동안 힘들어했다.
아마 여동생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그때 특수부대 일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한건우는 회귀한 후에 수도 없이 되새긴 다짐을 다시 했다.
은설아. 최강의 드루이드가 될 그녀는 한건우의 첫 번째 길드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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