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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의 덕질
“···미쳤냐?”
한건우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성처럼 나타난 S급 플레이어, 한건우를 영입하려는 길드는 많았다.
- 일성 길드에서 이미 제안이 오셨죠? 저희는 무조건 일성에서 부른 것보다 더 높은 연봉을 드리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한건우를 끌어들여서 국내 1위 길드 자리를 노리려는 야심찬 길드도 있었다.
차라리 금해준이 길드를 만들어 스카웃하려는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길드 마스터가 되어달라니?
길드 마스터는 길드의 대표이자 리더이고, 길드원들이 균열에서 얻은 모든 재화의 1차적 소유자다.
업적에 따라 길드원이나 용병들에게 배분을 해주지만, 나누는 권한도 마스터에게 있었다.
길드 마스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형님이라면 역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금해준은 물러나지 않았다.
길드 마스터가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세상에 어디 날로 먹는 게 있던가.
왕관이 빛나는 만큼, 무게도 컸다.
플레이어들은 생사를 오가는 만큼, 성격이 거칠고 자존심이 강하기 마련이다.
길드마스터는 그런 각성자들을 압도하고 제어할 능력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길드원이 공략 중에 잘못을 저지르면 마스터가 책임을 지기도 했다.
그런 걸 알고 하는 말인지···.
한건우가 금해준에게 물었다.
“길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당연히 초기 멤버입니다.”
금해준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사업을 배우면서, 균열 관련 사업을 하겠다고 구상해온 금해준이었다.
그 정도는 고민하지 않고도 답이 나왔다.
“잘 아는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절이다.”
“예?”
한건우는 확고했다.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
특히 길드는 어떤 사람이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갈린다.
금해준이 투자자랍시고 끼어들면, 길드원을 맘대로 데려올 것이다.
금해준이 데리고 다니던 오합지졸 경호원들이 떠올랐다.
‘차라리 조금 멀리 돌아가는 게 낫지, 폭탄을 안고 갈 순 없어.’
금해준이 손사래를 쳤다.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길드의 인사나 운영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누구를 몇 명 뽑을지, 어떻게 운영할지. 모두 다 형님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
믿어지지 않았다.
한건우가 눈을 가늘게 뜨자, 답답해진 금해준이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형님. 형님 말고 S급 중에서 길드 없이 솔플 하는 사람이 더 있나요? 없죠? 왜겠습니까···.”
“....”
“균열 뛰기만도 벅찬데, 이런저런 신고등록, 허가, 아이템 구매, 판매···. 잡일이 엄청 많죠?”
“...음.”
특수부대 시절에 비하면 귀찮은 일이 많기는 했다.
균열 공략을 준비하면서, 포션이나 스킬 주문서 구매도 꽤 품이 들었다.
균열에서 나온 아이템도 직접 팔러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규모의 경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포션이나 아이템도 길드 명의로 대량 구매하면 훨씬 싸게 살 수 있고···.”
한건우가 귀를 기울이는 듯하자, 금해준은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것뿐인가요? 길드 없이 마음에 맞는 파티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죠.”
“파티는 필요 없어.”
“지금이야 그럴 수 있죠.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요?
“....”
“그런데 형님은 대형 길드에는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은 듯하고, 그렇다고 호랑이가 개 밑에 들어갈 수 없으니 소형 길드도 안 되고. 답은 뭡니까? 직접 길드 마스터가 되는 거죠.”
자꾸만 기-승-전-길드마스터로 엮어졌다.
한건우도 곧 길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있었다.
끝까지 혼자 힘으로 특수안보부라는 거대 조직에 대적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런 건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한건우의 침묵이 길어지자, 금해준은 심호흡을 하고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형님 같은 분이 뜻을 펼치면 어떻게 되는지,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받아 주세요.”
금해준은 어마어마한 호구가 되보겠다며 스스로를 어필하고 있었다.
한건우는 지금 꼭 필요한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발동 : 거짓 간파]
“!”
한건우는 그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이놈, 진심이었어···.’
달콤하게 들리는 제안이니, 당연히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순수한 후원이라고 하니, 한건우가 판단하기 편했다.
이건 또다른 기회였다.
그가 가려는 길에 고속도로가 깔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금해준이 인사나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나쁠 건 없어.’
한건우는 냉정하게 리스크와 이익을 따져보았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다.
“신규 길드를 허가받으려면··· 정부에서 등록허가 심사를 받아야 하지?”
“!”
한건우의 마음이 움직인 것을 눈치채고, 금해준의 눈이 반짝였다.
“네, 요건이 몇 개 필요하죠. 길드 등록비용은 당연히 신경 안 쓰셔도 되고, 최소 5인 이상의 각성자가 모여야 심사를 받을 수 있는데···.”
각성자 5인을 모은다고 해도, 정부에서 길드 허가권을 따기가 쉽지 않았다.
주관적인 심사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심사는 정부의 모의 전투장에서 이뤄졌다.
균열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능력을 가졌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말로는 각성자 세계의 안전을 위해서 엄격히 심사한다고 하지만, 실체는 아니었다.
허가권을 따내려고 큰 뇌물이 오가기도 했다.
“뭐, 형님만 계신다면야. 허수아비를 4명 세워놓아도 통과되지 않을까요?”
금해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재벌 3세답게, 정부의 허가 같은 걸 겁내는 눈치가 아니었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삶을 살았을 테니까.
한건우는 대답 없이 피식 웃었다.
설령 정부에서 괜히 트집을 잡더라도, 뇌물 같은 걸로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통과시켜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되니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형님의 이름을 걸고 모집 공고를 내건다면, 능력 있는 지원자가 벌떼처럼 몰려올 겁니다.”
“공고를 낼 필요는 없어.”
“예? 벌써 염두에 둔 사람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래.”
한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형님···. 제 눈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금해준은 퍽 감동한 눈치였다.
한건우가 무조건 데리고 가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은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한 명씩 다시, 한건우의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문득, 길드 허가를 위한 다른 조건도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길드 허가를 받으려면 사무실이 있어야 하는데.”
금해준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 혹시나 해서 어젯밤에 제 건물을 하나 비워놨습니다.”
“....”
금해준이 [신규 길드 창립 제안서]를 차르륵 넘기더니 마지막 장을 폈다.
광화문 한복판, 마천루가 보이는 풍경 사진이 있었다.
“여기는 대현그룹 본사, 여기는 <일성> 길드 본사구요.”
금해준이 사진에 보이는 큰 빌딩들을 짚으며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가 길드 사무실이 될 겁니다.”
하늘을 뚫을 듯한 빌딩 숲 사이에, 낮고 조그만 상가건물이 보였다. 낡긴 했지만 깨끗해보였다.
한건우는 적당한 위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수정예로 갈 거니까 작은 사무실이 나을 것 같다.”
“예···?”
금해준은 놀란 기색이었다.
그가 한건우와 건물 사진을 번갈아 보더니, 정정했다.
“아. 제 건물은 거기가 아니라, 여기입니다.”
금해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은, 작은 상가건물 옆의 거대한 빌딩이었다.
“?”
***
그날 저녁, 한건우는 남몰래 솜브라의 비밀 기지를 방문했다.
솜브라의 리더, 이비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지를 옮겼군.”
“그 자들이 냄새를 맡은 것 같아서요.”
이비현이 말하는 이들은 특수안보부 정보관들이었다.
은신 특성을 무리하게 썼는지, 그녀는 피로해보였다.
“지난번 의뢰는 진척이 있어?”
이비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 의뢰란, <비스트 마스터> 특성의 원래 주인을 찾아달라는 것.
한건우가 그녀에게 말해준 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고, 산 속에 살고 있다.
스스로 각성한 줄도 모르는 자연각성자이며, 마수와 관련된 특성이 있다.
‘역시 그 정도 단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건 힘든가.’
그때 이비현이 물었다.
“혹시 그때, 암흑 균열에서 가져온... 마수의 알이란 것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요?”
“....”
한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정보를 줄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솜브라의 전임 대장 유영원이 목숨을 걸고 가지려 했던 마수의 알이 아닌가.
“그게 맞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건우는 고개를 들어 이비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로, 전임 대장 유영원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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