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6화 (2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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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마스터 놀이

“LK그룹에서 만들 인공 균열 중 하나를 저에게 빌려주십시오. 제 훈련장으로 쓰고 싶습니다.”

“뭐라?”

금일섭 회장은 대단히 놀랐다.

한건우의 요구가 과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소원은 예상보다 소박한 편이었다.

“자네가···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나?”

산전수전 다 겪은 금일섭 회장이었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LK그룹 연구소에서는 인공 균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었다.

인공 균열을 만들어서 균열에 관한 연구도 하고, 대형 길드에 모의 훈련장으로 제공할 목적이었다.

그 모든 것은 그룹 극비 사항이었다.

정부에서도 아직 몰랐다.

특수안보부쯤 되는 조직은 알고 있을지 몰라도, 얼마 전까지 일반인이었을 한건우가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정보를 잘 아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한건우가 딱 잘라 말했다.

물론 한건우가 누구에게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말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미래에서 봤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금일섭 회장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하얗게 센 굵은 눈썹이 꿈틀댔다.

“그것뿐인가?”

아마 LK그룹의 지분을 떼어 달라거나, 거액을 달라거나 하는 무리한 요구를 예상했을 것이다.

“예.”

한건우의 눈에는 추호도 망설임이 없었다.

돈이야 직접 벌면 된다.

‘비공개 훈련장이 있으면 제일 좋지.’

최근 스탯이 급격히 올라갔고, 잠재 특성이 꽤 많이 개화했다.

다양한 특성이 손에 익을 때까지 마음 편하게 훈련할 장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훈련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금일섭 회장은 한건우의 속내를 추측하려는 듯, 턱을 매만졌다.

“생각은 했네만···. 보통 젊은이가 아니군.”

“....”

금일섭 회장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그 시선은 한건우를 꿰뚫을 듯했다.

그가 보기에, 한건우는 전혀 스무 살 젊은이답지 않았다.

단지 애늙은이 같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사선을 몇 번이고 넘어본... 날카롭게 벼려진 야전사령관 같군 그래.’

한건우의 나이나 경험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금일섭 회장은 한평생 자신의 동물적인 감각을 무시해본 적이 없었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뭔가 더 있어.’

금일섭 회장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장사꾼 생활을 오래 하면서 얻은 게 있네. 사람을 한 번만 보아도 쓸 만한지 아닌지 알지.”

재벌 회장이 스스로를 장사꾼이라 표현하니 낯설었다.

한건우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저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남에게 쓰일 사람 같지 않군.”

“예?”

그러나 금일섭 회장은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한건우···. 이 자를 기억해 놓아야겠군.’

금일섭 회장이 탁자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좋네. 인공 균열 하나를 빌려주지. 기한은 자유일세. 자네가 원할 때 반환하면 되네.”

“감사합니다.”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물론 CCTV나 다른 감시도 일체 없이. 내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네.”

“....”

그런데 뒤에서 지켜보던 금해준이 끼어들었다.

“에이, 할아버지. 손자 목숨값이 그 정도밖에 안 되나요?”

“뭐라고? 이 놈 봐라···.”

막내 손자의 능청 앞에서, 금일섭 회장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금해준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무기한이라면서. 빌려주는 게 뭐예요? 그냥 하나 주세요.”

“저, 저···.”

금일섭 회장의 얼굴이 금세 울그락푸르락해졌다.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을 게 뻔한데, 그걸 그냥 하나 주라니?

인공 균열이 무슨 장난감인가.

한건우도 어이가 없었다.

“저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까요. 네?”

금일섭 회장이 끙, 소리를 내면서 돌아앉았다.

“...이 망할 놈이 정말···.”

호통을 치고 쫓아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일섭 회장은 손자의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받아주었다.

‘어떻게 저렇게 컸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금해준은 괜히 구김살 없는 천둥벌거숭이로 자라난 게 아니었다.

“자, 그럼 중요한 약속이니까 철저하게 해야겠죠?”

심지어 금해준은 마력이 담긴 계약서 스크롤을 꺼내더니, 한건우에게 지급 보증 계약서까지 써줬다.

“젊은이 앞에서 우스운 꼴을 보였구만 그래···. 자네도 언젠가 손주를 본다면 이해할거야.”

“....”

금일섭 회장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

“형님, 고맙다는 말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택을 나오는 길.

금해준이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왜냐면 전 미래의 동업자를 위해 투자한 것뿐이거든요. 회장님께서도 언젠간 잘 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또 그냥 넘기기 힘든 단어가 있었다.

“...동업자?”

“네. 이걸 봐주십시오.”

금해준이 아까부터 들고 있던 서류가방에서 두꺼운 책자를 하나 꺼냈다.

[신규 길드 창립 제안서]

“신규 길드?”

한건우는 책자를 넘겨 목차를 잠깐 훑어보았다.

사업 제안서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너희 LK그룹과 연계된 길드가 이미 있는 걸로 아는데.”

물론 이번 균열 변이 사건으로, 그 길드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플레이어 커뮤니티에서 뭐라고 떠들지 뻔했다.

-자기 손자가 죽을 뻔하니,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성 길드를 부르더라!

-국내 원탑 일성길드의 위엄.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있을 테니까.

금해준은 딱 잘라 선을 그었다.

“그건 할아버지와 관계 있는 길드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저는 접니다.”

“그래서 길드를 새로 만들겠다?”

“그렇습니다.”

대충 금해준이 길드를 새로 하나 만들 테니, 거기 들어오라는 것 같았다.

한건우는 당연히, 잘 모르는 재벌 3세의 길드마스터 놀이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한건우가 거절하려 할 때, 금해준이 치고 들어왔다.

“형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형님을 잘 압니다. 형님에 관한 건 다 읽었거든요.”

“...?”

금해준이 두 번째 파일을 꺼냈다.

한건우에 관한 기사, 분석 글, 목격담 등 모든 자료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그 중에는 PBS 문철민 기자와 했던 간단한 인터뷰도 있었다.

금해준은 그 기사를 감명 깊게 본 모양이었다.

곳곳에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금해준은 기사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쓰이지 않은 내용에서 더 많은 걸 읽었다.

“형님은 아직 클래스를 정하지 않으셨죠? 정했다면 기사에 나왔을 테니까요.”

“그래.”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그건 현재 어디 소속될 생각이 없단 뜻이죠. 분명히 여러 대형 길드에서 입사 제의가 왔을텐데.”

금해준은 자기 나름대로 분석한 게 있는 듯, 설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여러 길드를 재면서 몸값을 올리려 하는 걸까? ...그런데 기사에 자기 PR을 하는 기색도 없고. 그게 의문이었죠. 형님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요.”

금해준이 진지하게 제안했다.

“형님은 타고난 리더이십니다. 길드의 마스터가 되어주십시오. 저는 투자를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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