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4화 (2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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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

‘차은비였구나.’

대한민국에 유일한 S급 힐러 차은비.

한건우도 그녀에게 직접 힐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회귀 전 딱 한 번, 그녀와 파티를 해본 적은 있었다.

그때는 정찰 임무라 힐을 받을 일이 없었는데···.

...정말이지 엄청났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충만한 느낌.

“한건우 씨···?”

차은비는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전에 보인 무심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보아하니 한건우가 이 균열 안에 있는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한건우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일성길드에서 재벌가 도련님을 구하러 긴급 출동했군.’

안 봐도 뻔했다.

재벌 3세 금해준이 균열에서 개죽음을 당할 위기이니, LK그룹이 발칵 뒤집혔으리라.

LK 회장 측에서 일성 길드에 금해준을 구해달라고 직접 의뢰한 것 같았다.

LK에서 키우는 길드는 따로 있는데도, 막내 손자의 목숨이 걸려있으니 국내 1위인 일성을 찾은 것이다.

“금해준 플레이어, 무사하십니까?”

일성 길드원들이 달려가서 금해준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

“앗, 네···.”

금해준은 머쓱한 태도로 앞으로 나왔다.

워낙 방어구가 훌륭해서 큰 부상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잘한 부상은 있었다.

“차은비 부장님!”

일성 길드원들이 차은비를 불러 힐을 요청했다.

금해준보다 크게 다친 파티원들도 있었지만, 그건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금해준이 뜻밖에 힐을 양보했다.

“난 별로 안 다쳤어요. 이 사람들 먼저 해주세요.”

“....”

차은비는 순서에 상관없이 금해준의 모든 파티원들에게 전방위 힐을 걸어주었다.

순식간에 모든 자잘한 부상이 없어지고,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와···.”

파티원들은 성의 없이 뿌려진 힐에도 크게 감격했다.

한건우는 차은비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방금은 고맙습니다.”

그녀 덕분에 수월하게 이 균열을 공략할 수 있었다.

“한건우 씨··· 정말 놀랐어요. 대단하시네요.”

차은비는 순수하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은 누구보다 잘 알아봤다.

차은비는 방금 한건우의 활약을 되새겨보고 확신했다.

‘저 사람은 이레귤러야.’

자기가 S급이라서 더 잘 알았다.

아무리 한건우가 S급이 떴다고 해도,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가 보일 수 있는 무용은 아니었다.

‘지금 이 정도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한다는 거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차은비는 한건우를 꼭 일성 길드에 데려오고 싶어졌다.

‘천명환 선배 때문에 괜히 어설프게 컨택했잖아. 제대로 알아보고 할걸.’

차은비는 마음 속으로 SSS의 천명환을 원망했다.

천명환이 억지로 시키지만 않았어도, 좀더 준비해서 좋은 첫인상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한건우 씨. 그동안 바쁘셨나요? 연락이 없으시길래.”

“네.”

한건우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차은비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이후, 한건우는 그녀에게 따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

차은비에게 악감정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길드라고 해도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성 같은 큰 길드에 들어가면 여러모로 편하겠지만, 조직에 들어가면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

조직이 클수록 더 그랬다.

그건 한건우가 추구하는 길과 정반대였다.

“돌아가시면 꼭 연락 주세요. 계약 생각이 없어도 괜찮으니까요.”

“아, 네.”

한건우는 적당히 대응하고 물러났다.

“!”

차은비의 그런 행동을 보고, 몹시 자존심이 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성 길드의 최정예 파티원들이었다.

‘방금 한건우 플레이어는 분명히 대단하긴 했지···.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빨아주면 우리 일성이 뭐가 돼?’

‘누가 보면 일성에는 S급이 없는 줄 알겠네···.’

차은비는 일성 길드의 얼굴과 같은 존재였다.

평소의 그녀는 남에게 관심이 없고 차가운 편이었다.

그런 차은비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그들은 더욱 반감이 들었다.

그때, 담요에 감싸여 있던 금해준이 또 의외의 행동을 했다.

“한건우 플레이어 님! 잠깐만요.”

“?”

“제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이대로 보낼 수 없어요.”

한건우는 금해준을 쳐다보고, 그냥 돌아섰다.

그가 보기에 금해준은 진지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철없는 재벌가 도련님에 불과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 해도, 금해준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받을 생각이었다.

“어어···.”

철저하게 무시당한 금해준이 당황한 소리를 냈다.

슈우우-.

한건우는 먼저 균열을 나왔다.

한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변이 균열’ 사태.

원래는 금해준과 저 파티원들은 전원 사망했고, 뒤이어 투입된 대형 길드가 상황을 마무리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게 일성 길드였군.’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금해준은 물론, 이름 모를 검사와 성기사, 힐러. 그 중 아무도 죽지 않았다. 회복을 못 할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변이 균열을 해결하면 어떤 보상이 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어려운 과업일수록 높은 보상을 주니까.

그런데···.

[아이템 획득 : 숨겨진 방의 열쇠]

- 놀라운 업적 달성 보상.

- ???

‘뭐야.’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청동색 열쇠가 손에 떨어졌다.

“....”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열쇠보다는, 당장 쓸모있는 스킬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포인트나 배분하자.’

솔로 플레이가 아니라 파티원들을 데리고 공략했으니, 기여도가 낮아서 경험치가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변이 균열이라는 희귀한 난이도 조정 때문일까?

경험치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경험치 : +14,727]

“오.”

여전히 마력은 높일 필요가 없었기에, 나머지 3개의 스탯에 고루 배분했다.

그동안 솔로 플레이를 하면서 스탯을 많이 높여놓았다.

이제는 스탯이 웬만큼 높아져서, 같은 경험치로도 스탯은 천천히 오른다.

체력 167 -> 201 (+34)

근력 154 -> 166 (+12)

민첩 88 -> 98 (+10)

마력 1116.

스탯 성장이 매우 빨랐다.

벌써 체력은 200을 넘었고, 근력도 150대를 넘어갔다.

스탯 하나를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이야.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회귀 전 그토록 힘들게 쌓았던 스탯을 몇 개월만에 금방 따라잡고 있었으니까.

스탯 포인트를 배분하고 나서도, 한건우는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S급 힐러 차은비였다.

막상 차은비의 서포트를 받아봤더니, 새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차은비를 내가 데려올 수는 없나?’

힐러로서의 차은비가 무척 탐이 났다.

그녀를 데리고 있는 일성 길드가 부러울 정도였다.

***

“해준아! 너 안 다쳤니?”

금해준의 어머니는 우아한 재벌집 사모님이었다.

그런 그녀가 스타킹도 신지 않은 맨발로 대문까지 뛰어나왔다.

“괜찮아요, 어머니.”

금해준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건우 플레이어···.’

그런 사람은 난생 처음 보았다.

S급 플레이어 한건우.

금해준은 얼굴만 보고도 바로 한건우를 알아보았다.

뉴스에서도 많이 보았지만, 플레이어 커뮤니티에서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본 얼굴이었으니까.

사실 금해준은 한건우의 열성 팬이었다.

그의 사진, 정보, 목격담.

모든 걸 모으고 있었다.

실제로 본 한건우는 그 이상이었다.

‘아무리 플레이어 세계에서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라지만··· 정말 대단했어.’

원래 플레이어들은 어린 나이에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몸을 쓰는 일이다보니 2-30대에 정점을 찍고, 나이를 먹으면 폼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한건우가 보여준 모습은 남달랐다.

전략적인 상황 판단과 리더십.

그건 어린 나이에 쉽게 가질 수 있는 재능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일반인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금해준이 보기엔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같은 느낌이었다.

자기 또래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말투도 딱딱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게 군인 같기도 했다.

‘스무 살인데 저런 포스가 나다니. 한건우 플레이어는 역시대단해.’

금해준은 눈물을 찍어내는 어머니를 지나, 할아버지의 서재로 갔다.

“할아버지.”

“할 말 없다. 썩 들어가.”

금해준의 할아버지, LK그룹의 금일섭 회장은 몹시 화가 난 눈치였다.

그러나 금해준은 활짝 웃으며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할아버지! 손자가 죽다 살아왔는데 그럴 거에요?”

금해준은 재벌 회장인 할아버지에게 재롱을 피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 놈이···.”

할아버지인 금일섭 회장은 애써 화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미 화가 풀리고 있었다.

금해준은 그걸 눈치 빠르게 알아보았다.

“할아버지! 저 드릴 말씀 있어요.”

“흠··· 뭐냐.”

“저 길드 하나만 허가 받아주세요.”

“뭣, 뭐라고?”

당장 그놈의 플레이어 질을 못하게 해도 시원치 않은데.

길드를 하나 만들어달라니.

금일섭 회장이 분노에 차서 일갈을 하려는 참이었다.

“저 이제, 길드 투자자 하고 싶어서요.”

“...?”

그의 손자, 금해준이 자신있게 웃고 있었다.

금해준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때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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