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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균열 (5) - 공략 완료
터억.
리자드맨의 머리를 한 히드라의 이빨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꿀꺽.
고대 히드라는 한건우가 속임수로 내민 ‘제물’을 삼키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제물들’.
평소 같으면 히드라가 절대 먹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히드라는 그걸 무방비하게 삼켜버렸다.
리자드맨 제사장의 주문을 듣고, 산 제물을 흡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쿠웅-!
고대 히드라가 몸부림치며 긴 목을 흔들었지만, ‘제물’은 이미 식도를 꾸역꾸역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한건우가 히드라에게 먹인 것은, 늪지대의 진흙 속에 사는 등급외 마수 <늪거머리>였다.
사람 팔뚝만한 늪거머리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생물로, 마수 취급조차 받지 않았다.
눈도 없고 이빨도 없이, 피를 빨아들이는 빨판만 있다.
심지어 헤엄을 치지도 못해서 진흙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갔다.
플레이어들이 늪거머리를 신경쓰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 늪거머리들은 오직 리자드맨의 푸른 피만 빨기 때문이다.
타앗-!
밧줄에 거꾸로 매달려 묶여 있던 한건우는, 물가에 가볍게 착지했다.
<경공> 스킬로 추락의 충격을 완화했다.
다른 여덟 개의 머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을 해왔지만, 한건우는 수월하게 피했다.
제물을 완전히 흡수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기에, 방어 위주였다.
‘역시 내가 하는 게 맞았어.’
한건우 말고 이 역할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저요! 제가 할게요!’
아까 한건우의 계획을 듣고, 금해준은 자기가 솔선수범해서 위험을 무릅쓰겠다고 나섰다.
그 모습은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
‘안 돼. 위험해.’
‘위험한 건 다 마찬가지 아니에요?’
당돌한 금해준의 제안을 한건우는 딱 잘라 거절했다.
‘실력을 넘어서는 리스크를 지는 건 만용이다.’
‘....’
세상에 안되는 것 하나 없이 오냐오냐 커온 티가 나는 금해준이었다.
한건우의 거절을 듣고, 금해준은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났다.
히드라의 맹렬한 공격을 피하면서, 한건우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금해준에게 이 짓을 시켰다면, 곧바로 히드라의 먹잇감이 되었겠지.’
나중에 금해준 얼굴을 한 히드라 머리가 하나 솟아났을 것이다.
“....”
별로 보기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한건우가 하늘로 불꽃을 쏘아 신호를 보냈다.
피유우웅-!
한건우의 신호를 보고, 절벽 위에 몰려있던 리자드맨들이 당황했다.
“크스스스?”
[뭐지? 제물이···.]
“키이잇!”
[습격이다!]
스컹-!
치이잉-.
절벽 위에서는 기습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도망간 것처럼 꾸미고 쥐죽은 듯 숨어있던 금해준의 파티원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한건우의 지시에 따라,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온몸에 늪지대의 진흙을 치덕치덕 바른 채였다.
“죽어! 도마뱀 놈들아!”
일방적인 습격이었다.
이 균열은 빽빽한 정글 때문에 마수에게 기습을 당하기 쉬웠다.
역으로 생각하면, 마수를 습격하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갑작스런 기습, 그리고 불타는 검에 당황한 리자드맨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하나하나 쓰러져갔다.
애초에 D급 균열의 리자드맨이었다.
상급 균열에 있는 리자드맨보다 크기도 작고 전투력도 낮았다.
“이얏!”
“거기, 조심해!”
이전과 달리 파티원들의 손발도 잘 맞았다.
한건우가 포지션과 전투 대형을 수정해준 덕분이었다. 동선과 조합이 효율적으로 변했다.
네 명 모두가 그걸 느끼고 있었다.
뒤에 물러나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힐러에게는 그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까 그 사람 말대로 하니까 확실히 달라.’
모두가 본연의 능력 이상을 끌어내어 활약하고 있었다.
리자드맨들은 금세 열 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제사장이 자신들의 고대신 히드라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신이시여! 도와 주십시오.]
절벽 아래에서 한건우를 죽이려 하던 고대 히드라가 움찔했다.
뜻밖에 리자드맨들의 절박한 부름에 반응한 것이다.
고대 히드라는 그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바위 절벽을 빠르게 기어올라갔다.
한건우가 히드라의 흔들리는 꼬리를 공격했지만, 히드라는 이제 한건우에게 관심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작전 변경.’
한건우는 바위 암벽을 타고, 히드라를 따라 올라갔다.
*
금해준의 파티원들은 절벽을 타고 올라온 히드라를 마주하고 덜컥 겁을 먹었다.
“저, 저기!”
고대 히드라의 강력함은 아까 충분히 경험한 터였다.
아직 리자드맨 잔당들을 처리하지도 못했는데, 그들 넷이서 히드라를 상대할 수 있을까?
“한건우 플레이어 님!”
곧 한건우가 따라 올라오자, 그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치 원래부터 한건우가 그들의 리더라도 되는 것 같은 태도였다.
“성공··· 하셨나요?”
힐러의 물음에, 한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댜.
“백업 부탁해.”
“네···!”
한건우는 그 말과 함께, 마창 게이볼그를 들고 뛰어올랐다.
파아앗-!
고대 히드라가 아홉 개의 입을 벌리며 한건우를 삼키려 했다.
한건우는 <경공> 스킬의 마지막 주문서를 썼다.
[스킬 발동 : 능공허도]
한건우의 몸이 허공의 계단을 딛은 것처럼 높이 솟구쳤다.
가장 위에 올라온 히드라의 목이 창에 잘려 떨어졌다.
꿀렁 꿀럭···.
잘린 단면에서 살과 근육이 뭉쳐지더니, 금세 새 머리가 솟아나왔다.
눈이 없고 빨판만 달린 늪거머리의 머리였다.
‘됐다!’
고대 히드라는 늪거머리를 이미 제물로 흡수했다.
그걸 확인했으니,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새로 생겨난 머리는 늪거머리의 본능을 버리지 못했다.
푸른 피를 빨고 싶다는 충동에 따라 리자드맨 한 마리를 물고 흔들었다.
“키이익!”
거대한 빨판에 물린 리자드맨은 순식간에 체액이 빨려 작게 쪼그라들었다.
괴이한 광경이었다.
“세상에···.”
놀란 성기사가 헛숨을 들이켰다.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리자드맨들이었다.
자신들이 불러온 신으로부터 공격받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혐오스러운 늪거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게 더 충격이겠지.
한건우는 <능공허도> 스킬이 끝나기 전에 나머지 아홉 개의 머리를 모두 자르기 위해 덤벼들었다.
무리한 공격이었다.
아직 잘리지 않은 머리에 물리고 충돌하면서도, 한건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힐이 들어오긴 했지만 미약했다.
한건우의 HP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깎여나갔다.
‘조금만 더.’
세 개. 네 개째.
새로 돋아난 히드라의 머리는 더 이상 한건우를 위협하지 않았다.
늪거머리의 머리는 리자드맨들을 물어서 피를 빠는 데 급급했다.
일곱, 여덟···.
마지막 아홉 개째의 머리를 잘랐을 때, 한건우는 위험을 느꼈다.
‘힐이 모자라···.’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생명력이 돋아나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힐이 들어왔다.
‘뭐지?’
아슬아슬하게 깎였던 HP와 MP가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듯한 활력이 차올랐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한건우는 허공에 뛰어오른 채로 창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특성 발동 :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 창을 던졌을 때, 맞은 상대방은 회복 불가 디버프를 받는다.
[아이템(신화급) : 마창 게이볼그]
- 투창 시 반드시 명중한다.
한건우는 전력을 다해 마창 게이볼그를 던졌다.
피유우우우-
쿠슉!
마창 게이볼그가 고대 히드라의 몸통에 명중했다.
히드라가 소리 없이 몸부림쳤다.
그 파장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금해준과 그 파티원들이 멀찍이 물러났다.
타악!
<능공허도> 스킬이 끝나고, 한건우가 바닥에 착지했다.
한건우는 창이 박힌 히드라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창을 뽑았다.
꿀럭, 꿀럭···.
히드라의 체액이 뿜어져나왔다. 이제 더이상 재생이 되지 않았다. 한건우는 망설임 없이 히드라의 몸통을 갈랐다.
[A급 균열 - 고대신의 늪지대, 공략 완료]
- 잔여 시간 : 69시간 53분 13초
- 변이 균열을 한 번에 공략 성공.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한건우는 쏟아지는 메시지창을 껐다.
‘아까 그 엄청난 힐은 뭐지?’
그 힐이 있었기에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을 처음으로 써볼 수 있었다.
한건우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
어마어마한 힐을 준 사람은, 다름아닌 S급 힐러 차은비였다.
그녀가 몹시 경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차은비의 뒤에는 길드 <일성>의 최정예 파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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