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2화 (22/238)

────────────────────────────────────

변이 균열 (4) - 산 제물

한건우에게도 이건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 균열에서는 회귀 전 지식을 활용할 수 없다.

게다가 처음 보는 파티를 이끌어서 캐리해야 했다.

‘해 보자.’

한건우가 특수전단의 부대장으로 있었을 때, 어리버리한 신입 대원들을 숱하게 이끌어왔다.

물론 이 정도로 수준 낮은 대원들은 아니었지만.

“준비해. 먼저 물리적 공격이 올 거다.”

파티원들은 제대로 위치도 못 잡고 있었다.

한건우가 신속하게 위치를 잡아주었다.

“금해준. 너는 여기. 물러나더라도 저기까지는 버텨.”

“앗, 네.”

“성기사, 여기 좌측에 서라. 검사, 너는 우측에.”

성기사와 검사는 금해준의 대각선 뒤쪽에 각각 자리를 잡아주고, 힐러는 가장 안전한 곳에 위치시켰다.

이들이 가장 보호해야 할 것은 힐러였다.

아까 어이없이 몰살당할 뻔한 것도 힐러를 잃어서일 것이다.

파아아아-!

호숫물을 뒤집어 엎을 듯한 굉음이 일었다.

고대 히드라가 아홉 개의 입을 벌리고 부닥쳐왔다.

“으아아!”

그 광경은 무시무시했다.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처럼 압도적으로 보였다.

성기사와 검사가 도망가려는 듯 주춤거렸다.

“물러나지 마! 버텨!”

그들은 한건우의 일갈을 듣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야!”

“으아아!”

그들이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두 개의 검신에는 <아그니의 화염>으로 꺼지지 않는 불이 붙어있었다.

“!”

한건우는 그들의 자세를 관찰했다.

생각보다 기본 실력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치이익!

불꽃에 닿은 고대 히드라가 머리를 홱 물렸다.

파티원들의 공격이 강해서라기보다, 히드라에게 거부감을 준 것 같았다.

리자드맨을 제물로 흡수한 히드라는, 불을 싫어하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좋아.”

한건우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파티원의 수준이 낮을수록 직접적인 칭찬이 필요하다. 한건우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잇었다.

그때 히드라의 머리들이 또 익숙한 움직임을 보였다.

산성 독액을 뿜으려는 것 같았다.

“금해준. 보호막!”

“넷!”

금해준이 때맞추어 스킬을 발동했다.

뜻밖에 금해준은 빠릿하게 말을 잘 들었다.

금해준이 펼친 보호막 뒤에 파티원들이 안전하게 숨었을 때, 한건우가 앞으로 돌진했다.

슈욱!

턱!

몸통에 한건우의 창을 맞은 고대 히드라가 꿈틀댔다.

그러나 히드라가 입은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어버렸다.

엄청난 회복력.

그게 바로 고대 히드라를 A급 균열의 보스급 마수로 만든 능력이었다.

독액을 다 뿜어낸 고대 히드라는 나선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

“으악!”

“금해준, 저쪽으로 물러나!”

독액을 막아낸 다음에는 굳이 파티원들의 위치를 정해줄 필요도 없었다.

금해준의 위치가 곧 파티원들의 위치니까.

파아악!

“버티자!”

나선으로 회전하는 히드라의 머리를, 파티원들이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막아냈다.

생각보다 멀쩡한 파티의 모습이었다.

힐러도 눈치를 보면서 금해준에게 조금씩 힐을 주고 있었다.

그것도 한건우가 의도한 대로였다.

힐러의 입장에서는 금해준에게 힐을 주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금해준을 지키려고 고용된 사람일 테니까.

아까 금해준에게 힐을 주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그게 본뜻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힐러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뜻이었다.

힐러뿐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금해준에게 치우치지 않고 정상적인 역할을 하라고 지시하자, 곧 자기 페이스를 되찾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다면 D급 균열 정도는 쉽게 공략할 수 있었을텐데.’

한건우는 그들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게 수정했다.

“공격.”

한건우의 나지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능력을 살려서 히드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근거리 딜을 맡은 성기사와 검사가 눈에 띄게 활약했다.

“이얏!”

“죽어라!”

금해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거리 공격을 쉬지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

다들 해볼 만하다고 느꼈는지, 열의에 차서 고대 히드라를 공격하고 있었다.

“키야아아-”

[뜨거워!]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건우가 보기에는 아쉬운 수준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격을 해도, 히드라의 재생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지금 그걸 써야 하나?’

한건우는 잠시 고민했다.

마침 지금 상황에 딱 맞아 보이는 특성이 있었다.

천명환이 가졌던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이다.

맞은 상대방에게 회복 불가 디버프를 주는 특성으로, 최종 개화하면 신화급까지 올라갈 만큼 강력했다.

그만큼 쿨타임이 긴데다 엄청난 MP를 소모하기 때문에, 피치 못한 상황에서 균열의 보스 몹에게 쓰려고 아껴 놓았던 것이다.

‘아직 아니야.’

히드라를 사냥하려면, 아홉 개의 머리를 동시에 잘라야 했다.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특성을 쓴다 해도, 고대 히드라가 아까처럼 호수 안으로 도망가서 나오지 않는다면 낭패였다.

최악의 경우, 나중에 들어온 후발주자 플레이어들에게 킬을 뺏길 수도 있었다.

한건우는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아직 부상자가 없을 때, 최종 작전을 펼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 작전이란....

"누군가가 다시 제물이 되줘야겠군."

"네?"

한건우의 혼잣말을 듣고, 파티원들은 귀를 의심했다.

***

리자드맨 제사장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제사가 완성되는군.]

좀 전에는 그들의 ‘신’에게 인간 힐러를 산 제물로 바치려 했었다.

인간 힐러를 제물로 먹는다면, 그들의 신은 더욱 강한 존재가 될 것이라 믿었다.

제사 도중에 방해를 받아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차였다.

그러나 그들의 전사들은 용맹히 적을 무찔렀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새로운 제물로 딱 맞는군.]

인간들이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때, 한 명은 정신을 잃고 버려진 모양이었다.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인간들은 서로 죽이고 버리는 게 예삿일이니···.

리자드맨 제사장은 그 인간을 마지막 산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아까 힐러에게 했던 것처럼, 그 인간을 절벽에서 줄로 묶어 높이 매달고, 주문을 외웠다.

산 제물이 미끼처럼 대롱대롱 허공을 떠다녔다.

“크스스···.”

[고대신이시여, 산 제물을 바칩니다···.]

제사장이 고대 히드라를 소환했다.

이제까지 동족인 리자드맨을 아홉 마리나 호수에 던졌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신이었다.

인간을 제물로 내세우자마자 나타난 걸 보니, 그들의 신은 인간 제물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역시···!]

호숫물에 파동이 일더니, 아홉 개의 머리가 달린 히드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리자드맨 제사장이 기쁨에 차서 말했다.

[산 제물을 드시고, 그 힘을 얻으소서.]

리자드맨 제사장이 주문을 외우자, 고대 히드라가 주문에 반응해서 입을 벌리고 다가왔다.

그때였다.

산 제물로 매달려있던 한건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자신도 리자드맨의 언어로, 낮게 속삭였다.

[산 제물을 드시고, 그 힘을 얻으소서.]

한건우가 히드라의 벌려진 입 속에 무언가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한건우의 손아귀에 나타난 마창 게이볼그가 모든 밧줄을 끊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