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1화 (2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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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균열 (3)

‘늦었군.’

간발의 차이였다.

막지 못하고, 똑같은 일이 일어나버렸다.

국내 최초의 ‘균열 변이’ 사태.

광신도 리자드맨들이 제물을 바쳐서 자기들이 모시는 고대신을 깨움으로써, 균열의 등급이 달라졌다.

D급 균열이 A급 균열이 되어버린 초유의 사건으로, 나중에 학계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균열의 등급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A급 균열 - 고대신의 늪지대]

- 공략 조건(변경) : 고대 히드라 사냥

- 잔여 시간(변경) : 71시간 2분 49초

공략 조건도 변했고, 그에 맞춰 잔여 시간도 늘어났다.

균열 바깥에서도 보일 것이니,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것이다.

리자드맨들은 환희의 도가니였다.

“끼기기긱!”

[신이 강림하셨다!]

엄청난 크기의 고대 히드라가 완전히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이렇게 큰 히드라는 처음 보았다.

아홉 개의 히드라 머리는 특이하게도 리자드맨의 머리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한건우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A급 균열의 주인이라면 나 혼자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어.’

등장 자체로 균열의 등급을 세 단계나 올려버린 고대 히드라. A급 균열의 주인 격이라는 뜻이다.

한건우가 제아무리 강해졌어도 지금은 솔로 플레이 중이었다.

S급 플레이어라 해도 특별한 정보가 없는 이상은 혼자서 A급 균열을 공략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금해준과 그 파티원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저, 저게 뭐야···.”

“흐어억.”

금해준의 파티원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떨고 있었다.

금해준도 창백한 얼굴로, 엉덩방아를 찧기 일보직전이었다.

‘왜 이렇게 형편없는 파티를 짠 거야?’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텐데.

솔직히 균열 변이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D급이었어도, 이들이 성공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때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산 제물이 되어 거꾸로 매달린 힐러를 노리는 것 같았다.

“안돼!”

금해준이 파이어 애로우를 쏘았다. 궁수 클래스인 모양인데, 겨냥이 영 어설펐다.

피잉-

파이어 애로우는 허무하게 호숫물로 들어갔다.

고대 히드라는 거꾸로 매달린 힐러를 산 채로 물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

“!”

큰 덩어리가 히드라의 긴 목을 타고 꾸역꾸역 넘어가는 게 보였다.

“헉, 안돼.”

충격을 받은 금해준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때 한건우가 제사장이 있는 높은 단에서 뛰어내리면서, 히드라를 향해 마창 게이볼그를 크게 휘둘렀다.

슈우웅-

터엉!

예리함으로는 비길 데가 없는 창.

일격에 고대 히드라의 머리 중 하나가 잘렸다. 방금 힐러를 삼킨 그 머리였다.

뭉텅 잘려나간 히드라의 머리가 호숫 가장자리의 질퍽거리는 진흙에 떨어졌다.

“우와!”

이 와중에도 금해준은 해맑게 감탄했다. 뇌가 순수한 편인 것 같았다.

“크시식!”

[감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리자드맨 제사장이 분노에 차서 일갈했다.

잘려서 꿈틀거리는 히드라의 목 단면으로, 정신을 잃은 힐러의 머리가 보였다.

한건우가 뒤에 있는 금해준의 파티원에게 고갯짓을 하며 명령했다.

“너희 힐러, 챙겨.”

금해준의 파티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한건우의 명령을 따랐다.

아주 바보들은 아닌지, 빠릿빠릿하게 뛰어왔다. 그들은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리자드맨들을 상대하면서, 잘린 목에서 힐러를 빼냈다.

고대 히드라는 머리 하나를 잘리고도 멀쩡했다. 잘린 단면에는 금방 살과 근육이 뭉글거리더니 새 머리가 서서히 돋아나기 시작했다.

“키시시식!”

[신이 부활하신다!]

리자드맨 제사장의 외침 속에 새로 돋아난 머리는, 다른 여덟 개의 머리와는 달랐다. 리자드맨 머리가 아니라, 뱀 머리 모양이었다.

‘...그래. 히드라는 본래 뱀 머리를 가진 마수야.’

이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한건우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 고대 히드라는 자신이 먹은 산 제물을 흡수하고 있다고.

만일 방금 힐러를 먹어치웠다면, 힐러의 얼굴을 한 머리가 솟아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 고대 히드라의 아홉 머리가 한건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한건우는 호숫가로 물러났다. 방금 보았듯이, 물리적인 공격은 히드라에게 별 소용이 없었다.

히드라가 뭔가를 쏘려는 것처럼 뒤로 고개를 물렸다. 한건우가 눈치채고 경고했다.

“독액이야!”

한건우는 얼마 전 개화한 <아이기스의 보호>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발동 : 아이기스의 보호]

-물리적 공격을 제외한 모든 마법, 독, 저주에 대해 신체 보호막을 형성한다.

솨아아아-

아홉 개의 주둥이에서 녹색의 산성 독액이 쏘아져 나왔다.

우습게도 그 강한 독액은 리자드맨 몇을 덮쳤다.

금해준의 파티에서 탱커 역할을 하던 성기사가, 이번에도 다급하게 보호막 스킬을 펼쳐서 파티를 보호했다.

한편, 고대 히드라가 리자드맨과 비슷한 독액을 쏘는 것을 보고, 한건우는 확신했다.

‘자신이 먹은 제물을 흡수한 거야.’

마치 한건우가 자신이 죽인 각성자의 특성을 흡수했듯이, 이 고대 히드라는 자신이 먹은 제물을 흡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히드라는 리자드맨의 약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바위까지 부식시키는 산성 독액을 막아내면서, 한건우가 외쳤다.

“금해준! 아까 파이어 애로우 말고, 화염 속성 공격은 없나?”

갑자기 금해준의 이름이 불리자, 금해준의 파티원들은 뜨악한 표정이었다.

“파이어 애로우가 전분데요?”

금해준이 밝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저는 없습니다.”

“화염 스킬 주문서를 사 왔는데... 처음에 다 써버렸어요.”

리자드맨을 상대로 화염 스킬도 안 쓰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이유가 그거였다.

철저한 무능함에 한건우가 낮게 신음했다.

‘도움 안 되는 놈들이군.’

금해준이 한건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 설마 S급 한건우 플레이어? ...으악!”

금해준의 눈이 반짝이다가, 자기 부츠가 독액에 닿을 뻔하자 황급히 발을 보호막 안으로 집어넣었다.

“억, 조심하십쇼!”

“....”

오합지졸 파티에 저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긴 어려워보였다.

고대 히드라는 독액을 뿜어낸 후, 꼬리로 엄청난 물보라를 만들며 호수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푸우웅-!

‘철수할까?’

조금만 기다리면 정부나 길드에서 A급 균열에 맞는 대응을 할 것이고, 균열 공략시간도 늘었으니, 급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엔, 아깝다.’

어차피 언젠가는 도전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이 그 때일지도 모른다.

한건우는 이 파티를 데리고 고대 히드라 사냥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너희들,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내 말을 따라. 알겠어?”

한건우 혼자라면 빠져나갈 수 있지만, 이들은 도망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걸 아는지, 금해준이 동앗줄이라도 잡은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한건우가 파티의 구성을 확인했다.

금해준, 궁수 클래스. 원거리 딜러.

근거리 딜러를 하던 검사.

탱커를 하던 성기사.

마지막으로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힐러. 복장을 보아하니 주술사 클래스인 듯하다.

한건우는 역할 배분을 재조정했다.

“거기 성기사. 보호 스킬북을 금해준에게 넘겨.”

“예? 예.”

한건우는 금해준의 번쩍이는 갑주를 훑어보았다. 막대한 돈을 처발라서 참 다치기 어렵게도 만들어놓았다.

“금해준. 이제부터 네가 공격을 막아내는 탱커가 되어야 한다.”

“제가요?”

사실 탱커라는 이름은 과분하고, 인간 방패에 가까웠지만 굳이 거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건우가 검사와 성기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무기 보여줘봐.”

“아··· 네.”

[특성 발동 : 아그니(Agni)의 화염]

화르르륵!

한건우는 그들의 검신에 꺼지지 않는 불을 붙여주었다.

“와···.”

“이건···?”

감탄은 했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한건우는 성기사를 보고 말했다.

“<징벌> 관련 특성 있지?”

“예.”

성기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성기사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특성이었다.

“여기다 써봐. 기절한 사람 깨우는 데는 그게 제일 빨라.”

“....”

한건우가 가리킨 곳은 쓰러진 힐러의 얼굴 바로 옆이었다.

성기사가 복잡한 얼굴로 <징벌의 망치> 특성을 발동해서 땅바닥을 내리쳤다.

“끄읍!”

기절했던 힐러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한건우는 아직 제정신을 못 차린 힐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힐 1순위는 나다. 그다음은 검사, 성기사 순이다. 알겠어?”

“...예?”

순식간에 힐 대상에서 벗어난 금해준도 눈만 꿈벅거렸다.

한건우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시 호수 수면으로 고대 히드라가 헤엄쳐 올라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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