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20화 (20/238)

────────────────────────────────────

변이 균열 (2)

한건우는 열려있는 균열로 들어갔다.

[D급 균열 - 고대신의 늪지대]

슈우우-.

이공간으로 들어가는 감각이, 이젠 익숙해졌다.

스릉.

한건우는 마창 게이볼그를 뽑아들고, 몸을 낮추며 주위를 경계했다.

적은 보이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열대 정글 늪지대.

무덥고 울창한 밀림이었다.

시야가 트이지 않아서 기습당하기 딱 좋은 환경.

습기로 공기가 텁텁했고,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금해준 팀은 어느 쪽으로 갔을까?’

LK그룹 3세, 재벌가 손자인 금해준.

나이는 지금의 한건우와 비슷할 것이다.

회귀 전, 금해준이 이 균열에서 죽었을 때가 생각났다.

백발의 LK 회장이 오열하던 모습이 한참이나 방송에 나왔다.

금해준을 찾기 위해, 한건우는 이 균열의 공략 조건을 되새겼다.

- 공략 조건 : 리자드맨 부락의 고대신상 파괴

‘고대신상이라.’

리자드맨 부락에 가서, 사원이나 석상 같은 걸 찾아보면 될 것 같았다.

한건우는 늪지대의 바닥을 잘 살폈다.

늪지대이니, 앞서 간 플레이어들, 그러니까 금해준 팀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

발자국이 보였다.

흔적을 보니, 모두 4명.

금해준과 그 경호원들이다.

‘수준 높은 플레이어들은 아니야.’

등급이 높거나 경험 많은 플레이어들이라면, 저렇게 요란하게 자취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D급 균열이라고 하니 우습게 보고, 중하위 등급의 경호원만 데려간 것 같았다.

한건우는 <경공> 스킬 주문서를 꺼냈다.

소금사막 균열을 공략할 때 쓰고 남은 것인데, 여기서도 쓸모가 있었다.

[스킬 발동 : 허공답보]

거창한 이름과 달리, 허공을 날아다닐 수 있는 스킬은 아니었다.

몸무게를 가볍게 해서, 흔적과 기척을 줄여주는 스킬이었다.

지속 시간은 5분 내외.

한건우는 앞서 간 금해준 팀의 발자국을 따라, 늪지대 밀림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최근 민첩 스탯을 올렸더니, 달리는 속도도 무척 빨라졌다.

스킬까지 쓰니 발에 날개가 달린 듯한 기분이었다.

파스스스스-.

발이 늪지에 빠지지 않고, 수풀을 스치며 날아가듯 했다.

젖은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저건?’

밀림 중간중간, 소름끼치는 토템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곳곳에 썩은 짐승 시체 같은 것도 묶여있었다.

리자드맨들이 한 짓이 분명했다.

‘광신도들···.’

광신도.

리자드맨 종족의 별명이었다.

리자드맨들은 토착 신앙을 믿었다.

산 제물을 바치거나 섬뜩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딸랑.

“!”’

한건우의 몸이 줄 같은 것에 걸리면서, 불길한 방울 소리가 났다.

슈욱!

동시에 독침이 날아왔다.

민첩성을 올린 한건우에게는, 독침이 날아오는 게 느리게 보였다. 독침은 썩은 나무에 박혔다.

‘트랩이군.’

리자드맨 부락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였다.

‘설마 이 따위 허술한 트랩에 당한 놈은 없겠지?’

한건우는 주변 바닥을 살폈다.

웬걸, 핏자국이 보였다.

“....”

한건우는 핏자국을 따라 속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림자 맹시> 특성도 발동했다.

이제부터는 어디서 리자드맨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빽빽한 밀림 사이로 어느 순간, 확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지푸라기로 엮은 지붕들도 보였다.

리자드맨 부락이었다.

키는 2미터가 넘고, 온몸이 흉측한 비늘로 뒤덮인 근육질의 리자드맨들이 활과 돌도끼를 들고 있었다.

“키시시식!”

[침입자다!]

“크잇?”

[어디? 안 보여.]

한건우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쇄도하며 창을 휘둘렀다.

스르릉- 쉬익.

“큭!”

“크읏!”

마창 게이볼그가 춤을 추었다.

영문도 모른 채, 리자드맨들의 몸통과 목이 연달아 분리되었다.

순식간에 리자드맨 열댓 마리를 쓰러뜨리고, 한건우는 <그림자 맹시>를 풀었다.

한건우가 리자드맨 부락을 살폈다.

모두 집이나 창고처럼 생겼다.

사원이나 신상 같은 건 안 보였다.

“크스슥···.”

[죽어라···.]

다리가 잘린 리자드맨이, 한건우를 향해 기어오며 돌도끼를 겨누었다.

퍼억!

한건우는 발차기로 간단히 돌도끼를 날려버리고, 리자드맨을 바닥에 쓰러뜨려 가슴을 밟았다.

“큭···.”

밟힌 리자드맨의 주둥이에서 푸른 피가 울컥 흘렀다.

한건우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해본 게 가능할 것 같았다.

한건우의 입에서 리자드맨의 울음소리 같은 거슬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너희 부족의 신상은 어디 있지?]

“크슥? 키이잇?”

[어떻게 우리 말을?]

한건우는 쓸데없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리자드맨의 가슴을 밟은 발에 힘을 꾹 주었다.

[대답.]

“키이이이!”

리자드맨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잘린 다리에서 푸른 피가 꿀럭꿀럭 배어나왔다.

[···호, 호수 쪽....]

[호수? 알겠다.]

한건우는 부락을 둘러싼 실개천을 발견했다.

그쪽을 따라가면 큰 호수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슈웅-.

텅.

한건우는 리자드맨의 목을 베어 고통 없이 죽여주었다.

대답해준 보답이었다.

‘확실히, 대화가 된다···.’

마수의 말을 알아듣는 게 다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리자드맨의 언어가 나왔다.

아무리 인간형 마수라지만, 마수와 대화가 통하는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정확한 방향을 알았으니, 이제 직진뿐.

[스킬 발동 : 전격 쇄도]

쿨타임이 24시간이나 되는 스킬.

지금이 이걸 쓸 때였다.

한건우는 엄청난 속도로 물가를 거슬러 올라갔다.

점점 개천이 넓어지더니, 밀림 가운데 제법 큰 물웅덩이가 보였다.

죽은 리자드맨이 말한 호수 같았다.

호수는 깊고 어두웠다.

속에 커다란 괴물이 살 것만 같았다.

물안개 사이로 기묘한 소음이 들렸다.

‘악기 소리?’

굿이나 주술에서 들릴 법한 섬뜩한 소리였다.

타악기와 흐느낌, 주문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으아악!”

치잉-!

쿵!

사람의 비명소리와 전투 소리도 들렸다.

‘금해준 팀이군.’

한건우는 소음이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호숫가 높은 바위 위에는, 화려하게 꾸민 거대한 리자드맨이 한 마리 서 있었다.

거대한 리자드맨은 여러 종류 마수의 가죽을 걸치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제사장?’

그렇게 표현하면 적당할 것이다.

그 아래에는 3명의 플레이어와 리자드맨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말이 생각났다.

‘X밥 싸움이 제일 치열하다더니.’

잠깐만 봐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먼저 리자드맨에게는 불 속성의 특성이나 스킬을 쓰는 게 기본인데, 왜 잘하지도 못하는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두 번째는 좀더 심각했다.

‘힐러가 어디 갔지?’

4인 파티라면 보통 원거리 딜러, 근거리 딜러, 탱커, 힐러로 구성한다.

거기서 힐러가 없어졌다.

‘저기 있나.’

없어진 힐러는 호숫가에 산 제물이 되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아까 마을 입구의 독침 트랩에 당한 게 저 힐러였나 보다.

그가 매달린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3명 중 1명이 금해준이라는 게 문제였다.

원거리 딜러인 척하지만 사실상 쓸모없는 존재 아닌가.

그리고 파티 전체의 탱커 역할을 해야 할 플레이어는, 금해준을 지키는 데만 급급했다.

정작 금해준은 고가의 갑옷과 방어구로 도배를 해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

“...어이가 없군.”

어찌 되었든 균열을 닫는 게 급선무였다.

파괴해야 할 ‘고대신상’이라는 게 어디 있는지 살폈다.

리자드맨이 모시는 고대신이라면, 아홉 머리의 히드라.

리자드맨 제사장이 든 지팡이 끝에, 히드라가 생겨진 조각상 같은 게 달려있었다.

‘저거다.’

한건우는 해답을 직감했다.

한건우가 몸을 날려 도약하는 그때.

리자드맨 제사장이 고대신상이 달린 지팡이를 높이 치켜올렸다.

지팡이 끝에서 검은 빛줄기가 쏘아져, 호수 속으로 이어졌다.

파아아-!

“!”

파문과 물거품이 생겨나더니, 호수 안에서 거대한 괴물체가 솟아났다.

어마어마한 물보라가 일었다.

“끼이히이이!”

[드디어 기도에 응답하신다!]

리자드맨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안 돼!”

한건우가 제사장에게 창을 휘두르는 동안, <전격 쇄도> 스킬의 지속기간이 끝났다.

슈우우-

창의 궤적이 흔들렸다.

한건우의 창끝은 고대신상을 채 부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고대신상에서 뻗어져 나간 검은 빛줄기가 잦아들었다.

“히드라···.”

아홉 개의 뱀 머리가 달린 집채만한 마수.

리자드맨들이 신으로 모시는 아홉 머리 히드라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긴급 메시지가 떴다.

[(긴급)균열 변이 : 등급 조정]

- 고대신의 늪지대 (D급 -> A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