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9화 (1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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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균열 (1)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한건우는 돈을 받자마자 곧바로 이사를 갔다.

새 집은 부촌의 고급 빌라였다.

예전, 균열이 터지기 전에는 집값이 엄청나게 비쌌다는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

오히려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게 리스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집값은 내려가고, 렌트 비용은 올랐다.

어쨌든 그 덕분에, 한건우는 과감하게 현금 박치기로 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1순위는 안전이었다.

‘이 주변은 적어도 향후 15년 동안은 무사하니까.’

입지도 좋고 균열까지 피해가는 곳이라며, 언론에 자주 나오던 동네였으니 확실했다.

건물 자체가 안전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빌라 경비원이 무려 은퇴한 플레이어 출신이라고 했다.

워낙 짐이 조촐해서, 이사는 간단했다.

그나마 있던 짐도 대부분 버렸다.

“꼭 가져갈 것만 챙기고, 나머진 새로 사자.”

“진짜? 그래도 돼?”

“그럼.”

여동생 지윤은 들뜬 얼굴로 계속 감탄사만 내뱉었다.

“오빠, 나 이렇게 좋은 집은 처음 봐. 진짜 여기가 우리 집이야?”

감격하는 지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지윤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지, 놀러 온 사람처럼 계속 방문을 열어보며 구경을 다녔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회귀 전, 지윤이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주는 기분이었다.

***

솜브라의 비밀 기지인 버려진 유원지.

한건우는 이비현을 다시 만났다.

“대장이 바뀌지 않았네? 왜지?”

한건우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실종되었던 전임 대장 유영원이 돌아왔는데도, 이비현이 계속 리더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내부 사정입니다.”

이비현이 자세한 대답을 피했다.

한건우가 구해주었던 유영원은, 이비현의 뒤쪽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유영원은 이제 예지 능력자가 아니었다.

암흑 균열에서 마비독을 맞고 가사상태로 있던 동안에 예지 특성을 잃었다고 했다.

그 후에는 2인자로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건우로서는 다행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유영원보다는, 차라리 이비현이 다루기 편하니까.

게다가 암흑 균열에 함께 다녀온 이후, 한건우에 대한 이비현의 태도가 180도 변했다.

그녀는 한건우에게 호의를 보였고, 희미한 존경심까지 가지고 있는 듯했다.

대장이 그런 태도를 보이니, 솜브라의 조직원들도 한건우를 깍듯이 예우했다.

한건우의 등급이 S급으로 밝혀졌을 때도, 이비현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반응이었다.

“하나 더, 의뢰를 하러 왔다.”

한건우가 본론을 꺼냈다.

“정보입니까? 아니면 암살?”

“이번에도 정보.”

한건우는 솜브라와 지속적인 거래를 맺고 있었다.

미등록자 조직인 솜브라는, 뒷세계에서 알아주는 정보조직이자 암살조직이었다.

한건우에게는 매우 유용한 거래처이기도 했다.

지난 번 솔 스톤에 관한 찌라시를 풀 때도, 솜브라의 정보망을 톡톡히 활용했다.

“의뢰 내용은요?”

“사람을 하나 찾고 있어. 각성자다.”

한건우가 아공간 금고에서 현금 다발을 꺼내 내려놓았다.

의뢰를 위한 선금이었다.

“미등록자겠군요?”

이비현이 눈치 빠르게 알아챘다.

등록된 각성자라면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굳이 정보조직에 의뢰할 것까지도 없었다.

한건우가 찾는 사람은 <비스트 마스터> 특성의 원래 주인이었다.

“맞아. 자기 스스로 각성자인 줄도 모르는··· 발견되지 않은 자연각성자야.”

“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자기가 각성자인 줄도 모르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유영원도 눈썹을 꿈틀거렸다.

“찾기 쉽지는 않겠지만, 정부에서 발견하기 전에 꼭 찾아줘.”

***

쿠우웅-!

“끝났군.”

[C급 균열, 소금사막, 공략 완료]

- 잔여 시간 : 11시간 5분 51초

- 공략 시간 : 30분 9초

한건우는 혼자서 닥치는 대로 수도권 균열을 공략하고 다니고 있었다.

정부 구조대는 헛걸음을 하기 일쑤였다.

구조대 요원들 중에 한건우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한건우 플레이어님,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한건우가 깍듯하게 인사하고 지나가자, 구조대 막내 순경의 눈이 반짝였다.

“한건우 플레이어, 의무복무 안하고 돈 냈다고 해서 처음에는 욕했는데···. 복무자보다 더 열심인 것 같아요.”

“김 순경, 쉿! 다 들린다고.”

한건우가 딱히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 균열을 깨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템과 스킬 획득만을 노리는 것도 아니었다.

S급이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마창 게이볼그를 제대로 다루는 연습도 필요했고, 기본 스탯을 높여서 활용할 수 있는 특성을 늘려야 했다.

정부나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모의 훈련장에서 연습하겠지만, 한건우는 그런 게 없었다.

‘실전이 최고의 훈련이지.’

한건우의 변치 않는 신념이었다.

그는 아무리 등급이 낮은 균열에 들어가더라도, 방심하는 일은 없었다.

훈련장과 실제 균열은 엄연히 달랐으니까.

그때, 한건우의 휴대전화에 정부에서 보낸 긴급 재난문자가 왔다.

[<긴급> 18:08 현재 성동구 금호동1가 D급 균열 발생 / 민간인은 즉시 대피 / D급 이상 각성자 지원 요망]

마침 이 근처였다.

한건우는 고민 없이 새로 발생한 균열을 향해 이동했다.

금호동에 도착하니, 허공을 찢고 나타난 균열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한건우가 균열 정보를 확인했다.

[D급 균열 - 고대신의 늪지대]

- 공략 조건 : 리자드맨 부락의 고대신상 파괴

- 잔여 시간 : 11시간 40분 9초

한건우는 균열 정보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무작정 뛰어들면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그건 초심자보다 오히려 중급자가 잘 저지르는 실수였다.

지난번 <울프스 덴>처럼, 메시지 내용에 공략 팁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속임수가 숨어있기도 했다.

이번에는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늪지대는 리자드맨이 주로 서식하는 곳이 맞고. 리자드맨도... 몰살이 아니라 신상 파괴 정도라면 무난해.’

리자드맨은 인간형 마수라 머리가 좋지만, 불 속성의 특성이나 스킬에 취약했다.

공략 조건도 그다지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건우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음···.”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이 시점에 리자드맨이 나오는 D급 균열 관련해서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때 뒤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대화가 들렸다.

“우리도 지금 들어갈까? D급이면 할 만 하겠는데. 너 저번에 플레임 스킬 주문서 사지 않았냐?”

“난 빠질래. 아까 금해준 팀 들어가는 거 봤어.”

“뭐? 재벌 3세인가 걔?”

“맞아. LK그룹 금해준.”

“텄네, 텄어···. 야, 그냥 가자.”

“참 내. 재벌가 도련님이 플레이어 질은 왜 한대? 돈도 많으면서.”

“균열이 게임으로 보이나보지. 돈 처발라서 장비 맞추고, 각성자 경호원 대동하니 위험할 것도 없겠다!”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집어넣고, 땅에 침을 뱉고 투덜거리면서 사라졌다.

‘LK그룹 금해준···. 리자드맨···. 고대 신상···?’

한건우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문득 실마리가 잡혔다.

‘생각났다.’

한건우의 기억이 맞다면, 이곳은 단순한 D급 균열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균열에 들어간 금해준 일행은, 이제 곧 전원 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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