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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자
‘내가, S급 위의 수치가 떴다고?’
공무원들의 대화를 엿듣고 알 수 있었다.
S급 수준을 넘어서는 수치가 나왔다는 걸.
한건우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원래 <시스템>의 스테이터스 상에는 각성자 등급이란 건 없다.
시스템 상의 등급은 이계에서 온 것에만 매겨졌다.
균열, 마수, 마정석 같은 것들이었다.
국가에서 각성자를 등록하고 등급을 측정하는 건, 균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간단하고 직관적인 구조였다.
S급 균열의 난이도는 S급 각성자에게 적당하고, A급에게는 버겁다.
B급 이하의 각성자는 목숨이 위험하다.
그러니 등급에 따라 플레이어의 몸값이 엄청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기에 더욱 의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냥 S급이 나왔다 해도 못 믿을 판이었다.
S급을 초과하는 규격외 수치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과거의 한건우와 지금의 한건우는, 물론 다르다.
스탯도 더 높고, 흡수한 특성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마력 스탯만 높을 뿐, 다른 스탯은 아직 평이했다.
특성도 아직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게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정적인 차이는 결국 하나였다.
‘뇌룡의 심장 조각을 받아들인 것 때문인가?’
뇌룡의 심장 조각이 한건우의 몸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비스트 마스터> 특성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비스트 마스터>는 마수를 길들이는 테이밍 계열 중 궁극의 특성.
마수와 한 몸이 되는 특성이다.
그것 때문에 몸의 기질이 변했고, 측정센터의 기준으로 S급을 넘어서는 EX급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 의문에 해답을 줄 사람이 있었다.
‘<비스트 마스터> 특성의 원래 주인을 찾아야겠군.’
한건우는 되도록 그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다.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마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한건우는 곧 침착을 되찾았다.
‘어쨌든, 결국 나쁠 건 없다. 훈련 시간을 단축한 것뿐이야.’
센터에서 <규격외> 판정을 숨기려고 하는 이유도 알 만했다.
‘신뢰도 문제겠지.’
한국 정부의 각성자 등급 측정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제까지 단 한 차례의 오류도 보고된 적 없었다.
모든 각성자 관리 시스템과 사업이 이걸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다.
<규격외> 따위의 판정이 나온다면, 당장 측정 시스템의 신뢰도가 무너진다.
소송과 문제 제기가 엄청나게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예외가 국내에 단 한 명뿐이라면, 차라리 숨겨버리자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게 공무원들의 마음가짐이니까.
각성센터 공무원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문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한건우 플레이어... 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축하요?”
공무원이 어색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한건우는 그들의 대화를 다 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체했다.
“하하하···. S급이 떴네요! 저도 이 일하면서 S급 뜨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아···. 제가요?”
“네.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시겠네요. 부럽습니다.”
공무원은 긴장을 감추기 위해서 빠르고 높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제까지 한국에 공식 S급은 12명밖에 안 나왔지 않습니까? 물론 미등록자 중에 비공식 S급이 있을 수도 있다지만···.”
한건우는 공무원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복도로 걸어나왔다.
“저, 잠깐만요! 발급실에서 등록증 받아 가셔야 합니다!”
측정실 공무원은 한건우의 등 뒤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급하게 측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측정 데이터를 빨리 지워야 해···.’
처음부터 S급이 나왔던 걸로 하고, 데이터는 사고로 날아간 것처럼 날려버리면 된다.
측정실 공무원은 자신의 재빠른 상황판단 능력에 스스로 감탄했다.
특히 센터장에게 바로 보고한 건 신의 한 수였다.
퇴직을 앞둔 센터장은, 그저 평화롭게 퇴직하기만 바라고 있는 사람이었다.
측정실 공무원도 물론 비슷한 입장이었다.
‘휴, 식겁했네. 엄청나게 귀찮아질 뻔했다.’
자신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
한건우는 각성자 등록증을 받아 들었다.
기억에 따르면, F급 각성자 등록증은 칙칙한 회색이고, A급 등록증은 파란색이었다.
이번에는 사뭇 달랐다.
[각성자 한건우 ]
고급스러운 무광 블랙에, 글씨는 금박으로 되어 있었다.
발급실에 앉아있는 안내 직원은, 아까 본 공무원보다는 훨씬 차분했다.
“한건우 씨, 스테이터스 보는 법 가르쳐 드릴게요.”
“....”
유치원생 가르치듯이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주의사항도 설명했다.
“그리고··· 아시죠?”
안내 직원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무슨 얘기를 할지 예상이 갔다.
“모든 각성자는 각성자 관리 특별법에 의해서 국민을 위해 1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합니다···.”
가끔 여기서 각성자들이 화를 내거나 억지를 쓰는 경우가 있었기에, 안내 직원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한건우가 대답했다.
“병역 대체금 내겠습니다.”
“아···. 대체금을요?”
1년간의 의무복무를 면제하는 대체금은 1억원.
애매하게 고민되는 금액이지만, 각성자들은 대부분 돈을 내는 대신 의무복무를 택했다.
현실적인 이유였다.
의무복무를 하면 많지는 않지만 급여가 나왔다.
그리고 국가에서 공인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웬만한 길드에서도 생 초짜보다는 복무수료자를 뽑고 싶어했다.
그래서 대체금을 내고 의무복무를 피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각성은 했지만 플레이어 생활을 원치 않으며, 집안이 유복한 사람.
“흠···.”
안내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 앉은 한건우는 그런 부류로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은 한건우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를 보았다.
20살의 어린 나이, 그리고 가난한 동네의 원룸에 살고 있는 한건우.
‘에이, S급이니 어떻게든 하겠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은 S급 각성자 걱정.
직원은 금방 의문을 지워버렸다.
“네. 알려드린 계좌로 대체금을 입금하시면 바로 복무대체 처리 될 겁니다.”
절차를 마치고 각성센터를 나오려는 길.
거슬리는 기척이 잔뜩 느껴졌다.
“아.”
벌써 S급 출현 소식을 듣고, 기자들이 몰려든 것 같았다.
기삿거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정부기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기자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자 맹시>를 쓰고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한건우는 중앙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찰칵!
펑!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우르르 다가왔다.
“한건우 씨.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본인이 S급 각성자가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까?”
“어느 길드에 입사를 희망하시죠?”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장차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경쟁자로 생각하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누굽니까?”
열성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한건우가 입을 열자, 거짓말처럼 사방이 조용해졌다.
“경쟁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S급보다 위니까요.”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각성센터장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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