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6화 (1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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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이라고 하자

‘이번에도 SSS의 지시를 받고 왔겠지?’

아무래도 한건우는 그녀와 악연이 있는 것 같았다.

한건우는 그녀를 믿지 않았지만, 아직 판단을 내리기 전이었다.

차은비가 뼛속까지 SSS의 사람이라면, 그녀는 한건우의 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SSS의 신념에 동조하지 않고 이용당하는 도구 정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면 나도 차은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차은비의 스포츠차는 내부도 무척 고급스러웠다.

고급스럽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번쩍이는 내장재는 리자드 가죽으로 마감했고, 좌석도 어린 마수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되어있었다.

‘마수 가죽을 자동차 장식하는 데 쓰다니···. S급 플레이어의 위엄인가?’

S급 힐러 차은비는 ‘스타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그녀를 선망하는 팬들도 많았다.

한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

뛰어난 실력, 높은 연봉, 연예인 못지 않은 외모.

인기있을 만도 했다.

차은비가 한건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짧은 금발이 찰랑였고, 향수 냄새도 났다.

“한건우 씨, 요즘 상당히 유명하신 거 아시죠?”

“예?”

“활약이 대단하던데요. 저희 일성에서도 많이 놀랐어요.”

“아닙니다.”

한건우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답했다.

차은비의 달라진 태도가 낯설었다.

회귀 전, 순전히 우연인 줄 알았던 만남.

여동생의 병 때문에 절실하게 매달리는 한건우를, 그녀는 대놓고 귀찮아했다.

SSS의 지시를 받고 그 자리에 나온 게 기분 나빴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건우가 알기로 그녀는 하급 플레이어에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 하급 플레이어와는 말도 잘 섞지 않는다고 들었다.

“게다가 아직 각성한 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 뭐, 가끔씩은 이레귤러가 나타나니까요.”

“일성 길드에는 그런 플레이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한건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는 마치 순진한 스무 살 플레이어처럼 보였다.

차은비가 살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음···. 뭐.”

대한민국 1위, 일성 길드는 굳이 내세우거나 뽐낼 필요가 없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일성 길드에 들어가고 싶어서 각성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건우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차은비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럼 한건우 씨, 제가 결론부터 말씀드려도 될까요?”

“예.”

차은비가 한 박자 쉬었다가 극적으로 말했다.

“우리 일성에 들어오세요. 오늘 센터에서 등급이 몇이 나오든, 연봉은 전국 길드 중에 최고로 맞춰드려요. 훈련 환경이나 아이템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왜요?”

차은비는 멈칫했다가 곧 납득했다.

한건우의 <왜요>를 <일성에서 왜 저 같은 사람을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건우 씨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거죠. 부담은 갖지 마세요. 저희 일성은 항상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는 데 적극적이니까요.”

차은비가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역시 대형 길드의 부장 자리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요.”

“네?”

“제가 왜요?”

차은비의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브레이크를 밟더니, 갓길에 차를 멈추었다.

“다른 길드에서 먼저 입사 제의를 받았나요?”

“....”

“괜찮아요. 위약금은 대신 내줄 수 있어요.”

한건우가 일성 길드 입사를 거부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하는 것 같았다.

“그건 아닙니다. 지금은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서요.”

“아니, 그럼··· 정부에서 일하고 싶어서 그래요?”

이야기가 생각대로 안 흘러가자, 차은비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 막 각성한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진로는 크게 보면 세 가지였다.

첫째, 정부 소속의 군인이나 경찰 같은 공무 플레이어가 되는 것.

둘째, 길드에 가입해서, 급여를 받고 일하는 것.

셋째로는 위험하고 불법적인 용병단이나 폭력조직 같은 곳이 있었다.

진로가 다양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조직에 들어가지 못하면 플레이어 생활이 어려웠다.

그러나 한건우는 제4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아무 조직에도 들어가지 않아.’

한건우의 생각을 모르는 차은비가 살살 설득하기 시작했다.

“정부 소속... 물론 장점도 많죠. 안정적이고, 사회에 봉사도 하고···.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면도 많아요.”

15년이나 정부 소속 플레이어였던 한건우였다.

그러나 잠자코 그녀가 뭐라고 말하나 들어보았다.

“정부 소속이든, 길드 소속이든, 의미없는 남의 싸움에 내 목숨 거는 건 똑같다는 말이죠. 이왕 그럴 거,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죠. 안 그래요?”

차은비의 눈이 반짝였다.

뚜렷한 확신이 느껴졌다.

‘가치관이 깔끔하군.’

한건우는 차은비의 가치관이 마음에 들었다.

정의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니 위선에 차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한건우가 대답했다.

“아직 플레이어 일은 잘 몰라서요. 길드 입사는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이만큼 좋은 조건은 절대 없을 텐데요?”

“돈이라면···. 충분해서요.”

한건우의 말을 듣고, 차은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스킬이 없이도 그녀의 속마음이 읽히는 것 같았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가 아는 한건우는 땡전 한 푼 없는 스무 살짜리 소년 가장이니까.

그러나 차은비는 비웃음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당장 결정하기 어렵죠? 며칠 정도 고민할 시간을 드릴게요.”

차은비가 다시 액셀을 밟았다.

제멋대로 운전을 하는데도, 막힘 없이 쭉쭉 뻗어나갔다.

다른 차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도로가 뻥 뚫린 것처럼 질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각성센터에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했다.

한건우를 내려주고 나서, 차은비는 스포츠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한건우 씨. 생각 있으면 명함 보고 연락 주세요. 우리 길드 찾아와도 좋고요.”

“....”

한건우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차은비는 뒷모습으로 손을 흔들면서 쿨하게 사라졌다.

한건우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차은비는 한건우를 예전처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한건우를 스카웃하려고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진심이 없는 게 티가 났다.

한 마디로 차은비는 한건우에게 개인적으로 대단한 관심은 없다.

SSS의 누군가가 시키지 않았다면, 절대 차은비가 한건우를 직접 만나러 오거나, 입사를 제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등급 확인도 하기 전에 떠난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SSS와는 확실히 결이 달라.’

남에게 관심 없는 개인주의자.

그것이 차은비에 대한 평가였다.

***

“아, 한건우 플레이어. 이제야 오셨군요. 앞으로는 센터에서 보내는 메시지는 꼭 따라주셔야 합니다!”

센터 공무원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등록 절차를 마쳤다.

그리고 몇 겹의 철문을 지나서, 맨 안쪽의 방으로 갔다.

<등급 측정실>.

한건우는 등급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이미 자신의 등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F급.

최하위 등급이 뜨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다.

가능한 한 빠르게 2, 3차 각성 루트를 타서 강해져야 했다.

‘이미 스탯을 올려놨기 때문에, 곧바로 2차 각성을 할 수 있을 거야.’

맨 땅에 헤딩했을 때도 A급까지 도달했으니, 이번에는 더 나아야 했다.

한건우의 목표는 빠른 재각성을 통해 S급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만일 F급에서 S급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의 사례가 된다.

공무원은 측정실 밖에서 카메라로 안을 보면서 마이크로 지시를 했다.

[측정 시작합니다. 앞에 보이시는 마석에 손을 대시고요, 힘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최초 각성 후 몇 번이나 해본 절차였다.

한건우는 익숙하게 마석 위에 두 손을 올렸다.

파지지직!

“어?”

한건우는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에 놀랐다.

등급 측정할 때 이런 느낌이 있었나?

원래 아무런 감각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몸 속에 있는 뇌룡의 심장 조각이, 빠르게 박동하면서 전류에 호응하는 듯했다.

[이게 왜 이러지. 저, 한건우 플레이어? 괜찮으시죠?]

스피커를 타고 뭔가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한건우도 종잡을 수 없었다.

등급 측정용 마석에 무수한 빛무리가 떠다녔다.

이런 건 본 적이 없었다.

[어, 어···?]

당황한 공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건우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려 하자, 공무원이 급하게 말했다.

[저기, 잠시만, 잠시만 안에 계셔주세요!]

뚝.

스피커가 꺼졌다.

한건우는 공무원이 있는 벽에 가까이 다가갔다.

벽면에 손바닥을 붙였다.

[특성 발동 : 진동 감지]

- 온몸의 뼈로 미세한 진동을 감지한다.

조용한 곳에서만 쓸 수 있어서, 전투 중에는 거의 쓸모없는 기능이었다.

한건우는 이 특성의 다른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손의 뼈를 타고, 측정센터 공무원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측정센터 공무원은 놀란 맘을 가다듬고, 장비를 체크했다.

“뭔가 고장이 났나?”

기기와 화면, 연결장치를 아무리 보아도 문제는 없었다.

“다 정상인데··· 그래, 내가 실수한 건 없어.”

공무원이 심호흡을 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저, 센터장님! 잠깐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결정을 내릴 수가···.”

곧 센터장이라는 사람이 슬리퍼를 끌면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뭔데! 너네 팀장은 어디 가고 날 다이렉트로 불러···. 엥?”

“센터장님, 목소리 낮추셔야 해요. 옆 방에 각성자 있습니다.”

“하···. 이게 다 뭐냐?”

그들이 끙끙 앓으면서 고민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센터장이 결단을 내렸다.

“이거, 그냥 S급이라고 발표하자.”

“예?”

“이게 나가면 감당이 안 돼. S급으로 등록하고, 나중에 이 자료는 파기해.”

센터장이 가리키는 화면은 회색으로 지직거리고 있었다.

[플레이어명 : 한건우

등급외 / 측정불가(EX)

국내 동일 등급자 수 :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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