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5화 (15/238)

────────────────────────────────────

설계

200배라는 숫자는 가능하다.

한건우가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회귀 전에도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SSS에서 솔 스톤의 사용법을 밝혀내고 나서, 솔 스톤의 시세가 무섭게 올랐다.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한건우처럼 매점매석을 한 사람이 없었다.

정보조직을 통해 미끼를 던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버틴 상인들은 100배 가까이 이익을 남겼다.

나중에 들었다.

100배도 싸게 친 거라고.

대형 길드에서는 준비한 예산의 반값만 들여서 만족했다고 했다.

‘200배까지는 충분히 받을 수 있어.’

그렇게 계산한 한건우와 달리, 잡화상 상인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말이 200배지, 남들이 미쳤냐고 하지 않을까?’

아이템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기는 해도, 이 정도는 본 적이 없었다.

도박판도 아니고 순식간에 수백 배를 올려 받는다는 게 말이 될까.

머리를 긁던 잡화상 상인은 곧 생각을 털어버렸다.

‘어차피 내가 손해 볼 건 없어.’

솔 스톤이 하나도 안 팔린다 해도, 상인은 한 푼도 손해가 없었다.

한건우에게 아공간 금고 보관료와 수고비를 받고, 아이템은 돌려주면 그만이니까.

‘모르겠다. 의뢰인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뭐.’

딱 결정하고 나니, 잡화상 상인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곧 정보상에서 뿌린 정보가 사실이라는 게 밝혀졌다.

솔 스톤을 찾는 열기가 엄청났다.

일성이나 환인, 알파스 같은 대형 길드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솔 스톤을 쓸어모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솔 스톤이 굉장히 유용한 물건이 되었다.

마석 채굴 때문이었다.

미공략 균열이 파훼되고 나면, 마석 채굴을 하는 대형 길드들이 몰려오기 마련이었다.

하급 광부들이 마석을 채굴하는 동안, 상급 플레이어들이 그 주변을 지키는 게 보통이었다.

미공략 균열은 이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갑자기 마물이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솔 스톤을 이용한 암흑 균열 파훼법은 완벽했다.

솔 스톤만 설치해놓으면 에너지가 다할 동안 그 주변은 안전하니, 그야말로 채굴장이나 다름없었다.

한 개라도 더 많이 구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국내에 있는 솔 스톤의 절반 이상은 블랙마켓에 있었고, 그건 모두 한건우가 사들였다.

나머지는 개인들이 조금씩 가지고 있는 물량이었다.

발 빠른 브로커들은 먼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2배, 3배 가격을 제시했다.

좋다고 팔아버린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버틸걸. 그러면 10배는 받았을 텐데.

-어차피 소량이었지만 아깝다.

수요는 급증하고, 물량은 부족했다.

시세가 시시각각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솔 스톤을 하나도 못 구한 브로커들은 속이 탔다.

소문을 듣고, 블랙마켓의 잡화상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브로커들이 애타게 흥정을 시도했다.

“매입가의 15배 쳐주겠습니다. 더 이상은 어려운 것 아시죠?”

“됐으니까 가보쇼.”

“저는 18배까지 됩니다.”

“....”

“20배! 이래도 안 팔아요? 대체 얼마를 남기려고.”

잡화상 상인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중대 발표를 했다.

“이걸 뭐, 제 맘대로 경매에 부칠 수도 없고. 차라리 정가를 받겠습니다.”

“정가?”

브로커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능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여기서 조금이라도 구해 가야 했다.

저 알미운 상인에게 뒷돈이라도 찔러줘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정가제라니 반가울 수밖에.

잡화상 상인이 보드에 가격을 적기 시작했다.

“흠, 20배라··· 어?”

브로커들은 하나같이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예상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었던 것이다.

“임 사장, 이럴 거야? 원가를 뻔히 아는데!”

브로커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저는 의뢰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살 생각 있으시면 들어오세요.”

잡화상 상인은 못 들은 척 가게 안으로 들아가버렸다.

브로커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급히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

한건우가 아침 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의 휴대전화가 비상 사태라도 난 듯 왱왱거리며 울렸다.

“시끄럽게.”

한건우는 익숙하게 알림을 껐다.

[긴급! 각성센터 등록 기한이 지났습니다. 금일 내로 즉시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각성자 관리 특별법에 의해 미등록자로 분류되어 수배령이 내려지며, 각종 민, 형사상의 책임을 질 수···]

각성센터에서 보내는 경고 메시지였다.

지난번 구조대 순경에게 순순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준 이후, 휴대전화로 이런 메시지가 계속 왔다.

물론 알림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자연발생자는 72시간 내에 각성센터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다.

만료 시간이 다가오면, 각성센터 담당자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각성센터도 하루 정도는 유예를 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전면 비상이었다.

한건우는 그 후에 이어지는 절차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볼까.’

어차피 미등록자의 길을 걸을 수는 없었다.

음지에서 누리는 자유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미등록자는 여러 가지 제한이 많으니까.

애초에 미등록자가 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쇼를 벌인 것에 불과했다.

솜브라와 특수안보부, 그 밖에 여러 실력자들이 한건우를 주목하고 있었다.

이제 쇼는 끝나갔다.

더 늦으면 정부 플레이어들이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한건우는 곧바로 각성센터로 향하려 했다.

빠앙-!

가볍고 경박한 자동차 경적 소리가 한적한 도로를 메웠다.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샛노랑 색의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춰 있었다.

“?”

엄청나게 비싼 차라는 건 누가 봐도 확실했다.

한적한 동네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힐끔힐끔 돌아볼 정도였다.

한건우는 잠깐 눈쌀을 찌푸리고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한건우 씨, 안녕하세요.”

운전석에 탄 젊은 여자가 한건우를 불렀다.

선글라스를 살짝 이마로 올리고, 그를 보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

그녀는 바로 S급 힐러 차은비였다.

금발로 염색한 단발에 예쁘장한 얼굴이 낯이 익었다.

한건우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멈췄다.

‘차은비···.’

한건우가 군인이던 시절, 그녀를 우연히 만나 동생의 병에 대해서 조언을 들었다.

예전에는 모든 게 그냥 행운인 줄 알았다.

몸값 비싼 대형 길드의 S급 힐러와 레이드에서 한 팀이 된 것, 그녀가 동생의 고통을 완화하는 법을 알려준 것까지.

그녀의 결정적인 조언으로 인해서, 한건우는 이능력 특수전단에 몸을 담게 되었다.

‘우연이 아니었어.’

그때 한건우는 참으로 순진했다.

일성길드가 SSS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과거 그녀와 만났던 그 순간조차 SSS의 설계였을 것이다.

한건우는 그녀의 웃음이 어색하다는 걸 알아보았다.

눈은 안 웃고, 입만 웃고 있었다.

“누구시죠?”

“한건우 씨, 저는 일성 길드의 차은비라고 해요. 제 차에 잠깐 타시겠어요? 가시는 곳까지 태워다드릴게요.”

차은비가 입에 경련이 날 정도로 웃으면서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별다른 문구도 없이 딱 이렇게만 되어 있었다.

[길드 일성.

부장 차은비]

한건우는 명함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전 각성센터로 가는 길입니다.”

차은비가 조수석을 가리키자, 한건우는 묵묵히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그녀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생각 중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