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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배라고 했습니다
블랙마켓의 잡화상 주인은 보기보다 영리한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솔 스톤을 찾는 손님들이 나타났을 때였다.
-솔 스톤 재고 있다면서? 구경하게 몇 개만 줘보쇼.
-사장님 그리고··· 솔 스톤도 있을까요? 아뇨 그냥 보려고요.
크게 관심없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욕심내는 게 다 보였다.
잡화상의 상인은 촉이 딱 왔다.
‘솔 스톤에 뭐가 있구나!’
일단 기웃거리는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죄송한데 가게에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한 바퀴만 둘러보고 오시겠어요?”
상인은 아이템 시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각성자나 아이템 매매상, 그리고 브로커들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익숙한 단어를 보고, 상인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 갑자기 뭐냐... 솔스톤 시세 왜이럼?
ㄴ세력이 꼈겠지. 한두 번 보냐 거품이야
-오늘 10년 넘게 묵은 재고 주문이다!! 다 털겠다.. 기분 좋네
ㄴㅅㅅㅌ이지?
ㄴ어떻게 알았어??
ㄴ지역 어디야
ㄴ부산인데..머 할라고
ㄴ쪽지 확인 좀
"미친... 이게 다 뭐야."
잡화상의 상인은 가게 셔터를 내리고 정보상으로 달려갔다.
친한 정보상 점원에게 들은 소식은 놀라웠다.
“암흑 균열이, 솔 스톤만 갖고 들어가면 안전하다고? 확실한 거야?”
“믿을 만한 거래선에서 들었어. 자기가 직접 봤대.”
그게 진짜라면, 솔 스톤의 가격을 얼마까지 올려받아야 맞을까.
20배? 30배?
행복해하던 잡화상 상인이 멈칫거렸다.
합리적인 의문이 생겼다.
“그런 고급 정보가 왜 마켓에 풀렸지? 상식적으로 혼자서 알고있는 게 낫지 않나.”
정보상 점원이 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너니까 말하자면···. 내가 보기엔 이 정보로 짧게 한탕 먹고 빠지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허···.”
잡화상 상인은 뭐라고 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게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정보가 진짜인지는 아직 몰라. 가짜 정보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들통나기 전에 물량을 터는 게 답인데···. 그럼 5-6배만 남길까?’
잡화상 상인이 고민하며 자기 가게로 돌아왔을 때, 귀신같이 한건우가 서 있었다.
“억! 아,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200배 이하로는 팔지 마세요.”
“예?”
“200배라고 했습니다.”
한건우는 그 말만 남기고 홀연히 떠나갔다.
잡화상 상인의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사람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것 같다···.’
***
특수안보부(SSS)의 간부 화상회의가 끝났다.
서울지부장은 헛기침을 하면서 내실로 들어가려 했다.
이대로 쉬러 들어가는 건가?
당황한 천명환이 서울지부장을 붙잡았다.
“저, 지부장님, 본부장님 보고 드리기로···.”
“그거 뭐 급하다고. 이따 오후에 할게. 뭐라고 보고할지 네가 멘트 좀 정리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천명환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혀를 쯧쯧 차고 있었다.
‘본부장님께 보고할 멘트 정도는 알아서 술술 나와야지. 그걸 또 부하직원인 나한테 만들어달라고?’
완전히 앵무새 역할만 하겠다는 것 아닌가?
한탄스러웠다.
아까 회의 때도 한심했다.
‘명색이 서울지부장인데, 회의에서 그 정도 임기응변을 못하고 얼 타기는···.’
고작 이런 인간이 특수안보부 서울지부를 이끈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
천명환은 상사에게 불만이 많았다.
역시 각성자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가.
‘저 세대는 참 쉽게 풀렸어. 저렇게 띨띨한 새끼도 퇴직하면 인맥 빨로 대기업 길드에서 앞 다투어 모셔가겠지?’
젊은 천명환이 보기에는,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현실이었다.
‘무능한 늙은이들은 빨리 집에 보내고, 각성자 사관학교 출신으로만 채워지면 좋겠다.’
천명환의 희망이 이뤄지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맘에 안 들어도, 상사 뒤치닥거리를 할 수밖에.
천명환은 책상 위에 흩어진 회의자료를 정리했다.
그의 눈길이 맨 위의 보고서에 멈추었다.
[플레이어명 : 한건우
나이 : 20세
성별 : 남
가족관계 : 부모 없음, 여동생 1(한지윤, 17)
각성일 : ···]
내부 정보망을 타고 올라온, 한건우에 대한 생생한 보고였다.
한건우는 아직 각성자 센터에 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공식 기록에는 안 올라가 있었다.
‘...이 새끼가 뭐라고.’
천명환의 분노가 한건우에게 쏠렸다.
지금 특수안보부 내에서는 한건우라는 초짜 플레이어가 꽤 화제였다.
천명환은 그것도 거슬렸다.
물론 한건우가 조금 특이한 건 인정했다.
하지만 천명환이 보기엔 다들 호들갑이 심했다.
말도 안 되는 행보라고?
역대급 이레귤러의 탄생일지도 모른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어 넘기려 했다.
그런데 거슬리는 말이 있었다.
‘<천재적> 재능...?’
천재라는 말을 아무에게나 붙이는 게, 천명환은 예전부터 싫었다.
천명환은 각성자 사관학교 출신이었고, 그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두뇌와 신체조건, 스탯 모두 우수한 조건으로 뽑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플레이어들과, 치열하게 3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천재라 불릴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런데 이런 근본없는 놈이 뭐, 천재?’
게다가 간부 회의에서 본부장님의 주목까지 받다니, 더욱 불쾌했다.
천명환은 한건우의 신상에 대한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다 아는 내용이었다.
생애 첫 균열을 혼자 공략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 정도는 천명환도 해냈다.
물론 사관학교에서 미리 팁을 알려주긴 했지만···.
어쨌든 그리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 이어진 행보는 조금 신기하긴 했다.
갑자기 블랙 마켓을 드나들고, 웬 정체 모를 미등록자를 만나더니,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암흑 균열로 들어갔다.
자살행위라고 보면 딱 맞을 행동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단 둘이서 암흑 균열을 파훼했다.
심지어 암흑 균열 안에 갇혀있던 사람까지 구해서 나왔다고 한다.
얼핏 보면 한건우가 각성하자마자 대단한 활약을 한 걸로 보였다.
‘시나리오 쓰고 있네.’
천명환은 냉소적이었다.
사람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었다.
‘그 미등록자가 다 한 거겠지. 한건우는 숟가락만 올린 거고.’
한건우는 운 좋게 초심자의 행운에 얻어걸렸고, 실력자에게 버스를 탔을 뿐.
금방 실체가 드러나고 거품이 빠질 것이다.
천명환은 한건우를 그 정도로 평가했다.
‘각성센터에서 객관적인 측정결과가 나오고 나면 바로 식을걸.’
간부들은 한건우가 각성센터에 가지 않고 이레귤러 급의 미등록자가 될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이레귤러 급의 미등록자는, 정부의 주적이자 얼굴 없는 재앙이었다.
특수안보부에서 자연각성자들을 재빠르게 캐치하려고 하지만, 보고가 누락된 경우도 많았다.
한건우처럼 수많은 목격자 앞에서 각성하면 눈에 잘 띄지만, 안 그런 사례도 많으니까.
‘정 윗분들이 불안해한다면야···.’
SSS는 직접 양지에서 움직이는 법은 없다.
SSS에 친화적인 일성 길드에 압력을 넣어서, 한건우를 채용하게 할 생각이었다.
한건우가 만일 진짜로 강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고아일 뿐이었다.
일성 길드에서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면, 금방 순한 양으로 바뀔 것이다.
윗분들의 걱정거리를 해소해 주려면, 그 정도 수고쯤이야.
천명환은 한건우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묘하게 거슬리는 눈빛이야.’
모르는 사람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천명환은 직감이나 느낌 같은 건 믿지 않았다.
오로지 데이터로 입증된 팩트만 믿었다.
천명환은 서류 파일을 덮고, 복도로 나가서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일성길드 부장 차은비]
S급 힐러 차은비.
천명환의 사관학교 후배였다.
그녀가 각성자 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성길드의 헤드헌터가 데려갔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부장 직급으로.
-앗,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
“차 부장, 섭섭하네. 받자마자 안부 인사도 없이.”
-하하···. 건강히 잘 계셨죠? 선배님 바쁘실까봐 용건만 묻는다는 게... 제가 좀 무례했죠?
차은비는 어색하게 천명환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안하무인이던 그녀가 이렇게 자존심을 버린 모습이 우스웠다.
‘애 쓴다. 연봉에 눈이 멀어서 사조직으로 나가면 저렇게 되기 십상이지.’
천명환이 속으로 비웃었다.
기업형 길드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권력 중의 권력인 특수안보부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천명환의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래, 차 부장. 일성 길드에서 신입 플레이어도 좀 뽑나?”
-저희는 신입 플레이어보다는 고스펙 경력자를 헤드헌팅해서 뽑아요. 뭐, S급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요.
차은비가 무심코 천명환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다.
천명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 건방진 게···. 나 들으라고 저러나?’
차은비는 S급이었고, 천명환은 A급이었다.
한 등급 차이지만, 그 무게는 절대적이었다.
‘그래봐야 힐러 주제에, 감히···.’
실제로는 같은 상위등급이면 힐러의 가치가 훨씬 높았지만, 천명환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공격적이 되었다.
천명환이 차갑게 물었다.
“지금 누가 차 부장 의견 물어봤나?”
-....
수화기 너머로, 차은비가 바짝 굳은 티가 났다.
“내가 인적사항 하나 보낼 테니까, 어디 일성 길드에서 뽑을 만한 인재인지 아닌지 살펴봐 줘. 알겠지?”
말은 저렇게 돌려서 했지만, 대놓고 뽑으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요. 선배님이 추천하시는 인재면 확실하겠죠. 저희가 또 살펴볼 게 뭐 있나요.
천명환의 입가에 비뚤어진 미소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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