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3화 (13/238)

────────────────────────────────────

너만 믿는다

한건우는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어제 근력 스탯을 올렸더니 확실히 몸의 외형도 변하는 게 느껴졌다.

온몸에 골고루 근육량이 붙고, 근육의 질이 단단해졌다.

그러나 한건우는 불만스러웠다.

‘아직 턱없이 모자라.’

회귀 전의 강철 같은 근육질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금의 몸은 아직 약해보였다.

그리고 스탯으로 붙은 근육으로 만족하는 건 하수였다.

훈련장에 가서 다듬어줘야 제대로 쓸만한 상태가 된다.

‘갈 훈련장이 없는 게 아쉽군.’

특수부대에 있을 때는 플레이어 전용 훈련장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욕실 밖에서 여동생 지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오늘은 운동 안 가?”

“운동?”

“맨날 가던 헬스장. 관장님이 싸게 해줬다면서.”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건우는 지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멈칫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억이 났다.

고등학생 때, 한건우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20살 생일에 각성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막노동이든 뭐든 해서 먹고 살려면 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돈이 없었으니, 제대로 운동을 배울 수는 없었다.

근처 산에 올라가서 낡은 운동시설에서 운동을 했다.

삐걱대는 철봉을 잡고, 턱걸이를 하다가 땀을 닦으며 쉬고 있을 때였다.

건장한 중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학생. 운동 어디서 배웠어?’

산에서 오가면서 몇 번 얼굴을 본 사람이었다.

경계하던 한건우가 대답했다.

‘인터넷에서 영상 보고요.’

‘턱걸이 할 때 승모근을 쓰면 안 돼. 여기 등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다시 해봐.’

남자의 말대로 해봤다.

훨씬 힘들었지만, 제대로 된 자세라는 느낌이 났다.

악바리로 끝까지 해내는 한건우를 보고, 남자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요새는 옛날 식으로 운동하려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는데. 열심히 하네?’

‘안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죠. 다 플레이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플레이어라는 말을 듣고, 남자가 멈칫했다.

‘하하, 이것 봐라···. 학생, 우리 센터 나올 생각 있어? 내가 회비 안 받고 운동 봐줄게.’

‘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대웅피트니스 대표 박대웅]

알고 보니 그는 사거리에 있는 커다란 헬스장 관장이었다.

그는 빈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박대웅 관장은 정말로 한건우를 자기 헬스장에 공짜로 등록시켜 주었다.

아예 돈을 안 받겠다는 걸, 민망해서 라커비 정도는 내겠다고 했다.

박 관장은 한건우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운동을 열심히 봐주기까지 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

갑자기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군대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잊고 지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린 이후로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고마운 분이었는데, 잊고 살았다는 게 조금 죄송하기도 했다.

“아, 그랬지. 나 운동 다녀올게.”

어리둥절한 여동생을 뒤로하고, 한건우는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어, 건우 왔어.”

“...안녕하세요.”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지만, 한건우는 감회가 새로웠다.

관장님의 입장에서는 며칠 만에 보는 것이겠지만, 한건우는 달랐다.

무려 15년 만에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대웅 관장의 얼굴을 보고, 한건우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젊으셨나···?’

고등학생의 눈으로 볼 때는 엄청나게 나이들어 보였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어, 열심히 해라. 오늘은 하체지···?”

박대웅 관장은 한건우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려다가, 붙박인 듯 멈춰섰다.

“...건우야, 너?”

“관장님.”

“뭐냐? 어떻게 된 거야.”

박 관장은 한건우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한건우는 며칠 만에 근골격 자체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몸을 보는 게 일인 사람이라, 변화를 바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박 관장이 한건우를 붙잡고 관장실로 데려가더니, 주위를 살피면서 물었다.

“...너도 각성자가 된 거냐?”

‘너도’라니? 누가 또 있었나 의아했지만, 한건우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 전 각성했습니다.”

“하···.”

박 관장의 표정이 착잡했다.

그건 이상한 반응이었다.

주위 사람이 각성자가 됐다고 하면, 옛날에 고시라도 합격한 것마냥 추켜올리기 십상이었다.

그런 축하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왜 이러는지는 궁금했다.

박 관장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각성, 언제였냐?”

“얼마 안 됐습니다.”

“몇 등급?”

“아직 모릅니다.”

“몰라? 자연 각성이구나···. 얼마 전에도 뉴스에 자연 각성자가 나왔다고 하더니. 요새는 좀 흔해졌나.”

물론 뉴스에 나온 그 사람이 한건우였다.

박 관장은 힘이 없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왜 이러시지?’

회귀 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때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오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었다.

‘플레이어 각성했고, 입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때 박 관장의 반응은 분명히 지금 같지는 않았다.

잘 되라고, 응원한다고, 돈 많이 벌면 고기 좀 사라고 으레 던지는 농담도 했던 것 같은데···.

“하, 건우야. 이게 축하를 해줘야 하는데, 내가 미안하다.”

박 관장은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끊은 담배가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이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관장님, 왜 그러십니까?”

“건우야. 그냥 내가 솔직히 두서 없이 얘기를 좀 할게.”

“예.”

박 관장은 담배 없이 한숨을 쉬더니, 10년은 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사실 플레이어였다.”

“예?”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일성 길드 소속이었어. 나름대로 대우가 괜찮았지.”

“일성이요?”

일성 길드라면 국내 최대의 기업형 길드였다.

거기 소속이었다면 어느 등급이든 간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이 건물도 그때 모았던 돈을 좀 불려서 인수한 거고···. 여기까지 들으면 나쁘지 않지? 플레이어 일이란 게.”

“예....”

항상 유쾌하던 박 관장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난 플레이어 시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주 없었던 것처럼 잊고 살고 있지. 왜일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박 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울만 좋은 게 플레이어야. 사신 앞에서 칼춤을 추는 거지···. 동료들의 죽음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플레이어의 업, 그 자체가 살육이라는 거야.”

“....”

“사람이 아니라 마수라고 해서 죽여도 괜찮을 것 같냐? 하나도 안 괜찮다. 아직도 난 악몽에 그런 게 나와. 특히 인간형 마수를 죽였을 때는 더하지.”

한건우는 쉽사리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박 관장이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나 싶기도 했다.

살육이라면, 한건우도 특수부대 시절에 질릴 정도로 했다.

어디 마수만 죽였던가, 죽인 플레이어만 백 명이 넘지 않았나.

그러나 그에 대해서 별다른 감상은 들지 않았다.

주어진 임무라서, 해야 할 일이라서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박 관장이 마지막으로 강하게 권유했다.

“너 꼭 그쪽으로 가야 하는거니? 플레이어 보수랑 비교는 안 되지만, 너라면 우리 센터에서 일자리를 줄 수도 있어.”

한건우는 박 관장의 진심을 느꼈다. 그에게 고마웠다.

그렇기에 자신도 진심으로 답하기로 했다.

“신경써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역시 플레이어의 길을 가야 할 것 같아요.”

“하···.”

“꼭 해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한건우가 낮게 말했다.

관장실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박 관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씩 웃었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게 맞는 길이겠지.”

“관장님.”

박 관장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체라고?”

“네?”

“너, 각성자라고 해서 맨몸 근육을 단련하지 않으면 바보다. 내가 제대로 단련해 줄게.”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박 관장이 윽박을 질렀다.

한건우는 그제야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관장님. 저, 이건···.”

“어허. 균열 안 가봤지? 이 정도는 기본이야. 동료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박 관장은 균열 드립을 치면서 봉 무게를 점점 비인간적으로 올렸다.

한건우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자세를 잡았다.

인상을 구기면서도 결국 해내자, 관장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근력 스탯 높다고 다가 아냐. 몸으로 근육을 쓸 줄 알아야 하는 거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

서울 내자동, 한옥처럼 보이는 숨겨진 건물.

그곳에 SSS의 본부가 있었다.

고위급이 전부 참석한 본부 화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직접 앉아있는 사람은 본부장뿐.

나머지는 전부 화상으로 참석이었다.

“전국 지부 소식을 다 들어도 영양가가 하나도 없군. 듣기로는 서울 지부에 재밌는 건이 있다면서. 왜 보고를 누락하지?”

비공식 정부조직 SSS의 수장, 특수안보부의 본부장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지적을 당한 서울 지부장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보고드릴 건은 아니라 판단해서 뺐습니다. 사소합니다.”

“내가 말하는 게 뭔지 알면서 빼고 있네? 장난해?”

서울 지부장의 뒤에 딱 붙어 앉은 젊은 직원이 귓속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서울 지부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 회의석상에서 논하기엔 적당치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회의 끝나고 바로 단독으로 뵙고 보고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오케이. 다음.”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다.

서울 지부장은 한숨을 쉬면서 마이크를 껐다.

“휴···.”

서울 지부장은 뒤쪽을 보지도 않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젊은 직원이 얼른 그의 손에 손수건을 올려주었다.

서울 지부장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명환아, 그 한건운가 뭔가 근본도 없는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명환이라 불린 젊은 직원은, 바로 SSS의 천명환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한건우는 곧 우리 사람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러면 좋지. 무슨 수로?”

천명환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량 공세에 장사 있습니까? 우리 편인 일성 길드를 이용해야죠.”

“오, 너만 믿는다.”

그의 호언장담을 듣고, 서울 지부장이 안심한 듯 웃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