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12화 (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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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거래

한건우가 유영원을 노려보는 동안에도, 무수한 메시지가 쏟아졌다.

[블랙 타란튤라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 1000]

[자이언트 맨티스 9마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 100(x9)]

[독안개 나방 17마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 70(x17)]

[전투개미 165마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30(x165)]

...

단 일격으로,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얻었다.

이비현이 트롤 짓을 한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이 된 셈이었다.

이거면 스탯 점수를 어마어마하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공략 균열에서는 마물을 죽여도 스킬이나 아이템 보상은 들어오지 않았다.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있건 없건,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바로 마수를 죽이는 데서 따라오는 경험치 획득.

무수히 이어지는 메시지 때문에 정신없을 정도였다.

한건우는 메시지 창을 꺼버렸다.

지금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한건우가 거미줄 한가운데데 서서 유영원에게 물었다.

“나를 어떻게 알았지?”

유영원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한건우는 소름이 쫙 끼쳤다.

‘회귀 전의 미래가 아니라··· 내가 돌아와서 바뀐 미래를 예지한다고?’

예지 특성이 어디까지 미치는 건지 확인해야 했다.

자신이 회귀한 이후의 미래를 안다면, 유영원은 위험한 인물이었다.

유영원이 무생물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한건우 씨가 올 걸 알고 있었습니다.”

“....”

한건우가 창을 쥐었다.

그는 갈등했다.

지금 유영원을 죽인다면, 이비현과 함께할 수도 없을 것이고, 솜브라도 적이 될 것이다···.

“저를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이 장면을 본 게 마지막이고, 이제 예지 특성은 잃었으니까요.”

“대장님?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이비현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건우는 유영원의 무표정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짓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말만으로 쉽게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건우는 유영원에게 <거짓 간파> 특성을 사용했다.

[특성 발동 : 거짓 간파]

- 상대방이 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음

‘진짜잖아.’

이 특성은 쓸데없이 MP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쓰기를 꺼렸는데, 이럴 때는 매우 유용했다.

“알겠어. 그런데 이비현, 여기를 나가기 전에 확실히 할 게 있다.”

“네?”

이비현이 귀를 기울였다.

“우리 거래는 완수된 거지?”

“...네, 그렇습니다.”

이비현과 한 거래는 깔끔하게 완료되었다.

암흑 균열에서 유영원을 산 채로 구해냈고, 그 대가로 마창 게이볼그를 얻었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한건우가 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좋아. 그럼 새로운 거래를 제안하지.”

“...?”

이비현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이제 한건우가 하는 말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아니, 한건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암흑 균열에서 빠져나와, 이비현과 유영원을 보냈다.

솜브라도 곧 한바탕 뒤집어질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전임 대장이 돌아온데다, 조직에 새로운 국면이 열렸으니 말이다.

그 와중, 한건우는 엄청나게 쌓인 경험치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경험치 : +34,260]

‘부대 전체가 균열에서 개고생을 해도 얻을까 말까 한 경험치를 단 한 방에 얻었군.’

지금 한건우의 스탯은 몹시 기형적이었다.

마력만 지나치게 높고, 다른 스탯은 초보자를 겨우 면한 수준이었다.

아마 이비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한동안 마력은 높일 필요가 없겠고.’

지금 가진 마력만으로도 국내에 대적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스탯이 뒷받쳐주지 않는데 마력만 높여봤자, 제대로 활용을 할 수가 없다.

한건우는 경험치를 모조리 스탯 점수로 바꾸었다.

각성 초반에 경험치를 다른 데 투자하는 건 낭비였다.

지금은 스탯을 올리는 게 가성비가 제일 높은 루트였다.

어떻게 배분할까.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초반 스탯을 최적으로 키우는 방법은 머릿속에 박혀있다시피 했다.

‘1순위 체력.’

체력 35 -> 85 (+50)

‘다음은, 근력과 민첩에 6대 4의 비율로.’

근력 32 -> 68 (+36)

민첩 6 -> 30 (+24)

마력은 여전히 1116.

하나도 늘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초보 플레이어’라고 부르기 민망한 정도가 되었다.

다만 그는 아직 클래스를 선택하지 않았다.

회귀 전, 그는 권사 클래스를 택했고, 이후에 광전사 특성을 개화해서 광전사로 활동했다.

광전사는 무기에 구애받지 않고, 탱커 겸 딜러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부대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한건우는 더이상 부대의 일원이 아니었다.

광전사는 힐러나 버퍼가 없으면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게다가 단독 근거리 공격 위주였다.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전투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성장에 한계가 뚜렷했다.

‘과거 내가 도달했던 지점이, 권사의 한계야.’

과거에 스스로도 뼈저리게 느꼈다.

이 클래스에서는 더 이상 성장할 길이 없다는 걸.

처음부터 다른 클래스를 택했으면 좋았을걸, 후회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상급 플레이어가 될수록, 하위권에서 불리했던 클래스가 유리해진다.

마검사나 주술사가 그 예다.

이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이상, 선택은 뚜렷했다.

‘<웨폰 마스터>가 답이다.’

아직 국내에 선택한 자가 없지만, 일당백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클래스.

처음에는 애매하지만, 급수가 높아지면 대적할 자가 없는 클래스였다.

고민을 마치고, 한건우는 여동생이 있는 집에 도착했다.

‘연락도 없이 너무 늦었나?’

금방 들어간다고 했는데.

늦은 정도가 아니라 다음 날 새벽이 밝아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동생 지윤이 후다닥 달려나왔다.

“오빠!”

“어, 지윤아, 안 잤어?”

“어떻게 된 거야? 금방 들어온다고 했잖아···.”

지윤은 울먹였다.

밤새 잠도 못 자고 기다렸는지, 거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하나뿐인 가족이 실종되었을까 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한건우는 아차 싶어서 여동생을 달랬다.

“지윤아, 미안해. 앞으로는 이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위험한 일 하고 온 거 아니지?”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어.”

한건우는 지윤에게 최선을 다해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진심을 알아주겠거니 하고 무뚝뚝하게 대하기 시작하면, 지윤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지난번처럼 될 수는 없어, 절대로···.’

“알겠어, 오빠 앞으로는 못 들어올 거 같으면 꼭 얘기해야 돼.”

“그럼, 이번엔 내가 잘못했어. 뚝 그쳐야지?”

지윤은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안심의 눈물이었다.

한건우는 여동생이 뒤늦게 잠에 드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그 후,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아공간 주머니를 뒤적였다.

또그륵.

마수의 알이 솔 스톤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한건우는 암흑 균열에서 가져온 마수의 알을 조심히 꺼내들었다.

알의 색깔은 보랏빛을 띠었고, 타조알보다 조금 더 컸다.

균열에서는 반투명하게 안이 비쳐 보였는데, 지금은 그냥 돌덩이 같았다.

‘유영원, 내가 이걸 가져간 걸 눈치챌 만도 한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유영원이 암흑 균열에 들어간 건 분명 이 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한건우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특유의 현자 같은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상관 없지. 이제 내 손에 들어왔으니까.’

한건우는 SSS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 알을 부화시킬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앞날을 계획하기가 쉬웠다.

'그 놈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되니.'

한건우는 비좁은 침대에 누웠다.

정신이 맑은 것 같았지만, 막상 누우니 피곤이 밀려왔다.

‘하루가 길었군.’

짧은 생각을 끝으로, 그는 뒤늦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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