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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먹는 플레이어-11화 (1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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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훼법

타란튤라가 먹으려고 쌓아놓은 무더기 속에서, 이비현은 그녀가 찾던 사람의 형상을 찾아냈다.

“아···.”

거미줄로 꽁꽁 감겨서, 마치 미이라처럼 보이는 형상.

얼굴도 안 보였지만, 이비현은 알 수 있었다.

“대장님···?”

이비현의 입술이 떨렸다.

설마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있을 줄이야···.

안 보이는 구석 쪽에 파묻혀 있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타란튤라의 밥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리 줘.”

한건우는 시체처럼 딱딱하게 굳은 전임 대장의 몸을 빼앗듯이 받아들었다.

그리고 툭, 동굴 한가운데에 밀어 던졌다.

“!”

“키잇.”

[뭐지?]

블랙 타란튤라의 머리가 이쪽을 향했다.

이비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숨겼다.

“키시이익.”

[내 먹이.]

타란튤라는 여덟 개의 다리로 천천히 다가와서, 거미줄에 칭칭 감긴 형상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서걱 서걱, 붕대처럼 두껍게 감긴 거미줄을 독니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한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눈을 감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타란튤라의 마비독 때문이었다.

타란튤라는 먹이를 산 채로 오래 보관하고 싶을 때 마비독을 썼다.

마비독을 맞으면 모든 신진대사가 멈추고,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가사상태가 된다.

한건우는 이비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눈빛은 절절했다.

‘제대로 찾았군.’

솜브라의 전임 대장, 유영원.

젊어 보였지만,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카락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회귀 전, 유영원은 이 상태로 꽤 오래 살아남았다.

SSS가 암흑 균열을 파훼할 때까지, 거미 밥이 되지 않고 무려 수 년을 버틴 것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행운이었을까?

유영원의 몸은 마비 상태인 채로 SSS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정부 연구실의 실험대상체가 되어 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우선 유영원을 다시 깨울 거니까.

푸욱!

타란튤라가 유영원의 목에 독니를 박았다.

슈우욱.

타란튤라의 체액이 독니를 타고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유영원의 굳어 있던 발끝이 살짝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까 애벌레 형태의 마수보다는 깨어나는 게 훨씬 느렸다.

타란튤라는 먹이가 싱싱하게 깨어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님....”

그에 반해 이비현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조급했다.

못 참고 뛰쳐나가려는 걸, 한건우가 제지했다.

“조금만 기다려.”

한건우는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이비현의 참을성을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이었다.

“대장님!”

이비현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동굴 한가운데, 유영원이 누워있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본능적으로 <그림자 맹시>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영원을 들쳐 업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상태였다.

그녀가 유영원을 어깨에 들쳐업고 동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키이이이잇!

[내 먹이!]

소중한 먹이를 빼앗긴 블랙 타란튤라가 잔뜩 화가 났다.

검은 털이 뻣뻣하게 곤두섰고, 16개의 겹눈이 분노에 차서 번들거렸다.

한건우가 신음을 뱉었다.

“바보같이!”

한건우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무섭게 쫓아오는 블랙 타란튤라의 앞다리를 창으로 쳐냈다.

타앙-!

타란튤라의 다리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한건우는 이비현의 뒤를 엄호하면서 달렸다.

돌발 행동을 한 이비현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더 좋은 생각이 났다.

그들은 동굴 끝 절벽에 이르렀다.

한건우가 소리쳤다.

“이비현, 거미줄 가운데로 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듣기는 한 것 같았다.

이비현이 움직이는 궤적대로, 거미줄이 통 통 튕기면서 그녀가 있는 곳을 보여주었다.

혼자서 <그림자 맹시>로 몸을 숨긴 상태여서, 그녀에게 업힌 유영원은 마치 허공에 둥둥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건우가 외쳤다.

“특성 풀어! 어차피 다 보이니까, 괜히 MP 낭비하지 마.”

“아.”

한건우의 조언을 들은 이비현이 새빨개진 얼굴로 거미줄 위에서 나타났다.

뒤에서는 블랙 타란튤라가 쇄도해왔다.

한건우는 거미줄 위에 서서 준비한 특성을 터트렸다.

[특성 발동 : 아그니(Agni)의 화염]

- 신성한 불꽃으로 부정을 태워 없앤다.

얼마 전 개화한 특성이었다.

아직 스탯이 부족해, 고온의 화염을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광역 어그로를 끌기에는 차고 넘쳤다.

파앙! 펑!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꽃놀이가 터진 것 같았다.

놀란 이비현의 얼굴이 하얗게 밝아졌고, 그녀에게 업혀 있던 유영원도 비척거리며 눈을 떴다.

“...비현아?”

유영원이 잔뜩 쉰 목소리로 말하자마자, 무시무시한 소음이 균열 안을 뒤덮였다.

위이이이이잉-!

웨에에엥-!

“뭐죠?”

사이렌처럼 시끄러운 소음에, 이비현이 당황했다.

밝게 타오르는 마력의 불꽃을 보고, 균열 안의 온 곤충형 마수들이 몽땅 몰려온 것이었다.

파스스스슥!

치치치칙! 우우웅!

파리 대왕이 이끄는 지옥에 온 듯한 광경이었다.

나방, 사마귀, 딱정벌레···. 흔하게 볼 수 있는 벌레들보다 수백, 수천 배 큰 마물들이 무수하게 몰려왔다.

“꺄악!”

이비현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수한 날개 소리에 가려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블랙 타란튤라마저 당황한 듯 멈추어 있었다.

이미 선두에 선 마수들은 <아그니의 화염>에 말려들기도 했고, 블랙 타란튤라의 거미줄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곤충형 마수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 그때 한건우는 아공간 무기집에서 ‘솔 스톤(Sol stone)’을 꺼냈다.

블랙마켓에서 헐값에 사온 그 물건이었다.

아직 쓸모없는 돌 취급을 받는 솔 스톤.

솔 스톤의 진짜 가치는, 암흑 균열에서 빛을 발한다.

한건우가 주먹만한 솔 스톤을 아공간 무기집에서 꺼내서, 한껏 높이 던졌다.

부웅-!

솔 스톤은 허공에 뜬 태양처럼 멈추었다.

한건우가 염동력으로 고정시킨 것이었다.

파아아앗-!

시동어도, 마력도 필요없었다.

<아그니의 화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광선이 폭탄처럼 뻗어져 나왔다.

태양광 같은 압도적인 빛이었다.

“키이이익!”

[뜨거워!]

태어나서 한 번도 태양을 본 적 없던 암흑 균열의 마수들이 혼비백산했다.

치지지지직!

마물들의 두꺼운 갑피가 타들어갔다.

날개가 타들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마물들이 속출했다.

특히 거미줄에 걸려있는 마물들은 녹아내리다시피 했다.

블랙 타란튤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뒤집어져서 배를 내보이고, 여덟 개의 다리를 푸스스 떨고 있었다.

‘전기 파리채 같군.’

태양의 조각, 솔 스톤.

단 1개만으로도 이 균열을 한동안 밝힐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이비현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한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태양처럼 당당히 떠 있는 솔 스톤을 보고 있었다.

‘알고 나서 되돌아보면, 모든 게 간단하군.’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암흑 균열도, 파훼법을 알면 쉬웠다.

암흑 균열은 태양이 없는 이세계와 이어진 균열이었다.

모든 마물들이 솔 스톤의 자외선 광선에 취약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솔 스톤이, 바로 암흑 균열의 파훼법이었다.

한건우는 마물 시체로 묵직해진 거미줄 위에 서 있었다.

예지 능력자 유영원이 입을 열었다.

“한건우 씨, 당신이군요.”

한건우는 흠칫 놀랐다.

유영원에게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한건우는 조용히 유영원을 노려보았다.

한건우의 손에서 마창 게이볼그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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