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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균열 (2)
균열을 감싼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어두침침했고, 미로 같았다.
아직 마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가운데, 멀리서 웅웅대는 소리가 들렸다.
‘마수들의 날갯짓 소리군.’
암흑 균열의 마수들은 유난히 지독했다.
한건우는 조용히 특성을 발동했다.
[특성 발동 : 화식조의 눈]
그의 홍채가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검은 동공이 확 커졌고, 시야가 밝아졌다.
인간의 시력을 훌쩍 넘어서서, 마수의 시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돌벽 구석구석에 시커먼 자국이 보였다.
그건 사람의 핏자국이었다.
“이쪽입니다.”
길을 기억하고 있는 이비현이 속삭였다.
‘은신의 룬’을 건 상태였지만,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은신의 룬은 인간의 피 냄새를 감춰주고, 형상을 조금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인간의 피 냄새에 환장하는 마수들에게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림자 맹시>처럼 완전한 은신은 아니었다.
그림자 맹시 특성을 쓰면 더 확실하게 숨을 수 있겠지만, 지속 시간이 짧았다.
길어야 5분 정도니까.
한건우가 이비현에게 물었다.
“그전에도 이 피라미드에 전임 대장과 둘이서 들어왔나?”
“네.”
“균열을 파훼할 것도 아니면서, 왜 들어온 거지?”
한건우는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이비현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서 떠보았다.
“그런 건 당신의 능력으로 알 수 없나보죠?”
“글쎄.”
그녀가 까칠한 반응을 보이자, 한건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대장님께 자세히 듣지 못했어요. 꼭 들어가야 한다고만 들었는데···. 설마 나오지 못할 줄이야.”
이비현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눈치를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한건우가 알기로, 실종된 전임 대장은 진짜 예지 능력자였다.
예지 능력자들은 자신이 본 걸 주위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알리면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믿으니까.’
이비현에게도 말하지 않았구나.
한건우가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그렇군.”
그들은 곧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우우우웅-
벽 안에서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암흑 균열 안, 마수의 울음소리였다.
이제 이 벽을 넘어가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이비현이 비장하게 물었다.
“한건우 씨.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정말 대장님이 살아있는 게 확실한가요?”
대답한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이비현이 정말 하나도 안 믿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냥 불안한 것뿐이었다.
‘물론 살아있지. 지금이 아니라 훨씬 나중까지.’
몇 년 후, SSS가 이 암흑 균열을 파훼할 때까지, 전임 대장은 가사상태로 살아있었다.
한건우는 이비현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마창 게이볼그를 쥐었다.
“이비현, 이 안은 어두울 거야. 준비해.”
*
“허억···.”
안쪽은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주 희미한 그림자에 의존해야 했다.
우우우우우우웅-!
기계장치 소리 같기도 하고, 거대한 나방의 날개 소리 같기도 한 소음이 가까워졌다.
열려있는 시커먼 균열에서 곤충형 마수들이 나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암흑 균열의 마수들은, 다름아닌 벌레들이었다.
그것도 보통 벌레보다 몇백. 몇천 배나 큰 벌레들.
시력은 거의 퇴화되고, 후각으로 먹이를 찾는 곤충형 마수들이 떼지어서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나방이나 파리가 엄청나게 확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으···..”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이비현이 몸서리쳤다.
“쉿.”
한건우가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그는 열린 균열 앞에 서 있었다.
[A급 균열(암흑) - 블랙 타란튤라의 둥지]
- 공략 실패 !
- 잔여 시간 : 없음
시간 내에 공략을 실패한 균열이었다.
그래서 공략 조건도 공개되지 않았다.
공략 잔여시간이 있을 때는 조건만 만족하면 균열이 닫히지만, 잔여시간이 지나 버리면 공략 조건을 이루든 말든 소용 없으니까.
한건우는 망설임 없이 열린 균열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안은, 한층 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타앗.
출렁-.
허공에서 떨어지던 한건우는, 흰 줄 위에 중심을 잡고 섰다.
탄탄한 밧줄 아래는 시커먼 암흑이었다.
어디까지 떨어질지도 알 수 없었다.
한건우는 자신이 선 줄을 타고, 미세한 진동이 퍼져나가는 걸 느꼈다.
‘블랙 타란튤라의 거미줄’.
이 암흑 균열의 주인인 블랙 타란튤라가 만든 거대한 덫이었다.
얼마나 거대한 마수이면, 거미줄이 밧줄만큼이나 두꺼웠다.
투웅-.
이비현도 거미줄 위에 중심을 잡고 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한 빛이 역력했다.
블랙 타란튤라에게 물려가 실종된 전임 대장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비현이 발을 내딛으려는데, 한건우가 제지했다.
“그만. 거긴 씨줄이야.”
“아···!”
블랙 타란튤라의 거미줄은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져 있었다.
씨줄에는 끈끈한 물질이 묻어있어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날줄은 움직이기 편했다.
블랙 타란튤라는 바로 이 날줄만을 타고 움직일 것이다.
한건우도 당연히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 씨줄과 날줄을 어떻게 구별하죠?”
이비현은 냉정하려 했지만, 패닉에 빠진 게 보였다.
이러다가 그녀가 혼자서 도망가 버리면 큰일이었다.
한건우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모양을 잘 봐. 거미가 바깥에서 타고 들어오는 게 날줄이고, 둥글게 이어진 게 씨줄이야. 씨줄은 끈적하니까 절대 밟거나 손대지 마.”
“아, 네.”
이비현은 곧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안경 모양의 아이템을 쓰고 있었다.
<화식조의 눈>에는 못 미치겠지만, 희미하게나마 앞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미줄에 사람과 곤충 마수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시체 조각들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
블랙 타란튤라가 먹고 남긴 것 같았다.
“반드시 날줄만 타고, 나를 따라와.”
“네.”
이비현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곧잘 한건우가 가르친 대로 했다.
한 발이라도 잘못 딛었다간, 칠흑 속으로 추락하거나, 끈끈이에 붙어서 움직임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뻔했다.
아까 본 시체 조각들처럼, 블랙 타란튤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한건우도 지금의 실력으로 블랙 타란튤라와 정면으로 싸운다면, 절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A급 균열의 보스 몹, A급 마수인 블랙 타란튤라.
게다가 이곳은 블랙 타란튤라가 자유롭게 뛰노는, 자신이 친 거미줄 위.
‘홈 어드밴티지’라는 말이 마수에게도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반드시, 피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한건우를 따라서 거미줄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이비현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
규칙적으로 발 밑에 진동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하, 한건우, 씨.”
이비현이 질린 목소리로 한건우를 불렀다.
그는 그제서야 돌아보았다.
한건우의 입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감탄사가 나왔다.
“오.”
집채만한 거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균열의 주인, A급 마수 블랙 타란튤라였다.
16개의 겹눈이 식탐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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