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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 아이템 개화
“대장! 어린 놈이 너무 건방진데요, 손 좀 봐주면 안 됩니까?”
리더인 척했던 덩치 큰 남자가 씩씩거렸다.
문신이 새겨진 상완 근육이 크게 꿈틀거렸다.
“아뇨. 얘기를 들어볼 가치는 있으니까요.”
이비현이 도도한 눈빛으로 한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허공에 손을 저었다. 부하들은 자리를 물리라는 뜻이었다.
망토를 쓴 부하들은 유원지의 어둠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셋만 남은 채로,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
“한건우 씨, 하나만 묻죠.”
한건우가 물어보라는 뜻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투시 특성을 가진 건가요?”
이비현이 애써 긴장을 감추며 물었다.
“아니.”
한건우는 이 질문이 나올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그렇다’고 했으면, 무조건 이비현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투시는 아니다···. 그럼 예지 특성이라도 있는 건가요?”
한건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회귀자라고 밝힐 수는 없으니, 예언자나 예지자인 것처럼 속이려고 했다.
알아서 그렇게 생각해 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비슷해. 과거와 미래의 일을 조금 알 수 있지.”
“대장님, 이거 사기꾼 아닙니까? 예지자라고 떠드는 놈들, 거의 다 사기꾼인 거 아시잖습니까.”
덩치 큰 남자가 툴툴거렸다.
‘좀 빠져 줬으면 좋겠는데.’
물러나지 않고 중요한 대화 자리에 남아있는 걸 보니, 보기와 다르게 이 놈이 참모 역할인 모양이었다.
사실 못 믿을 만도 했다.
플레이어끼리는 서로 스탯창을 볼 수 없으니, 권능이나 특성도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그 점을 이용해서, 희귀한 권능이 있다고 허풍을 떠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특히, 이때는 예언자나 예지자라고 속이고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은 시절이었다.
“아니요, 예지자라고 하면 이해돼요.”
이비현이 딱 잘라 말했다.
솜브라의 접근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태도.
이비현이 솜브라의 리더란 걸 알아본 것.
그녀의 공격을 예측한 것처럼 빠르게 피하고, ‘그림자 맹시’로 숨어있는 위치를 파악하기까지···.
어제까지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온 갓 스무 살의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예지능력이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오히려 그게 안전해.’
이비현은 차라리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달리, 예지 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잠깐 운명의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큰 틀에서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는 걸, 이비현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전임 대장이 예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 이비현의 생각을 읽으며, 한건우가 본론을 던졌다.
“너희 솜브라의 전 대장은 균열에서 실종된 상태일 거다. 맞지?”
“...!”
이비현과 덩치 큰 참모의 눈이 커졌다.
“그 사람, 아직 살아있어. 의식은 없지만.”
이비현은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어서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한건우는 이비현의 반응을 무시하고 더 나아갔다.
“그리고 데려올 방법도 알고 있어.”
“...만일, 지금 그 말이 거짓이라면··· 절대 곱게 죽지는 못할 겁니다.”
그녀의 몸에서 살기가 뻗어나왔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는 열렬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좋을 대로 생각해라. 난 제안을 할 뿐이니까.”
“그럼, 그 대가로 원하는 건요?”
거래라는 건 기브 앤 테이크.
한쪽만 좋은 걸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너희 무기창을 열어. 거기서 내가 원하는 무기 하나를 준다면, 바로 출발한다.”
“!”
한건우가 노리는 것은 솜브라의 아공간 무기창고에 있는 무기였다.
‘설마, 그걸 노리는 건 아니겠지?’
참모는 불길함을 느끼고 이비현을 말렸다.
“대장님, 오늘 처음 보는 놈입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줄 알고···. 믿을 수 없어요.”
이비현은 가만히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즉각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한건우의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눈치였다.
“대장...!”
그러나 이비현은 고개를 저었다.
“결정은 내렸습니다."
이비현은 품 속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열쇠를 꺼냈다.
아공간 무기창고의 열쇠였다.
“개방.”
그녀가 허공에 열쇠를 돌리자, 공간의 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문이 열렸다.
솜브라의 무기창고였다.
“따라 들어오세요.”
그녀가 먼저 아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한건우도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슈우웅.
차원이 바뀌면서, 마치 균열로 들어갈 때처럼 바깥 세상의 공기가 차단되었다.
한건우도 솜브라의 ‘무기창고’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회귀 전 솜브라 해체 임무를 마치고 나서, 이야기로 듣기만 했다.
“오.”
솜브라가 가진 무기 아이템은 화려했다.
장검과 단검, 슈리켄, 메이스와 배틀 액스, 철곤···.
웬만한 마켓의 무기상점 못지않았다.
‘아이템만 보면, 웬만한 중대형 길드와도 맞먹어.’
지금의 솜브라는 아직 작은 암살자 조직에 불과했다.
자본력도, 사업망도 없이 이만한 규모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전임 대장의 역할이 컸겠군.’
아직 이비현이 솜브라의 리더가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어렸고, 2인자 역할을 하던 때의 습성을 못 버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무시무시한 인물로 성장해서 SSS의 적이 되지만, 아직은 빈틈이 많은 애송이로 보였다.
한건우는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지금의 이비현이라면, 비교적 상대하기 만만했으니까.
‘이비현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승산이 있어.’
한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기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뒤에서 이비현이 팔짱을 끼고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묘하게 안심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한건우는 희귀한 무기들을 만져보지도 않고, 다 지나쳐 걸어갔다.
진열대 끝에 널부러진, 하찮아 보이는 녹슨 사슬에 그의 시선이 멈추었다.
“아···.”
이비현이 멈칫했다.
한건우는 그 사슬을 집어들었다.
정확히는 그 사슬 끄트머리에 걸린 조그만 열쇠를 잡은 것이었다.
한건우는 열쇠를 허공에 돌리면서 말했다.
“개방.”
“잠깐만요···!”
이비현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열쇠에 마력을 주입하자, 아공간 안의 또다른 아공간이 열렸다.
‘여기군. 아공간 속 아공간, 진짜 무기창고.’
한건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짜 무기창고’로 뛰어들어갔다.
“대체, 여기를 어떻게."
바로 뒤따라온 이비현은 몹시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솜브라의 비밀 무기고가 여기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조직원들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예지자라도 이런 것까지..."
예지 능력자라고 해서, 숨겨진 비밀을 책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전임 대장님보다 더 강한 능력인걸까?’
이비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대가로 받을 물건은 여기 있는 것 같군.”
솜브라의 비밀 무기고를 둘러보며, 한건우가 말했다.
무기의 개수는 적었지만, 하나하나의 가치는 바깥의 무기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대단했다.
블랙마켓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아이템들도 있었다.
한건우는 가장 중앙에 박힌 투핸드 소드 앞으로 가서 섰다.
[마검 스톰브링거(전설급)]
무려 전설급 아이템.
‘다 알고 온 거야···. 스톰브링거를 달라고 할 게 분명해.’
이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스톰브링거는 솜브라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이었다.
무엇보다, 전임 대장이 목숨처럼 여기던 검이기도 했다.
‘이걸 내줄 바에는, 차라리 이 자를 제압해서 고문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녀가 고민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본 한건우가 말했다.
“난 검은 별로라서.”
한건우는 스톰브링거를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가 집어든 것은 검은색 블레이드가 달린 창이었다.
“...?”
이비현은 어리둥절했다.
저 창은, 이비현이 알기로는 그냥 평범한 검은 창이었다.
특별한 점이 아무것도 없어서, 바깥쪽 무기창고에 있어야 맞을 물건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전임 대장이 여기에 놓아둔 것이었다.
이비현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한건우가 창을 휙휙 돌려보았다.
“무게감도 좋고, 중심이 잘 잡혀있는 창이군. 이걸로 하지.”
“...좋아요.”
이비현은 조금 꺼림칙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스톰브링거를 요구하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무기집도 하나 주지?”
“....”
서비스라도 달라는 듯이, 맡겨놓은 듯한 태도였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아공간 무기집이었다.
별로 귀한 물건도 아니었다.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이비현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순순히 아공간 무기집을 하나 던져주었다.
그러다가 이비현은 헉, 하고 놀랐다.
‘설마 한건우 플레이어···. 이제까지 무기가 없었나?’
겉보기에는 맨손으로 보여도, 당연히 무기 아이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착각할 정도로,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암살조직의 본부에 들어오다니.
정말 강심장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한건우는 아공간 무기집을 허리춤에 차고, 검은 창을 치켜들었다.
창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무거웠다.
‘기분이 이상하군.’
이 창날에 찔려서 죽을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회귀 직전, 한건우를 찔렀던 창.
국내 최고의 창술사였던 SSS 천명환의 무기.
[마창 게이볼그(신화급, 잠재)]
지금은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무기처럼 잠들어 있다.
이 창은 자신이 기다리는 특성을 가진 자에게만 개화한다.
물론 한건우는 그 특성을 이미 갖고 있었다.
바로 천명환의 특성,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한건우는 창을 손에 들고 마력을 집중했다.
그의 마력이 창 자루를 타고 흘러 들어가다가, 다시 몸으로 돌아나오면서 순환의 흐름을 만들었다.
창이 크게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파아앗-!
먹처럼 검은 블레이드 위에, 은빛으로 빛나는 룬 문자가 나타났다.
- 잠재 특성이 개화합니다.
[특성 개화 :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
- 창을 던졌을 때, 맞은 상대방은 회복 불가 디버프를 받는다.
- 해당되는 잠재 아이템이 개화합니다.
[아이템 개화(신화급) : 마창 게이볼그]
- 투창 시 반드시 명중한다.
한건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SSS의 천명환이 가졌던 무기와 특성이, 이번엔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 되었다.
이비현은 눈을 크게 뜬 채로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녀가 당혹에 차서 중얼거렸다.
“아니··· 이, 이건···.”
“창은 마음에 드는군. 이제 출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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