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6화 (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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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리더

이비현은 혼란스러웠다.

‘이 자, 대체 정체가 뭐지?’

자연 각성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쯤은 의무적으로 와봤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플레이어는 미등록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미등록자에 대한 인식도 안 좋고, 미등록자가 되면 각성센터의 혜택을 이용하지도 못하니까.

예외는 있었다.

범죄자처럼 뒤가 구린 사람이거나, 정부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게 있는 경우.

혹시 그런 사정이 있는지, 솜브라에 영입할 가치가 있는지 살펴보러 온 것이었다.

한건우는 그런 특이한 경우로는 보이지 않았다.

고아원 출신이고,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점 외에는 그저 평범한 20살 남자였다.

‘그런데 왜···?’

어째서 솜브라에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점은 또 있었다.

한건우의 실력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끼리는 서로의 스탯이나 특성을 볼 수 없지만, 원래 대충 보면 각이 나왔다.

한건우는 이제 막 각성한 애송이 플레이어였다.

그것도 아무 훈련도 받지 않은 자연각성자.

원래는 약하디 약해야 정상이었다.

이비현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각성하자마자 E급 균열을 혼자서 공략했다?’

믿어지지 않는 정보를 듣고, 이비현은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

첫째, 그 정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

둘째, 한건우라는 남자가 역대급 이레귤러일 가능성.

‘당연히 첫 번째일 줄 알았는데···.’

나이나 경력에 맞지 않게, 기묘할 정도로 여유로운 한건우.

그녀의 본능이 경고했다.

한건우라는 남자는 위험하다고.

‘혹시 SSS측 인물인가? 차라리 지금 깨끗이 없애버릴까?’

이비현은 자신의 무기를 고쳐쥐었다.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암살자의 검, 시미터였다.

그때 한건우가 한 행동은, 완전히 이비현의 예상 밖이었다.

“하아암-.”

지겹다는 듯이 하품을 한 것이다.

이비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

“집에 들어가봐야 돼. 만나게 해줄 생각 없으면 그만둬.”

“....”

신중하게 고민하던 이비현은 결론을 냈다.

이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는, 현재 판단 불가인 걸로.

*

상황은 한건우의 계획대로 풀리고 있었다.

각성자 관리법에 따르면, 자연 각성자는 72시간 내에 각성센터에 등록해야 한다.

회귀 전에는 곧바로 센터로 달려갔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기다렸다.

바로 솜브라의 리더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방법이 아니면, 솜브라와 접촉할 수 없어.’

솜브라는 정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본부를 계속 옮겼다.

블랙마켓의 상인들을 모조리 이 잡듯이 뒤지면 솜브라와 연결되는 선이 나오겠지만, 지금의 한건우가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한건우가 먼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솜브라는 자연각성자가 나오면, 무조건 접근해온다.

한건우는 자기 자신을 미끼 삼아서 그들이 먼저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다음 자연각성자가 나오기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지금의 솜브라에서 얻어야 할 게 있으니까.

이비현이 망토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녀의 옆모습에서 고민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이비현···. 아직 어리군.’

생각하는 게 겉으로 다 티가 나는 스타일 같았다.

이비현은 굳은 표정으로 본부와 연락하더니, 한건우에게 따라오라는 표시를 했다.

이비현이 앞장서 안내한 곳은, 오래 전에 폐장한 작은 놀이공원이었다.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철조망 울타리는 몇 미터나 되는 높이였다.

휙!

이비현은 도움닫기도 없이 높은 철조망을 가볍게 뛰어넘고, 한건우를 돌아보았다.

기본 스탯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하려는 것 같았다.

한건우는 울타리를 잡고 일부러 천천히 올라가 타넘었다.

“....”

이비현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의 놀이공원은 을씨년스럽고 섬뜩했다.

문을 닫은 지 오래돼서, 놀이기구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솜브라의 본부가 이런 데라니.’

아무리 임시 본부라지만, 허를 찌르는 장소였다.

이러니 추적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했다.

이비현을 따라 놀이공원의 통제실로 들어가려는데, 그녀가 멈추어서 한건우에게 경고했다.

“당신, 들어가면 예의를 지키세요.”

“좋아.”

그녀가 약간의 마력을 가해서 잠긴 문을 열었고, 한건우가 따라서 들어갔다.

통제실 안은 어두웠다.

큼직한 테이블 위에 작고 희미한 전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근육덩어리 남자가 의자에 앉아서, 이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턱에는 수염이 무성했고, 거대한 근육질 몸집이 위압적이었다. 굵은 팔뚝은 이국적인 문신으로 가득했다.

“자네가 한건우 군이군.”

한건우는 말없이 고개만 살짝 숙였다.

통제실 안을 살폈다.

그 남자 옆으로 망토를 깊이 눌러쓴 조직원들이 말없이 둘러서 있었다.

조직원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리에 앉게.”

한건우는 순순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비현은 자리에 앉지 않고, 남자의 옆으로 가서 호위하듯이 섰다.

“자네에게 원래도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더 많아졌네.”

남자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건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말했다.

“시간 낭비를 줄이지. 나는 솜브라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남자가 회색 수염을 만지작대며 한건우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린 친구가 날 놀라게 하는군. 그렇다면 왜 나를 보자고 했지?”

“솜브라와 거래를 하러 왔다.”

남자의 옆에 선 이비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먼저 들어보고 결정하지.”

“그리고 당신을 보자고 한 적은 없어.”

“뭐?”

한건우가 이비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솜브라의 리더를 보자고 했지.”

“...!”

이비현의 아름다운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조직원들도 흠칫하며 술렁였다.

이비현은 처음부터 일개 조직원인 척했지만, 한건우를 속일 수는 없었다.

한건우가 쓰는 <그림자 맹시> 특성의 원래 주인, 미래의 ‘그림자 왕’ 이비현.

성별 불명, 나이 불명, 이름 불명.

암살자 클래스 중 역대 최강이 될 플레이어.

반정부 집단인 솜브라의 수장이자, ‘그림자 왕’으로 불리게 될 자.

회귀 전에도 악명 높은 미등록자, ‘그림자 왕’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모두 그녀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한건우도 그녀를 죽이기 전까지는, 그녀의 얼굴을 몰랐으니까.

“손님이 장난이 심하시군요.”

이비현이 시미터를 뽑아들었다. 맹독이 발라진 검은 칼날이 위협적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맹독 칼날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한건우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더 들어줄 가치가 없겠어요.”

이비현이 달려드는 순간, 한건우는 <전격 쇄도> 스킬을 발동했다.

콰아앙-!

유리창을 깨고, 한건우가 튕겨져 나가듯이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맹독 시미터를 든 이비현을 비좁은 공간에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유원지의 놀이기구 사이를, 한건우가 바람을 가르듯이 움직였다.

이비현은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라왔다.

원래 먼 거리를 빨리 이동할 때 쓰는 스킬이지만, 한건우는 조금 다르게 활용했다.

‘사실상 민첩 스탯을 극도로 올린 것과 다를 바 없지.’

슈우욱-!

똑같은 스킬이라도, 사용하는 자에 따라서 그 위력은 다르기 마련이다.

막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전격 쇄도 스킬을 사용하자,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단순히 빠른 걸 넘어서서, 거의 미래 예견에 가까운 반응속도.

한건우가 자신의 첫 일격을 예측한 것처럼 피하자, 이비현의 반듯한 이마가 확 구겨졌다.

‘운인가?’

쉬이익-!

치잉-!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지는 검격마저 가뿐하게 피해내자, 그녀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죽으십시오.”

스솨사사사-

맹독의 칼날이 허공에서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스킬이 없었다면 한건우의 몸은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비현의 칼날은 한건우의 털끝 하나 스치지 못했다.

콰앙- 쿵-!

회전목마의 말머리가 베어져 나가, 철로 된 바닥에 부딪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스킬 제한시간은 단 1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를 혼동하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이비현의 눈에, 한건우는 충격적일 만큼 강한 스탯을 가진 플레이어로 보였다.

전격 쇄도가 워낙 희귀한 스킬이라서 가능한 전략이었다.

이비현은 1분이 지나기 전에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의 모습이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림자 맹시로군.’

예상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특성 발동 : 화식조의 눈]

한건우의 눈에 오렌지색 빛이 감돌았다.

그의 붉어진 시선이 재빠르게 회전목마의 바닥을 훑었다.  음영이 아주 미세하게 짙어진 목마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슈우웅-!

한건우는 몸을 낮추며 발차기를 했다. 그의 발끝이 허공을 가르며, 이비현의 보이지 않는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

그녀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기둥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발끝이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마치 몸무게가 없는 사람처럼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당신, 뭐죠?”

이비현이 아직 시미터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대체 어떻게···. 투시 스킬? 그럴 리 없는데.”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비현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투시 스킬이었다.

자신의 은신 특성인 ‘그림자 맹시’를 꿰뚫어보고 무력화시키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비현은 시중에 풀린 투시 스킬북을 모두 없애버렸다.

남의 손에 스킬이 넘어가면, 습격해서 빼앗았다.

때로는 암살을 하기도 했다.

“그런 스킬은 없어.”

“그러면? 새로 나타난 특성인가요? 아니면 권능?

이비현이 민감하게 캐물었지만, 한건우는 일축했다.

“말해도 못 따라할 거다.”

투시 스킬 없이 ‘그림자 맹시’를 뚫는 방법은 단순했다.

바로 탈인간급 시력을 갖는 것이었다.

그녀가 숨어서 옮겨다니는 그림자는 아주 미세하게 음영이 짙어졌다.

회귀 전 한건우가 목숨을 걸고 알아낸 사실이었으나, 한건우 말고는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다.

주의깊게 봐도 못 알아챌 정도로 미세한 변화인데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바로 죽음이었다.

한건우는 이번엔 그걸 아무에게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림자 맹시’는 이제 자신의 무기이기도 했으니까.

“이 건방진 놈이-”

어느새 솜브라의 리더로 위장했던 남자가 따라와서, 워 해머를 휘둘렀다.

슈우웅- 콰직!

한건우는 가까스로 워 해머를 피했다.

스킬 적용 시간은 끝났기에, 순전히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망토를 눌러쓴 조직원들도 각자의 무구를 들고 한건우를 둘러쌌다.

그다지 강해 보이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예상 밖의 개싸움이 될 것 같은 상황.

한건우는 식은땀이 났다.

‘곤란한데.’

지금의 한건우는 희귀 특성을 쓰는 고수 플레이어보다 이런 단순무식한 적들이 더 상대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기본적인 체력과 근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리더로 위장했던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시 워 해머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만.”

이비현이 고개를 젓자, 모두들 동작을 멈추었다.

‘운이 좋았군.’

한건우는 식은땀이 났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행동했다.

“한건우 씨. 진짜 원하는 게 뭡니까?”

“난 처음부터 거래라고 했어. 서로 손해는 없을 거야.”

“좋아요. 누구의 목숨을 원하죠?”

한건우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암살 조직이긴 하지만, 거래라고 해서 무조건 암살이라고 생각하다니.

“목숨은 나중에 의뢰하지. 일단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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