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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한 특전
한건우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상상도 못한 특전.
플레이어가 1차 각성 후 최초의 균열을 혼자 공략했을 때만 주어지는, 무려 경험치 10배 보상.
파티와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경험치를 혼자서 독식한데다, 10배로 뻥튀기까지.
한 마디로 같은 등급의 균열을 수십 번 공략해야 받을 수 있는 경험치를 한방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 인생에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기회였다.
초반 스탯 성장이 급한 지금.
한건우는 이걸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아직 이 보상은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아서, 각성자 사관학교에서만 비밀리에 전승하고 있었다.
물론 안다고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막 각성한 초보 플레이어는 경력자와 파티를 짜서 들어가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조건 스탯에 투자할 때다.’
경험치 10배는 모조리 스탯 점수로 바꾸었다.
초반에는 경험치만으로 비교적 빠르게 스탯을 올릴 수 있으니까.
한 치의 고민 없이, 스탯 점수를 체력과 근력에 몰았다.
체력 8 -> 35 (+27)
근력 10 -> 33 (+23)
몸이 가뿐해지고, 전신의 근육이 단단하게 조여드는 느낌. 꽤 마음에 들었다.
초보 플레이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당연히 피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 스탯을 소홀히 하는 함정이었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체력 스탯은 올려도 당장 눈에 보이는 차이점이 없다.
반면에 근력이나 민첩을 올리면 몸놀림부터 달라지고, 전투할 때 효과가 쉽게 드러난다.
그래서 초보 플레이어들은 근력이나 민첩을 올리는 데 치중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처음에 체력 스탯을 올리는 건 쉽지만, 나중에는 속된 말로 피똥을 싸야 한다는 걸 모르고.
‘민첩은 좀 나중에 올려도 돼.’
은신 특성을 갖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스킬 획득 : 전격 쇄도(희귀)]
- 놀라운 업적 달성 보상.
-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 지속 시간 : 1분
- 쿨타임 : 1일
10분 내로 균열을 클리어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보상 스킬이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마수를 죽였을 때 나오는 마정석을 포기한 게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일부러 시간을 단축하려 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늑대들과의 싸움을 피한 게 더 이익이 된 셈이었다.
이 스킬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쓸 수 있지만, 사실 다른 데에서 더 유용하다.
‘좋았어.’
업적 2개 달성, 경험치 독식, 스킬 획득.
E급 균열에서 이렇게 알차게 뽕을 뽑은 사람이 또 있을까?
만족하던 것도 잠시,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잠깐, 그런데 왜 <불살의 신념> 업적 보상은 없지?’
마수를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균열 공략에 성공하면, 불살의 신념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지금은 별로 필요없는 보상이라서 손해는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
자신이 알던 과거와 벌써 다른 점이 생긴 것인가, 하는 불안이었다.
의문은 곧 풀렸다.
아공간 주머니에 E급 마정석 한 개와 아이템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은빛늑대의 털가죽]
아마 한건우가 소환한 자이언트 어스 웜 때문에 은빛늑대 한 마리가 죽었고, 그것이 한건우의 몫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도리어 계획보다 더 잘 풀리자, 한건우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탯 정비를 마친 한건우가 균열 밖으로 걸어나왔다.
균열 밖에서는 정부 구조대가 안전선을 치고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슈우우-
검은 균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닫혔다.
균열이 공략되었다는 분명한 증거.
안전선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벌써?”
“우와아!”
“혼자서 균열을 닫았어!”
열기가 생각보다 뜨거웠다.
스포츠 경기를 보듯이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평상시 길거리의 행인들이라면 잠시 신기해하다가, 뿔뿔이 흩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막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과 그 가족들.
극적인 장면을 보고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균열이 닫힌 것을 보고, 구조대의 막내로 보이는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순경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선생님, 고생많으셨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균열 처리 신고를 해야 해서요. 플레이어 자격증 좀 보여주십시오.”
“없습니다.”
젊은 순경이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면 성함과 플레이어 등록번호는요?”
“등록 안했습니다.”
“예?”
구조대 순경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가 눈알을 굴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신고 출동을 하기도 전에 먼저 들어간 플레이어가 균열을 다 해결해서, 왠일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등록자라니···.
미등록자면 차라리 도망갈 것이지, 당당히 남아서 정체를 밝히는 건 무슨 경우인가?
울상을 짓는 순경을 보고, 한건우가 태연하게 말했다.
“방금 자연 각성했으니까요.”
“아···. 네?”
각성센터를 이용하지 않은, 자연 각성자.
요즘에는 매우 보기 드문 존재였다.
성인이 되면 한 번쯤 각성센터에 들러서 자신이 각성자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때문이다.
무슨 등급인지도 각성센터에 가야 알 수 있다.
각성센터의 원리는 단순했다.
마정석으로 안전하게 갈무리한 이계의 기운에 사람을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그 기운을 맞고 각성하면 각성자이고, 아무 일도 없으면 일반인이다.
애초에 각성자는 그 수가 매우 적어서, 수천 명에 한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러니 각성센터에 가보기도 전에 우연히 균열의 기운을 쐬어서 각성하는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한건우가 바로 그 희박한 경우였다.
회귀 전에도, 한건우가 각성하던 장면의 목격담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늘 자연각성자 목격함.jpg’
‘와··· 이게 되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대 순경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방금...이라면 여기 이 균열 앞에서 각성하셨다고요?”
“네.”
“그렇다면 이 균열은, 누가 처리했죠···?”
분명 한건우 혼자서 나오는 걸 똑똑히 보고서도, 순경은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생 초짜, 그것도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자연각성자가 혼자서 균열을 닫는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구조대 순경은 한건우가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직감했다.
‘미등록 고레벨 플레이어가 분명해!’
그가 뒤에 빠져있는 선임들에게 기민하게 눈짓을 보냈다.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제가 신호하면 동시에 달려들어 제압하시죠!’
이런 뜻이었지만, 선임들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전투 준비를 하기는커녕, 머리를 벅벅 긁고 딴청을 피우는 것이었다.
동태 눈깔 같은 눈빛만 봐도, 선임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피곤해질 것 같은데,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그냥 갈 길 가게 보내자고.’
‘자기 입으로 자연각성이라잖아. 보내면 제 발로 센터 가겠지.’
‘빨리 퇴근하고 흑돼지 오겹살 먹고 싶다. 시원한 소주에 캬!’
좌절한 막내 순경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잘 알겠습니다. 자연각성자는 72시간 내에 센터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시죠?”
“네.”
정부 구조대의 수준은 보통 이 정도였다. E급이나 F급 플레이어가 대부분이고, 체계도 매뉴얼도 없이 오합지졸.
그래도 구조대 순경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저, 선생님. 성함과 주민등록번호라도 알려주십시오. 상부 보고는 해야 하니까요.”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한건우는 일부러 기록을 남겼다.
그때 군중 속에서 여동생이 뛰어왔다.
“오빠!”
“어, 지윤아.”
구조대 순경의 시선이 빠르게 지윤과 한건우 사이를 오갔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 지윤, 그리고 졸업식에 참석하러 온 듯한 한건우···.
누가 봐도 수상한 반정부 플레이어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모습이었다.
한건우에 대한 의심이 조금 옅어진 듯, 순경은 안심한 미소를 지었다.
“자, 선생님 그러면 저희는 주변 정화 마치고 가보겠습니다. 각성센터 바로 가시고요. 72시간보다 늦으면 안되는 것 아시죠!”
한건우는 고개를 까닥이고, 여동생 지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놀란 지윤이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아까 애들이 너네 오빠 아니냐고, 막 그러는 거야···.어떻게 된 거야? 안 다쳤어?”
“응.”
지윤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오빠 각성자였어? 나한테 비밀로 했던거야? 왜···.”
아마도 진작 각성했으면서 자기한테만 말을 안한 줄 알았나 보다.
한건우는 피식 웃었다.
“바보야. 넌 졸업식은 왜 비밀로 했냐?”
“그건, 오빠가 일하느라 바쁠까봐.”
지윤이 쭈뼛거리며 물러섰다.
그래도 지윤의 얼굴은 밝았다. 각성자인 오빠가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그럴 만도 했다. 가족 중에 각성자가 나왔다고 하면 일단 주위의 부러움을 받았다.
설령 F급이라 해도,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어지니까.
플레이어들 세계에서는 비웃음을 받지만, 정부 소속 F급 플레이어만 되어도 일반 직장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접이 괜찮았다.
주위에 몰린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계속 바라보았다.
대부분 지윤의 학교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몰래 휴대폰으로 한건우의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건우는 그걸 방치했다.
아니, 일부러 유도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동.
‘이 정도면 충분해. 입질은 분명히 온다.’
한건우는 스스로를 미끼로 하여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기한은 72시간.’
그 전에 해놓을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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