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성 먹는 플레이어-3화 (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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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균열

플레이어는 특성을 1개만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다.

아니, 특성 하나도 제대로 개화를 못 한 플레이어도 많았다.

회귀 전 한건우의 특성은 <버서커> 단 1개였다.

이제는 보유 특성이 무려 100개가 넘었다.

<탐식의 권능> 덕분이었다.

한건우의 보유 특성 목록은 분식집 메뉴판처럼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고도 자리가 모자라서 ‘더보기’ 창까지 떠 있었다.

“하....”

아직 각성 전이라 그런지, 모든 특성명은 회색으로 비활성화되어 있었고, 대부분 <잠재>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건 개화하지 못한 특성을 얻었을 때 나오는 표시였다.

100개가 넘는 특성 목록에서 1번, 2번에 있는 특성은 이것이었다.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잠재)]

- 창을 던졌을 때, 맞은 상대방은 회복 불가 디버프를 받는다.

[염동력]

- 마력으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다.

한건우가 마지막으로 죽인 자, 천명환이 가진 특성들이었다.

‘마창 게이볼그의 주인’은, SSS의 천명환을 국내 최강의 창술사로 만들어준 특성.

한건우도 덫에 걸렸을 때 여기에 당했기에, 그 무서움은 몸소 알고 있었다.

‘염동력’은 잠재특성이 아니었다. 각성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 마력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겠지.

‘혹시 이 특성 목록의 순서는···.’

짐작대로였다.

가장 최근에 죽인 천명환의 특성을 시작으로 해서, 시간 역순으로 이어졌다.

SSS의 명령에 따라 한건우가 죽인 플레이어들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그 중에는 꽤 거물들도 있었다.

[아그니(Agni)의 화염(잠재)]

- 신성한 불꽃으로 부정을 태워 없앤다.

불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던 반정부 플레이어, ‘염제’의 특성.

[그림자 맹시]

- 그림자 속에 몸을 은신할 수 있다.

악명 높은 미등록자였던 ‘그림자 왕’의 특성.

이것 역시 높은 마력만으로 발동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회귀 때 발동된 그 특성도 있었다.

[비스트 마스터(신화급)]

- 마수의 신체와 합체합니다.

이 특성 덕분에 뇌룡의 심장 조각이 한건우의 몸과 합체되었다.

“....”

이 특성을 가졌던 플레이어는, 알고는 있지만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한건우로서는 괴로운 기억이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생각났다.

“어?”

그들의 목숨을 끊은 감각이 너무나 생생해서 잊고 있었지만, 그가 죽인 플레이어 100명은 지금 전부 살아있었다.

한건우가 죽인 플레이어 중에 15살보다 어린 아이는 없었으니, 지금 모두들 이 세상에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천명환도, 염제도, 그림자 왕도, 그리고 ‘비스트 마스터’ 특성의 원래 주인도···.

한건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자신의 무기는 15년간의 지식과 경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완전히 판을 새로 짤 수 있어.’

한건우가 웃었다.

*

한건우는 여동생이 다니는 중학교 정문에 와 있었다.

학교 근처는 평소와 달리 조금 번잡했다.

꽃다발과 간식을 파는 상인들 때문이었다.

그가 신중하게 길거리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여기쯤이었나.”

큰 키의 한건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거리를 배회하자, 상인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주민들이 치안에 불안을 많이 느끼던 때였다.

정부에 반기를 든 미등록자들이 일반인들을 위협하는 일이 많았고, 범죄도 저질렀다.

미래를 아는 한건우는 알고 있었다.

그런 위험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언론은 미등록자와 관계없는 범죄 사건도 미등록자의 탓으로 교묘하게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미등록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언론을 조작했다.

그 배후는 뻔했다.

‘SSS의 영향이 안 미친 데가 없었군.’

한건우는 드디어 기억을 더듬어 찾던 지점을 발견했다.

그가 각성했던 장소였다.

‘곧 11시.’

당시 한건우는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아르바이트를 갔었다.

손님들의 대화를 듣고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날은 여동생이 다니는 중학교의 졸업식 날이었다.

한건우가 일하러 가야 하니, 여동생은 축하하러 와달라는 말도 못 꺼낸 것 같았다.

졸업식 날, 가족도 없이 홀로 쓸쓸히 서 있을 여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뛰쳐나왔다가, 학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그러니까 지금쯤, 바로 여기서 그게 생길 것이다.

곧 아무것도 없던 허공을 찢고, 시커먼 균열이 나타났다.

균열은 말 그대로 ‘균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너머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무서운 암흑.

“흐아악!”

“학교 앞인데, 어떡해.”

“놀라지 마세요. 아직 시간 있습니다.”

“플레이어 없나? 구, 구조대! 구조대 불러!”

상인들이 혼비백산했다.

시간이 지나면 여기서 무서운 마수들이 튀어나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균열에서 멀어지기 위해 뛰는 동안, 한건우는 성큼성큼 검은 균열 앞으로 다가섰다.

“위험해요!”

“저 사람, 왜 저래!”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건우가 신경쓸 리 없었다.

“플레이어인가?”

“아닌 것 같은데···.”

한건우는 균열 바로 앞에 서서, 이계의 균열에서 쏟아져나오는 기운을 온몸으로 받고 서 있었다.

[E급 균열 - 울프스 덴]

- 공략 조건 : 은빛늑대 소굴 섬멸

- 잔여 시간 : 7시간 59분 25초

사람들은 균열 발생에 익숙해졌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공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균열의 조건은 단순했다. 잔여시간이 남아있을 때까지는 이계의 존재가 지구로 넘어올 수 없다.

잔여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균열이 공략되지 않으면, 이계의 마수들이 이쪽으로 넘어와서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균열을 공략해주는 ‘플레이어’가 대접받을 수밖에 없었다.

균열 안에서는 차원 너머 이계의 바람소리와, 무시무시한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우-!

[죽여라!]

은빛늑대의 울음소리.

그 소리를 듣자, 한건우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렸다.

‘뭐지? 잘못 들었나?’

아우우우우-!

[물어 죽여라!]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짐승 소리나 다름없는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한건우에게는 사람이 하는 말처럼 이해가 되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뭐, 나쁠 것 없지.’

왜 갑자기 마수의 말이 들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투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는 안 되겠지.

5, 4, 3, 2, 1.

한건우가 마음속으로 센 숫자가 끝났을 때였다.

파아악!

한건우의 전신에서 흰 빛이 발광했다.

[플레이어 각성]

1차 각성이었다.

과거에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바짝 굳어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들어가 볼까.’

울프스 덴.

훌륭한 첫 미션이 되어줄 것이다.

한건우가 막 균열로 들어가려 할 때, 졸업식을 마친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가족들이 삼삼오오 정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균열이 생겼다는 소식이 아직 학교 안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이었다.

허공에 생겨난 시커먼 균열, 그리고 혼자서 맨몸으로 균열에 들어가는 한건우를 보고,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지윤아··· 저 사람 네 오빠 아니야?”

“뭐?”

친구의 다급한 말을 듣고, 지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한건우가 균열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

슈욱-.

균열 속으로 들어오자, 바깥 세상의 소리는 티비를 끈 듯이 사라졌다.

균열 안은 거칠고 메마른 들판이었다.

은빛늑대 떼가 사는 곳.

“아우우!”

[적이다!]

보통 늑대보다 두세 배 큰 은빛늑대 한 무리가 보였다.

은빛늑대들은 한건우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이빨과 발톱이 칼날 같았고, 희게 빛나는 털가죽 안으로 근육질의 두툼한 몸집이 보였다.

‘지금 정면으로 싸우는 건 어리석지.’

한건우는 망설임 없이 은신 특성을 썼다.

[특성 발동 : 그림자 맹시]

- 그림자 속에 몸을 은신할 수 있다.

- 적용 대상 : 마수, 은빛늑대 8마리.

“컹! 컹!”

[없어졌다!]

“쿠르르르···.”

[근처에 아직 냄새가 나는데.]

“크릉. 크르릉”

[굴을 지켜야 해. 언덕으로 돌아가자.]

‘오.’

덕분에 늑대굴을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서성이는 은빛늑대 떼를, 한건우는 스윽 지나쳐 뛰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뒤쪽의 돌언덕이었다. 바위틈을 잘 살펴보자, 늑대굴 입구가 보였다.

여기 온 것은 바로 균열의 공략 조건 때문이었다.

[은빛늑대 소굴 섬멸].

‘늑대 떼를 다 죽이는 게 조건이 아니지.’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마수들도 다 죽였을 것이다. 마수를 죽였을 때 나오는 스킬이나 경험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한건우는 여기서 다른 걸 얻고자 했다.

단 한 번의 기회.

한건우는 늑대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은신 특성을 풀었다.

주위를 살피던 은빛늑대들이 늑대굴 앞에 있는 한건우를 발견하고, 맹렬하게 달려왔다.

[특성 발동 : 어스 쉐이커]

- 땅 속에 있는 마수를 불러냅니다.

- 적용 대상 : 마수, 자이언트 어스 웜

‘걸렸다.’

메마른 초원의 땅 밑에는, 어스 웜이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한건우의 스탯으로는, 물리적으로 늑대 굴을 부수는 건 무리였다.

신체적 물리력이 필요한 특성들도 모두 잠재되어 있는 상태.

마력만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지진이라도 난 듯했다.

쿠과과광-!

자이언트 어스 웜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은 없고 이빨이  달린 거대 지렁이. 흉측한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거대한 지하 마수가 등장하자, 달려오던 은빛늑대들이 주춤했다.

“늑대굴을 부숴라.”

혹시나 말이 통할까 해서 명령해봤지만, 자이언트 어스 웜은 머리만 갸웃할 따름이었다.

“할 수 없군.”

한건우는 부서진 돌덩이를 집어들고, 자이언트 어스 웜의 머리에 맞추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풍!

돌덩이가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구우우우-”

[누구냐!]

화가 난 자이언트 어스 웜이 용틀임을 치기 시작했다.

은빛늑대들은 깨갱거리며 굴을 버리고 꽁무니를 뺐다.

쿠과과과왕-!

푸스스스-

바윗돌이 부서지고, 돌덩이와 자갈이 허공을 갈랐다.

부지런히 몸을 피하는 가운데, 기다렸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E급 균열 - 울프스 덴, 공략 완료]

- 잔여 시간 : 7시간 50분 1초

- 공략 시간 : 9분 24초

- 10분 내 공략 성공.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생애 첫 균열을 솔로 플레이로 공략 성공. 믿어지지 않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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