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종장 (3)
티 하나 없는 백색 통로는 언뜻 결벽증 환자의 병실을 연상케 했다.
이동 중 마주치는 모든 감시 카메라를 쏘아 부수며, 카인은 빠른 속도로 전진을 계속했다.
우웅―
두꺼운 벽 너머에선 고래의 울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선체 어딘가에서 가동되고 있을 엔진 소리이리라.
철컹! 쿵!
카인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뒤를 돌아보자 조금 전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육중한 백색 문이 자리해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개폐되는 방식.
단 1초라도 늦었다면 문 아랫부분에 몸이 찍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그곳에도 문이 내려와 길을 막고 있었다.
확실히 황제가 자신의 침입을 인지했으며, 카메라를 통해 동선을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문의 조작.
카메라를 통한 감시.
반대로 황제가 현재 어디에 있을지도 유추가 되었다.
콰득.
품에서 마정석을 한 움큼 꺼내 씹어 삼켰다.
곧 회로 전체가 불타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마나가 급속도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콰드득.
아직. 아직이다.
이 정도 마나로는 황제의 숨통을 끊을 수 없으니.
마정석의 대가는 회로의 수명이며, 과다 복용 시 생명 자체가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카인에게 자신의 몸 상태나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나를 회복한 카인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쾅!
돌풍이 쏘아지자, 철벽과 같던 문에는 성인 남성 크기만 한 구멍이 생겨났다.
구멍을 넘어 계속해서 전진했다.
철컹!
문은 계속해서 카인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마치 스스로의 의지를 지닌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회피는 모두 간발의 차로 이루어졌고, 통로를 가로막는 문은 모두 카인의 마법에 의해 파괴되었다.
방주의 내부 역시 사용된 합금의 내구도가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선체 외부에 비해서는 약하다고는 하나.
때문에 마나 소모가 적지 않았고, 그때마다 마정석을 섭취해 부족한 마나를 채웠다.
하아. 하아.
몸이 뜨거웠다.
용광로 속에 몸이 녹아가는 기분.
고개를 돌려, 전체가 투명한 금속으로 된 벽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수천 개의 여신상이 뿜어내는 붉은빛은 그 기세가 더 흉흉해져 있었다.
상황 속에 드러난 여러 지표를 가늠해 복원 마법의 발동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약 50분 뒤.
대륙 위의 모든 생명체는 정기로 변환되며, 그 정기는 ‘땅’에 흡수될 것이다.
신세계의 주민들이 발을 딛고 살아갈 비옥한 땅을 위해서.
방주의 탑승자 목록을 떠올렸다.
그중 방주의 운영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43명이었다.
만약 복원 마법을 막지 못한다면, 황제를 포함한 44명이 신세계의 주민이 될 터였다.
걸음을 재촉했다.
방주의 지도는 미리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쓸 때 가장 공들였던 설정 중 하나가 방주였으니.
회피하고. 부수고. 전진하고.
본디 방주의 탑승자들이 사용했을 여러 시설과 통로를 지나, 마침내 조종실 앞에 도착했다.
후우.
호흡을 고르고 손바닥을 뻗었다.
쾅!
문이 부서지고 파편이 휘날렸다.
예상과 달리 안쪽에선 아무 공격도 날아오지 않았고, 대신 짙은 피 냄새가 풍겨왔다.
“…….”
먼지가 걷히고 안쪽 풍경이 드러났다.
승무원 복장을 한 이들이 가슴에 얼음송곳이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숨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 죽은 것이다.
눈으로 빠르게 숫자를 세었다.
총 43명이었으며, 그중 황제는 보이지 않았다.
“끈질기군. 결국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앞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유리 벽 너머.
온갖 관제 장치가 가득한 조종실.
그곳에 황제가 서 있었다.
쾅!
카인이 돌풍을 발사했지만, 유리 벽은 끄떡도 없었다.
“소용없네. 방주의 선체 외부와 같은 합금으로 만든 벽일세. 장담하지. 자네가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걸세.”
“잔재주를 부려놨군.”
황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조종실이 테러리스트에게 탈취당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겠나?”
“승무원은 모두 직접 죽였나? 방주에 관한 어떤 정보라도 흘릴까 봐?”
“역시 눈치가 빨라. 난 솔직히 자네 같은 이가 왜 배신을 택했는지 모르겠네. 약속된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굳이 힘든 길을 가다니.”
카인이 절대 자신을 해할 수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황제의 목소리는 한결 여유로워져 있었다.
황제는 조종 패널 앞에 다가섰다.
조종실 전면부는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포기하고 나와 같이 지켜보기나 하세. 신세계가 어떻게 구축되는지 말이야.”
“여성 승무원까지 모두 죽였군.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황제가 픽 웃으며 카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니. 잘 알고 있네. 대를 이을 수 없다는 이야기지. 문명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단 이야기고.”
“신세계에 홀로 도착한다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자네에게 목숨을 잃는 것보단 훨씬 나은 선택지이지.”
떠받들어 줄 이가 없다.
결국 홀로 신세계를 살아가다 죽을 것이다.
그것을 감수하고 모든 승무원을 죽였다는 것은, 황제의 삶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였다.
“안타깝지만 헛수고다. 승무원 모두를 죽여봤자. 복원 마법은 결국 멈출 것이다.”
황제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높이 치켜들었다.
아주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러다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자네가 멈출 텐가? 어떻게?”
황제가 조종실 중앙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붉은 보석 하나가 허공에 부유한 상태로 유유히 자전하고 있었다.
파직!
황제 주위에 피어난 수십 개의 전류 덩어리가 보석을 향해 쏘아졌다.
파직! 파지직!
무차별적인 마법 난사에도 보석은 끄떡없었다.
자세히 보자 투명한 유리 상자가 보석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복원 마법은 한 번 발동하면 멈추지 않네. 마법의 핵을 부수지 않는 이상.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심지어는 마법을 발동한 나조차도 말일세.”
황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러니 보여주게. 복원 마법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 역시 몹시 보고 싶으니까.”
유리 상자는 황제와 이쪽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벽과 같은 재질의 초합금으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카인은 몇 차례 더 유리 벽을 향해 마법을 발사했다.
허나 유리 벽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고, 잠시 생각을 하던 카인은 조종실 출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카인의 생각을 읽은 듯이 황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조종실 밖으로 나가 방주를 돌아다니며 곳곳을 파괴할 생각을 하고 있나? 방주를 추락시키기 위해? 안타깝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네. 방주는 어지간한 손상에도 항해를 계속하니까.”
“…….”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주의 추락.
지상에 충돌해 방주 그 자체가 폭발한다면 마법의 핵도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복원 마법의 발동까지는 약 5분.
엔진을 비롯한 동력 장치를 파괴하기엔 현재 가진 시간은 물론이고 마나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마나 회로는 이미 한계에 이른 상태로, 이 이상 마정석을 섭취했다간 그대로 회로가 파열되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
카인이 황제를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서 버틴다면 너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을 텐데. 복원 마법이 끝난 뒤 신세계가 구축된 후에도.”
“걱정할 것 없네. 방주에는 여러 장치가 마련되어 있네. 가령 이곳 조종실 바닥과 연결된 긴급 탈출실 같은 장소가 그렇지.”
황제가 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난 구명정을 타고 탈출할 걸세. 자네는 착륙을 하지 않는 방주에서 서서히 죽어가겠지. 조종실에서 항로를 바꾸지 않는 이상 방주는 항해를 계속할 테니까.”
황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오래 살 수 있긴 할 걸세. 방주에 식량은 충분히 보존되어 있고, 수십 년 뒤 동력이 떨어지기까지 방주는 추락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러다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자네 지금 뭐하나?”
상대는 이쪽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흘긋 숙여,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제의 등 뒤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긴급 탈출실은 그쪽 바닥이 아니라 이쪽 바닥에 이어져 있네. 안타깝―.”
위잉. 탁.
카인이 바닥의 특정 부분을 조작하자 작은 기둥 하나가 올라왔다.
“어, 어떻게 그걸―.”
“후작의 저택 금고에서 방주의 설계도를 보았지. 그쪽 말대로 재미난 장치가 많더군. 가령.”
삑. 삐빅.
카인이 기둥 위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방주 자체를 탈취할 경우를 대비한 자폭 시퀀스 같은 것.”
삑. 삐빅. 위잉.
“마, 말도 안 돼! 자네가 조작법을 어떻게 안 단 말인가! 시, 신이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본래 이야기의 결말도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구상했었으니.
“그, 그래봤자 내가 아니면 작동하지 못하네. 내가 여기서 나가지 않는 이상―.”
그 말 역시 이어지지 못했다.
카인의 다음 동작에 의해서.
우웅.
카인은 염동을 일으켜 바닥에 흐르는 모든 피를 허공에 띄웠다.
“황제. 너는 의심과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다. 황궁 내는 물론 방주의 여러 장치를 자신이 아니면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설계했지.”
카인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러 인물의 피 냄새가 콧속 점막에 어지러이 달라붙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오만.”
허공에 뜬 핏방울들은 카인의 손짓에 따라 여러 지점으로 나뉘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피를 흘리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이상은.”
황제는 카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때문에 인증 수단으로 혈액을 선택했지. 차라리 지문 같은 것을 인증 수단으로 택했다면 나는 이곳에서 아무 방법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황제여.”
카인의 시선이 황제의 어깨로 향했다.
방주 탑승 직전 돌풍에 스친 부위로, 응급 처치를 하지 못해 지금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는 조종실 바깥 바닥에도 남아있던 상태였다.
“자, 잠깐 멈춰 보게. 타협을 하지. 복원 마법을 중단하겠네.”
카인이 분류를 멈추지 않자, 황제는 다급한 몸짓으로 조종실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개폐해 긴급 탈출실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카인이 그보다 더 빨랐다.
황제의 피를 찾아 기둥 위 센서에 떨어트리자, 정상 작동을 알리는 초록 불과 함께 숫자가 나타났다.
삑!
소리를 들은 황제가 고개를 홱 돌렸다.
숫자를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 00:15 ]
“자, 자네 정말 미쳤군.”
단위는 쓰여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째깍.
[ 00:14 ]
숫자가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째깍.
[ 00:13 ]
“시간은 일부러 짧게 설정했다. 방주 전체가 폭발하면 마법의 핵도 부서질 테지.”
째깍.
[ 00:12 ]
황제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래로 내려가 구명정을 타기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째깍.
[ 00:11 ]
“하하. 하, 하하. 하하하!”
황제가 웃기 시작했다.
째깍.
[ 00:10 ]
카인은 아무 감정 없는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째깍.
[ 00:09 ]
전력을 다해 뛴다면 출구를 찾아 방주 밖으로 뛸 수도 있을 것이다.
째깍.
[ 00:08 ]
아공간에 낙하산이 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째깍.
[ 00:07 ]
하지만 자리를 비우면.
황제가 유리 벽을 열고 나와 자폭 시퀀스를 멈출 가능성이 존재한다.
째깍.
[ 00:06 ]
회로의 과다 사용으로 황제와 다시 싸운다면 승산은 장담할 수 없다.
째깍.
[ 00:05 ]
때문에 이 방법이 최선이다.
겁을 먹은 황제는 자신이 이곳에서 버티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테니.
째깍.
[ 00:04 ]
아공간에서 와인을 꺼내 마개를 따며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평소 즐겨 마시던 와인으로, 딱 한 잔 정도 양이 남아있었다.
째깍.
[ 00:03 ]
대륙 전체가 깨알만 하게 내려다보였다.
점점 짙어지고 있는 붉은빛 역시도.
째깍.
[ 00:02 ]
걱정할 건 없다.
저 붉은빛은 곧 세상에서 지워질 테니.
째깍.
[ 00:01 ]
와인을 병째 목 뒤로 넘긴다.
붉은빛 액체가 식도를 태우고, 끈적한 향과 함께 알코올의 화끈거림이 올라온다.
빈 와인병을 든 손이 천천히 아래로 곡선을 그린다.
[ 00:00 ]
삑.
지상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조금 피로한 목소리로 카인이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군.”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이 카인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