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23화 (223/227)

#223. 마지막 연회 (4)

“배신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연회장 안쪽으로 사라지는 바이퍼 후작과 라이티노 장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황제의 표정은 미묘했다.

예견된 진실을 확인한 듯 담담해 보이기도.

주체못할 분노를 인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들어가지.”

“예. 알겠습니다.”

카인은 황제를 따라 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제가 개회사를 준비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자리에 착석했다.

서로 인사와 대화를 나눴지만, 일반적인 연회와 같이 활기찬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았다.

“소문을 들었소?”

“방주에 관한 소문 말이죠. 대체 누가 퍼트린 걸까요.”

오히려 긴장감이 감돌았다.

벽 안팎으로 떠도는 소문을 접하지 못한 이가 없는 탓이었다.

또한 방주 참가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이제껏 단 한 차례도 없던 이례적인 일.

황제가 ‘프로젝트’와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황제가 단 위에 오르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반갑소. 신세계의 영광스런 주민들이여. 현업으로 바쁜 중에 이렇게 호출에 응해주어 고마울 따름이오.”

마이크 따위는 필요 없었다.

황제의 방대한 마나에 의해 증폭된 목소리가 연회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렇게 모두를 한데 모은 것은 다가오는 예정일에 따라 방주의 탑승 절차를 안내하고, 서로의 얼굴을 익힐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오. 모두 자리를 즐겨주기 바라오.”

개회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악단의 경쾌한 음악이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예상과 달리 ‘소문’은 언급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어쨌든 연회를 즐기기 위해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황제가 카인을 불러 말했다.

“시간을 주지. 카인을 찾게. 중간에 신세계의 주역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카인은 군중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황제의 시선이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입니다. 던트 백작님.”

“역시 요한님도 방주의 탑승자셨군요. 놀랄 일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폐하의 총애를 생각하면.”

적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연회장을 돌았다.

동시에 곁눈질로 황궁의 외벽 쪽을 살폈다.

‘폭탄을 설치한 곳은 총 일곱 장소.’

먼 과거.

카인은 국경을 허물기 위해 폭탄 하나를 제조했다.

월 브레이커. 통칭 WB-004.

구조물 파괴에 특화된 공성용 폭탄.

레지스탕스에 보급했으나 암시장에 유출되기도 했던 물건.

‘이번에 사용한 물건은 WB-004의 개량형. 기존 모델보다 파괴력이 월등히 높으니 충분히 벽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이다.’

폭탄 설치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황궁에서 입지가 넓어진 덕에 출입 가능한 구역이 크게 늘었고, 폭탄은 모두 아공간을 통해 운반할 수 있었다.

카인은 손목으로 시선을 흘긋 옮겨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 폭탄 타이머에 출력된 숫자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을 터였다.

연회장을 돌던 카인은 제르비아와 시선이 마주쳤고,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긴장한 기색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상황이 닥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 말을 제외하곤 그녀에게 어떤 상황 설명도 해주지 않은 상태.

초조와 불안을 비치기는 엘렌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율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곁을 스치며 속삭였다.

“곧 황궁을 빠져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지정된 장소로 가십시오. 제 부하들이 황녀님이 국경을 넘도록 도울 겁니다.”

카인은 율리아에게서 멀어졌다.

그녀의 손에는 쪽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

그녀는 조금 혼란스런 얼굴로, 며칠 전 황제가 자신을 불러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율리아. 너도 방주에 탑승할 것이다.」

곧 세계는 멸망할 것이며, 방주에 탑승한 이들은 신세계에 도착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했다.

그 이상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단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란 말뿐.

그리고 얼마 뒤 요한이 말했다.

「저는 황제 폐하의 계획을 막을 생각입니다. 황녀님께선 황궁을 탈출해 대륙을 자유롭게 유랑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륙이 사라진다면 자유를 얻는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건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결국 선택의 몫은 황녀님께 있습니다. 방주에 탑승하겠다고 마음먹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폐하를 막을 생각이고, 황녀님께는 황궁을 탈출할 기회를 드릴 생각입니다.」

“…….”

율리아는 혼란이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카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연회장의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연회는 어딘가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삐걱거리지만 어찌 전진을 계속하고 있는 시곗바늘처럼.

“잠시 주목해 주시오. 모두에게 소개할 인물들이 있소.”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고, 단 위에 올라 잔을 높이 들고 있는 황제를 볼 수 있었다.

“이 인물들이 아니었다면 신세계로의 위대한 도약은 불가능했을 것이오. 바이퍼 로테. 라이티노 테이런. 단 위로 올라오시오.”

짝짝짝짝짝─!!

황궁 전체가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짙은 희열과 고양감을 품에 안고 단 위로 향했다.

허나 얼굴에 순간 긴장과 불안을 내비쳤고, 감정의 흔들림을 포착한 황제는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을 걸었다.

아둔한 것들.

배신자임이 들킬까 두려운 것이지.

이미 모든 것이 탄로 난 줄도 모르고.

연회가 시작되고, 바이퍼와 라이티노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곧장 다가와 말했다.

「유력한 범인은 제라트 청장으로 생각됩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것도 수상하고, 이제껏 어떤 흔적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연기.

대체 무슨 이유로 배신을 생각했단 말인가.

권력? 부? 명예?

무엇이 이들의 배신을 부추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까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

‘그래도 예외가 하나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지.’

완전히는 아니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큰 신뢰를 줄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

후우.

황제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바이퍼와 라이티노에게서 시선을 옮겨, 다른 한 대상을 보며 말했다.

“요한 키리프. 그대도 단 위로 올라오시오.”

짝짝짝짝짝─!!

박수갈채가 거세졌다.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시기와 질투를 얼굴에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으며.

이미 예상했다는 듯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흐뭇한 시선을 보내는 이엔 앞서 단에 오른 바이퍼와 라이티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벅. 저벅.

모두의 시선을 한데 받으며.

걸음을 옮겨 단에 올랐다.

황제는 카인에게 악수를 건넨 뒤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카인은 찾았나?”

“예. 찾았습니다.”

“내 지시에 맞춰 사람들 앞에 공표하게.”

“알겠습니다.”

카인과 황제가 멀어졌다.

황제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차례대로 소개하겠소. 바이퍼 로테 후작. 방주의 총설계와 제작을 맡았소.”

다시 한번 터지는 박수갈채.

황제는 이어 라이티노를 소개하고 카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요한 키리프 남작.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오. 현재 수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물이지. 가장 마지막으로 신세계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그 과정에서 내게 큰 도움을 주었소.”

황제는 좌중을 보았다.

그리고 공표했다.

“나는 신세계에서 요한 키리프 남작에게 중책을 맡길 것이오. 그의 말이 곧 나의 말이라 생각해도 좋소. 또한 그는 내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될 것이오.”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번졌고, 황제의 말을 이해한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사실상 요한을 2인자로 지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벨 황자의 얼굴은 황망하게 일그러졌고, 라이티노와 바이퍼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아는 황제라는 인물은 결코 이렇게 쉽게 권력을 부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혼란과 흥분 속.

황제와 카인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맹약은 허락하지 못하나.

만민 앞에 권력을 선언한다면.

그리한다면 요한 키리프도 충분히 만족해 내게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카인은 고개를 숙였다.

무한한 영광과 감사함의 표시였다.

박수갈채가 잦아들 즈음.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것이 있소. 사실 오늘 자리는 단순히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신세계로의 도약을 기념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오.”

장내는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잠시 유예되었던 긴장과 불안이 연회장에 배어나기 시작했다.

“다들 들었을 것이오. 최근 벽 안팎을 떠돌고 있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소문 말이지. 세계는 곧 멸망하며, 방주에 탑승한 이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쨍!

황제의 손에 들려있던 잔이 악력에 의해 깨져나갔다.

피가 주륵 흘렀지만, 황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정보를 흘린 이가 있단 말이오. 배신자가 있단 말이오. 감히 겁도 없이. 분명 이 자리에 있을 것이오. 방주의 탑승자가 아니라면 절대 알지 못하는 이야기니.”

배신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의심스런 눈빛으로 서로를 곁눈질했다.

“또한 카인이란 인물이 레지스탕스를 이끌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이오. 나는 배신자들이 카인과 내통해 제국을 무너트리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에 따른 증거 역시 입수를 마친 상태요.”

황제가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카인 역시 이 자리에 참석했을 것이오. 신분을 위장해 방주의 탑승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을 테니까.”

황제의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이중 누가 카인인지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하지만 걱정할 것 없소. 조사 끝에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냈으니. 이 자리에서 모두 밝힐 것이오. 배신자가 누구인지. 카인이 누구인지.”

장내에 술렁임이 번졌다.

황제는 라이티노와 바이퍼의 반응을 확인했다.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오히려 기대 어린 시선으로 이쪽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

어리석은 것들.

제라트 청장을 배신자로 지목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리라.

혹여 수상한 낌새를 채고 공격을 해올 수도 있다.

“배신자들의 이름을 먼저 말하겠소.”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바이퍼 로테. 라이티노 테이런.”

그전에 이쪽이 먼저 선수를 칠 테니까.

배신자로 지목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충격과 당황으로 흔들렸다.

그건 좌중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어서 황제의 입에서 성난 외침이 튀어나왔다.

“뭣들 하는가! 역적들을 사로잡지 않고!”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황실 기사단이 일제히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달려들었다.

“대체 무슨…!”

“폐, 폐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라이티노와 바이퍼.

두 사람은 손에 마나 운용을 제한하는 수갑이 채워진 채 황제 앞에 무릎 꿇게 되었다.

그들의 목 바로 아래에 기사단의 검이 드리웠다.

그 과정에서 저항은 없었다.

‘폐하께서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것이다.’

무언가 오해가 있다.

사실관계가 밝혀지면 아무 일 없이 풀려날 것이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도 순간 스쳤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이 없기도 했다.

황실 기사단은 개개인이 일개 소대에 맞먹는 실력자.

그들과 전투를 불사한다면 심각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폐하 무언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

바이퍼 후작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푸욱!

황제가 기사단의 검을 빼앗아 그의 한쪽 어깨를 찔렀기에.

“―크흡.”

후작은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연회장에 혈향이 퍼져나갔다.

악단의 연주는 어느샌가 멈춰있었다.

“가증스러운 것.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입을 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황제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그의 전신에선 숨 막히는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연회장 전체의 원소 농도는 급격히 치솟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조차 대기를 빽빽하게 메운 ‘선연’한 원소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마치 여러 색의 물감이 기름 위에 한데 뒤섞인 것 같은 광경.

풀썩.

심약한 이들이 자리에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허나 참가자의 대다수는 수준 높은 마나 회로의 소유자로, 원소가 주는 압력을 필사적으로 버텨냈다.

주륵.

라이티노의 입가에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손에 채워진 구속구.

마나 운용에 제약이 있어 황제의 마나장을 버텨낼 수 없었다.

다만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은 그의 초인적인 정신력 덕택이었다.

‘지금 말을 꺼내는 건 폐하의 심기를 거슬려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어떻게든 버텨 오해를 풀어야….’

바이퍼 후작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이 풀려 있었다.

자신마저 의식을 잃는다면 오해를 풀 기회도 없이 모든 게 끝이었다.

혼미한 정신 속.

황제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두 역적의 자택과 집무실에서 증거를 발견했소. 차후에 모두가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할 생각이오. 그리고 반란군의 지도자 카인의 정체는―.”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카인이 있었다.

“여기 요한 키리프 남작이 직접 이야기할 것이오.”

카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천천히 좌중을 돌아본 후 입을 열었다.

“저는 폐하의 명을 받아 카인을 찾기 위해 연회장을 돌았습니다. 기존에 의심을 하고 있던 인물이 있었고, 오늘 추측을 확신으로 굳힐 수 있었습니다.”

풀썩.

앞으로 고꾸라진 후작의 상반신.

고여가는 피 웅덩이.

짙어져 가는 피 냄새.

풀썩. 풀썩.

그리고 점차 의식을 잃기 시작하는 좌중들.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히겠습니다. 연회장에 숨어든 카인이 누구인지.”

카인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곧게 핀 검지는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지목할 것처럼 보였다.

손이 내려왔다.

천천히. 허공을 유영하듯이.

허나 모두의 기대와 다르게.

손가락은 누군가를 가리키지 않았다.

굽혀졌던 손가락이 모두 펴지고,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제 주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사라진 자리엔 더 이상 요한 키리프의 얼굴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바로 카인이다.”

그 순간.

외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