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21화 (216/227)

#221. 마지막 연회 (2)

“흐음.”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카인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가늠하는 듯 보였고, 이내 입을 열었다.

“설명해보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눈을 보면 상대의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게.”

카인은 고개를 들어 황제의 백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방주의 출발일은 28일 뒤이네.”

“사실입니다.”

“가진 바 능력은 없지만 막대한 돈을 내고 방주의 탑승을 약속받은 이들이 있지. 난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네. 신세계의 주민이 될 자격이 있는 자들은 오직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한 이들뿐이니까 말이야.”

“…사실입니다.”

황제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카인의 대답이 거침없이 이어질 때마다 황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갔다.

화륵.

황제의 손 위에 백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왔고, 집무실 내의 원소 농도가 급격히 치솟았다.

“살려두기엔 너무 위험천만한 능력이라 생각하지 않나?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나 여기서 제거하는 것이 후환이 없을 것 같은데.”

황제의 목소리에선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카인의 온몸을 옥죄었다.

“나는 지금 자네를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이네.”

“거짓입니다.”

불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나가 황제의 몸으로 돌아가고, 방 안의 원소 농도는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갔다.

“단순히 눈치를 보고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군. 언제부터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황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든 마지막 한 수 정도는 남겨놔야 하는 법이지. 적절한 때에 사실을 털어놓았으니 되었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연회장 입구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겠다는 카인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 연회장에 들어가는 모든 이와 눈을 마주치며 시험을 할 수 있을 테지. 연회 시기는 언제가 좋겠나?”

“3일 뒤가 좋을 것 같습니다. 라이티노 장로와 바이퍼 후작이 그때 출장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 눈치를 채고 대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그때 탑승자 전원을 소집하겠네.”

라이티노와 바이퍼는 마법진의 중요부를 이루는 여신상의 최종 점검을 위해 벽 바깥으로 출장을 나가 있었다.

카인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황제가 무언가 덧붙이려는 찰나 선수를 빼앗았다.

“폐하께 요청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황궁의 생태를 잘 아는 누군가 보았다면 경악했을 발언이었다.

황제에 무언가 요청하는 것 자체가 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선을 넘은 무례함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인은 자신했다.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요청’을 올릴 수 있다고.

‘오히려 내용을 들으면 기꺼워할 테지.’

기나긴 정적 끝에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해보게.”

“허락하신다면 맹약을 통하여 폐하와 주종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이쪽이 아니라도 분명 황제가 꺼냈을 말이었다.

쉽게 방심을 하지 않으며, 두터운 안전장치를 좋아하는 인물이니까.

“맹약이라.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고 하는 말인가?”

‘충성’을 매개어로 하여 맹약을 맺으면 앞으로 황제에게 위해가 되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제게 ‘신세계’라는 큰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제 육체와 영혼은 앞으로 폐하의 영광만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황제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꺼내려던 말을 상대가 먼저 해주니 달갑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말인가?”

“새로 구축될 신세계의 계급 체계에서 높은 지위를 약속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황제의 얼굴이 냉랭하게 굳었다.

허공에 그려지던 맹약의 표식 역시 사라져버렸다.

“그야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신세계에서 자네는 중책을 맡게 될 걸세.”

“폐하에 대한 제 충성심은 높디높습니다. 야심 또한 그에 못지않습니다. 확실한 약속을 부탁드립니다. 맹약을 통해서.”

황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략 어떠한 심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쯧. 신세계에서 버림을 받을까 불안한가 보군.’

다재다능하지만 어린 나이에서 오는 감정의 빈틈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영악하다 할 수 있었다.

‘거짓 감별’이란 밑천을 드러낸 상황에서, 자신의 부귀를 보장받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행동일 테니.

맹약을 맺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내키지 않았다.

‘요한 키리프. 분명 쓸모가 많은 인재이긴 하지. 이변이 없는 한 신세계에서도 내 곁에 둘 것이고.’

황제는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고, 그 의심의 대상엔 ‘미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아무리 유능한 신하도 하루아침에 쓸모가 다 할 수 있었다.

가차 없이 버릴 생각이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을 함께 했든.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든.

신하란 ‘도구’ 그 이상 그 이하의 존재도 아니었으니까.

섣부른 맹약은 미래의 중요한 시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황제가 카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네의 충성심은 잘 알겠네. 마음 한편에 품은 걱정 역시도. 하지만 불안해할 필요 없네. 내가 자네를 버릴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맹약까지 맺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죄송합니다. 무례한 요청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닐세. 자네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법한 요청이었네.”

카인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황제의 인물 특성을 알기에 유도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황제는 분명 후회할 것이었다.

오늘 맹약을 맺지 않은 일을.

뼈저리게. 몹시도.

***

D-25.

두 가지 소문이 수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카인이 이끄는 레지스탕스의 공격에 국경 수비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머지않아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선택받은 자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첫 번째 소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비대와 레지스탕스 간 교전이 국경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실제로 벽이 무너진 곳도 생겨나고 있었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레지스탕스. 배후 세력으로 군수 기업들 의혹.」

「이대로 벽은 허물어지는가. 제국의 미래는?」

여러 기사가 쏟아졌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래도 두 번째 소문은 믿지 않았다.

벽 바깥에서부터 퍼진 소문인 데다 그 내용이 너무도 허무맹랑했으니까.

하지만 방주 탑승자들의 경우는 달랐다.

자신들의 ‘비밀’이 온 세상에 까발려진 셈이었고, 때문에 정보가 새어나갔음을 모두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치 빠른 이들은 연회의 목적이 다른 데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연회 시작 1시간 전.

황궁 본궁에 위치한 야외 연회장.

“라이티노 장로와 바이퍼 후작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방주에 대한 소문을 낸 것을 보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걸로 스스로의 죄를 증명한 셈일세.”

황제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 이틀.

황제는 요원을 보내 라이티노와 바이퍼 두 사람의 자택과 집무실을 은밀히 수색했다.

판단의 자료가 될만한 온갖 증거를 채취했고, 금고와 서랍 아래의 비밀 공간에서 서신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신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될 4인을 위하여.」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카인의 글씨체와 일치했다.

서신이 남아 있는 지문 역시 카인의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서신 모두 카인이 직접 준비해둔 물건들이었으니까.

4인.

그 문구가 특히나 거슬렸다.

바이퍼. 라이티노. 제라트.

이제껏 키워준 개들이 합심하여 주인의 발을 물려 한다는 말이었다.

‘제라트. 죽은 게 아니었나 보군. 내 자리가 그렇게 탐났나. 어리석은 것들.’

나머지 한 명은 카인일 터였다.

높은 확률로 제라트가 끌어들였을 인물이었다.

“나는 놈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네. 방주가 없으면 신세계로 향하는 건 불가능하니 말일세. 어떻게든 탈취하려 들겠지. 그리고 연회장에 등장한다면 카인이란 녀석도 함께일 걸세.”

황제는 방주의 탑승자 명단에 카인이 끼어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위장을 위한 다른 신분과 이름으로.

“카인의 지문은 서신 외에도 라이티노와 바이퍼 두 사람의 집무실 곳곳에 남아 있었다고 하셨지요.”

“맞네. 벽 안팎을 드나들며 배신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지.”

CCTV를 확인했지만 드나든 인원이 워낙 많았고, 그중에는 방주의 탑승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카인’을 특정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변용 마법을 사용하고 있겠지. 연회장에도 분명 가짜 얼굴로 나타날 테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제깟 놈이 아무리 정교한 마법을 사용할지라도 자신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우웅.

황제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하듯 주위 원소가 요동쳤다.

그 사이, 카인은 자신의 마나 회로에 집중하고 있었다.

‘흡수한 마나의 적응도가 생각보다도 빠르군. 이 정도면 다음 한 번으로 황제와 대적할 수 있을지도.’

지난 이틀.

카인은 지하 공동에 내려가 탱크의 마나를 두 차례 흡수했다.

변용 마법으로 얼굴을 황제의 것으로 바꾸어 회랑을 통과했다.

엘리베이터의 가동 역시 ‘황족’인 율리아의 피를 사용해 성공할 수 있었다.

「곧 있을 연회 때 소란이 벌어질 거라고요? 그때 밖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요? 드디어?」

율리아는 감격에 찬 얼굴로 방방 뛰었고, 그녀의 손가락에서 몇 방울 피를 채취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탱크 앞에 설치된 함정 역시, 회로 레벨이 4로 상승하며 획득한 특성을 ‘마나의 질 향상’에 모두 투자하여 돌파할 수 있었다.

통과 직후.

탈진 비슷한 상태가 되긴 했지만.

직접 살핀 탱크의 잔존 마나는 예상 이상으로 방대했고, 덕분에 들킬 염려 없이 계획보다 많은 양을 흡수할 수 있었다.

모두 황제의 신경이 외부에 집중된 틈을 타 벌인 일이었다.

“슬슬 오는군.”

주차장에 차량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500명이라니. 이런 대연회는 오랜만이군요.”

연회장에 준비된 의자는 총 500석.

카인의 추천으로 마저 채워진 방주 탑승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숫자였다.

황제가 차에서 내리는 한 여성을 보며 말했다.

“자비르 칼타. 제 아버지와는 연관이 없는 것이 확실한가?”

“예. 제라트 전 청장과는 큰 접점이 없는 인물입니다.”

“계획에 적합하지 않다 판단해 아예 접촉할 생각은 안 했었네만. 자네 추천이니 한 번 믿어보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황제는 그 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동안 제르비아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푸른색 드레스에 땋아 올린 머리.

그녀는 가슴 섶을 가리며 황제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제국의 영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나서 반갑네. 요한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귀중한 기회를 주셔 감사할 따름입니다.”

몇 가지 인사치레가 오간 후.

제르비아는 고개를 들어 카인을 보았다.

“…….”

“…….”

알 수 없는 시선이 오갔다.

그녀는 새벽에 있었던 카인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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