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19화 (214/227)

#219. 방주 (3)

“한 달. 정확히 한 달 뒤일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진 않았군요.”

“모든 준비는 사실 한참 전에 끝나 있었네. 실행을 늦춘 건 단순히 내 변덕이었지. 하지만 자네와 같은 인재를 찾았으니 헛된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네.”

황제의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방주에는 이미 가동에 필요한 모든 마나가 충전된 상태이며, 복원 마법에 필요한 마나 역시 탱크에서 다른 곳으로 전송된 상태라고.

“탱크에 남은 마나는 사실 그리 많지 않네.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양이긴 하지만.”

황제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곧 개발될 신형 변환 장치를 사용해 프로젝트 실행 전 탱크에 남은 모든 마나를 흡수할 것이라 했다.

카인은 다시 황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한 달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상정했던 최악보다도 훨씬.

‘황제 암살’을 위해 준비한 모든 계획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카인은 프로젝트의 실행을 가능한 늦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기에,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확실한 수는 방주의 파괴.

하지만 선체 전체가 미스릴로 만들어진 방주를 개인이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복원 마법 역시, 완성되어 발동만을 기다리는 상태라면 완전히 무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장 좋은 수는 황제가 ‘직접’ 프로젝트를 연기하도록 만드는 것.

“어쨌든 그때까지 사업체를 모두 정리하고 방주에 탑승할 준비를 끝내게.”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날이 되면 방주 아래로 재미난 풍경을 볼 수 있을 걸세. 장관이 따로 없겠지.”

황제가 프로젝트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아,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누가 제라트를 죽였는지도 알아보게나. 자네는 벽 바깥에도 정보망을 두고 있는 듯하니.”

제라트 칼타.

경찰청장이자 블루서펜트의 보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의 이름이었다.

“그렇게 편지 하나만 남겨두고 사라질 인물이 아닐세. 그것도 신세계의 건축을 앞두고. 차라리 누군가에게 암살당했다는 쪽이 설득력 있을 걸세.”

순간 카인의 머릿속에 빠른 계산이 오가고,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방주의 탑승자 목록을 받는다면.

그리고 황제의 신뢰를 전제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황제의 신뢰는 충분하다.’

황제의 정보원에게 일부러 시간을 들여 거짓 정보를 흘린 덕이었다.

조작된 과거를 흘려, 황제에게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었으니까.

카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시일 내에 모든 것을 정리하겠습니다. 경찰청장의 죽음 역시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카인의 대저택.

황제의 전령은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고 돌아갔다.

카인은 집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입구를 밀봉한 황실의 인장.

서류 위에 찍힌 ‘기밀’ 도장.

서걱.

윗부분을 잘라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검은색 파일로, 그 안에는 수십 장의 서류가 담겨 있었다.

“그게 방주의 탑승자 목록인가요?”

에스텔이 커튼을 치며 물었다.

집무실에 존재하는 빛은 스탠드의 주홍빛 조명밖에 없게 되었다.

“정원이 500명이라 하더군.”

“…믿기지 않아요. 일반 시민들은 모르는 사이에 모든 계획이 진행되어 온 거잖아요. 오직 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서요.”

에스텔은 분노와 충격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을 했다.

정확히 한 달 뒤.

대륙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소멸하는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막을 테니까.”

목록을 훑으며 대답하는 카인.

당연히 그러하리라는 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에스텔은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불안감은 곧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카인은 황궁 지하 탱크에 있는 마나를 흡수해 황제를 암살할 계획이라 했다.

‘이제까지의 적과는 차원이 달라.’

어릴 적, 교단 행사에서 황제를 본 적 있었다.

그때 황제가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허공에 수놓았던 대단위 마법들은 아직도 뇌리 깊숙이 남아 있었다.

과연 그것들을 ‘마법’이란 단어로 묶어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분명 카인은 이제껏 기적과 같은 일들을 행사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왔다.

허나 황제가 상대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

게다가 불안감의 원인은 한 가지 더 존재했다.

종종 카인에게서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언제나 모르는 것이 없었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 최단 거리로 나아갔다.

마치 높은 곳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신처럼 말이다.

‘…황궁의 음모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고.’

그래서 카인을 믿는 한편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 일을 해결하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디론가 카인이 영영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에스텔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인은 방주의 탑승자 명단에 집중했다.

예상대로 수도의 권력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대다수 그 이름이 실려 있었다.

공작이나 후작과 같은 높은 작위를 보유하고 있거나.

검이나 마법에 있어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이 나 있거나.

혹은 막대한 부를 황실에 기부하였거나.

재밌는 점은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인 경찰이나 교단의 수뇌부는 몇 사람을 빼고 ‘모두’ 방주 탑승자란 사실이었다.

카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명단을 넘겼다.

아이타르와 제르비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황제는 해당 인물의 사전 조사를 끝낸 후에 포섭 여부를 결정했다.

프로젝트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 포섭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이득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에 결코 동의할 인물들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방주 탑승자는 모두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명단 목록을 머릿속에 저장한 카인은 불꽃을 일으켜 파일을 소각했다.

“에스텔. 차를 대기시키지. 47번 구역으로 복귀한다.”

“알겠어요.”

에스텔이 집무실을 나가고, 카인은 계획에 필요한 물건들을 아공간에 챙겼다.

그중 하나는 시계 형태로 제작된 신형 변환 장치였다.

‘마나 탱크에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단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흡수한 마나를 회로에 완전히 정착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흡수한 마나의 양이 많을수록 더 긴 시간이.

황제의 하루 일과 중 하나는 황궁 지하로 내려가 탱크의 마나를 일정량 흡수하는 일이었다.

탱크의 마나가 단번에 큰 폭으로 줄어든다면 황제는 눈치챌 것이다.

탱크의 경계가 삼엄해질 것이고, 최악의 경우 황제가 이쪽을 의심할 가능성도 있었다.

‘마나를 완전히 정착시키지 못한 상태라면 전투가 벌어졌을 때 패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몇 번에 걸쳐 탱크의 마나를 흡수할 생각이었다.

황제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 선의 양이며, 회로에 당일 모두 정착시킬 수 있을 만큼의 양을.

─차량 준비됐어요.

책상 위의 스피커를 통해 에스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비를 마친 카인은 저택 밖으로 나가 에스텔이 끄는 차에 탑승했다.

부아앙─!

차량은 거침없이 도로를 달렸다.

여러 구역을 거쳐 검문소에 도착했다.

“요한 키리프 남작님. 신분 확인되었습니다.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계획이 촉박해 전보다 더 잦은 횟수로 벽 안과 밖을 오가야 했다.

모든 출입 내역이 황제에게 보고될 테지만 상관없었다.

‘실종된 청장의 수색’이라는 명목이 있기에 의심을 사지 않을 터였다.

검문소를 나서자 드넓은 황야가 나타났다.

에스텔은 47번 구역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에스텔은 백미러를 보았다.

뒷좌석의 카인은 47번 구역에서 팩스로 전달받은 보고서 뭉치를 빠른 속도로 넘기고 있었다.

“들어보지.”

사락. 사락.

보고서를 넘기는 카인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허락을 받은 에스텔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복원 마법과 함께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물은 소멸할 거라 했잖아요. 그 후에 토양의 모든 정기가 회복될 것이고.”

그녀의 입술이 초조하게 달싹였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마법이 있다고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교단에서 받았던 수업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며 대륙을 유랑했던 기간에도. 당신 곁에 머물러 지내는 동안에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고대마도왕국의 잊혀진 마법이니까.”

“고대 마법은 다 그런 건가요? 위력이나 효과가 말도 안 되는….”

“똑같은 마법일 뿐이다. 단지 그 방식이나 원리가 현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대륙 전체의 황폐한 토지를 복구하는 건 고대 마법이라 해도 똑같이 어려운 일이다.”

“…….”

“아무리 많은 마나를 탱크에 모았어도. 얼마나 많은 생명을 담보했든.”

에스텔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그럼 황제가 준비한 복원 마법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 복원 마법은 실패하지 않는다.”

“…….”

“마법의 위력을 증폭하고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에 무엇이 있는지 아나?”

“어… 촉매를 사용하거나. 마법진을 그리는 방법이 있죠.”

“황제는 두 방법 모두를 사용했지.”

에스텔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카인의 말을 이해하고는 탄성을 흘렸다.

“방주의 탑승권을 화폐가 아니라 귀금속으로만 받았던 이유가…!”

“귀금속은 촉매로. 대륙 전역에서 채굴되는 광물은 마나원으로 이용되었지.”

“마법진은요? 그러면 마법진은 황궁에 그려져 있는 건가요?”

“어떠한 의미에선 그러하겠군.”

“네?”

“마법진은 대륙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순간 에스텔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설마.”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다.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이 대륙 전체에 걸쳐 그려져 있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곧바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 하지만 나는 이제껏 마법진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못 봤단 말이에요. 대륙 안 가본 장소가 없다시피 한데.”

“너는 이미 마법진을 본 적이 있다.”

카인이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그 모습은 백미러에 비쳐 에스텔의 눈동자에 담겼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은 보았을 테지.”

카인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황야에 세워진 여신상이었다.

대륙 어디에나 세워진 2미터 높이의, 자애로운 미소를 띤 여신상.

“여신상과 여신상 사이에는 반드시 일정 간격이 존재하지. 사람이 사는 곳이든, 아닌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이상하다 생각한 적 없나?”

에스텔은 숨이 턱 막혔다.

호흡이 가빠져 제대로 숨을 쉬기 힘든 기분이었다.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여신상을 선으로 이으면 특정 문양이 나타난다. 마법진이지. 높은 하늘에서밖에 볼 수 없겠지만.”

사람이 없는 황야에 세워진 여신상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여신상이 토양의 정기를 흡수하는 장치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의문은 해소되었다.

하지만 여신상이 정기 흡수와 동시에 마법진 역할까지 하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에스텔의 죄책감이 가중되었다.

다년간 수행했던 임무 중엔 여신상 설치도 있었으니, 황제와 교단의 음모에 자신도 모르게 기여를 한 셈이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핸들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씹어뱉듯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도 꼭 역할을 줘요. 내가 저지른 죄를 씻을 수 있게. 그렇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에스텔의 시선이 백미러로 향했다.

뒤편 멀리 ‘벽’이 보였다.

“성경에선 벽이 세워진 이유를 악마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그것도 모두 거짓인 거죠? 벽이 세워진 이유가 따로 있는 거죠?”

“악마라.”

카인의 시선도 백미러에 닿았다.

벽을 보며 그가 말했다.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악마와 같은 욕망을 품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존재해왔을 뿐이지.”

***

D-28.

수도에 소문이 퍼졌다.

카인이 레지스탕스를 이끌고 국경지대에 다시 나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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