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11화 (206/227)

#211. 독대 (2)

찰나.

그 외의 단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문이 부서지고.

신형 하나가 쇄도하고.

카인의 머리 위로 검이 떨어지고.

끼기긱─!

검은 카인의 코앞에서 멈췄다.

푸른 막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셸링포드는 이를 악물고 검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스파크만 튀길 뿐 적의 방호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

요한과 시선이 마주쳤다.

보고 있자면 빨려들 것 같은 깊은 심연과 같은 눈빛.

온몸에 소름이 돋음과 함께 본능이 적신호를 울렸다.

‘피해야―.’

요한이 허공에 손을 저었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순간 그 동작이 몹시 유려하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우웅─!

셸링포드가 그다음으로 본 것은 자신을 덮쳐오는 흉포한 기세의 마나 줄기였다.

쾅!

“크흑!”

마나에 포박된 셸링포드는 그대로 벽에 처박혀 주르륵 미끄러졌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몸에 마나를 둘렀다.

하지만 데미지 자체가 몹시 커 방어 자체가 무의미했다.

가슴 속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완벽한 전투 불능.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어떻게… 게다가 동시에 여러 개의 마법을 사용한다고…?’

머릿속은 의문투성이였다.

동실력을 가정할 때 근접계열의 마나유저와 마법사의 일대일 전투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 정설이었다.

마법이 완성되기도 전에 마나유저의 검이 마법사의 목을 베어 버릴 테니까.

혹 어찌 방호로 공격을 막는데 성공하더라도, 다른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여력이 없어 버티다 탈진하는 것이 보통.

그건 셸링포드가 졸업 이후 벽 바깥으로 수행을 다니며 체득한 법칙이기도 했다.

헌데 지금 그 법칙이 깨졌다.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소문이 있으나, 결국 마법사에 불과하다 생각하고 있던 상대에 의해.

‘적어도 마탑의 장로들… 아니, 그 이상이다. 소문은 도리어 적게 부풀려 퍼진 감이 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셸링포드는 뒤이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발견했다.

무릎을 꿇은 자신의 주군.

허벅지에 다닥다닥 꽂힌 단도들.

카페트 위에 흥건한 피와 타액.

순간 셸링포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텅!

자세를 갖춘 셸링포드가 바닥을 박차고 요한을 향해 도약했다.

이미 신체가 한계에 달했느니.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느니.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오직 적을 말살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최후의 기력을 쥐어 짜냈다.

우웅.

하지만 셸링포드의 일격은 이번에도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혀버렸다.

방호에 검날이 닿기도 전, 요한의 마나가 셸링포드를 붙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크흑! 요한! 황자님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카인은 셸링포드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낮췄던 방음 마법의 출력을 다시 높이며, 백진우를 향해 말했다.

“애석하군. 어찌 이리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말도 안 돼. 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대체 어떤 인물에 빙의한 거야….”

“노트북이 사라진 걸 처음 발견했을 때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 아니길 바랐지만, 그때 역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셸링포드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외쳤다.

“요한─! 황자님께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당장 떨어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카인은 고개를 돌렸다.

셸링포드를 보며 정말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셸링포드. 네 눈엔 이 녀석이 아직도 아시모프로 보이나?”

“뭐…?”

순간 셸링포드는 멍해졌다.

“대체 그게 무슨….”

“셸링포드! 명령이다! 당장 이 녀석을 죽여! 죽이라고! 씨발, 네 역할이 이럴 때 나를 지키는 거잖아!”

명령.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신체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시모프와 꽤나 각별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신의 주인조차 알아보지 못하나?”

“그게 무슨 말이지? 알아듣게 설명해라.”

“최근 아시모프에게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나?”

“녀석이 하는 건 모두 헛소리야! 듣지 마! 어서 공격하라고, 씨발! 버러지 같은 새끼!”

혼란은 가중되었다.

최근 아시모프에게 이상함을 느껴오던 것은 사실이었다.

전에 없던 자해 행위.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

수시로 변하는 요한에 대한 태도.

결정적으로 지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까지.

‘아시모프 님은 절대 욕설을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게 저런 모습을 보이실 분도….’

카인은 셸링포드의 목에 있는 교단의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그래, 악마에 씌었다는 말 정도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군.”

“악마…?”

“나를 지켜! 내 말 안 들려? 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날 지키라고!”

셸링포드 얼이 나간 얼굴을 했다.

백진우의 외침은 더 이상 그의 귀에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백진우. 안타깝지만 네 발악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 살려줘. 부탁이야.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게.”

카인의 손아귀에 하얀 냉기가 피어올랐다.

곧 날카롭고 긴 얼음송곳이 그의 손에 역수로 잡혔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묻지. 내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

“당연하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모두 잘못했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백진우를 보며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덕분에 너를 보내는데 미련이 없을 것 같군.”

송곳을 쥔 카인의 손이 번쩍 들렸다.

“더 고통을 주다 보내고 싶지만 신하였던 자 앞에서 그러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 아시모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라. 네가 아니었다면 언젠가 화려하게 피어났을 꽃이다.”

“잠깐, 제발, 다시, 다시 생각…!”

백진우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염동에 의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쐐액! 푹!

송곳은 정확히 백진우의 심장을 관통했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반대편으로 나온 송곳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

카인은 송곳에서 손을 놓고 한걸음 물러났다.

백진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조차 없었다.

툭.

힘을 잃은 육체는 더 이상 중력에 저항하지 못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송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투둑. 툭!

송곳이 부서지고.

육체가 천천히 앞으로 기울었다.

이윽고.

쿵!

백진우의 이마가 바닥을 찧었다.

카인 앞에 몸을 바짝 낮춰, 마치 사죄를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끝인가.”

카인은 백진우의 시체에서 한참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

“흐.”

[ 동기화율이 하락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9.0% ]

후련함과 후회.

“하.”

[ 동기화율이 하락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8.0% ]

충족감과 허탈함.

“후.”

[ 동기화율이 하락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7.0% ]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온갖 감정들.

그것들이 한데 모여 맹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렸다.

소용돌이는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다, 어느 순간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완전히 사라졌다.

카인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묵은 감정들이 모두 해소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드르륵─

염동을 이용해 방 양측에 있는 창을 열었다.

햇살이 비쳐들고, 방 안 가득 스민 시원한 바람에 혈향이 날아갔다.

복수를 위한 여정은 끝이 실질적으로 끝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바마의 목숨은 손아귀에 있으니, 언제든 과업을 달성해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아마 황제를 죽인 다음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라크센은 죽었다.

자신이 떠나면 황제를 막을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은 멸망하고, 주민 모두는 신세계를 위한 제물이자 양분이 될 것이다.

복수를 위한 여정 중 함께해온 수많은 인물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그들 모두가 죽는다고.’

안 될 일이었다.

카인은 책임을 느꼈다.

이 세계의 멸망은 자신의 손끝에서 비롯되었으니, 평화를 안착시키는 것도 자신의 몫이어야 했다.

다음 목표는 황제의 암살.

그리고 방주의 파괴와 새로운 황제의 옹립.

[ 현 동기화율 - 99.9% ]

카인은 동기화율을 확인했다.

원래 수치로 돌아와 그 이상은 상승하지 않고 있었다.

냉철함 특성 덕이리라.

자신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

‘쉴 틈은 없다. 신세계 프로젝트가 실행되기 전에 황제를 암살해야 한다.’

카인은 몸을 돌려 셸링포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을 열 힘도 없는 것 같군. 과하게 힘을 사용한 데에 사과하지.”

카인은 오른 손목에 찬 시계를 조작했다.

라티움에서 라이티노에게 받았던 것으로, 마나의 색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우웅.

카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무리가 셸링포드의 몸을 덮었다.

부서진 뼈가 달라붙고,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갔다.

“……!”

셸링포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고위력의 치유 마법.

교단의 표식을 3개 이상 부여받은 대주교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치유가 끝나고 빛이 멎어 들었다.

혼란스런 눈동자로 자신의 몸을 살피던 셸링포드가 카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경계의 의심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전보다 한층 정중해져 있음은 분명했다.

“내가 누구일 것 같나?”

“처음엔 다른 황자나 황녀가 보낸 첩자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셸링포드가 말끝을 흐렸다.

조금 전 요한이 보인 신의 권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단의 고위 인사가 분명했다.

아마 자신 같은 평신도는 직시하지도 못할 만큼 높은 지위에 있는.

‘하지만 내가 아는 얼굴과 이름 중 요한 키리프의 것은 없다. 교단 본청의 대주교님과 벽 안팍 각 교구의 주교님들. 설마….’

순간 머리에 번뜩인 생각.

“이단심문관님이십니까?”

“그래도 눈치가 있군. 신앙생활이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셸링포드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기사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지원했던 것이 이단심문관이었다.

비록 자질이 부족해 떨어지고 말았지만.

헌데 지금 눈앞에 선망해오던 집단의 권력자가 서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

셸링포드는 다시 혼란스러워했다.

“저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님은 아시모프 님을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말하지 않았나. 아시모프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악마… 말입니까?”

“나는 이단심문단 소속의 요한 키리프다. 본명과 정확한 직위를 말해줄 수는 없지만, 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잠입했다.”

셸링포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보인 신성 마법만으로 충분히 신분이 증명된 셈이었다.

‘아시모프 님에게 악마가 씌었었다고….’

악마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 존재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성경에 수시로 언급되며, 수백 년 전 성전 당시 벽이 세워지게 된 원인이니까.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

악마 자체는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군이 악마에 씌었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말도….”

고개를 푹 숙였다.

입가에선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카인은 셸링포드의 눈동자에 일고 있는 떨림과 동요를 주시했다.

‘다른 방법으로 설득할 필요는 없겠군.’

강한 신념을 가진 외골수.

그런 이일수록 오히려 내성이 없기에, 믿음이 흔들렸을 때 반향이 큰 법이었다.

머리는 부정할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 결국 상황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인간이란 어떻게든 세계를 자신의 상식선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동물이니까.

자신이 아시모프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쌓아온 세계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서.

“요한 님과 아시모프 님 사이에 나온 알 수 없는 단어도 모두 악마와 연관된 겁니까…?”

“대략 그러하다. 자세한 내막을 알려줄 순 없지만.”

셸링포드는 확실히 흔들리고 있었다.

카인은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한 차례 점검했다.

‘준비해둔 말을 꺼낸다면 셸링포드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지금보다 최적의 시기는 없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

예상치 못한 내용.

허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

“셸링포드. 미안하지만 실의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군. 어서 상황을 마무리하고 현장을 정리해야 하니.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말입니까?”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아시모프가 되어라. 그의 꿈을 이어 황제가 되고, 제국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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