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독대 (1)
“…….”
카인은 말없이 아시모프를 보았다.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눈빛이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요. 제가 죽으면 셸링포드를 거둬주세요.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이에요.”
“함께 지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간의 너비는 중요하지 않아요. 깊이가 중요하지.”
아시모프의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외롭고 고된 황궁 생활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던 상대가 셸링포드일 것이다.
카인 역시 그 말에 공감했다.
자신도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수많은 인물들과 강력한 유대를 쌓았으니까.
허나 공감과 아시모프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헌데 자신의 처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네가 내게 부탁을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저는―.”
아시모프의 입술이 움직이려던 때.
카인이 아시모프의 목을 놓았다.
풀썩.
아시모프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목을 매만지며 부족했던 숨을 급히 들이 삼켰다.
“흐윽.”
안정을 되찾았지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카인의 한층 강해진 살기가 온몸을 짓눌러오고 있었다.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두려움.
그건 생명체가 초월적인 존재를 목도 했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내가 소설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동기화의 오류로 흘러든 백진우의 기억은 실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처음엔 부정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은 끝내 현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감정은 분노와 두려움이었다.
분노는 자신의 몸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는 백진우에 대한 것이었으며, 두려움은 세계를 창조한 존재인 요한에 대한 것이었다.
요한의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알기에, 세계의 존속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임은 분명했다.
신, 혹은 악마.
그게 아시모프가 요한에게 느낀 솔직한 감상이었다.
‘두, 두렵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해. 이미 결심한 일이니까. 그래야 죽더라도 후회가 없을 거야.’
아시모프는 고개를 들어 카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네. 그럴만한 위치에 있죠.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난 백진우를 불러낼 생각이 없으니까요.”
카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방 안을 둘러보더니 곧 침대 머리맡 탁상을 보며 말했다.
“이제껏 왕진을 오며 침실에서 책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저 책이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크겠군.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아뇨. 책과는 관련 없어요.”
곧바로 이어진 아시모프의 부정.
하지만 눈동자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기에, 카인에겐 확답을 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짧은 분석을 마친 카인이 덧붙였다.
“책을 읽는 것으로 자아가 바뀌는 방식인가? 분명 백진우도 저것과 유사한 제목의 글을 썼었지.”
“……!”
“네 부탁을 들어주는 것보단 강제로 그 방법을 시험해보는 게 빠를 것 같지 않나?”
책을 집어 드는 카인의 모습에 아시모프가 절망스런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황궁 내의 암투 속에서 살아남았다고는 하나 아직 어린아이인가. 자신이 가진 패를 감추지 못하는군.’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시모프가 백진우임은 이미 확신하고 있던 상태.
하지만 오늘 이렇게 아시모프가 먼저 진실을 밝혀온 것은 돌발상황이었다.
동기화의 오류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로 인한 기억의 혼재는 예상 범위 밖이었다.
‘나쁘진 않은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백진우의 인격을 끌어낼 방법을 찾고 있었으니.’
눈앞의 소년을 죽이면 과업은 달성될 것이다.
다만 지금 ‘아시모프’를 죽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복수의 칼날은 온전히 ‘백진우’에게 향해야 했으니까.
‘위치를 추적하는 ‘태양의 표식’은 황녀들에게만 새겨져 있다. 본래는 아시모프를 황궁 밖으로 끌어내 실종으로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은 어그러졌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시모프의 말대로라면 인격이 바뀌었을 때 백진우는 이 모든 상황을 기억할 터.
아시모프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예상치 못한 자아 전환 ‘스위치’가 눌릴 위험이 존재했다.
대비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됐다.
녀석은 이쪽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니까.
만약 셸링포드를 이용한다면 이 자리에서 뒤탈 없이 아시모프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시모프의 머리 위로 카인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하지만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셸링포드는 꽤 쓸만한 인물로 보이니까.”
“저, 정말인가요?”
아시모프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단 셸링포드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조건으로. 모든 걸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네가 곧 죽을 것이며, 그 뒤 따라야 할 존재가 나라는 것 정도만 전달하면 된다.”
“그건 걱정 않아도 돼요. 어젯밤 언질을 주었어요. 딱 요한 님이 말씀하신 선까지의 이야기만. 잘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것 같았지만요.”
‘진실의 눈’ 특성이 아시모프의 말이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후의 일은 이쪽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지.”
합의점이 일치하는 지점이었다.
카인은 아시모프에게 책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폐하를 꼭 막아주세요.”
“노력해보지.”
아시모프는 결연한 얼굴로 책을 받아들었다.
사락. 사락.
농도 짙은 정적 속.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시모프에게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자, 잠시만요. 이럴 리가 없는데….”
“너는 지금 아시모프인가?”
곧바로 카인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아시모프는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허둥거렸다.
“다, 다시 읽어볼게요. 첫 페이지부터 다시.”
“질문에 대답해라. 네가 지금 아시모프인지 물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내 아시모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눈치 빠른 새끼.”
그 순간 카인의 전신에서 푸른 마나가 번뜩였다.
쾅!
광포한 바람이 아시모프의 몸을 휘감아 벽에 처박았다.
방음마법조차 소용없는 엄청난 굉음이 방 안을 울렸다.
─황자님?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문 쪽에서 셸링포드의 다급한 목소리가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하지만 문을 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오지마’라는 아시모프의 명령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커헉!”
외마디 신음과 함께 아시모프의 입가에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아시모프의 몸은 벽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몸에서 경련이 일었다.
아시모프는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
웬만한 수준의 마나유저도 견디기 힘든 충격을, 그가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타박. 타박.
백진우의 눈앞에 카인의 구두가 나타났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위에서 아래로 툭 떨어졌다.
“오랜만이다. 백진우.”
“아시모프, 이 병신 같은 새끼. 이렇게 어이없이 행동할 줄은….”
백진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곧바로 카인의 구둣발이 얼굴에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커흑!”
백진우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몇 개의 이가 피를 튀기며 허공을 날았다.
“오랜 친구의 인사인데 답을 해야 하지 않겠나?”
카인이 구둣발을 백진우의 머리 위에 올려 좌우로 방향을 틀며 짓눌렀다.
“끅, 끄윽―.”
바닥은 부드러운 재질의 카페트가 깔려있었다.
하지만 누르는 힘이 커, 볼에는 금세 마찰로 인한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그만! 그만해― 이 씨발, 크흑!”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미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져 실신에 가까운 상태였다.
[ 시스템 오류 발생. ]
[ 동기화율이 하락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3.0% ]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고통에 의식이 또렷해지고, 동기화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씨, 씨발. 동기화가 되어야 다시 아시모프로 돌아갈 수 있는데.’
카인의 시선이 백진우가 바라보고 있는 허공을 향했다.
“동기화율 메시지라도 보고 있나? 나의 경우는 신체에 통증을 줄 때 동기화율이 하락하더군. 다행히 네게도 같은 방식이 적용되는 것 같군.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쐐액!
카인의 구둣발이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펑!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백진우의 얼굴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펑!
다시 왼편으로.
펑!
다시 오른편으로.
카페트는 금세 피와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 위에 얼굴을 엎은 채.
백진우는 몸을 들썩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우웅―
환한 빛무리가 몸을 덮으며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고 있었다.
녀석이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쪽이 까딱 죽어버리거나 통증에 못 이겨 기절하는 일이 없도록.
‘미, 미친 새끼.’
이를 악물었다.
허나 지금 이 자리의 포식자와 피식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카인은 의자에 앉았다.
염동을 이용해 백진우의 몸을 일으켜 세워, 자신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
“고개를 들어라.”
백진우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다시 인사하지. 오랜만이다. 백진우.”
“…오, 오랜만이다.”
카인은 가만히 백진우를 응시했다.
백색 눈동자에 소년의 치기 어린 눈빛은 사라져 있었다.
궁지에 몰려 불안에 떠는 쥐새끼의 눈빛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머리 굴릴 생각하지 마라. 네가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없으니까.”
백진우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좌우로 갈 곳 없이 향하던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입술을 잘근거리다 카인을 보며 말했다.
“나를 죽일 생각이야? 정말로?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이─.”
카인이 단도를 꺼내 백진우의 허벅지를 내리찍었다.
“크아악─!”
외마디 비명이 침실을 메웠다.
카인은 굽혔던 허리를 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단도는 허벅지에 꽂힌 채 끝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흐으, 아, 알겠어. 알겠다고. 흐윽.”
“왜 내 글을 훔치려 했지?”
정적이 흘렀다.
한참 망설이던 백진우가 대답했다.
“분명 잘 쓴 글이야. 하지만 조금만 손 보면 더 완벽한 작품이 될거라 생각했어. 수정한 다음 돌려줄 생각이었─ 아아악!”
백진우의 반대쪽 허벅지에 꽂힌 단도가 시퍼렇게 날을 빛냈다.
“시간 낭비는 그만하지. 내가 ‘진실의 눈’ 특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측하고 있지 않나?”
카인이 단도 하나를 더 꺼내 들자 대답에 뜸을 들이던 백진우가 황급히 외쳤다.
“빼, 빼앗으려고 했어! 내 글은 반응이 없는데 네 글은 큰 관심을 얻어서! 질투가 나서 그랬다고! 씨발!”
카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백진우는 그 무표정에 도리어 불안감을 느꼈다.
“우린 오랜 친구였지. 중학교 때부터 함께 작가를 꿈꾸었고,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으니까.”
카인이 문득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성과 없는 일을 지속하기란 웬만한 의지론 힘든 일이다. 우리의 글쓰기가 그러했지.”
“…….”
“나는 우리가 힘든 무명 시절을 버틸 수 있던 이유가 서로의 덕이라 믿는다.”
동정을 살 수 있는 타이밍이라 생각한 백진우가 반색하며 끼어들었다.
“마, 맞아. 졸업하고 취업도 안 하고 같이 그, 글만 썼잖아.”
“그래.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거라 믿으면서 함께 반지하 방에서 버텼지.”
백진우가 한층 더 자신감을 가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기억나지. 따지고 보면 네가 결국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내 덕이 있는 거라고.”
“동의한다. 네 응원이 아니었다면 분명 꿈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았겠지.”
백진우는 희망을 보았다.
그간 자신들이 함께한 시간이 장장 몇 년이던가.
역시 녀석도 사람인 이상 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안해. 그날 일은 정말 나도 후회하고 있어.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네 노트북을 본 순간 정신 나갔어.”
“그런데 왜 그랬나?”
“응? 마, 말했잖아. 순간 질투에 눈이 멀어서 그랬다고. 너도 빙의한 인물에 맞는 과업을 가지고 있는 거지? 일단 협력해서 함께 현실로 돌아간 후에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쐐액!
세 번째 단도가 백진우의 허벅지에 박혔다.
비명이 울리고, 카인은 네 번째 단도를 꺼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겨우 질투 따위의 추잡한 감정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 리 없다. 왜 그랬나?”
“지, 진정해! 제발! 끄윽. 대, 대화를 하자고!”
푸욱!
“왜 그랬나?”
“크흑! 내, 내가 미안해! 부, 부러움을 못 이겨서 그, 그랬다고!”
푸욱!
“그럴 리 없다. 진짜 이유를 대라. 왜 그랬나?”
“미안해. 내가 미안….”
백진우의 항변에도 카인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푸욱!
“왜 그랬나?”
백진우의 말수는 점점 줄었다.
허벅지는 다트의 과녁판처럼 변해, 입에 거품을 물고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푸욱!
“대답해라.”
“…….”
푸욱!
“왜 그랬나.”
“…….”
“대체 왜 그랬냔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대체 왜!”
마지막 단도가 허벅지를 찌름과 동시.
카인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방 안을 울렸다.
하아― 하아―
카인이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이 세계에 진입한 후 처음으로 보이는 감정의 폭발이었다.
“내게 정말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
백진우는 모든 게 끝이 났음을 직감했다.
미안한 마음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 살아나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할 뿐.
‘처음부터 날 살려둘 생각 따위는 없었겠지.’
거짓말을 해봤자 간파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미안하다고.
정말로 미안하며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분명 자신이 벽에 부딪칠 때 셸링포드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방음 마법이 약하게 걸려있거나, 혹은 효력이 떨어졌다는 증거였다.
“미안하냐고. 내 대답은 이거야.”
백진우의 입술이 움직였다.
“셸링포드─!”
외침와 동시.
신형 하나가 문을 부수고 카인을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