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09화 (204/227)

#209. 계략과 술수 (3)

“아아악!”

비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시모프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화, 황자님! 기다리십시오!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셸링포드는 곧장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섣불리 황자를 건드렸다간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곧장 서재를 뛰쳐나갔다.

쾅!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 따윈 아시모프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백진우와 아시모프.

양측의 혼재된 기억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세상이 소설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내 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물이….’

침실에서 비도를 들고 자해하던 순간이 머릿속에 번쩍였다.

그 밖의 다량의 정보가 단번에 밀려들었고,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요한’의 정체.

황궁 지하의 ‘방주.’

대륙 전체를 제물로 삼은 ‘신세계 프로젝트.’

“우웨엑!”

몸을 부르르 떨던 아시모프가 바닥에 속을 게워냈다.

신물이 나올 때까지 토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숨을 헉헉대면서도 희열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역시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이렇게 빨리 기회가 돌아올 줄이야.’

백진우는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메시지를 확인했다.

[ 시스템 오류 발생. ]

[ 동기화율이 하락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5.0% ]

[ 시스템 오류를 교정합니다. ]

[ 동기화율이 상승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5.1% ]

다시 한 번 동기화가 해제되었다.

그것도 이번에 퍼센테이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로.

‘이유가 뭐지? 분명 아무 이유 없이 동기화가 해제되었을 리는 없다.’

백진우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서재에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있었다.’

아시모프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었는지는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타이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까지는 모르지만.

‘독서를 마치고 셸링포드와 함께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이동했고, 그다음은.’

고개가 홱 돌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책 한 권에 시선이 닿았다.

「검과 불꽃의 이야기.」

집어 들어 페이지를 넘겼다.

검과 마법, 그리고 괴물이 등장하는 소설책이었다.

동기화가 해제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써오던 소설과 상당한 유사점을 갖추고 있는 소설이었다.

‘녀석’의 소설처럼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현실세계의 기억과 연관된 물건. 그것이 동기화 해제의 촉매가 되었나.’

[ 시스템 오류를 교정합니다. ]

[ 동기화율이 상승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95.3% ]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동기화는 확실히 해제되었고, 오류 교정은 전보다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쨌든 기회는 찾아왔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이득을 보아야 했다.

‘어제 요한이 아시모프의 왕진을 왔다. 평소와 같았다. 별달리 수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지.’

이쪽의 동기화가 해제되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추리의 단서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니까.

‘그리고 셸링포드는 예상대로 잘 움직여주었다. 이대로 행동을 부추기면 알아서 요한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그때 셸링포드가 저택에 상주하는 의사와 함께 돌아왔다.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백진우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자님! 괘,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아. 잠깐 머리가 어지러웠을 뿐이야.”

“그래도 간단한 검진은 받으시는 것이….”

“정말 괜찮아.”

셸링포드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서재 청소를 마친 사용인들이 돌아가고, 자리에는 다시 백진우와 셸링포드만이 남았다.

“황자님. 제게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셸링포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황자의 이상 증세가 요한으로 인한 스트레스 내지는 영면증의 부작용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백진우는 짐짓 망설이는 척을 하다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항상 일을 도맡아 처리해주니까.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힘겹게 지어 올린 옅은 미소.

셸링포드는 다시 한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황자가 지금 자신에게 암시를 건네고 있음을.

***

요한의 왕진 날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 사이 아시모프의 동기화는 100퍼센트에 도달했다가 다시 해제되기를 몇 차례 더 반복했다.

‘쉽군.’

백진우는 손에 들린 ‘검과 불꽃의 이야기’를 내려다보았다.

영면증을 앓는 아시모프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썼다.

당일 있었던 일.

내일 해야 할 일.

둘을 명시하여 영면증으로 인한 일상의 분절성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했다.

독서. 검과 불꽃의 이야기.

매일 잠들기 전. 30분간.

항목 하나를 추가해, 아시모프의 행동을 유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매일 밤 ‘백진우’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매번 자아가 바뀔 때마다 동기화율은 더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로 시작했다.

오류 교정 속도도 점차 느려지고 있는 상태.

‘이대로라면 나중에 다시 아시모프의 몸을 완전히 차지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백진우는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점점 여유 시간이 많아져, 굳이 셸링포드를 움직이지 않고 직접 요한을 제거해도 될 것 같았다.

‘멍청한 놈. 아무리 나를 감시해봤자 소용없다. 결국 이기는 건 나다. 그렇게 어리숙하니 내게 작품을 빼앗겼지.’

마음대로 ‘아시모프’와 ‘백진우’를 오갈 수 있기에, 상황은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했다.

계획이 필요했다.

단순히 녀석의 숨통을 끊는 선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소문과 정보에 따르면 ‘요한’은 무수히 많은 부와 명예를 쌓아 올렸다.

철저한 계획을 통해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설계를 짜는데 시간이 필요한 걸 다행으로 여겨라. 덕분에 네 목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까.’

탁.

침실의 불이 꺼졌다.

내일 있을 왕진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몇 여분 지나.

의식이 현실에서 꿈으로 넘어가는 시점.

시스템 메시지가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 시스템 오류를 교정합니다. ]

[ 동기화율이 상승합니다. ]

[ 현 동기화율 - 100.0% ]

***

다음날 오전.

카인은 집사의 안내를 받아 아시모프의 침실로 향했다.

“황자님의 병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는지요.”

“최근 며칠 구토나 어지럼증이 잦아지셨습니다. 하지만 상주의의 말로는 몸에는 아주 이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걱정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복도를 지나던 중 청소도구를 든 사용인이 카인과 어깨를 부딪혔다.

“앗.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고개를 꾸벅여 사과를 한 사용인은 제 할 일을 위해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카인도 몸을 돌려 원래 방향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쪽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난 왕진으로부터 지금까지.

저택 내부 인원의 모든 일과를 작은 글씨로 기록한 쪽지였다.

집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 사이에 카인은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입력한 후 쪽지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황자의 일과는 변함이 없다. 다만 전과 달리 생각에 잠긴 시간이 많고 침실에 책을 두기 시작했다고.’

경우의 수를 추리는 사이 어느새 침실에 도착했다.

똑똑─

“요한 키리프 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도록 하세요.」

문이 열고 들어갔다.

아시모프는 침대에 반쯤 몸을 일으킨 자세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황자님. 그리고 셸링포드 님.”

카인의 시선이 벽에 등을 기대어 서 있는 셸링포드에게 향했다.

“오늘 진료에도 동석하실 생각인 것 같군요.”

“…….”

대답은 없었다.

단지 적의를 가득 품은 눈빛으로 카인을 노려볼 뿐.

“그럼 저는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집사가 밖에서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대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려왔다.

“셸링포드. 함께 나가 있도록 해.”

“예? 그게 무슨….”

“진료를 보는데 호위는 필요 없어.”

“제가 자리에 동석하는 것은 이미 끝난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말을 바꾸시면 곤란합니다.”

“셸링포드.”

아시모프가 셸링포드의 이름을 불렀다.

“나가 있으라고 했어. 명령이야.”

“…….”

전과 달리 강경한 태도였다.

우물쭈물하던 셸링포드는 결국 집사와 함께 침실 밖으로 나갔다.

카인에게 허튼수작 부리지 말란 눈빛을 남기고선.

카인은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변하셨군요. 마치.”

침대 앞 의자에 앉아 아시모프를 똑바로 응시했다.

“사람이 변한 것처럼.”

방 안을 울린 의미심장한 한 마디.

아시모프의 동기화가 해제되었을 가능성을 의식해, 상대를 떠보기 위한 말이었다.

허나 아시모프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빤한 눈빛으로 카인을 마주하며 입술을 떼었다.

“변할 수밖에 없죠. 알아선 안 될 것들을 과도하게 많이 알아버렸으니까요.”

“황자님이 무엇을 알게 되었을지 궁금하군요.”

“예를 들면 요한님의 진짜 신분 같은 것이요. 헥사메디컬의 제약사. 마탑의 교수. 대저택의 주인. 이런 건 모두 위장일 뿐이죠.”

방 안을 떠도는 먼지.

적막 속에 울리는 시계 초침.

포식자를 앞에 두고 떨려오는 소년의 목소리.

“그런 것보다는 작가, 이 세계의 주인─.”

쐐액!

다음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시모프는 카인의 손아귀에 목이 잡힌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커, 커흑!”

방 전체에 방음 마법이 걸려 있기에 소리가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일단 대기 명령이 내려진 이상, 셸링포드가 방에 난입할 일도 없을 것이다.

“큭, 컥, 컥! 나, 나는 백진우가 아니에요. 지, 지금은 아시모프―.”

카인의 어마어마한 살기가 방 안을 뒤덮고 있었다.

아시모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한 마디를 뱉어냈다.

나는 백진우가 아니다.

명제가 진실로 판명된 순간, 카인은 ‘백진우가 아시모프인 척 연기하고 있을’ 가능성을 소거했다.

“황궁 지하에는 무엇이 있지?”

“바, 방주가 있어요! 토, 토양의 정기를 빨아들여 하, 하늘을 날 방주가!”

손아귀의 힘은 풀지 않았다.

그 상태로 몇 가지 질문을 마쳤다.

아시모프는 이 세계가 ‘소설’이라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현실 세계의 지식까지 가지고 있었다.

‘시스템 오류인가. 동기화가 해제된 백진우와 필담 따위로 대화를 나눴을지도.’

어느 쪽이든 ‘진실의 눈’ 특성이 있기에 함정에 빠질 염려는 없었다.

카인은 손아귀의 힘을 조금 풀며 말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아시모프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풀었다.

이미 여러 번 머릿속으로 연습을 했었는지 정보 전달은 일목요연했다.

“아시모프와 백진우의 자아가 따로 존재한다는 얘기로군.”

“마, 맞아요.”

“백진우와 너는 서로의 행동을 기억하나?”

“전에는 일방적이었어요. 백진우만 제 행동을 기억했죠. 하지만 지금은 저도 백진우의 행동을 기억해요.”

백진우는 특정 방법을 찾아 동기화를 해제했다.

그리고 아시모프는 그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생각까진 공유하진 않을 테지. 네가 이렇게 내게 모든 사실을 일러바칠 수 있었던 걸 보면.”

“맞아요. 그리고 백진우는 제가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아시모프는 백진우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다.

평소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시모프로 남기 위해서.

“그래서 내게 모든 사실을 밝히는 이유가 뭐지? 내 예측이 맞다면 백진우는 내 존재를 인식하고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다. 가만히 편승하는 편이 목숨을 보존하는데 유리할 텐데.”

아시모프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신세계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서요. 전 황궁 지하에서 그런 음모가 벌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네가 황제가 된다면 프로젝트를 막을 수 있지 않나? 네가 얻게 된 백진우의 기억에는 작품의 설정도 포함되어 있지. 여러 지식을 이용한다면 황제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아시모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했듯이 백진우는 제 몸을 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언제 주인이 바뀔지 모르는 몸으론 무리에요. 아까 백진우가 자아를 바꾸기 위해 제게 유도한 특정 방법이 있다고 했죠. 그걸 피한다 해도 위험은 사라지지 않아요.”

자아 변환의 계기가 되는 ‘촉매’는 무수히 많을 수 있다.

또한 추가적인 ‘시스템 오류’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땅 깊은 곳에 묻힌 지뢰 같은 거죠. 터지지 않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평생 안심할 수는 없는 거죠.”

모두 예상했던 부분.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카인이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백진우의 존재는 지뢰와 같지. 내 입장에서는 안전을 위해 제거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나를 죽이겠다는 거겠죠. 원래부터 그럴 생각 아니었나요?”

아시모프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하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무엇이 말이지.”

“당신이라면 세계 멸망을 지켜만 보진 않을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당신은 이 세계를 구축한 창조주니까요. 그렇죠?”

“…….”

“복수를 위해 백진우와 만나기를 원하시죠? 그렇게 해드릴게요. 저는 그가 자아를 바꿀 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소년은 숨을 헐떡였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짜내듯이.

자신 삶의 마지막 대사를 뱉었다.

“대신 셸링포드를 부탁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