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208화 (203/227)

#208. 계략과 술수 (2)

“진료를 시작하겠습니다. 평소와 같이 맥박부터 재도록 하지요.”

카인은 진료를 시작했다.

머릿속 한편으론 상황에 대한 분석이 끊임없이 이뤄졌다.

피 냄새.

미세하게 위치가 변한 물건들.

바닥에 흩어진 작은 파편.

그리고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아시모프와 셸링포드.

‘방 안에서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아시모프가 피를 흘렸군. 그리고 사용된 무기는.’

카인이 벽을 곁눈질했다.

전에 있던 장식용 비도가 사라져 있었다.

앞선 의문은 해결되었다.

이제 새로운 질문 둘이 생겨난다.

누가 아시모프를 찔렀는가?

그리고 왜 아시모프를 찔렀는가?

‘소동이 벌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피 냄새의 휘발 정도를 보아 약 한 시간 전.’

도착했을 때 저택은 평소와 같이 조용했다.

외부의 침입 가능성은 낮으며, 사용인들은 침실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내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군. 아시모프의 침실에 출입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위 기사인 셸링포드.

방 청소를 담당하는 몇몇 사용인.

카인은 그들 모두의 성향과 신상명세를 파악해두고 있었다.

‘호위 기사와 사용인들이 아시모프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그 이유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셸링포드나 사용인들이 다른 황자 황녀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확률은 극히 낮다.

사용인 몇을 돈으로 매수해 저택에 거주하는 모든 인원의 동선과 일과를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황자나 황녀에게 아시모프를 견제할 동기도 적을뿐더러, 별다른 접선의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다.

또한 셸링포드가 아시모프에게 목숨을 다 바쳐 충성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절대 황자의 몸에 상해를 입힐 리가 없다.

“맥박은 정상입니다. 체온을 재겠습니다.”

카인의 시선이 이불에 덮인 아시모프의 하체로 향했다.

“그리고 혹 다른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영면증 외에도 여러 의학적 지식이 있는지라.”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셸링포드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역시 아시모프 님은 요한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다.’

아시모프가 어느 정도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건 사실이었다.

명목상 ‘왕진’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나, 상대는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다른 불편한 부분이라고. 그 상처가 네놈 때문에 생겨난 것도 모르고. 감히.’

셸링포드가 이를 가는 사이.

카인의 추리는 계속하여 신속하게 이어졌다.

아시모프와 셸링포드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다음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는 황자의 자해. 셸링포드가 황자의 자해 원인을 나로 여기고 있다면.’

그러면 셸링포드의 갑작스런 동석 요구와 현재 드러내고 있는 노골적인 적대감을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자해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영면증으로 정신이 쇠약해졌다곤 하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해를 저지를 인물은 아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자해를 저질렀다는 의미.

‘셸링포드가 내게 적의를 품게 만들기 위해?’

아시모프에겐 그럴 이유가 없다.

불공정 맹약을 맺었긴 하지만, 이쪽은 영면증을 치료해주고 황위에 오르는 걸 지원해줄 존재.

아시모프는 사사로운 복수심과 야망을 이룰 기회를 저울질 못 할 머저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자신의 허벅지에 비도로 상처를 입혔는가.

가능한 경우의 수가 단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인은 머리 뒤쪽이 빳빳하게 굳는 걸 느꼈다.

‘만약 녀석의 동기화가 일시적으로 해제되었고, 그 동기화를 막기 위해 자해를 저질렀다면.’

여러 상황을 마주하고, 나름의 실험을 거치며 동기화에 관해선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먼저 동기화는 항시 진행된다.

해당 인물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과거 사건을 반추하거나, 혹은 연관된 경험을 하게 될 때 큰 폭으로 상승한다.

‘카인의 기억이 밀려들며 정신이 잠식되는 느낌이었지.’

가령 118번 구역에서 전 부하인 막심이 죽었을 때와 같은 순간들.

몇 번인가 동기화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단검으로 팔을 찍어 정신을 차리려 시도했다.

효과는 있다 말할 수 있었다.

일시적이긴 하나 동기화율이 하락했으니까.

물론 ‘냉철함’ 특성 덕에 자아 유지에 지장이 없다는 걸 파악한 뒤론 그만둔 행동이기는 했다.

카인은 짙은 희열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네가 바로 거기 있었구나.

이제야 숨소리를 내는구나.

‘기다려라. 내가 너를 위해 최고의 고통을 준비해두었으니.’

동기화가 어떤 방식으로 해제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카인은 자신의 추리를 확신했다.

이미 여러 정황 증거를 모아 아시모프를 ‘백진우’로 확정시하고 있던 상태였다.

“황자님. 황궁 지하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고 하셨었습니까.”

카인은 진료와는 상관없는 질문을 불쑥 던졌다.

“아, 예? 예. 전에 그렇게 말했었죠. 내려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또 왜….”

동기화가 해제된 이후 가능성을 두 가지로 보고 있었다.

동기화율이 상승해 다시 완전한 ‘아시모프’가 되었을 경우.

어떤 방법을 찾아 ‘백진우’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

예상은 했지만 눈앞의 아시모프는 ‘아시모프’였다.

백진우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작품 설정을 기억하고 있을 테고, 방금 대답이 거짓으로 드러났어야 할 테니.

‘또한 자아가 돌아왔다면 분명 요한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을 터.’

카인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분명 ‘또 다른 빙의자’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거라고.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면, 서로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분명했다.

서로의 제거.

한쪽은 복수를 위해.

다른 한쪽은 입막음을 위해.

그리고 카인은 마지막 추리에 다다랐다.

‘자해의 목적은 셸링포드가 내게 적의를 품게 만들기 위함도 있겠지. 자아를 잃기 전 최후의 발악으로서. 맹약에 의해 직접 공격 지시를 내릴 순 없을 테니.’

세 남자 사이에 터질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적막 속에 시계 초침 소리만이 들렸고, 십여 분 뒤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오늘 진료에 큰 이상은 없습니다. 허나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다음 주 진료 때는 영면증 치료제의 샘플을 가져오겠습니다.”

아시모프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저, 정말인가요? 완성이 되었나요?”

“프로토타입으로 효과를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기본적인 안정성 검사는 모두 끝냈습니다.”

치료제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카인은 왕진 가방을 들고 침실을 나섰다.

“잠시.”

복도로 나와 문을 닫으려던 때.

셸링포드가 문틈을 비집고 따라 나왔다.

탁.

문을 닫은 후 조용히 카인을 쏘아보며 말했다.

“요한 님께서 황자님의 영면증 치료를 위해 매주 진료를 오시는 데엔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

“허나 그 과정에서 황자님께 불편함이나 정서적 불안을 유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카인이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마치 제가 황자님께 어떤 위해를 끼쳤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예. 오늘 보니 황자님이 평소보다 유난히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시더군요.”

카인은 말없이 유들유들한 미소만 짓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셸링포드 님께서는 굉장히 상상력이 뛰어나신 편이지요?”

질문의 의도는 명확했다.

주치의가 황자를 괴롭히고 있다는 망상을 품고 있지 않느냐는 것.

순간 셸링포드의 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직감에 자신이 있었다.

오늘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황자와 요한 사이에 무언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 자리에는 제가 동석할 겁니다.”

셸링포드는 그 말을 남기고 방 안으로 사라졌다.

카인은 닫힌 문을 보며 생각했다.

‘외골수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한 확신이 강하며, 쉽게 의견을 꺾지 않는 타입.

행동을 조종하기는 저런 유형이 오히려 다른 유형보다 용이한 편이었다.

카인은 아시모프에게 선사할 몇 가지 최후를 떠올렸다.

‘충성스런 신하가 주군을 찔러 죽인다. 이것도 나쁘지 않겠군.’

물론 당장 아시모프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황자’라는 특수한 지위.

‘황궁’이라는 특수한 공간.

다른 경우보다 제약이 강해 그에 맞는 적절한 설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복수는 ‘백진우’의 자아를 끌어낸 뒤에 이뤄져야 했다.

‘저택에 돌아가 준비할 것들이 많겠어. 일단 오늘은 동기화가 해제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 큰 수확이니.’

동기화에 관한 실험 외에도 몇 가지 가능성을 더 검토해야 했다.

‘백진우’라는 인물 자체는 두뇌 회전이 그리 빠르지 못했다.

하지만 ‘아시모프’는 ‘명민함’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방심할 수 없었다.

이쪽이 예상치 못한 함정을 깔아두었을 수 있기에, 확인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카인이 걸음을 돌려 사라지고, 복도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

4황자 별채 내에 위치한 서재.

셸링포드는 독서 중인 아시모프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볼일을 보고 있어도 좋아. 아까 식당에서 쓰러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여기서 또 잠들지는 않을 거야.”

“제게 아시모프 님 곁을 지키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은 없습니다.”

작게 한숨을 쉰 아시모프가 읽던 책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한밤의 달빛이 열린 창문을 통해 서재 안에 스몄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벽난로 불꽃 주위엔 여러 형태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

셸링포드는 아시모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는 그런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 마. 알겠어?」

요한이 떠나고 아시모프는 크게 화를 냈다.

이제껏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 없기에, 셸링포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요한 키리프와 함께 있을 때 불안한 모습을 보이셨던 것은 사실이다. 이불에 쓰여 있던 이름 역시….’

황자와 요한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황자의 반응으로 보아, 자신이 주제넘은 행동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타닥. 타닥.

불꽃에 먹힌 장작이 제 몸을 비트는 소리를 냈다.

아시모프의 책상 위에 쌓인 책은 모두 제왕학을 비롯해 기타 군사와 정치에 관련된 것이었다.

‘확실한 신호를 주시면 좋을 텐데.’

황제가 될 재목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신의 주군.

차라리 직접적인 언질을 주면 좋을 것이다.

자신은 언제든 저 장작처럼 몸을 불살라 주인을 위해 화려한 불꽃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부스럭.

그때 아시모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몸을 비틀거려 셸링포드가 달려갔지만, 그 전에 도움 없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괜찮아.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야.”

“…다행입니다.”

아시모프는 서가를 돌며 다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셸링포드가 옆에서 책을 돌려놓는 것을 도왔다.

새로이 읽을 책을 고르던 중.

아시모프의 걸음이 문득 ‘문학’ 섹션에서 멈췄다.

“…….”

“어릴 때는 문학을 많이 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커가면서 문학은 삶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실용서적만 읽긴 했지만.”

아시모프가 소설 한 권을 꺼내 들고 표지를 보며 추억에 잠긴 얼굴을 했다.

한 장씩 넘겨 내용을 훑으며 말했다.

“난 말이야. 내가 커서 대단한 존재가 될 줄 알았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멋진 황제나. 검을 들고 모험을 떠나는 용사나. 불꽃을 다루는 마법사나.”

“…황자님은 지금도 충분히 대단하신 존재입니다.”

“실제로도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영면증이 모든 걸 망쳐놨지.”

“저는 황자님이….”

“어설픈 위로는 그만둬. 지금 내 신세가 어떤지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아시모프의 서글픈 목소리에 셸링포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황자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때 아시모프가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렸다.

“아악!”

“화, 황자님?”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휘오오―

바람이 불며 벽난로의 불길이 크게 일렁였다.

그림자 역시 서재 곳곳에 몸을 드리우며 춤을 췄다.

아시모프가 입에서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설… 소설이라고? 백진우… 하지만 나는 아시모프… 카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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