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학술 발표회 (2)
“마법과 관련한 명성이 부족한 것이 이유라 하셨습니까.”
카인의 목소리가 다툼에 끼어들었다.
두 장로의 원소장이 일순 해제되었고, 교수들이 숨 풀리는 소리를 냈다.
“맞네. 다른 이도 아닌 황녀님의 교습인데,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춰야 하지 않겠나?”
“무슨─!”
카인이 손을 뻗어 발끈하는 라이티노를 제지했다.
“자격의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별것 없네. 연구 실적을 쌓아 학계에서 명성을 쌓는다든지. 마탑에 오랜 기간 재직해 공로장을 수여 받는다든지.”
아이타르가 짐짓 안타깝다는 투로 덧붙였다.
“자네의 실력은 인정하네. 하지만 활동 기간이 짧아 마법과 관련하여서는 별다른 명성을 쌓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
자리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는 점점 라이티노와 카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반면 맥케란 교수는 수년간 마탑과 학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빛냈네. 누가 교사 자리에 더 적합한지는 명확하지 않나?”
맥케란은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허나 속마음은 조마조마했다.
불안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방금 요한이 원소장 안에서 멀쩡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마법과 관련된 업적을 쌓으란 이야기군요.”
“그렇네. 단, 누구나 인정할만한 업적이어야 하겠지.”
카인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맥케란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만들겠습니다. 그 업적.”
“뭐?”
“곧 학기가 끝나고 세미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논문을 발표하겠습니다.”
아이타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머릿속에 빠른 계산이 오갔고, 과거 요한이 했던 말을 떠올려냈다.
「준비 중인 논문이 있습니다.」
「방금 제가 사용했던 이중 원소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첫 면담 당시.
이 젊은 천재는 라이티노와 자신 사이에 끼어 싸움을 멈췄다.
전(電)계 원소와 빙(氷)계 원소가 공존하는 이중 원소장을 사용하여.
‘논문 얘기가 진담이었구만. 허튼소리를 하는 친구가 아니니 그럴 줄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2개의 주원소를 다루는 것까진 납득할 수 있었다.
몹시 뛰어난 재능을 갖춰야 가능한 일이지만,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인 마탑에선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2개의 주원소 모두를 사용해 원소장을 전개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가설과 추측만으로 존재하는 영역이니.’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이중 원소장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한 것인지.
또한 절망했다.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원석이 왜 라이티노의 손에 들어간 것인지.
‘세미나까진 몇 주 남지 않았지. 논문을 이미 완성했거나, 그에 가깝다는 얘기겠지.’
이중 원소장을 학술적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건 혁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학계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논문을 발표하면 말씀하신 ‘학술적 명성’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수 하나가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었다.
“죄송하지만 요한 교수님은 명성이란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일단 명성이란 것이 논문 한 편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미 거의 모든 분야가 개척되어 웬만한 내용으로는 ….”
교수는 말을 하다 말고 숨을 들이 삼켰다.
상대가 일반적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인물임을 상기한 탓이었다.
‘요한 교수가 발표하는 논문이라면.’
침을 꿀꺽 삼켰다.
모르긴 몰라도 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침음하며 아무 말 없는 아이타르 장로의 모습이 추측에 확신을 더해줬다.
“들었나? 우리 요한 교수가 논문을 발표한다지 않나!”
“그래…. 그러면 조건이 충족될 수도 있겠지. 명성도 얻을 테고 말이지….”
아이타르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이중 원소장을 주제로 한 논문.
이견 없는 위대한 업적이 될 터였다.
논문의 질이 떨어질 확률도 존재하나, 요한 교수의 인물성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여러 이유를 갖다 붙이면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해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황궁에 파벌을 꽂아 넣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법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광경을 목도 하는 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럼 세미나까지는 후보 선정을 보류하기로 하지. 폐하께서 지정한 날짜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말이야.”
“좋아. 좋다고.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구만.”
자리의 모두는 직감할 수 있었다.
라이티노와 아이타르.
두 장로가 요한의 논문에 관해 뭔가를 알고 있으며, 세미나 때 거대한 한 방이 몰아칠 거란 사실을.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학기 종료가 가까워지는 시시각각 맥케란 교수의 심경은 복잡해져 갔다.
「이변이 없으면 요한 교수가 입궁하겠군요.」
「부임 첫 학기에 논문 발표라니. 전부터 써오던 거겠죠?」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요한 교수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두려운 것은 자신 역시 무의식중에 패배를 직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긴 하지만. 내가 요한 교수를 이길 수 있을까?’
관심이 요한 교수의 논문에 쏠려 자신의 것은 완전히 묻힐지도 몰랐다.
그럴 바엔 차라리 패배를 인정하고 논문 발표 시기를 미루는 게 낫지 않을까.
“…….”
스스로의 생각에 흠칫 놀랐다.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서다니, 자신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생각이지 않은가.
‘자신을 가지자. 내 논문 역시 임팩트는 충분하다.’
실용전투학과.
마탑은 연구만 하는 집단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직접 신설한 학과였다.
학과를 설립한 것은 불과 1년 전.
하지만 쉼 없이 달려 누구보다 많은 성과를 냈다.
실험성 짙은 과목을 다수 개설하고, 학생들로부터 높은 만족도를 끌어냈다.
「마법의 실전 사용을 위한 원소 운용의 변용.」
그 기간 체득한 모든 것이 농축된 논문이었다.
절대 주눅 들 필요가 없었다.
자신에겐 당당히 요한 교수에게 맞설 권리가 있었다.
맥케란 교수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강의를 위해 교보재를 챙겨 연구실을 나섰다.
끼익─
41층 복도가 넓게 펼쳐졌다.
교수로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층이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중.
맥케란 교수의 발걸음이 문득 멈춰 섰다.
“…….”
요한 교수의 연구실 앞이었다.
강의를 위해 내려갔는지 안쪽은 고요했다.
대신 편지함에는 온갖 군것질거리와 쪽지가 가득했다.
‘분명 오전에 출근할 때는 비어 있었는데.’
학생들의 선물이 그새 수북하게 채워져 있었다.
요한 교수에 대한 흠모는 남학생과 여학생을 가리지 않기로 유명했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 연구실 앞에 있는 텅 빈 편지함이 보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걸음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의가 있는 층으로 향했다.
“맥케란 교수님! 강의에 들어가시나 보군요.”
복도를 이동하던 중 교수 무리와 마주쳤다.
“예. 다들 바삐 어디들 가시는 길입니까?”
“요한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러 가고 있습니다.”
부끄런 기색도 없이 당당한 목소리였다.
교수 무리는 저들끼리 강의에 대한 분석을 나누다 맥케란에게 말했다.
“맥케란 교수님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청강해보시죠.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저는… 생각해보겠습니다.”
맥케란은 굳은 얼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교수 무리를 지나쳐 다시 복도를 걸었다.
─이거 진짜야?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지나가며 흘긋 보자, 조교 모집 공고가 걸려 있었다.
「조교 채용.」
「학년 무관.」
「성실하며 마법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
“지원해볼까. 요한 교수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 거잖아.”
“마법 실력이 있어야 한다잖아. 그 교수님 기준을 맞추려면 넌 어림도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무리 사이에 한 여학생이 입을 꾹 다물고 공고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 봐. 지원하려는 거겠지?”
“복수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요한 교수님이랑 앙숙이잖아.”
“앙숙은 무슨. 일방적으로 시비 걸다 매번 호되게 당하는 것뿐이지.”
엘 렉스터.
렉스터 가문의 말괄량이.
그리고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실력이 뛰어난 천재.
여러 교수의 ‘직계 제자’ 러브콜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했다.
‘내 제안도 거절했었지. 그런데 왜 저 공고 앞에….’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한 엘 렉스터가 요한 교수의 조교 자리에 지원할 리 없지 않은가.
빠르게 복도를 지났다.
뒤편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엘이 밤중에 교수님을 칼
로 찌르지 않을까?
─그 교수님은 칼로 찔러도 안 죽
을 걸.
강의실이 가까워져 왔다.
이번에는 라이티노 장로와 마주쳤다.
“급한 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걸음이 바쁘신 걸 보니.”
눈길도 안 주고 지나치던 라이티노가 맥케란 교수를 돌아보았다.
“아? 자네였나. 요한 교수의 강의가 곧 끝나서 대기하러 가는 길일세. 아이타르 그 삶은 감자가 채갈 수도 있어야 말이야. 어디 감히 우리 요한과 식사 자리를 잡으려고.”
라이티노는 한 차례 콧김을 내뿜고는 다시 고개를 홱 돌려 사라졌다.
복도를 지나 코너를 돈 맥케란은 자리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어디를 가든 요한 키리프.
쉼 없이 언급되는 그의 이름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맥케란은 스스로를 격려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흔들리면 안 된다.
나는 나이고.
요한은 요한일 뿐이니까.
맥케란은 강의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학생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맥케란 교수님. 다른 곳에선 절대 이런 강의 못 들을 거예요.”
학생 하나가 고개를 꾸벅이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끼익. 철컥.
닫힌 문을 바라보던 맥케란 교수는 강의실 내부로 시선을 옮겼다.
책상과 의자가 없는 널찍한 공간.
학생들의 대련을 위해 연무장 형식으로 꾸며진 강의실이었다.
‘방금 학생은 자세를 고치면 원소를 끌어 올리는 시간이 더 단축될 것 같은데. 다음 강의 때 교정해줘야겠어.’
맥케란은 강의실을 정리하며 학생들의 얼굴 하나하나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을 떠올렸다.
사실 강의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명성만을 쌓기에는 그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강의를 그만두지 않았다.
학생들과의 교감.
그에서 느끼는 보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었다.
정리를 마친 맥케란은 강의실을 나섰다.
연구실로 돌아오던 중 청소부와 마주쳤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벽 안쪽에서도 신분은 나뉘었다.
사용인들을 무의식중에 하대하는 교수나 학생들이 많았지만, 맥케란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사람은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한 존재였다.
“강의가 끝나셨나 보군요. 교수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평소 맥케란과 안면이 있던 청소부가 반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짧은 담소가 오가고 다시 걸음을 떼려던 때, 무언가가 맥케란의 눈에 띄었다.
“…잠시 봉투를 좀 봐도 될까요?”
“아? 예. 그러셔도 됩니다. 찾으시는 게 있으면 제가 꺼내드리겠습니다. 손이 더러워지실 테니까요.”
“아뇨.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멕케란은 봉투를 풀어 자신이 본 물건을 찾아 꺼냈다.
군것질거리가 든 상자.
그리고 편지였다.
“…….”
굳은 얼굴로 편지를 읽어 내렸다.
좋은 강의를 듣게 되어 행복하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
글씨에 정성과 애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 무슨 문제라도.”
“별것 아닙니다. 이 편지는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겠습니다.”
편지와 상자를 품에 챙긴 맥케란은 성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어떤 학생이 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신인은 이름이 직접 언급되어 있었다.
‘요한 키리프.’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감히 학생이 준 선물을 버리다니.
그런 정도의 인간이었단 말인가.
띵─
엘리베이터는 41층에서 멈췄다.
요한 교수의 연구실로 향하던 중 걸음을 멈춰 세웠다.
교수용 연무장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작은 유리창 너머 몸을 풀고 있는 요한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쾅!
맥케란은 연무장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리고 요한을 향해 말했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