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98화 (197/227)

#198. 학술 발표회 (1)

“마탑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꼭 받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카인은 라이티노가 무슨 이야기를 전달할지 알 것 같았다.

마탑 강의가 있는 내일 이야기해도 될 것을 꼭 오늘 전해야 한다면.

‘드디어 때가 되었군.’

카인은 작성하던 논문을 내려놓고 통신실로 향했다.

통신 장비 위엔 라이티노의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다.

─놀라지 말게! 방금 황궁에서 전령이 다녀갔네.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 아나?

“황궁이라. 2황녀님의 과외 교사를 뽑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군요.”

─어? 어? 어떻게 알았나?

“무도회에서 2황녀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마법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시더군요. 교사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그때 얼핏 들었습니다.”

─그렇구만.

라이티노는 머쓱한 얼굴로 헛기침을 삼켰다.

─어쨌든 이건 대단한 일일세. 황제 폐하께서 마탑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는 말이지.

일전에도 마탑에 구인 공고가 내려온 적이 있다는 것이 라이티노의 설명이었다.

─쟁쟁한 교수 여럿이 황궁에 입성했지. 하지만 2황녀님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네. 마나를 느끼기는 하는데 움직이지를 못한다고 하더군.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군요.”

─맞네. 솔직히 말해 그렇지. 어디 가서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라이티노가 다시 한번 헛기침을 삼켰다.

─어쨌든 결과가 중요한 법이네. 당시 마탑은 황녀님 교습에 실패했다는 불명예를 얻었지. 이번에 그 치욕을 씻을 기회가 왔다는 말일세.

“인원은 정해졌습니까?”

─아직 논의 중이네. 전번과 달리 이번에는 단 한 명만 황궁에 들이겠다고 하셨네.

“한 명 말입니까.”

─폐하께서 마탑에 가진 신뢰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나야 곧장 자네 생각이 났네만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좋네. 아무래도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은 일인지라….

라이티노가 말끝을 흐렸다.

말과 달리 눈빛에는 은근한 기대가 묻어 있었다.

얻을 것은 황실과의 연줄.

잃을 것은 교수로서의 명예 실추.

교습 성공과 실패에 따른 득실이 명확한 일이었다.

‘장로들은 어떻게든 자기 파벌의 인사를 황실에 밀어 넣으려 하겠지.’

젊은 교수들은 크게 도약할 기회를 움켜쥐려 할 것이다.

명예 실추와 마탑 내에서의 낙오라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교사 자리를 둔 치열한 경쟁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요즘 자네 강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네. 명강의로 소문이 났더군. 가르치는데 확실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라이티노가 덧붙였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카인의 강의에 대한 인기는 마탑 내에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녹음본이 고가에 거래되거나, 교습법을 배우기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청강을 오는 교수들도 부지기수였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황녀님의 이해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지난 공고 당시엔 아이타르 파벌의 교수들만 입궁했다.

이번에도 눈뜨고 교사 자리를 빼앗길 수는 없는 일.

카인이 반응이 없자 라이티노는 초조한 눈치였다.

“제가 수락 의사를 밝히면 곧바로 확정이 되는 겁니까?”

─내가 회의 때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네! 반대하는 놈이 있으면 전공서로 머리를 깨버리지!

“제 생각엔 아이타르 장로님의 반대가 거세지 않을까 싶군요.”

카인은 라이티노 앞에서 아이타르를 호칭할 때 ‘님’이란 글자를 은연중 힘주어 발음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매번.

공식 직위가 아이타르가 높다는 사실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자기 사람들을 보냈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는 인간이 무슨 염치로! 삶다 만 양배추같이 생긴 인간이!

열등감을 자극하여, ‘제자 후보’의 존재를 더욱 갈구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카인은 발작 스위치가 눌려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라이티노를 진정시켰다.

“저도 아이타르 장로님에겐 또다시 자기 인사를 내세울 명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일세!

“하지만 제가 겪어 본 아이타르 장로님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챙길 분입니다. 오랜 시간 뵌 것은 아니지만.”

마탑의 주인이 ‘권력’으로 찍어 누를 거란 얘기였다.

후보가 라이티노의 ‘제자 후보’라면 더더욱.

─…….

라이티노 역시 그 점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찌하면 좋겠나?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카인이 입을 열었다.

“회의 때 저를 동석시키시면 됩니다. 다른 장로들이 후보로 내세우는 인물도 모두 자리를 같이하면 좋을 것 같군요.”

***

탁― 탁―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 하나가 엘리베이터로 이어졌다.

탑승자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44층 버튼을 눌렀다.

위잉─

곧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상승을 시작했다.

남성은 실용전투학과의 맥케란 교수였다.

마탑 졸업 직후 교수로 임용되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황녀님의 개인 교사라.’

지난 공고 때는 스스로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해 아이타르 장로의 제안을 고사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달랐다.

수많은 강의를 소화하고 연구 실적을 쌓으며 ‘마법사’라 칭할만한 자격을 갖추었으니까.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명예욕은 다른 누구보다도 충만했다.

황제의 눈에 들어 황실 전속 마법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최종 목표였다.

위잉─

올라갈 것이다.

이 엘리베이터처럼 끝을 모르고 계속하여, 가장 높은 곳으로.

띵─

도착음이 울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던 맥케란 교수는 숫자가 41층인 것을 보고 멈칫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자는 요한 키리프였다.

“맥케란 교수님도 회의에 참석하시나 봅니다.”

“아, 예. 요한 교수님도 후보에 오르셨나 보군요.”

“부끄럽지만 추천에 올랐습니다.”

문이 닫히고 다시 상승이 시작되었다.

두 남자는 별다른 대화 없이 곧은 자세로 앞쪽을 보았다.

“…….”

맥케란 교수는 흘끔 곁눈질을 하여 상대를 보았다.

요한 키리프.

최근 수도에서 가장 뜨겁게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수려한 외모.

특유의 이지적인 분위기.

숨소리조차 흐트러짐 없는 정돈된 자세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감탄이 나오게 했다.

꾸욱―

주먹을 비롯하여 온몸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나와 같은 나이라고 했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출중한 외모에 뛰어난 강의력.

학생들에게 얻고 있는 인기.

교수들 사이에서의 높은 평가.

사실 현재 요한 교수가 얻고 있는 모든 관심은 자신이 누리던 것들이었다.

요한 교수의 등장 이후 모든 관심이 옮겨갔을 뿐이었다.

‘상관없어. 나는 나이고, 요한 교수는 요한 교수일 뿐이니까.’

마탑 내의 세대교체는 빠르고 잦게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자신이 급부상할 때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밀려난 교수들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단지 이번엔 그 차례가 자신이 되었을 뿐이었다.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요한 교수는 마탑 외에도 여러 활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석화증 치료제 개발.

마약 클럽 소탕.

경찰청에서의 폭탄 해체.

황궁 무도회에서의 독살범 색출.

그리고 최근 국경에서의 레지스탕스 소탕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게 한 사람이 써 내려갈 수 있는 행적인가 싶었다.

요한 교수가 마법을 쓰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 탓에 청강을 간 적도 없다.

하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마법에 관련하여서도, 자신이 요한 교수를 이길 수 있는 분야는 단 한 분야도 없으리란 사실을.

꾸욱―

꽉 쥔 주먹 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피가 배어 나왔다.

속으로 되뇌었다.

질투하지 말자고.

그런 추잡한 감정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저열한 이들이나 품는 것이라고.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아, 예.”

정신을 차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있었다.

요한을 따라 내려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오늘의 주인공들이 나타났구만.”

아이타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카인의 어깨를 두드리는 아이타르를 본 라이티노가 눈에 불을 켜고 일어났다.

“이 영감탱이가 누구 어깨에 손을 대?”

몸으로 아이타르의 손을 밀치며 으르렁댔다.

“벌써부터 신경전인가? 싸우자고? 응?”

“그쪽 후보나 잘 챙겨. 요한 교수를 네 파벌로 만들려고 틈만 나면 기회 엿보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라이티노의 시선을 받은 맥케란이 움찔했다.

아이타르는 카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황녀님 교습을 맥케란 교수가 맡는 건 확정에 가까운 일이지만.’

수도를 뜨겁게 만들고 있는 이 젊은 천재가 라이티노 파벌에 속해 있는 건 몹시 아쉬운 일이었다.

‘어디서 이런 보석을 찾아와서는.’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저 성질 더러운 늙은이의 마수에서 구출해내리라.

“어쨌든 모두 자리에 앉게. 회의를 시작하지. 오늘 안건은 2황녀님의 교습을 누가 맡을 것이냐일세.”

카인은 라이티노의 옆 빈자리에.

맥케란은 아이타르의 옆 빈자리에 앉았다.

다섯 장로와 그들이 추천한 교수 각 한 명씩.

총 10명의 인원이 회의실에 자리했다.

“우선 넬라 교수를 추천합니다.”

“저는 루트비히 교수를….”

회의가 시작되고 장로들이 의견을 내었다.

“아뇨. 그에 비하면 작년에 발표한 ‘원소의 구조역학’이 더 실적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재직 기간을 고려하면―.”

“아이타르 장로님. 실적과 재직 기간이 꼭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은 달라요.”

다른 장로들이 아이타르와 라이티노에게 서열이 밀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황실과의 연을 만들 수 있는 이때만큼은 목소리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던 교수들도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분위기는 과열되었다.

“엘렌 교수도 뭐라고 의견을 내봐요. 황실에 출입하는 건 마법사로서 둘도 없는 기회예요.”

로즈라 장로가 옆자리에 속삭였다.

“아, 아뇨. 그게 저는….”

엘렌은 며칠 전 로즈라 장로의 부탁을 떠올렸다.

「교습 교사 후보로 참석해 줄 수 있나요? 내가 아는 가장 적격은 엘렌 교수 같아서요.」

카인이 경쟁 상대라는 걸 알고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학부생 시절 지도 교수였던 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교사 자리에 욕심이 나기도 했다.

‘혹시하는 기대를 품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카인과 눈이 마주친 엘렌이 황급히 눈을 피했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저 인간 같지 않은 인간에겐 감히 대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조건을 하나씩 객관적으로 따져 봅시다.”

아이타르가 상황 정리를 시도했다.

마나를 뿜어 허공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1. 강의력」

「2. 명성」

「3. 연구 실적」

「4. 재직 기간」

그밖에도 몇 가지 조건이 우선순위대로 나열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의력이오. 이미 마법을 배우는 데 실패한 황녀님을 가르쳐야 하니까 말이지.”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2황녀님은 마나를 느끼는 것까진 가능하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얼마나 황녀님의 이해도에 잘 맞춘 교습을 제공할 수 있는가입니다.”

다른 조건에도 장로들은 동의했다.

황궁에 이름 없는 이를 출입시킬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의 명성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연구 실적과 재직 기간은 학계와 마탑에 대한 공헌도를 보기 위함이었다.

다시 한번 치열한 토론이 오갔고, 후보는 카인과 맥케란으로 좁혀졌다.

“맥케란 교수의 강의력은 인정하지. 이미 낙제생 여럿을 수석으로 졸업시킨 이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명성은 아무리 봐도 우리 요한 교수에 비할 바가 못 되지 않나?”

“나는 명성이 ‘마법’에 관련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마법을 가르치는 자격으로 입궁하는 것이니만큼. 폭탄을 해체하거나 범죄를 소탕하는 게 마법 교습과 무슨 관련이 있나?”

언성이 높아지며 두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뿜어낸 마나로 허공에는 스파크가 튀고 얼음 결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네.”

“저번에 벽 부순지 얼마나 됐다고. 정비공 좀 불러놔요.”

다른 장로들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대기 중 높아진 마나 농도를 견디지 못한 교수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게… 장로들의 원소장인가.’

맥케란 교수의 온몸에 식은땀이 죽죽 흘러내렸다.

누군가 목을 죄인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금 요한 교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등줄기에 한 줄기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요한 교수는 팔짱을 끼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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