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97화 (196/227)

#197. 국경 (5)

화르륵!

불덩이는 섬뜩한 기세로 타올랐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무사하리란 생각은 감히 들지 않았다.

마침내 불길이 사라졌을 때.

허공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섬뜩한 광경에 전장엔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주, 죽었나?

병사 하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도 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제국군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마법으로 전장에 포격을 가하던 적은 죽었다.

자신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의해서.

점멸을 사용해 몸을 피했던 카인이 지상에서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우와아아─!

전장에 환호성이 울렸다.

점점 커져 전장 전체를 뒤덮었다.

─요한! 요한!

─요한! 요한!

‘우습군.’

이 어설픈 연극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꼴이라니.

전장의 열기와 흥분이 이성을 마비시킨 탓이리라.

카인은 입가에서 비웃음을 지우고 평소와 같이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안도하긴 이릅니다.”

높이 들린 카인의 손가락은 레지스탕스가 빠져나간 협곡 통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

협곡의 입구.

장갑차와 소형 전차를 비롯한 수십 대의 전투 차량이 진을 갖추고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통신이 두절 되었습니다. 교전이 생각보다 치열한 것이 아닌지….”

“…….”

부하의 보고를 받은 아벨은 생각에 잠겼다.

‘역시 T의 존재가 변수인가.’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군 측에도 T 못지않은 마법사가 있으니까.

요한 키리프.

황제의 추천과 별개로 그에 대한 신뢰가 존재했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은 틀리지 않다.’

황궁에서의 암투.

외벽 수비 총사령관이 되기까지 벌여온 무수한 권력 다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온 안목이었다.

「작전에는 제가 직접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적진에 포로와 함께 들어가는 역할로.」

마주한 시간은 분명 짧았다.

하지만 이제껏 만난 어떤 인물보다 단단하고 빈틈없는 인상을 주었다.

‘다른 이를 미끼로 쓰자고 했다면 분명 제안을 거절했을 텐데.’

참모들이 이미 제안을 올린 적 있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다 판단해 기각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와 함께라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를 둘로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적은 분명 탈출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전면전은 승산이 없으니 분명 도주를 선택할 겁니다. 제가 협곡의 입구를 막겠습니다.」

후에 차분히 이어진 계획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했다.

지략가라는 단어가 실로 어울렸다.

거기에 신약의 개발자와 마탑의 교수라는 배경까지.

‘최근 수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끌고 있는 인물이라.’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라이벌 의식이었다.

자기 또래에선 더 이상 눈높이가 맞는 자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세상은 넓은 모양이었다.

황제가 요한을 자신에게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원 병력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선발대의 병력은 충분하다. 모두 자리를 지킨다.”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지평선 멀리 거대한 모래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병력을 분산 배치하거나 조금 물리시는 것이….”

“제레프.”

“예.”

“언제부터 내게 조언을 하게 되었나.”

“죄, 죄송합니다.”

아벨은 시선을 돌려 협곡 안쪽을 보았다.

‘전장에서 검에 직접 피를 묻히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몹시 아쉽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고, 자신은 파트너를 믿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사령관님. 전방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통신 차량 아래에서 부하가 외쳤다.

협곡 안쪽에서 뿌연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부아앙─!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량 수십 대.

레지스탕스 뒤로 제국군이 맹렬히 따라붙고 있었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지 먼지 사이로 간헐적인 불꽃이 튀었다.

아벨이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쥐새끼들이 이제야 구멍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군.”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포격을 개시하면 단번에 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군 역시 포격에 휩쓸릴 위험이 있었다.

“방벽을 갖춰라.”

아벨의 지시에 장갑차들이 협곡 입구를 막아 방벽을 형성했다.

이제 적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충돌해서 폭사하기 싫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벨의 예상을 깨고, 무리에서 레지스탕스 차량 한 대가 속력을 높여 앞으로 튀어나왔다.

“어? 어?”

“오히려 속도를 높인다고?”

통신 차량 아래.

당황한 지휘관들이 헛숨을 들이 삼켰다.

선팅이 짙게 되어 있어 차량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운전수는 다름 아닌 카인이었다.

카인은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방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레지스탕스 전 차량에 무전을 날렸다.

“그대로 돌파한다. 속도를 줄이지 말고 내 뒤로 따라붙어라.”

제국군은 협곡 안쪽에서 레지스탕스에 대한 추격을 개시했다.

「먼저 출발하십시오. 저는 현장을 정리한 후 뒤따라가겠습니다.」

카인은 한 박자 늦게 출발했다.

동승한 제국군 간부를 협곡 은밀한 곳에서 제거하고, 레지스탕스 차량으로 갈아타 추격전에 합류한 상태였다.

“자폭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벨의 입술이 비틀렸다.

방벽을 형성한 장갑차 위에 올라가, 검집에서 검을 꺼내 높이 들었다.

우웅─

검 주위에 마나가 휘몰아쳤다.

찰나의 순간 차량 내부의 카인과 눈이 마주쳤다.

물론 상대의 정체를 식별한 건 카인뿐이었다.

‘온다.’

카인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벨을 주시했다.

검이 휘둘러지고.

넓은 띠 형태의 검기가 날아오는 순간.

끼익!

카인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핸들은 우로 완전히 꺾었다.

끼기기긱─!

차량은 팽이처럼 한 바퀴를 돌아 앞으로 나아갔다.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간 검기가 뒤편에 따라오던 제국군 차량을 박살 냈다.

쾅!

카인은 회로의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려 온몸에 방호를 둘렀다.

그리고 액셀을 끝까지 밟아, 방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앞 유리 너머.

제국군 장갑차의 옆면이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아벨이 올라 서 있던 장갑차로,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콰광─!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차량이 밀리며 방벽 사이에 넓은 틈이 생겨났다.

그 사이로 뒤따른 레지스탕스 차량이 줄지어 빠져나갔다.

쾅! 쾅! 쾅!

통신을 미처 받지 못하거나, 흙먼지 탓에 전방을 확인치 못했던 제국군 차량이 잇따라 방벽에 충돌했다.

협곡 입구는 삽시간에 불길과 먼지에 휩싸였다.

쾅!

발차기와 함께 뒤집힌 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사이로 카인이 몸을 빼냈다.

“…….”

몸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이마엔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연출을 위해 일부러 방호의 출력을 약하게 조정한 탓이었다.

카인은 아공간에서 무전기를 꺼내 레지스탕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모래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돌파해라. 제국군은 더 이상 쫓지 못할 거다. 이미 피해가 막심하니.”

무전기를 집어넣었다.

옷을 툭툭 털어낸 뒤 주위를 돌아보았다.

뿌연 먼지와 연기 사이로 폭음과 신음이 쉼 없이 이어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제국군도 마찬가지.

이쪽이 어느 차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아벨. 이 정도로 죽진 않았을 것이다.’

카인은 차량 위에 있던 아벨이 나가떨어졌을 방향을 가늠했다.

손을 뻗어 해당 방향으로 바람을 쏘아냈다.

휘오오─!

먼지와 연기가 걷혔다.

풍경이 드러났다.

그 끝에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아벨의 모습이 보였다.

이쪽과 마찬가지로 멀쩡했다.

조금씩 그을린 제복 곳곳을 제외하면.

카인은 아벨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군요. 설마 자신을 희생해 활로를 뚫을 줄이야.”

아벨의 얼굴에 놀람이 일었다.

이내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차량에 탑승하고 계셨습니까. 크게 다치시진 않은 것 같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운전을 맡고 있던 장교까지 보호하진 못했습니다.”

카인이 불타고 있는 제국군 차량을 뒤돌아보며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전쟁에서 사람은 죽기 마련입니다.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요한님이 살아 계신 것이 중요하지요.”

카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망가진 방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교적 크기가 작은 레지스탕스 차량은 모두 안전하게 방벽을 돌파해 반대편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방벽 앞에는 오직 제국군 차량만이 뒤집혀 불타고 있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춰 있었다.

“결국 놓치고 말았군요.”

무미건조한 카인의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힐난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벨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요한은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황제가 파견한 인물에게 본의 아니게 실책을 보인 셈이었다.

“제가 조금 안일하게 생각한 점을 인정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는 적을 계속 추격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인이 모래 폭풍 쪽으로 멀어지고 있는 레지스탕스를 보며 말했다.

“모래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일단 무리한 추격보단 한 차례 정비를 거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

아벨은 생각에 잠겼다.

내부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이상, 모래 폭풍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차량 장갑의 두께.

운전수의 실력.

두 요소가 뒷받침된다면 무리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에서 레지스탕스와 교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으며, 이미 병력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벨은 여러 요인을 검토했다.

카인은 그런 아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떤 대답이 나오든 상관없다.’

추격을 중단한다면 레지스탕스를 무사히 빼돌릴 수 있다.

반대로 추격을 이어간다면, 시야가 제한된 폭풍 속에서 마법을 이용해 제국군에 다시 한번 타격을 줄 수 있다.

두 남자 사이에 모래바람이 불었다.

묘한 긴장감 속.

이윽고 아벨의 입이 열렸다.

“추격 중단! 모두 현장을 수습하고 다시 전열을 갖추는데 전력을 다한다!”

***

카인은 아벨과 함께 부대로 복귀했다.

“적의 본거지를 찾아 소탕한 것만으로 큰 수확입니다. 요한님 덕에 가능했던 작전이라 생각합니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병력의 정비가 끝나는 대로 잔당을 찾아 출정을 나설 생각입니다. 그때도 요한님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제 한 몸 헌신하겠습니다.”

논의를 끝낸 카인은 수도로 곧바로 복귀했다.

“요한 키리프다!”

“잡아! 입을 열어 무슨 얘기라도 뱉게 해!”

“국경지대에 지원을 나가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라도 한 마디 해주십쇼!”

저택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고 있던 기자들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다.

카인이 손을 뻗자 움찔 놀라며 그 앞에 멈춰 섰다.

“벽 근처에선 더 이상 레지스탕스를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카인은 짧은 문장을 던진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특종에 굶주린 기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알아서 내용을 채워줄 테니 말이다.

몇 시간 뒤.

예상대로 기사가 쏟아졌다.

이후 아벨의 공식 발표가 이어졌고, 기사는 더 큰 생명력을 얻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레지스탕스를 뿌리 뽑다. 외벽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오나.」

「작전 성공의 주역은 요한 키리프. 그의 신화는 어디까지인가.」

황제는 카인을 불러 직접 공을 치하했다.

“아벨을 만나 제국군을 경험하라는 의도에서 자네를 보냈었네만. 이건 확실히 기대 이상이군.”

황제의 치하 사실 역시 기사로 보도되었다.

몇 주가 지나도록 열기는 식지 않았고, 소문의 중심에는 늘 요한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겨울바람이 불었다.

눈이 내리며 풍경은 새하얗게 덮여갔다.

창가에 앉은 에스텔이 신문 기사의 제목을 읽었다.

“전장에서 연인을 잃은 요한 키리프.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떠나지 않아.”

에스텔은 사망 처리되어 있었다.

레지스탕스를 47번 구역의 황야로 인도한 뒤, 재차 얼굴을 바꿔 저택에 복귀한 상태였다.

“웃겨. 사람들은 내가 진짜 죽은 줄 알고 있네요. 나와 당신이 연인 사이였다는 소문도 재미있고요.”

에스텔은 은근한 기대가 어린 시선으로 카인을 바라보았다.

워커홀릭인 이 남자는 지금도 책상에 앉아 논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 소문이 돌았을 법하지. 몇몇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붙어 다녔으니.”

“비극이 효과적이긴 하죠. 아무래도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데는.”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카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에스텔은 고개를 돌려 기사를 마저 읽었다.

‘또한 뭇 여성들이 그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어해… 뭐야 이건?’

에스텔의 눈썹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어디서 감히 죽으려고.

내가 눈을 부릅뜨고 살아 있는데.

자비르 치안국장과의 염문설로 이미 심기가 불편하던 차였다.

그녀는 신문을 북북 찢어 벽난로에 던져버렸다.

똑똑.

그리고 그때 노크가 울렸다.

사용인이 들어와 통신이 들어왔음을 알렸다.

“라이티노 님의 통신입니다. 꼭 지금 받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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