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93화 (192/227)

#193. 국경 (1)

소년의 몸이 총을 향해 튀어나갔다.

피골이 앙상한 몸이라곤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찰나의 순간.

소년은 총을 잡아 구르는 동시에 창살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철컥.

꽤나 희귀한 총기였다.

일반 권총과 조작법이 조금 다름에도, 소년의 파지와 장전에는 거침이 없었다.

끼릭.

그 모습을 본 카인이 미소를 지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탕!

탄환은 정확히 창살 사이를 지났다.

카인의 얼굴 옆을 날아 뒤편에 있던 간수의 귀를 관통했다.

“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지하를 울렸다.

오른쪽 귀를 움켜쥔 간수의 양손 손가락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흐윽―! 흐윽―!”

간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쩔 줄 몰라 하다 힘겹게 내뱉었다.

“으, 응급 처치를 하, 하, 하고 오겠, 오겠습니다!”

간수가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카인의 시선이 다시 소년에게 향했다.

“제법이군.”

그 말은 진심이었다.

희귀한 총기를 다룰 줄 아는 것도.

빠른 상황 판단으로 뒤쪽의 간수를 쏜 것도.

총구를 곧장 다시 이쪽으로 겨누고 있는 것도.

“내가 어린애라서 못 쏠 거라 생각했나 보지?”

“어린애라.”

카인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지금 내 눈앞엔 어엿한 병사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데.”

도리어 움찔한 건 소년 쪽이었다.

“확실히 제국군은 레지스탕스를 얕보고 있는 것 같아. 이런 허술한 곳에 포로를 가둬두다니 말이야.”

카인이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CCTV가 존재하지도, 간수가 여럿이지도 않은 감옥이었다.

지상 역시 경계가 철저한 편은 아니었다.

세밀한 계획을 짠다면, 부대에 침입하거나, 반대로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카인은 그 이유가 부대가 ‘벽 안쪽’에 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레지스탕스가 벽을 넘어 안쪽까지 들어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제국군 입장에서 레지스탕스는 철저히 먹잇감에 불과할 테지.’

자신감이자 방심.

그리고 오만함이었다.

평생 벽 안쪽에만 거주해온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하지만 며칠 내로 그 오만함은 철저히 부서져 버릴 터였다.

“이런 창살도.”

카인이 창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년이 놀라 방아쇠를 당겼다.

끼릭. 탁.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탄환은 처음부터 한 발이었다.

카인의 손아귀가 구석 부분의 창살을 쥐었다.

“너무도 연약해 보이는군. 힘을 주면 그대로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카인이 손바닥으로 화(火)계 원소를 끓어올렸다.

고열이 가해지며 해당 줄의 창살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손을 떼자 창살은 천천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카인은 몇 줄의 창살에 같은 작업을 마쳤다.

“간수란 자도 허술하기 짝이 없지. 이렇게 아무 곳에나 열쇠를 흘리고 다니니.”

카인이 품에서 열쇠를 몇 개를 꺼내 창살 안에 툭 던졌다.

출처는 간수의 허리춤에 달려있던 열쇠 꾸러미였다.

그리고 카인의 염동에 의해 소년의 손에 있던 총이 카인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당신 지금 무슨….”

“기억력에 자신이 있나?”

“뭐?”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카인은 부대 전체의 지리와 초병들의 근무와 교대 시간을 빠르게 읊었다.

“북동쪽. 좌표 125. 21. 부근은 지형을 이용해 담을 넘을 수 있을 것 같더군.”

“당신 뭐야? 지금 뭐하자는 거야?”

소년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열쇠를 챙겨, 바닥 타일 아래의 빈 공간에 숨겼다.

“벽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해두지.”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곧 간수가 나타났다.

그의 귀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많이 다치시진 않은 모양이군요.”

“조, 조금 찌, 찢긴 정도입니다. 그, 그렇게 도, 돌발 행동을 하시면….”

간수는 화를 꾹 내리눌렀다.

카인이 부대에 초빙된 귀빈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카인의 손톱을 향해 있었다.

“죄송합니다. 순간 호기심을 참지 못했군요.”

카인은 총을 들어 보여 무기를 회수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작은 사파이어 하나를 꺼내 간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정도면 치료비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간수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부리나케 품에 챙겼다.

“아, 아이고. 추, 충분합니다! 저, 저 녀석은 제, 제가 반드시 주, 주의를 주겠습니다!”

간수가 소년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카인이 한 말을 듣고 몸을 움찔 떨었다.

“포로들은 당분간 가만히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아벨 님은 포로를 직접 처형하는 것을 선호하시니, 그 전에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그, 그 점을 깜빡했군요. 더, 더 건드리면 정말 주, 죽을지도….”

카인은 감옥에 대해 간수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마치 소년에게 들으라는 듯이.

“그, 그럼 보, 볼 일을 다 보셨으면….”

“예. 레지스탕스를 상대하기 전에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가시죠.”

간수가 앞장서서 왔던 길로 향했다.

카인은 간수를 뒤따르며 그의 허리춤을 보았다.

찰그락.

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열쇠 꾸러미.

열쇠 숫자가 워낙 많아 걸음마다 쇳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간수는 모를 터였다.

꾸러미에서 열쇠 몇 개가 사라졌다는 사실도.

사파이어가 자유와 평등을 함의해, 레지스탕스의 상징물로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도.

***

다음날 새벽.

이른 기상을 마친 간수는 일과대로 감옥 순찰을 돌았다.

“……!”

텅 비어 있는 모든 수감실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황급히 감옥 전체를 돌았지만, 소년병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다닥. 다닥.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이가 부딪쳤다.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사형감이라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대, 대체 언제 탈출한 거지?’

자신이 중간중간 잠에서 깨어 도는 순찰 간격을 고려하면, 최대 2시간 전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헌데 부대가 아직까지 조용하다면, 소년병들이 성공적으로 부대를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혹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숨어 있거나.

간수는 부디 후자의 가능성을 빌며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사안이 사안이었다.

보고는 지휘계통 몇 단계를 건너뛰어 순식간에 아벨에게 도착했다.

“탈옥이라고 했습니까?”

이미 일어나 업무를 보고 있던 아벨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펜이 단번에 부서졌다.

달리 분노한 게 아니었다.

숙성 중이던 ‘미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장병은 현 시간부로 부대 내를 수색해 탈옥한 포로 다섯을 포획한다.」

부대 전체에 비상이 울리고, 병사들이 짝을 지어 수색을 시작했다.

소식은 숙소에 있던 카인에게도 전해졌다.

‘예상보다 이른 타이밍이군.’

소년병 리더의 결단력이 기대 이상이었다는 얘기였다.

에스텔이 물었다.

“아이들이 탈출에 성공할까요?”

“높은 확률로. 하지만 실패해도 상관없다. 수많은 계획 중 하나이고,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움직이면 될 일이니까.”

소년병들을 추적해 레지스탕스 본거지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것.

그것이 카인의 계획이었다.

꽤 오랜 시간 수색이 진행되었지만, 소년병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북동쪽 담에 둘러진 철조망이 망가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여기 발자국이 있습니다. 모두 다섯 쌍입니다!”

그 아래 찍힌 작은 발자국들이 소년병들의 월담을 증명하고 있었다.

수색은 곧장 부대 밖으로 확대되었다.

“요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동쪽 담 앞.

아래에 찍힌 발자국들을 보며 아벨이 물었다.

“굉장히 영악한 놈들이군요. 이곳까지 도착하는 중에 한 번도 발각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래도 부대 밖으로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주위는 온통 황야라 인근 도시까지는 도보로 꽤 시간이 걸립니다. 병사들이 차량을 끌고 나갔으니 잡히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아벨이 슬쩍 카인을 보며 덧붙였다.

“그나저나 요한님이 감옥을 방문한 바로 다음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군요.”

요한이 이 소란에 관여했다는 추론이 말도 안 됨은 알고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닌 황제가 직접 추천한 인물이니까.

다만 반응을 떠보는 이유는, 여러 전장을 헤쳐온 지휘관으로서의 직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간수의 거동에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만.”

카인은 동요하지 않았다.

아벨이 이쪽을 의심하고 있음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러난 모든 정황이 한 가지 사실을 가리켜,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겨줄 터였다.

곧 병사 하나가 급히 뛰어와 경례를 올렸다.

“손을 내려도 좋네.”

“예. 지시하신 대로 간수의 사무실을 포함하여 감옥 전체의 수색을 마쳤습니다.”

병사가 파일을 건넸다.

감옥에서 발견한 물증이 빼곡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을려 부서진 창살.

장비실에서 발견된 고문용 화기.

사무실 천장에서 발견된 에메랄드.

그리고 손으로 직접 그린 부대의 조감도.

마지막의 것은 카인이 간수의 사무실에 몰래 숨겨둔 것이었다.

“…….”

아벨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서 완성될 추리를, 카인은 알고 있었다.

간수는 레지스탕스의 스파이.

부대 내의 시설 정보를 소년병들의 손에 쥐여 탈출시켰다.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하지만, 현 상황에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추리다.

이윽고 아벨의 입에서 은은한 분노 어린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천한 것이 감히.”

아벨은 병사에게 고문 기술자를 새로 수배할 것을 지시했다.

그 순간 간수의 미래는 확정되었다.

고문실에 들어가게 되리라.

다만 이번에는 역할이 바뀐 채로.

“그럼 저는 병사들과 함께 수색을 나가겠습니다. 요한님께서는 부대 내에서 대기하셔도 좋습니다.”

상대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놓지는 않은 눈초리였다.

카인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반겼다.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이를 상대할 때는 오히려 적절한 의심을 사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한 번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신뢰도를 크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 완전한 결백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저 역시 따로 수색을 나가겠습니다. 이런저런 현장경험이 있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아벨은 병사가 끌고 온 지휘관용 차량을 타고 사라졌다.

담 너머 펼쳐진 황야.

북동부 일대를 수색하리라.

하지만 그 모두 헛수고로 돌아갈 것이다.

‘아벨. 발자국이 인위적으로 찍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나 보군.’

카인의 시선이 돌아갔다.

또 다른 흔적이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맨발 자국이었다.

육안으로 식별 불가능한 정도의.

‘나이에 비해 머리를 굴리는 게 제법이야.’

리더 소년은 양동책을 썼다.

제국군의 시선을 북동부로 돌리고 다른 방향으로 탈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끼익.

차량 한 대가 카인 앞에 멈춰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에스텔의 얼굴이 나타났다.

“출발할 거죠?”

“바로 가지.”

차량은 부대를 벗어났다.

끝없는 황야가 펼쳐졌다.

차량은 소년병들이 움직이고 있을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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