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92화 (191/227)

#192. 레지스탕스 (3)

「당분간 손은 사용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무관이 아벨의 화상에 약을 바르며 한 말이었다.

자연스럽게 소년병들의 처형은 연기되었다.

「악인이 되는 것은 저로 충분합니다. 병사들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죠.」

아벨이 정말로 병사들의 정신 건강을 염려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의 살인욕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치료가 끝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군요. 일단 이 친구가 묵으실 곳을 안내해 드릴 겁니다.」

에스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아벨의 인물성은 이미 카인에게 전달받았다.

‘감히 어쭙잖은 위선으로 악을 자처해. 진짜 자기를 희생해서 악이 된 건 카인인데.’

언젠가 큰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생각하며, 그녀는 아벨에게 눈을 흘겼다.

두 사람은 부대 내에 있는 귀빈용 숙소로 안내되었다.

“어때요? 1황자가 예언자일 가능성은?”

카인이 방 안에 별다른 도청 장치가 없다는 신호를 내리자, 에스텔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1황자는 예언자가 아니다.”

사격장에서 몇 가지 검증 질문을 던졌지만, 별다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예언자는 4황자 아시모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4황자가 ‘동기화’에 의해 ‘예언자’로서의 기억을 잃었다는 가설.

예언자 후보가 하나하나 탈락할수록 그 가설은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4황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겠네요. 기억상실증일 수도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언젠가 다시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유리로 된 벽면으로 걸음을 옮겼고, 에스텔이 곁을 따랐다.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사격장 여럿이 눈에 띄었다.

연이은 총소리가 쉴 틈 없이 대기를 채웠다.

“저쪽은…전차네요.”

에스텔의 시선이 향한 곳엔 긴 포신이 달린 전차 여럿이 도열해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전차 바퀴 밑에 사람들이 깔려 죽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이 카인이 말했다.

“레지스탕스와의 전투에 전차가 동원될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래요…?”

“외벽 바깥, 30번대 구역의 황야는 다른 곳에 비해 암석 지대와 협곡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카인이 몸을 돌려 소파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아공간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논문을 작성하며 말했다.

“전차가 활동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지. 레지스탕스는 벽을 공격할 때가 아니면 본거지인 협곡 밖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고.”

“조금은 다행이네요.”

에스텔이 소파 뒤로 다가갔다.

카인의 노트는 초고속으로 내용이 채워져 가고 있었다.

“…….”

한 차례 동공 지진을 일으킨 에스텔이 애써 정신을 수습하고 물었다.

“레지스탕스를 과거에 지원한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접선한 다음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회유를 우선으로 한다.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할 수 있도록.”

카인의 마음은 황제를 저지하고 대륙의 멸망을 막는 것으로 굳어진 상태였다.

황제와 맞서 싸운다.

그것은 제국이 보유한 모든 무력 수단과 충돌해야 함을 의미했다.

‘슈프림 시큐리티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제국군의 숫자는 천 단위.

첨단 장비로 무장해 단순 인원 이상의 무력을 갖췄다.

그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세력을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숫자는 수백. 개개인의 무력 자체는 떨어지지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이들이다.’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그들이 제국군 못지않은 뛰어난 병사로 탈바꿈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만약 그들이 회유되지 않으면요?”

“그때는 과감히 버려야 하겠지. 길들여지지 않은 패를 쓸 수는 없으니.”

***

아벨의 집무실.

카인과 아벨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숙소는 불편한 곳이 없으십니까?”

“예. 수도의 호텔 못지않게 좋더군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카인의 시선이 붕대가 둘둘 감긴 아벨의 오른손에 닿았다.

“주로 사용하는 쪽의 손이신 것 같습니다.”

“검이나 총을 쓰는데 큰 문제는 안 됩니다. 통증이야 참으면 그만이니까요.”

아벨은 붕대가 감긴 손으로 총을 쥐고 창가 쪽으로 사격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총을 품에 집어넣고 말했다.

“다만 상처가 덧날까 그러지 못할 뿐이죠. 제 몸은 제국의 것이고, 신체 관리도 지휘관의 덕목 중 하나니까요.”

몇 가지 의례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그 뒤 대화 주제는 레지스탕스로 넘어갔다.

“외벽을 방어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적의 조잡한 무기로는 벽에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까요.”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반란 세력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벨은 정예 소대를 끌고 레지스탕스의 본거지를 찾기 위해 주기적으로 협곡을 수색했다.

“협곡에서 적은 게릴라를 벌입니다. 지형을 꿰고 있는 적이 훨씬 유리하죠. 상대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기본적인 전투력 자체가 이쪽이 훨씬 우세하니까요.”

아벨의 얼굴에 약간의 자부심이 깃들었다.

“어느 정도 피해를 주고받으며 탐색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략이나 수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잦아졌다고 들었습니다. 폐하의 말로는.”

아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유를 적측에 새로운 지휘관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휘관이라고요.”

“예. 병사들 사이에 목격담이 돌더군요. 철 투구를 쓴 사내가 협곡 위에서 레지스탕스에게 지휘를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고요. 저희는 그를 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앞면이 T자로 뚫린 낡은 철 투구.

때문에 T라고 임시 명칭을 붙였다는 것이 아벨의 설명이었다.

참모들이 작성한 T에 대한 분석 자료를 보며, 카인이 물었다.

“이밖에 파악된 정보는 없습니까?”

“하나 있긴 합니다만….”

아벨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T가 범죄조직 블루서펜트의 간부 카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벽 바깥에서 오래 활동하셨으니 이름을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카인은 조용히 아벨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엔 어떤 동요도 없었다.

‘내 정체를 알고 반응을 떠보려는 건 아닌 것 같군.’

카인은 판단을 마쳤다.

벽 안쪽에서 자신의 진짜 신분을 노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꼬리를 밟히지 않게 과거의 흔적 관리를 철저히 했기에, 신분 은폐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경계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들어봤습니다. 유명한 범죄조직이니까요. 최근 활동에 대한 소문이 끊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전문가들은 다른 조직과의 전쟁에 패해 세력이 완전히 쇠한 거라 추정 중이죠.”

“정보의 출처는 어떻게 됩니까?”

“T 본인의 입입니다. 포로 교환으로 돌아온 병사가 전언을 받아왔더군요.”

아벨이 숨을 고르고 T의 대사를 읊었다.

“내 이름은 카인 리베르. 너희 측 사령관에게 전해라. 벽은 무너지고 세계엔 평등이 찾아올 거라고.”

“재밌는 이야기군요. 범죄자인 것은 둘째치고 평등이라니.”

카인의 말에 아벨이 공감을 표했다.

“구색만 좋은 단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인간은 평등하지 않은 법입니다.”

다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카인과 에스텔은 다음 수색 때 동행하기로 했다.

“이틀 뒤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벨 님께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남자는 굳건한 악수를 나눴다.

집무실을 나가는 카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과연 자신을 사칭하는 이가 누굴 지에 관해서였다.

***

“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카인은 왜소한 체격의 간수를 따라 지하 복도를 지났다.

지상과 달리 감옥은 시설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수감실이 대부분 비어 있군요.”

“예. 아, 아벨 님께서는 버, 범죄자들에게 자, 자비가 없으십니다. 제, 제 취미를 오래 즈, 즐길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아, 아! 바, 방금 말은 아, 아닙니다!”

간수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기형적으로 비틀린 입술 탓이었다.

얼굴엔 흉터가 가득했으며, 벨트엔 고문 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 요한님도 소, 손톱이 예쁘시군요!”

간수는 안절부절못하며 카인의 손을 자꾸 바라보았다.

카인이 냉랭한 시선을 보내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벽 바깥에서 데려온 부랑배일 확률이 높겠군. 벽 안쪽 사람이기보다는.’

벽 안쪽에도 고문 기술자는 존재했다.

다만 일부러 벽 바깥 인물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아벨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벽 바깥 천한 것들의 관리는 똑같이 천한 것에게 맡긴다는 것이겠지. 굳이 벽 안쪽 사람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지상과 지하를 철저히 구분해 놓은 아벨의 태도가 퍽 우습게 느껴졌다.

저열한 살인욕을 가진 그가, 사실상 여느 뒷골목의 부랑자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카인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에게 출신 성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물 그 자체를 볼 뿐이었다.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냉정할 정도로 차갑게 선을 긋긴 하지만 말이다.

‘감옥을 관리하는 이는 이 자 혼자인가.’

포로가 몇 없기에 가능할 터였다.

대부분은 들어오자마자 아벨의 손에 죽어 나갈 테니.

카인은 감옥의 내부 구조를 머릿속에 입력하며 간수를 따라 계속 걸음을 옮겼다.

“여, 여깁니다.”

복도 양옆으로 5개의 수감실이 나타났다.

사격장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방마다 한 명씩 수감되어 있었다.

“히, 히익.”

“사, 살려주세요. 제, 제가 잘못했어요.”

아이들은 간수와 눈이 마주치자 신음을 흘리며 어떻게든 수감실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성한 손발톱이 없고 피부는 곳곳이 벗겨져 있었다.

“제, 제 작품입니다요!”

카인의 시선이 아이들의 상처에 닿자 간수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카인의 손을 흘끔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본거지가 어디인지 정보를 캐내지 못했다고 했습니까.”

“예! 워, 워낙 독한 놈들이라! 저, 저야 함께 시간을 더, 더 오래 보내 조, 좋았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만큼 독하지 못하다.

입을 열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로 모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

아벨도, 간수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다.

그렇다면 고문을 오래 지속치 않고, 단번에 숨을 끊어주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일 텐데.

수감실을 둘러보던 카인은 문득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창살 바로 앞에 꼿꼿이 선 소년 하나가 보였다.

마찬가지로 고문으로 몸이 성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듯 다리에 미세한 경련이 엿보였다.

‘눈빛이 살아있군. 이 녀석이 아이들 중에 대장인가.’

카인은 소년 앞에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췄다.

“이름이 뭐지.”

“퉤!”

곧바로 침이 돌아왔다.

카인의 이마를 타고 소년의 피가 섞인 침이 흘러내렸다.

“이, 이 녀석이! 제, 제가 당장 혼을―!”

“괜찮습니다.”

카인은 손을 뻗어 간수를 제지했다.

손수건을 꺼내 침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재밌군. 레지스탕스는 이런 식으로 서로 인사를 하나 보지?”

“꺼져. 찢어 죽일 벽 안쪽 새끼들. 네 새끼들이랑 할 말 없어.”

소년이 으르렁거렸다.

길들여지지 않은 작은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배짱이 제법이야. 자기 목숨줄을 쥔 사람들 앞에서 아직도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니.”

소년의 얼굴은 오랜 시간 자르지 못한 머리칼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머리칼을 치우기 위해 카인이 창살 안으로 손을 뻗었다.

쉬익-!

순간 무언가를 쥔 소년의 손이 카인의 손을 노리고 허공을 갈랐다.

탁!

카인의 손이 뱀처럼 움직여 소년의 손목을 낚아챘다.

소년의 손에는 날카롭게 갈아낸 돌조각이 돌려 있었다.

소년이 손을 빼내려 했지만, 카인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소년이 말했다.

“레지스탕스는 협박이나 위협 따위에 굴하지 않아. 끝까지 싸워. 내 손에 총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널 쏴버렸을 거야.”

놀라서 다가오려는 간수를, 카인은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제지했다.

그의 입꼬리는 흥미롭다는 듯이 올라가 있었다.

탁!

카인이 힘을 풀자 소년은 손아귀를 뿌리치고 창살과 거리를 벌렸다.

돌조각을 검처럼 쥐어 창살 쪽을 향한 채 고요한 시선으로 카인을 노려보았다.

“…….”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소년의 눈동자 안에서, 카인은 과거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며.

누군가를 죽이고.

혹은 죽을 위기에 처하며.

하루하루 불안정한 삶을 이어나가던 그때.

“총이 있었다면 쐈을 거라고. 총을 제대로 쏠 줄은 아나?”

“무시하지 마. 너 같이 벽 안쪽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새끼들보단 훨씬 잘 싸우니까.”

카인이 픽 웃었다.

‘그래도 그때의 나보다는 단어 선택이 고상한 편이군.’

그리고 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내 창살 너머로 던졌다.

“그럼 쏴 봐라. 실력을 조금 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