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레지스탕스 (2)
사격장이었다.
다만 멀지 않은 거리.
표적 자리의 나무 기둥에는 사람들이 묶여 있었다.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
어림잡아 10대 초반에서 중반.
흙먼지 가득한 전투복은 곳곳이 찢겨져 붉은 상처가 엿보였다.
개중 몇몇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슴에 난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에스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
카인은 말없이 표적을 응시했다.
레지스탕스의 상황이 크게 열세이긴 한 모양이었다.
이런 어린아이들까지 소년병으로 운용하는 것을 보면.
씁쓸함이 올라왔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반갑습니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한 남자가 있었다.
이쪽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일이 바빠 이곳에 바로 모신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벨 프나함입니다.”
“1황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한 키리프입니다.”
카인이 손을 꽉 맞잡았다.
시선을 내려, 아벨의 반대 손에 들린 물건들을 흘긋 보았다.
방음용 헤드셋과 권총.
“…….”
카인의 얼굴에 냉랭함이 스쳤다.
워낙 순간으로, 자리의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오랜 시간 카인을 보아온 에스텔을 제외하고는.
“그 유명한 요한 키리프 님이시군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국의 평화를 위한 일에 수고랄 것이 있겠습니까. 기쁜 마음으로 폐하의 명을 받아 왔을 뿐입니다.”
카인은 황제가 준 서신을 꺼내 아벨에게 건넸다.
아벨이 그것을 뜯어 읽는 동안, 찬찬히 그의 반응을 살폈다.
제국의 1황자. 아벨 프나함.
황실 기사단의 단장.
외벽 경비의 총책임자.
겉보기는 유한 인상이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1황자’라는 호칭은 그가 황실의 온갖 암투 속에 살아남았다는 증거였다.
‘또한 황제에게 인정을 받고, 신세계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인물이지.’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일종의 감독관이 될 터였다.
이쪽의 반응을 살피고, 신세계 프로젝트에 적합한 인재인지 판단을 내릴 감독관 말이다.
“…….”
아벨의 시선은 황제의 서신에 꽤 오래 머물렀다.
카인은 서신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아주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으니 절대 뜯어보면 안 되네.」
공을 들인다면, 내용을 본 뒤 서신을 티 나지 않게 재밀봉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황제였다.
위험 부담은 최소로 줄이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봐봤자 별다른 내용이 적혀 있지도 않겠지만.’
황제는 이미 통신을 통해 1황자에게 전후 상황을 전달했을 것이다.
서신은 그저 이쪽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일 뿐, 내용은 실속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껏해야 서신을 전달한 이의 가치관을 시험하고, 신세계 프로젝트에 대한 지속적인 암시를 띄우라는 내용 정도가 아닐까.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가차없이 죽이라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혹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군요.”
백지일 가능성도 있었다.
황제가 쉼 없이 던져대는 장난질을 생각하면.
“내용이 없다는 말입니까?”
“예. 보시죠.”
아벨이 서신을 뒤집었다.
아무 내용 없는 백지가 나타났다.
“폐하께서는 종종 이런 장난을 치시고는 합니다.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배려랄까요.”
아벨이 웃음을 터트렸다.
카인 역시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복도를 지날 때 총성이 들려와 잔뜩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덕분에 정말 긴장이 풀어진 것 같군요.”
카인이 표적 쪽을 보며,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저 녀석들 말입니까. 레지스탕스 포로입니다. 어찌나 독한지 며칠 밤낮을 고문해도 본거지를 불지 않더군요.”
아벨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미처 제지할 수도 없는 속도였다.
탕!
소년병 하나가 가슴에 피를 뿜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후 미동조차 없었다.
그 순간 아벨의 얼굴에 담긴 희열을, 카인은 놓치지 않았다.
“제국법에 따라 처형 중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시켜도 되는데, 직접 일을 처리하고 계시는군요.”
“일종의 작업입니다. 증오가 무뎌지지 않게 주기적으로 갈아주는 작업.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증오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냉혈한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맹목적 증오 없이 전쟁을 이어나가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단순한 살인광이 아닌 이상은 그러하겠지.’
“요한님은 레지스탕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벨이 불쑥 물었다.
빤한 눈빛으로 카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에 대한 내 생각이라.’
과거 자신은 레지스탕스를 숙원 달성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여겼다.
레지스탕스의 ‘부의 재분배.’
자신이 추구하는 ‘가난의 박멸.’
두 기치는 어느 정도 상통하는 면이 있었으니까.
카인이 군수물자나 금전 등으로 레지스탕스를 암암리에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교도소에 수감 되고 지원이 끊기며, 레지스탕스의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레지스탕스에 대한 카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사실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목표를 위해선 힘이 필요하고, 힘을 위해선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황실 첨탑에서의 식사 자리.
황제가 풍경 멀리 벽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 신세계 프로젝트는 대륙에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희생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박멸해야 마땅한 벌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벌레 말입니까?”
아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스스로의 노력으로 삶을 개척할 생각은 없고, 벽 안쪽을 약탈하려는 생각으로만 가득한 자들이니 벌레와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벽 바깥 주민들의 삶이 기구한 것은 그들의 노력 탓이 아니었다.
무엇을 심어도 작물이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 가난의 근원적인 이유였다.
“벌레라. 그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 같군요. 저들은 유충이라 부를 수 있을 테고요.”
아벨이 총을 돌려 손잡이를 카인에게 향했다.
“직접 쏴보시지 않겠습니까?”
“…….”
카인은 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딱히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총을 받아들고 탄창을 빼냈다.
총알의 발수를 세며 말했다.
“총알이 부족하군요. 남은 포로는 5명인데 총알은 3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탄창을 새로 주시겠습니까?”
남은 포로 모두를 쏘겠다는 의미였다.
카인이 기껏해야 한 명을 쏘고 총을 돌려줄 것이라 예상했기에, 아벨은 조금 놀랐다.
‘벽 바깥에서 활동하다 온 자라고 했었지. 하기야, 사람 몇 죽이는 것쯤이야.’
아벨이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탄창 말입니까.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벨이 부스 쪽에 보관한 탄약함으로 이동한 사이, 카인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쏠 거에요?”
옆에 다가온 에스텔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카인이 이제껏 한 번도 약자를 해한 적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상대가 어린아이라면.
“…….”
카인은 총구에 마법 하나를 은밀히 각인했다.
‘당장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소년병들이 결국 목숨을 건질 수 있는가였다.
자신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 자리를 떠난다 해도, 결국 처형은 집행이 되고 말 테니까.
카인이 사격장에 함께 들어온 안내인에게 운을 띄웠다.
“직접 형을 집행하시는 것을 보면 솔선수범하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아벨 황자님은.”
상관에 대한 칭찬에 안내인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예. 대부분의 형을 직접 집행하십니다. 특히 소년병들의 경우는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홀로 부담하고 계신 것이지요.”
죽고 죽이는 것이 전쟁.
하지만 전장이 아닌 곳에서 무방비 상태의 적을 죽이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처형을 도맡아, 병사들이 겪을 스트레스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안내인의 설명이었다.
카인은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저들 말고 또 다른 포로는 없습니까?”
“예. 현재 포로는 저게 전부입니다. 워낙 독한 놈들이라 잡히는 순간 자결을 하고 마니까요. 저 녀석들은 나이가 어려 그나마 생포가 가능했죠.”
어른들만큼 독하지 못해 죽음 앞에 망설였다는 의미이리라.
‘포로는 이들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벨은 꼭 자신의 손으로 처형을 집행한다.’
그리고 자신은 레지스탕스의 수뇌부와 접선할 생각이며, 그를 위한 정보가 필요했다.
카인은 판단을 마쳤다.
필요한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진 상태였다.
자리에 돌아온 아벨이 카인에게 새 탄창을 건넸다.
철컥.
카인은 탄창을 갈아 끼웠다.
팔을 쭉 뻗어 표적을 겨눴다.
카인이 조금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아벨이 반응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처음 다뤄보는 종류의 총기라, 파지법이 익숙하지 않군요.”
사실 아벨은 총을 넘긴 것을 조금 후회하고 있던 상태였다.
요한의 가치관을 시험하기 위한 황제의 지시라곤 하지만, 원래 포로를 쏘아 죽이는 건 자신의 차지였다.
살인에 대한 집착.
1황자가 지닌 유일한 정신적 약점이었다.
아벨은 기다렸다는 듯이 카인에게서 총을 건네받았다.
“그럼 제가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팔을 뻗어 표적을 겨눴다.
4명을 연달아 쏠 생각이었다.
「요한이 어린아이를 쏠 수 있는가.」
단순히 가치관을 시험하는 용도로는 남은 1명으로 족할 터였다.
“이렇게 쏘시면 됩니다.”
아벨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입가엔 짙은 희열이 번져갔다.
그 순간 카인은 강한 불쾌감과 역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랜 망설임을 끝내고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역시, 황제는 죽어야 했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대륙의 모든 이를 위해서.
펑!
총구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아벨이 인상을 찡그리며 총을 떨어트렸다.
화들짝 놀란 안내인이 소리쳤다.
“아벨 님! 괜찮으십니까?”
“의무병을 불러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응급조치를 하고 있겠습니다.”
카인의 지시를 받은 안내인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아벨 님. 제가 상태를 봐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이 정도쯤은. 아무래도 총기 관리자를 문책해야 할 것 같군요.”
아벨은 붉게 그을려 화상을 입은 자신의 손등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카인은 말없이 얼음결정 여럿을 생성해 아벨의 손 주위를 감쌌다.
“마법이군요. 볼 때마다 느끼지만 신기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인은 아벨의 화상을 살피며 아쉬움을 느꼈다.
‘보기보다 멀쩡하군. 아예 손 하나를 날릴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화상 정도에 그친 걸 보면,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손을 보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계획에 큰 지장은 없었다.
이 정도 부상으로도 한동안 검이나 총은 쥐지 못할 것이었다.
카인은 계속 마나를 방출해 얼음 결정을 유지했다.
그런 카인의 모습을 보며 아벨이 나직이 말했다.
“폐하께서 요한님을 제게 보낸 이유라 생각합니다. 마법은 제가 가지지 못한 힘이니까요.”
카인은 고개를 들어 아벨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예. 제가 아벨 님께 필히 도움이 되겠습니다.”
깊은 심연 속에 자리한 이 황실의 괴물들을 어떻게 끌어내 죽일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