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운명의 소용돌이 (4)
세상에 거대한 번개가 내리친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굉음이 황야를 가득 메웠다.
전장에 있던 모두가 반사적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어,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무언가 궤를 벗어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쿠구구구─
굉음은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고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르비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풍경을 순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레드스컬의 간부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카인만이 남아있었다.
평소와 같이 무감한 표정.
허나 몸 주위에 넘실거리는 푸른 마나가 무언가 상황이 크게 급변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카인…?”
카인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제르비아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틀림없는 카인이었다.
맹약에 의해 서로 위해를 가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머릿속에 끊임없이 적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위험하다.
이건 몹시 위험하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 탄생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그때 카인이 시선을 돌렸다.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
여러 인원이 뒤섞인 전장이었다.
전투는 다시 시작된 상태였다.
중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일단 눈앞에 적이 존재하므로.
카인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을 앞쪽으로 향했다.
그때 레드스컬 하나가 카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전투를 멈추고 줄곧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이로, 옷에 간부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우웅─
카인의 손바닥에 마나가 모여들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레드스컬 간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먼 거리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다.
모두 도망─
파직.
공포에 질린 목소리보다, 카인의 마법이 더 빨랐다.
카인의 손바닥에서 격발된 푸른 전류는 황야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전장에 닿았다.
파지직.
전류는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수많은 인원 중 오직 레드스컬만을 덮쳐 새카만 재로 만들었다.
전장의 모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마법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폭력에 가까웠다.
카인은 뻗은 손을 유지한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남아있던 전류는 카인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전장을 다시 한번 가로질렀다.
파직.
이번 목표는 특무대와 구역 경찰이었다.
전류는 그들 주위 허공을 감싸,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감옥을 만들었다.
제르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카인, 대체 무슨…! 아군을 왜…!”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호흡을 고르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 회로 레벨 : 4 ]
[ 마나 12628 / 15162 ]
이전 마나회로의 총량은 7천 대.
두 보스의 마나를 흡수해 단번에 2배가 넘는 수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 상승 폭에서, 두 보스의 마나회로 총량과 그에 따른 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상대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있을 이는 없겠군. 황제나 불멸자 정도를 제외하면.’
단순히 마나의 총량만 따지면 라이티노나 아이타르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은 통상보다 높은 단계의 마나 정제를 거칠 수 있기에, 전투 중 여러 변수를 창출해낼 수 있었다.
두 장로와 맞닥치게 되었을 때.
적어도 쉽게 밀리지는 않으리라.
“카인! 대답해라! 이 상황에 대해 어서 설명해라!”
카인은 제르비아를 보았다.
그녀에게는 고마워해야 할 터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쉽게 두 보스의 마나를 흡수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카인은 공중에서 제르비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블루서펜트과 레드스컬. 두 조직이 맞붙었고, 네가 두 보스의 숨을 끊었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한가?”
“왜 특무대를 구속하느냐는 말이다! 제압해야 할 것은 경찰이 아니라 저 늑대 수인들이다! 그것 말고도 설명해야 할 것이─.”
“반대다.”
카인이 제르비아의 말을 잘랐다.
“아군은 늑대 수인들 쪽이다. 내 부하들이지. 특무대와 구역 경찰은 내가 부르지 않은 불청객이다.”
“뭐…?”
제르비아는 말문이 막혔다.
당황한 그녀가 말을 흘렸다.
“그렇다면 누가….”
“레드스컬의 보스는 병력을 이끌고 왔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블루서펜트의 보스 역시 병력을 끌고 왔다고 보아야겠지.”
범죄조직의 보스가 접선 장소에 경찰을 대동했다니.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일순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불안의 농도는 한층 더 짙어졌다.
「요청하신 혈액 검사 결과입니다.」
수도를 떠나기 전.
레이나의 혈액 검사표를 받았다.
그것을 곧장 31번 구역 파일의 혈액 검사표와 대조했다.
카인이 현장에 떨어트린 검.
거기에 묻어 있던 혈흔.
바로 그에 대한 검사표 말이다.
그리고 제르비아는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유전적 근연도가 100퍼센트 일치했다.
본인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카인이 현장에서 레이나를 찔렀다고…?」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또한 몇 가지 고려할 점이 있었다.
현장에는 빙결 마법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당시 카인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또한 탐지기를 몰래 사용해본 결과, 레이나는 회로가 없는 일반인이었다.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였다.
레이나의 일란성 쌍둥이가 존재한다는 것.
「레이나에게 쌍둥이인 A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면.」
드러난 증거를 통해 정밀하게 추리를 완성해나갔다.
A는 블루서펜트 소속으로, 레드스컬의 현금 수송 차량을 탈취하기 위해 교각 하부에 폭탄을 설치했다.
「그렇다면 오빠는 A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빠의 사망 원인은 깊은 자상에 의한 과다 출혈이었다.
하지만 카인이 떨어트린 검 외에, 현장에 별다른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특이할 점이라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오빠 주위에 남아있던 물기 정도였다.
「빙결 마법을 다루는 A가 얼음송곳 따위로 오빠를 찌른 거라면.」
그러면 바닥에 있던 물기를 설명할 수 있었다.
추리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A는 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교각 하부 계단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당시 신입이던 오빠와 마주쳐, 그를 얼음송곳으로 살해했다.
그리고 계단 최상부로 올라가 폭탄을 설치했고, 뒤이어 올라온 카인과 마주쳤다.
전투가 벌어졌고, 카인이 승리했다.
폭탄은 그의 손에 의해 해체되었다.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긴 하지만.」
당시 마나유저가 아니었던 카인이 어떻게 마법사를 상대로 승리했는가.
어쩌면 A와 카인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도 몰랐다.
같은 블루서펜트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면, 후에 조직에서 어떤 식으로라도 처분을 받았을 테니까.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테러 직후에도 카인은 곳곳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레이나와 쌍둥이 A.」
레이나는 경찰에 속해있고,
A는 범죄 조직에 속해있다.
자연스럽게 레이나와 A가 내통하고 있다는 결론에 닿았다.
레이나가 빼돌린 내부 정보를 A에게 전달해왔다면, 그동안 블루서펜트가 경찰을 피해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더 스쳤다.
「설마….」
청장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
자신의 비서가 정보를 빼돌리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것도 그녀와 함께 일한 십 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이나.
「차라리 청장님이 직접 정보를 빼돌리라 지시했다면 모를까….」
우스갯소리로 뱉은 혼잣말이었지만, 제르비아는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설명하면 이제껏 블루서펜트를 조사하며 느꼈던 몇몇 의문들이 손쉽게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기에, 그녀는 일단 추론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카인의 지시에 따라 114번 구역으로 출발했다.
헌데 그때의 섬뜩함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두 조직의 접선을 알아낸 경찰이 현장을 급습했다는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거기에 특무대가 섞여 있는 것은 이상하군.”
카인의 목소리가 제르비아의 귓가를 울렸다.
“특무대는 치안국장, 혹은 그 이상 직위를 가진 자의 지시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 정황과 과거의 의혹들이 모여 점점 거대한 사실 하나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네 지시가 아니었다면 누가 특무대를 움직인 거지?”
“그만─!”
제르비아의 외침이 황야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블루서펜트 보스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
나뒹구는 레이피어가 눈에 띄었다.
낯설지 않던 침음성이 떠올랐다.
챙―
제르비아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한쪽 무릎이 굽혀졌다.
떨리는 손이,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향했다.
얼굴 주름이 어색함을 이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몹시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얼굴 가죽을 잡아당기자 가려져 있던 진짜 얼굴이 나타났다.
“…….”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그 순간 가슴에 응축되어 있던 모든 감정이 폭발했다.
세상 전체가 자신에게 질 나쁜 거짓말을 건네고 있는 기분.
“카이이이이인─!!!!”
검을 쥐어 들고 카인을 향해 뛰었다.
「당신이라면 손에 화상을 입는 일 없이 불씨를 꺼트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에스텔 사제가 했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몰라요. 그냥 상황이 끝나면 저절로 알게 될 거라고 했어요.」
“죽여버리겠어─!!!”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아버지는 최악의 범죄자였다.
그리고 조금 전 딸의 손에 죽었다.
거대한 충격에 메슥거림이 올라와,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그래도 딸에게 무감했던 아버지가 최후의 순간에는 손속에 망설임을 두었다.
그렇다면 거기서 일말의 위안을 얻어야 할까.
탓!
제르비아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시야 아래에 들어온 카인을 향해 검을 내리칠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검에 묻은 피가 태양 아래 붉게 빛났다.
제르비아는 카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아무 마법을 사용할 기미도 없이, 그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분명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코 몰랐을 리가 없다.
비정상적으로 두뇌가 뛰어난 녀석이니까.
‘그리고 모든 상황을 꾸몄을 것이다.’
청장이 딸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도록.
모두가 녀석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셈이었다.
‘하지만 대체 왜.’
의문이었다.
녀석이라면 분명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블루서펜트 보스가 청장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 점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든 다른 결말을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딸이 아버지를 찔러 죽이는 그림을 유도하지 않고도 말이다.
‘카인, 너는 대체 왜.’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더라도, 녀석과의 협력 관계는 꽤나 유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악에 대한 증오.
범죄 박멸.
목표가 일치하는 바가 있었으니까.
점차 신뢰가 쌓이고, 녀석을 동료로서 존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동료의 감정 따위는 상관없는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더 손쉽고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기만 하다면.
「녀석은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다.」
아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녀석도 결국 해치워야 할 악인 중 하나일 뿐이다.
카인이 시야에 점점 가까워져 왔다.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제르비아는 가슴에 심한 격통을 느끼고 그대로 땅에 추락했다.
“크윽.”
심장을 쥐어짜는 기분이었다.
가슴에 새겨진 맹약의 징표가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맹약을 맺을 당시 카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맹약의 완료는 블루서펜트가 완전히 괴멸되는 시점. 그때까지는 서로 간에 어떤 물리적 위해도 끼칠 수 없다. 이에 동의하는가?」
맹약은 완료되지 않았다.
간부 중 하나인 바마가 남아있었고, 제르비아는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맹약의 조건에 의해 행동에 제약이 가해진 것이었다.
탁.
카인의 발이 지상에 닿았다.
“…….”
카인은 땅에 쓰러진 제르비아를 내려다보았다.
증오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맹약에 의한 심장 격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면서.
‘다행이군.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온 것 같아서.’
계획된 상황이었다.
자신은 제르비아에게 철저한 악인으로 남아야 했으니까.
“나를 죽이겠다고.”
카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