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86화 (186/227)

#186. 운명의 소용돌이 (2)

레드스컬 조직원들은 차량 창밖으로 몸을 내민 채 환호를 내질렀다.

“전쟁이다! 전쟁!”

반대편에 적군 차량의 모습이 보여오고 있었다.

이쪽 인원은 약 100여 명.

적 인원도 차량 숫자로 보아 그 정도 되어 보였다.

“어디 세력이야? 보스가 일단 모이라고 해서 왔는데.”

“알게 뭐야! 한바탕 놀 수 있으면 그만이지!”

적 세력이 어딘지는 몰랐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쪽은 레드스컬의 최정예.

자신들이 지나간 자리엔 상대가 누구든 처참한 학살의 현장만 남게 될 뿐이었다.

또한 모두 체내에 각성제를 주입했기에,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의 감정은 일체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달려─! 달…!”

선두에서 달려나가던 차량의 운전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직경 수 미터는 될 법한 불덩이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며 앞유리 풍경 전체를 가득 메워오고 있었다.

콰광─!!!

불덩이와 충돌한 차량은 그대로 폭발했다.

어마어마한 연기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렸다.

“……!”

“뭐, 뭐야? 방금?”

뒤따르던 이들은 폭발 현장 옆을 지나며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연기 사이로는 바닥에 묻은 액체 자국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화염의 열기에 차량 전체가 액체로 녹아내리고, 그마저도 모두 증발한 것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마, 마법 같은데.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났어.”

물론 마법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법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벗어난 위력의 마법은, 그들로 하여금 순간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씨발! 앞에 봐! 앞!”

백미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운전수가 누군가의 외침에 앞을 보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대형 차량들이 일렬로 늘어서 바리케이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뭐야. 이건 또 어느 틈에….’

수트와 총으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인원들이 차에서 내려 충돌 범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게 운전수가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었다.

쾅─!!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한 앞쪽 차량들이 줄줄이 바리케이드에 충돌해 폭발을 일으켰다.

나머지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가까스로 충돌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발포 개시!

앞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대형을 갖춘 무장 세력이 발포를 개시했다.

투두두두두─!

레드스컬의 차량 위로 총알이 빗발쳤다.

방탄유리에 금이 가고 차체가 움푹움푹 패이기 시작했다.

“뭐야? 겨, 경찰? 협곡에 숨어 있다 나타난 건가?”

“씨발. 대체 어떤 새끼들이―!”

경찰은 아니었다.

무장 세력의 수트 위에는 ‘슈프림 시큐리티’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레드스컬 조직원들이 몸에 방어막을 두른 뒤 차에서 내렸다.

검이나 철퇴 따위의 무기를 뽑아 들고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계속되는 사격 탓에 쉽지 않았다.

방어막을 유지한 채 조금씩 걸음을 떼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레드스컬 사이에서 누군가 대지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염병할 새끼들! 내가 진형을 뚫는다!”

무리 내에서 ‘빠른 발 볼트렉’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총탄을 피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나갔다.

“믿고 있었다고!”

“조져버려!”

탓!

볼트렉이 수 미터 높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검을 머리 뒤로 넘겨 크게 내리칠 자세를 취했다.

무장 세력의 헬멧 안.

당황한 얼굴들이 보인다.

총구가 일제히 이쪽을 향한다.

투두두두두─!

집중포화의 대상이 되고, 방어막은 순식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검을 내리치기까지 잠시 버티기만 하면 된다.

적의 진영을 무너트리면 그 이후는 동료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화륵.

그때 볼트렉의 바로 아래 대지에서 불씨가 일었다.

‘어?’

볼트렉이 그것을 인지한 순간.

불씨는 불기둥으로 화했다.

콰과과과─!

불기둥은 수십 미터 위 상공까지 치솟았으며, 순간 시야가 붉게 변한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먹잇감을 집어삼킨 뒤.

불기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닥에 남은 거대한 그을린 자국만이 방금 벌어졌던 일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뭐….”

놀라서 동작을 멈춘 것은 레드스컬과 슈프림 시큐리티 양측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한 인물에게 향해있었다.

볼트렉의 것으로 보이는 허공에 흩뿌려진 마나가, 그의 손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나쁘지 않군.

분명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와 동시.

남자의 등 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덩이가 여럿 생성되기 시작했다.

레드스컬 정예들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약물을 복용해 두려움 따윈 없어야 할진대,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완성된 불덩이들이 쏘아짐과 함께, 그들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

“이, 이 수인들은 뭐야!”

“당황하지 말고 전열을 갖춰라!”

청장을 지원하기 위해 질주해오던 구역 경찰과 특무대 쪽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버팽이 이끄는 잿빛늑대 무리가 멈춰 선 경찰차 사이를 이리저리 날뛰었다.

그들을 향해 총이 쏘아지고 검이 휘둘러졌으나, 수인의 신체 능력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선두 인원은 모두 후방으로 이동하십시오!”

거기에 밀시안이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잿빛늑대에게 지휘를 내리고 있었다.

경찰은 청장을 지원하기는커녕, 그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몬드! 어딜 보고 있나!”

레이몬드와 알파치노는 생사를 건 결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콰득!

너클이 단검을 부수고 그대로 레이몬드의 머리로 향했다.

‘못 본 사이에 수준이 꽤 높아졌군.’

너클에 휘감긴 흉흉한 기세의 붉은 마나를 보며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어설프게 방어막으로 막았다간, 그대로 격파당한 뒤 머리가 박살 나버릴 터.

단순 파괴력만 보자면 절대 자신의 아래라고 평가할 수 없었다.

빠른 판단을 마친 레이몬드는 몸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너클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 품에서 새로운 단검을 꺼내 알파치노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었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알파치노의 반응속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흡!”

알파치노는 내질렀던 팔을 회수하며, 팔꿈치로 단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득!

단검이 부서지고, 레이몬드는 다시 새로운 단검을 꺼냈다.

“언제까지 장난질을 칠 생각이지! 전력을 다하지 않고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이걸로 4개째의 단검.

레이몬드는 대답 없이 재차 공격을 가했다.

쇠붙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대지 위를 쉴새 없이 울렸다.

쉬익─!

몸을 돌려 너클을 피한 순간 멀리서 외침이 들려왔다.

─수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잡으려 하지 마라! 경로를 예측해서 쏴!

레이몬드의 입가가 씰룩였다.

‘카인. 역시 네 짓인가.’

알고도 속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상황 전체를 돌아보고 모든 가능성을 체크하며 오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으니.

특무대와 구역 경찰은 카인 몰래 은밀히 준비한 병력이었다.

하지만 저기 일단의 무리에 가로막혀 있는 걸 보면, 그마저 수가 읽힌 모양이었다.

─슈프림 시큐리티? 마나도 쓰지 못하는 같잖은 경비 새끼들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카인이 레드스컬과 경찰 양측 모두를 막아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녀석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금전적 이득을 위해?

혹은 목숨을 취하기 위해?

그렇다면 제르비아의 신변 확보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런 의문 따위는 지금 하등 쓸모가 없었다.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알파치노와의 전투를 끝내고, 상황을 종결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콰득!

5번째 단검이 부서짐과 동시에 레이몬드는 자신의 진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레이피어였다.

“미안하지만 자존심을 챙길 여유가 없을 것 같군. 슬슬 끝내지.”

그 순간 레이몬드, 아니 청장의 기세가 달라졌다.

***

제르비아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이 쓰레기 같은 범죄자들…?”

외침은 끝에 가서는 의문형으로 변했다.

허름한 쇠창살.

서늘한 돌바닥.

그 위에 깔린 지푸라기.

어딘가의 감옥으로 보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두통이 밀려와 이마를 찡그렸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카인의 지시에 따라 114번 구역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곳에서 사냥개 무리를 만났고.’

당연히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당연하지 않게도 단번에 제압당했다.

“…….”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냥개 무리 따위가 그토록 강한 무력을 갖추고 있을 수 있는지.

사냥개 뒤에 있던 남자가 강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급의 마법사로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강제로 약물을 먹고, 의식을 잃었으며, 깨어나니 이곳인 상태였다.

‘날짜! 오늘 날짜는?’

뒤이어 떠오른 생각은 카인의 지시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드스컬과 블루서펜트 보스의 접선 현장을 카인과 함께 급습하기로 되어 있었다.

츠릉.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손에 무언가 걸렸다.

자신의 검이었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적은 알 수 없지만, 포로로 붙잡았다면 무기를 압수한 뒤 감금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마나를 불어넣은 검으로 창살을 베었다.

서걱.

“뭐지.”

녹슨 창살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잘려나갔다.

사냥개들의 무력을 생각하면 방비가 말도 안 되게 허술했다.

타닷.

감옥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오르자 슬럼가의 거리가 나타났다.

해가 떠 있는 위치로 보아 이른 오후로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날짜.

제르비아는 골목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나요?”

“12월 20일이지. 정신을 어디 놓고 다니나 보오?”

“감사합니다.”

제르비아는 빠른 동작으로 자신의 몸을 뒤졌다.

지갑은 그대로 있었다.

동전 몇 닢을 꺼내 걸인 앞에 있는 깡통에 넣었다.

“……?”

그러다 문득 자신의 목이 허함을 깨달았다.

목을 더듬었지만, 늘 하고 다니던 펜던트가 만져지지 않았다.

‘사냥개 놈들이 가져간 건가?’

정신이 아찔했지만 지금 그것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카인의 지시를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야. 녀석을 실망 시킬 수는….’

그녀가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걸인의 목소리가 발을 멈춰 세웠다.

“잠깐. 누가 이걸 전해주라고 하더라고.”

그가 건넨 것은 위치 추적기였다.

작은 화면에 목표물의 위치가 점 형태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걸 누가…?”

“몰라. 나는 그냥 전해주는 것뿐이야. 나중에 잘 전달했는지 확인을 하고 돈을 준다고 해서.”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목표물의 위치는 거리로 보아 구역 외곽 너머로 추정되었다.

“…….”

카인이 일러준 두 보스의 접선 장소도 외곽 너머의 황야였다.

순간 느껴지는 강한 위화감.

다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가야 할 장소가 정해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녀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걸인이 물건 하나를 더 건넸다.

“열쇠…?”

바이크 열쇠였다.

골목 한구석에 바이크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것도 전해주라고 했거든. 나는 분명 내 역할 다 했다고?”

“……”

역시 이상했다.

누군가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추적기에 표시된 위치에 가면 지금 느끼고 있는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으리라.

드드드드─

제르비아는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거치대에 위치 추적기를 고정시키고, 외곽을 향해 달려나갔다.

골목을 지나 거리가 나타나고.

거리를 지나 대로가 나타나고.

대로를 지나 외곽이 나타났다.

이제 눈앞에 황야가 보였다.

마침내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구릉 아래 펼쳐진 광경을 보고 피가 얼어붙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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