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알파치노 (2)
파직!
탄환은 카인의 방호에 가로막혀 약간의 흠집을 내는 데 그쳤다.
알파치노는 아랑곳 않고 사격을 이어갔다.
탕─! 탕─! 탕─!
탄환은 첫 번째 탄착점과 같은 곳에 연이어 명중했다.
방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덜걱. 덜걱.
하지만 리볼버의 마지막 탄환이 떨어지고, 거기서 끝이었다.
알파치노는 리볼버에 탄환을 재장전하며 경비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마법이라. 뭣들하고 있나. 응?”
알파치노의 불호령에 경비들이 정신을 차리고 카인을 향해 쇄도했다.
들고 있던 진압봉의 덮개가 벗겨지자 날카로운 칼날이 나타났다.
허공으로 도약한 경비들이 방호를 향해 일제히 칼날을 내리찍으려는 순간.
파지지직!
카인의 몸을 중심으로 하여 전(電)계 원소가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섬뜩한 전류가 실내에 폭죽처럼 터져나갔고, 범위에 들어온 모두가 감전되어 바닥에 추락했다.
경비들은 쉼 없이 경련할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염병. 이래서 마법사란 것들은.”
알파치노는 라이터를 켜 담배의 불을 붙였다.
다른 한 손에 들린 리볼버는 어느새 다시 카인을 향해 있었다.
탕─! 탕─!
탄착점은 처음과 같았다.
탄환은 집요하게 한 곳만을 노렸다.
파직!
방호엔 점점 더 많은 금이 생겨났다.
그리고 방호가 깨지려는 순간, 카인은 방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말끔하게 원복 된 방호를 보며 알파치노가 혀를 찼다.
그리고는 탄환이 소진된 리볼버를 집어 던지고 카인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거리를 좁히며 너클을 꺼내 손에 장착했다.
파지직!
허공에서 인 전류가 몸에 닿았지만,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원소 저항.
일정 위력 이하의 마법에는 피해를 받지 않는 특성.
알파치노에게 찍힌 대다수의 마법사들이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명을 달리한 이유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알파치노가 방호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우득!
그리고 그대로 우그러트렸다.
마치 벽을 허물 듯 공간을 넓혀 나갔다.
“거기 그대로 있어라. 네 머리통으로 내 손아귀 힘을 좀 시험해봐야겠으니까.”
“일단 진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제안 하나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알파치노가 코웃음을 쳤다.
“진정? 제안? 그딴 건 저세상에 가서나 찾아. 난 뱀 문신만 보면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그 새끼가 생각나 견딜 수가 없으니까.”
“저희 보스를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방호가 무너지고 그의 주먹이 움직였다.
“그 보스를 죽이려 합니다. 힘을 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총알 같이 쏘아지던 알파치노의 주먹이 카인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순간 일어난 바람에 카인의 머리카락이 강하게 흩날렸다.
“내가 지금 헛소리를 들었나?”
“바로 들으셨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희 보스라는 말은 부적절하군요. 저는 조직에게 버림받은 몸이니 말입니다.”
카인이 잠시 숨을 고르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블루서펜트 보스를 죽이려 합니다. 알파치노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개소리.”
“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기억하지. 구역 다툼 중에 몇 번 본적이 있으니, 블루서펜트의 애송이.”
“전 더 이상 블루서펜트의 일원이 아닙니다.”
“…….”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블루서펜트의 소식에 관해서는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까.
간부 중 하나인 카인이 몇 달 전 켄트락 교도소로 호송되었다는 사실.
얼마 전 47번 구역에서 전쟁이 일어났었으며, 파르테르를 쓰러트린 주동자가 카인으로 추정된다는 사실.
그 이후 라이카와 바마를 포함하여 모든 블루서펜트가 잠적했다는 사실.
‘보스를 죽이는 걸 도와달라고. 47번 구역에서 있었던 전쟁에 관한 소문은 사실이었나 보군.’
알파치노가 순간적인 추론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복수가 목적인가?”
“예. 조직의 완전한 궤멸을 원합니다.”
블루서펜트 보스의 죽음.
카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카지노에 왔나 보군. 내 정체도 알고 있었나?”
“확신은 못 했습니다. 다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웃기는 놈이군.”
알파치노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카인의 얼굴 앞에 있던 주먹을 거두고 손사래를 쳤다.
“꺼져라. 뱀 새끼들은 살려두지 않는 것이 방침이지만, 약속을 무를 생각은 없으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경고하지. 두 번 말하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알파치노가 몸을 돌려 책상으로 향할 때, 카인의 목소리가 그의 발을 멈춰 세웠다.
“실망이군요. 레이몬드에 대한 증오가 무척 클 줄로 알았는데. 그렇게 겁이 많으니 셀리나를 빼앗겼던 것 아닙니까?”
다음 순간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알파치노가 한 손으로 카인의 목을 잡아 올려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쿵!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벽 부스러기가 부스스 흘러내렸다.
순간적으로 방호를 펼쳐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등뼈가 으스러져 그대로 즉사했으리라.
“너,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지?”
알파치노의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전신에선 붉은 마나가 일렁였으며, 느껴지는 건 상대에 대한 살의밖에 없었다.
카인의 목을 잡은 그의 손아귀에 점점 더 많은 힘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깊이 파고드니, 다 나오더군요. 벌써 20년도, 더 가까이 된 일이지만.”
숨이 막히긴 했지만 카인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감정을 더 극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죽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알파치노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정제된 분노였다.
“너는 선을 넘었다. 스스로 자초한 죽음이니 억울해하진 마라.”
“알고 싶지, 않습니까? 레이몬드가 셀리나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레이몬드와 셀리나.
그리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청장이 블루서펜트를 막 조직했을 당시 사용하던 가명이었으며, 셀리나는 알파치노의 연인이었던 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긴 겁니다.”
“닥쳐라. 나는 셀리나를 빼앗긴 게 아니다. 그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보내줬을 뿐이다.”
카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래서, 레이몬드를, 추적해온 겁니까? 그와 대적하기 위해, 레드스컬을 만들고?”
알파치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인의 목을 쥔 손아귀 힘이 순간 약해졌다.
“쿨럭.”
카인은 기침을 하고는 참았던 숨을 들이쉬었다.
조금 편해진 호흡으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레이몬드의 위치조차 알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를 죽이고 연인을 되찾기는커녕.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너, 뭐 하는 놈이지?”
묵은 기억들이었다.
뒷골목과 도박판.
사랑 하나만을 보고 자신의 곁을 지켜준 셀리나.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강자들을 찾아다니던 수수께끼의 남자, 레이몬드.
몸에 박혀 빼낼 수 없는 총탄과 같이,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그 모든 기억이 일순 떠오르며, 가슴에 불을 삼킨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이 새파랗게 젊은 녀석은 그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알고 있는 놈들은 분명 모두 죽였을 텐데.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이 녀석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긴 세월 동안 레이몬드에 대한 복수심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제가. 레이몬드의 위치를.”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게 타올라, 그것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셀리나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때문에 블루서펜트의 활동이 관측되지 않기 시작했을 때,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협박이었다.
자신을 죽이면 궁금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될 거란 협박.
알파치노는 목이 졸리고 있는 것이 자신임을 깨달았다.
***
집무실이 정리되고 자리엔 알파치노와 카인 두 사람만이 남았다.
카인은 기계 장치를 점검하듯 목을 한 번 매만지고는, 알파치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분명 흥미를 가지실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
조금 전까지 죽음의 위협 앞에 있던 사람이라곤 그다지 생각되지 않는 몸짓과 말투였다.
‘분명 전에 만났을 때도 영악한 놈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자연스런 여유가 몸에 흘러넘쳤던가.
그 사이 큰 폭의 성장을 이뤄,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확실히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잭’을 눈여겨보고 섭외한 건 분명 자신이었으니까.
‘아쉽군. 필레어스가 이 녀석 반만 되었더라면.’
지금 상황에 품기엔 조금 부적절한 감정일지 모르나, 그게 솔직한 감상이었다.
“셀리나 이야기부터 듣겠다.”
알파치노는 진열장에서 꺼낸 독주를 잔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 들이켰다.
“제가 거짓으로 이야기를 꾸며낼 거라고는 생각 안 하시는군요.”
“들어보고 판단할 생각이다. 거짓이라 판단되면 그대로 머리를 깨주지.”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레이몬드부터 시작해야 편할 것 같지만, 과거 연인이었던 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것 같군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짧은 침묵에서, 알파치노는 카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상대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카인이 입을 열었다.
“셀리나는 죽었습니다.”
“그랬군.”
알파치노가 다시 술을 들이켰다.
생각만큼 충격은 크지 않았다.
셀리나가 자신을 떠나 레이몬드에게 간 것이 벌써 20년도 전의 이야기.
그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가슴 한구석이 화끈거리는 것은 분명 술이 독한 탓일 터였다.
“그녀는 행복했는지, 그것도 알고 있나?”
“행복했다. 불행했다.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삶이 그런 법이니까 말입니다. 다만 삶의 질은 확연히 올라갔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겠지. 레이몬드는 당시에도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으니까. 뒷골목의 잡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알파치노의 씁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예. 그리고 레이몬드를 따라 벽 안쪽으로 들어갔으니, 선망해오던 상류 사회에 진입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술병을 들어 올리던 알파치노의 손이 움찔했다.
“레이몬드가 벽 안쪽 주민이었다는 얘기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것까진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
벽 바깥사람 같지 않은 정중한 화법.
과거 자신도 몇 번인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오던 사실이었다.
“뭐, 그럴 수 있겠지. 꼭 음지에 있는 인물만 범죄 조직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
자금 조달을 위해서건.
기업의 뒤를 봐주기 위해서건.
어떤 목적이 있었을 터였다.
“…상류 사회라. 다행이군. 그녀의 영혼에 걸맞는 자리를 찾은 셈이야. 누가 봐도 뒷골목에 어울리는 여자는 아니었지. 그녀는 병으로 죽었나?”
“아뇨. 그녀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순간 대화가 멈췄다.
알파치노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허튼소리를 뱉으면 머리를 깨버리겠다고 했을 텐데.”
“전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지?”
“수도에서 레이몬드의 뒤를 캐다 셀리나의 일기장 일부를 발견했다고 하면 답이 될지 모르겠군요.”
카인은 품에서 낡은 노트를 꺼내 테이블 위로 밀었다.
알파치노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집어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의 눈동자에 갖가지 감정이 깃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가 노트를 모두 읽고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짜 그녀의 것이 맞군. 나와 그녀밖에 알지 못하는 일들이 적혀 있어.”
“예. 그리고 보셨다시피 그녀는 상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일기장은 대필가에게 맡겨 만든 위조품이었다.
다만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설정을 이용했기에, 내용은 모두 진짜라 할 수 있었다.
“벽 바깥 출신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차별과 멸시의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
“레이몬드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런 시선들을 바꾸려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
“두 젊은 남녀에게 몹시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신분과 태생의 벽은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견고했습니다.”
“…….”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두 사람은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랑은 닳고 마모되어 애증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레이몬드는 셀리나를 방치하기 시작했습니다.”
“…….”
“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젊은 청년. 세상엔 사랑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깨달은 겁니다.”
알파치노는 웃음을 터트렸다.
얼핏 들으면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지난 20년간의 모든 알파치노가, 울고, 웃고, 흐느꼈다.
한참 뒤에야 웃음은 잦아들었다.
“나는 셀리나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내 곁에 있을 때 보다는 나은 삶을 영위했을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군.”
“예. 그리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인은 품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최근 날짜가 찍혀 있는 사진 한 장이었다.
푸른 머리의 젊은 여성.
알파치노는 저도 모르게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