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79화 (179/227)

#179. 알파치노 (1)

새로 드러난 킹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헛숨을 삼켰다.

“……!”

“세상에…!”

중년의 사내였다.

긴 흉터 하나가 이마부터 턱까지 얼굴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 번 보면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인상.

뺨이나 귀밑, 눈가와 같은 곳에도 자잘한 상처가 가득해, 그가 헤쳐온 삶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 아니, 대표님…! 출장 중이신 분이 여기 어떻게…!”

필레어스의 입에서 처음 나오려던 단어는 분명 ‘보스’였다.

“출장은 예상보다 일찍 마치게 되었네. 77번 구역에는 한 달 전에 돌아왔지.”

필레어스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보스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는지.

어째서 카지노를 속이려던 사기꾼들 틈에서 나타난 것인지.

“그 주먹으로 상대를 치려고 했나? 아직도 제 버릇 개를 못 줬군.”

“아, 아닙니다. 이, 이건….”

필레어스가 카인을 향해 들어 올렸던 주먹을 황급히 내렸다.

“그, 그러니까, 이건, 제가 진 건….”

“닥치고 가만히 있게. 아무 말도 듣기 싫으니까.”

필레어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킹, 아니, 알파치노는 카인에게 시선을 옮겨 말했다.

“실력이 아주 인상적이었네. 카드 실력부터, 적의 눈을 속이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네.”

알파치노의 목소리에선 진심이 묻어났다.

카인은 고개를 꾸벅 숙여 형식적인 감사를 표했다.

“자리가 소란스러우니 장소를 옮겨 얘기하지. 이곳에 있는 인원 전부.”

알파치노가 스페이드를 비롯한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의 얼굴 역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

카지노 안쪽 깊은 곳은 알파치노의 집무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끼익─

알파치노가 책상에 앉아 의자를 정면으로 빙글 돌렸다.

두꺼운 담배를 입에 물자 대기하고 있던 경비가 불을 붙였다.

후우─

“내가 자네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 같나?”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 너머.

필레어스와 스페이드 일행이 죄수들처럼 도열해 있었다.

카인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에스텔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죄, 죄송합니다! 게임에서 진 일은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만회를―!”

필레어스가 책상에 가까이 붙으려 시도하자 경비들이 검을 뽑아 그의 목에 드리웠다.

“거리를 벌리고 할 말만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조금 전까지 필레어스를 호위하던 경비들이었다.

아직 당황감을 모두 떨치진 못한 목소리로 보아, 그들 역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카지노의 진짜 주인이 돌아왔으니 명령을 따라야 할 이가 바뀌었다는 것.

“우, 우리 다 죽었어. 끝이야….”

스페이드는 그 광경을 보며 반쯤 정신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팀을 배신하고 확실한 보상을 챙긴다는 선택지를 골랐지만, 도박은 실패한 셈이었다.

‘아니, 애초에 무슨 짓을 하든 성공할 수 없는 도박이었어.’

설마 킹의 정체가 카지노의 주인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완전히 농락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분노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카지노의 주인.

상대 레드스컬의 보스.

판돈은커녕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두 명의 팀원 역시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신자 스페이드에 대한 분노보다도 앞으로 닥칠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이리라.

“…….”

카인은 차분히 상황을 분석했다.

시선을 흘긋 돌려 집무실 내부를 살폈다.

벽면엔 여러 종류의 총기와 박제된 동물들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

현재 자신이 선 곳 뒤편의 널찍한 공간엔 각종 게임 테이블이 자리해 있었다.

“출장을 일찍 마치고 77번 구역으로 돌아왔지. 변장을 한 상태로 카지노를 돌고 있는데 저 친구가 재밌는 제안을 해오더군.”

카인의 시선이 다시 알파치노에게 향했다.

그는 어느새 책상 위에 있던 리볼버를 손에 들고 천으로 닦고 있었다.

“스페이드, 말해 보게. 그때 나에게 뭐라고 했나?”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스페이드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답했다.

“그, 근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카, 카지노를 털려고 하는데 자, 자금을 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면….”

“그래. 그랬지. 꽤 마음에 들었네. 카지노에서 자기 계획을 발설하는 그 대담함이 말이야.”

탕!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스페이드가 바닥에 쓰러져 양탄자 위에 피를 콸콸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엔 그때의 담대했던 사내는 없고 웬 겁쟁이 한 명만 있군. 도박꾼으로서 도박에 실패했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지. 그렇게 목숨을 구걸하면 쓰겠나?”

총구 끝에서 핀 연기가 담배 연기와 함께 섞여 올라갔다.

피비린내.

화약 냄새.

지독한 담배 향.

“우욱!”

카인을 제외한 팀원들이 바닥에 속을 게워냈다.

알파치노가 눈썹을 찌푸렸다.

팀원들은 어떻게든 토악질을 멈추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치우게.”

그가 손짓하자 경비들이 팀원들의 양팔을 붙들어 문 쪽으로 끌고 갔다.

“그래도 배신자는 처단했으니 가는 길에 억울한 마음은 덜 할 걸세.”

“사, 살려주십쇼! 살려─!”

“나는 아직 주, 죽기 싫어!”

쿵!

문이 닫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경비들이 스페이드의 시체와 바닥에 흐른 피, 그리고 토사물을 치웠다.

담배 하나를 다 태운 알파치노가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쨌든 꽤 재밌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네. 이 친구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고.”

알파치노의 시선이 필레어스를 향했다.

“필레어스. 영악하고 야망이 있는 친구지. 하지만 한 생각에 매몰되면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해.”

후우─

담배 연기가 다시 한번 매캐히 올라갔다. 그가 마저 입을 열었다.

“도박사로선 치명적인 단점이지. 후계자로 정하는데 망설였던 이유네.”

“보, 보스! 제발 제게 다시 기회를 …!”

알파치노가 혀를 쯧 찼다.

“상대의 계획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다는 생각에 승부를 받아들였겠지. 역으로 돈을 모두 딸 수 있을 거라고.”

“정말 그럴 수 있었습니다! 저 녀석이 이상한 기술만 쓰지 않았더라도!”

알파치노의 시선이 카인을 향했다.

“저 친구가 이상한 재주를 쓰는 건 나도 확인했네. 이제 차차 알아볼 일이지. 하지만 필레어스, 자네는 승부에서 졌고, 그전부터 실망스런 모습을 많이 보였네.”

“승부에 진 것을 말씀하시면 만회를─.”

“판돈을 키울 때 왜 내게 보고를 올리지 않았나?”

필레어스의 말문이 막혔다.

“그, 그건….”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지. 카지노의 수입을 빼돌리려 말이야.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알파치노는 필레어스의 비리를 포착한 정황을 계속해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자비로운 사람일세. 잘못을 저질렀어도 늘 만회할 기회를 주는 편이니까.”

그는 턱짓으로 카인을 가리켰다.

“저 친구와 다시 한번 승부하게. 이기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

“조, 좋습니다! 카드를 당장 다시…!”

“누가 카드라고 했나?”

“예?”

알파치노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열어 탄환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빼냈다.

그리고 실린더를 넣은 뒤 손가락으로 힘껏 밀었다.

휘리릭─ 철컥!

알파치노는 책상 앞으로 걸어 나와 필레어스에게 총구를 내밀었다.

“종목은 이걸세. CP콜트, 6연발이지. 카드? 이미 한 번 진 상대인데, 자네가 어떻게 이기겠나?”

“어, 어….”

필레어스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제까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카인이 대화에 끼었다.

“제 의사는 묻지 않으시는군요.”

“그래. 자네 의사도 중요하지. 이 게임에서 이기면 목숨은 살려주겠네. 그냥 죽이기엔 아까운 실력이니까. 물론 딴 돈은 놓고 가야 하고. 어떤가?”

거절하면 발버둥을 칠 기회도 없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인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 말했다.

“해볼 만한 조건이군요.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구만. 자, 누가 먼저 할 텐가?”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굳이 재빠르게 말하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필레어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여기 있네. 행운을 빌지.”

카인은 리볼버를 받아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금속의 서늘한 감촉이 손가락과 관자놀이를 통해 전해졌다.

방호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용하는 순간 알파치노가 제지를 가할 테니까.

청장과 비슷한 무력을 가지고 있기에, 만약 싸움으로 번진다면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다.

때문에 탄환이 발포된다면 타협의 여지 따위 없이 즉사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건 늘 그래왔듯이.

끼릭.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순간.

카인의 손가락이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틱!

불발이었다.

카인이 말했다.

“네 차례다.”

필레어스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카인이 내민 리볼버를 받아들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건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천천히 총구를 머리에 겨눴다.

한참을 망설이다 눈을 질끈 감고 당겼다.

틱!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필레어스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생물체로서 본능적인 것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그 어떤 쾌락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네, 네 차례.”

필레어스가 리볼버를 건넸다.

카인은 받자마자 총구를 머리에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틱!

숨 돌릴 틈도 리볼버가 돌아왔다.

필레어스의 감정은 희망에서 절망으로 추락했다.

총구를 머리에 겨눈 뒤, 전보다 더 오래 망설인 뒤에야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틱!

하아. 하아.

필레어스는 리볼버를 카인에게 건네며 이를 악물었다.

CP콜트는 6연발.

앞의 4번이 불발이었으니, 남은 2번 중 1번은 반드시 격발되는 상황.

상대의 이번 차례에 리볼버가 격발되면 자신이 산다.

반대로 격발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다음 차례에 자신이 죽는다.

확률은 50%.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

필레어스의 온 신경이 방아쇠를 당기는 카인의 손가락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틱!

압도적인 절망과 무력감이 필레어스를 덮쳤다.

“유감이군.”

카인은 아무렇지 않은 몸짓으로 리볼버를 필레어스에게 건넸다.

리볼버를 받아들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필레어스를 보며 말했다.

“뭘 망설이고 있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생각인가?”

“나는, 나는….”

필레어스가 구원을 바라는 듯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뭐하나? 어서 당기지 않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알파치노의 독촉과 경비들의 냉랭한 시선뿐이었다.

필레어스는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 카인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의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 녀석은 대체 어떻게 여유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처음부터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던 건가.’

문득 든 깨달음.

일찍 깨달았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끼릭.

눈물이 땀과 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탕!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필레어스의 시체가 바닥에 너부러졌다.

“기회를 줘도 마지막까지 살리지 못하는군.”

알파치노가 피 웅덩이에서 리볼버를 집어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경비들이 움직이고, 현장의 정리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알파치노는 다시 책상에 앉아 리볼버에 묻은 피를 천으로 닦아냈다.

“난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는 편이네. 목숨은 확실히 살려주겠어. 하지만 이대로 그냥 놓아주기는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네.”

카인을 향한 말이었다

그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열어 탄환을 원래대로 6발 모두 채워 넣었다.

철컥.

“일단 묻지. 총알의 위치는 어떻게 알고 있었나?”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운과 실력 따위도 구분하지 못할 것 같은가. 어떤 강심장도 죽음 앞에서 그런 여유를 부릴 수는 없네.”

카인은 알파치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총알의 첫 위치를 기억하고, 이후 실린더가 회전할 때 공이와 부딪치는 소리로 위치를 예측했습니다.”

그럴 일은 없지만, ‘부활’ 특성이 있기에 한 번 목숨을 잃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알파치노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별 미친 소리를 다 듣는군. 그럼 필레어스와 포커를 칠 때 마지막에 패를 바꿔 친 수법은 무엇이었나?”

“그건 영업 비밀이라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자네의 목숨을 쥐고 협박해도 말인가?”

“예.”

알파치노는 한참 카인을 노려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진지하게 제안 하나 하지.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죄송하지만 이미 소속된 곳이 있어 그건 힘들 것 같군요.”

“소속? 어디를 말하는 건가?”

카인의 손바닥이 얼굴부터 목덜미를 쓸었다.

변용마법이 해제되며 원래 얼굴의 푸른뱀 문신이 드러났다.

“오랜만입니다. 알파치노님.”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말과 함께 알파치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인에게 총을 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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