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78화 (178/227)

#178. 로얄 슬롯 (4)

“기본 배팅을 높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팀원 모두의 손에 땀이 배어들었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쾌재를 내질렀다.

작전 성공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넘긴 셈이라 할 수 있었다.

킹을 포함한 바람잡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연기를 하며 말했다.

“전 상관없습니다.”

“나도 상관없소.”

“그렇게 하시죠.”

카인 역시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모두의 동의를 얻은 필레어스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 판이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진행하시죠. 기본 배팅을 높여서.”

***

참가자들은 짧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칩을 더 준비해오거나 했다.

그 후 다시 테이블에 모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돌아온 것은 필레어스였다.

아마 보스에게 연락을 취해 딜러들이 규정상 따라야 하는 배팅 한도액을 높이지 않았을까.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보스. 오늘 큰 수익을 올릴 테니까요.」

감추지 못하는 미소로 보아 어쩌면 그런 종류의 발언을 보스에게 했을지도 모른다.

킹의 말에 따르면 카지노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그때 군중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거지잖아? 아무리 출입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정신도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꾀죄죄한 행색의 여성 하나가 사람들의 옷 소매를 붙잡으며 구걸을 하고 다니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배가 고파요. 도와주세요.”

눈의 초점이 풀린 것이 사람들의 말대로 정신이 멀쩡한 것 같지는 않았다.

카인의 시선은 여자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비슷했다.

죽은 어머니와.

외모가 몹시도.

살아있었다면 나이도 지금쯤 저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카인의 손가락이 초조한 듯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삶을 헤쳐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그의 기억력은 때론 잊어야 할 것들마저 잊지 못하게 했다.

“어디서 벌레 새끼 한 마리가….”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카인의 귀를 잡아챘다.

고개를 돌리자 필레어스였다.

아무도 들리지 않게 한 혼잣말이지만, 마법으로 오감을 강화하고 있던 카인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중요한 자리라 잠시 다른 곳으로 가 주시겠습니까? 이 정도면 식사는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필레어스가 여자를 향해 칩 하나를 튕겼다.

남들 몰래 칩에 두른 미약한 마나.

화(火)계 원소의 비중이 높았다.

쥐는 순간 뜨거움에 곤혹을 치르고 손바닥엔 상처가 남으리라.

여자의 얼굴은 그것도 모르고 환하게 펴졌다.

탁!

허공을 날던 칩이 카인의 손에 붙잡혔다.

이쪽이 마법사란 사실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괜한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일부러 마법으로 손바닥을 보호하지 않았다.

제 역할을 마친 화(火)계 원소가 손바닥에 미약한 통증을 남기고 사라졌다.

카인은 온도가 내려간 칩에 자신의 것을 몇 개 더 얹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직접 다가가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끼니를 거르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여자는 카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몇 번이나 꾸벅이고 카지노 출구로 사라졌다.

카인은 자리로 돌아왔다.

“시작하시죠.”

얼떨떨한 얼굴로 있던 필레어스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예. 기본 배팅을 다시 10배 올릴까 합니다. 다들 어떠십니까?”

여자 일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순식간에 잊혀졌다.

구경꾼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존 배팅이 이미 일반 테이블의 100배였음을 감안하면, 이제 1000배가 된다는 얘기였다.

‘기본 배팅 천만이라.’

어지간한 전문직의 연봉이 매 라운드의 참가비가 된다.

레이즈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어느 한쪽이 파산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킹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모두 그 정도 여유는 있지 않습니까? 사업체 수십 운영하는 대표님들이실 텐데. 아니면 이 바닥에서 뼈가 굵은 전문 도박꾼들이거나.”

우스갯소리였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만한 위치의 인물들이 아니면 판돈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좋습니다.”

“저도요.”

모두가 동의를 표하고 게임은 다시 시작되었다.

“500만.”

“600만.”

“다이.”

“콜.”

“1000만.”

불필요한 대화는 사라졌다.

구경꾼들마저 숨을 죽였다.

숫자는 불어났지만, 테이블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칩을 올리는 소리와 배팅액을 부르는 목소리만 장내를 오갔다.

‘킹의 패는 클로버 A와 하트 9.’

각 문양과 숫자마다 고유 신호를 여럿 지정해 두었기에 몸짓만으로도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2000만.”

“4000만.”

“다이.”

“8000만.”

판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다.

배팅은 빠르고, 치열했으며, 과감했다.

“1억.”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

게임은 막바지를 향해 치달아갔다.

“올인.”

“나도 올인이오.”

바람잡이 두 명이 가진 칩을 모두 패 앞으로 밀었다.

“다들 패가 좋으신가 보군요. 저도 올인하겠습니다. 여기서 물러날 순 없지요.”

필레어스 역시 모든 칩을 밀었다.

스페이드가 보낸 신호에 따르면 필레어스의 조합은 포카드였다.

7777.

각 문양의 같은 숫자 넷.

‘포카드가 손에 잡힐 확률은 약 4천분의 1.’

사실상 최강 패라 보아도 옳았다.

상위 조합이 존재하긴 하나 등장 확률이 더 극악이니까.

카인은 테이블 위의 상황을 살피며 자신의 비공개 카드를 아공간 카드와 바꿔치기할 준비를 했다.

손바닥을 올려 기존 카드를 흡수한 뒤, 그 자리에 새 카드를 놓기만 하면 된다.

‘필레어스를 잡으려면 더 높은 숫자의 포카드나 상위 조합을 만들면 된다.’

비공개 카드가 3장이고, 현재 테이블 위에 공개된 모든 참가자의 카드를 보았을 때, 어떤 조합이든 가능했다.

최적의 선택은 더 높은 숫자의 포카드일 것이다.

스트레이트 플러시.

약 6만 분의 1.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약 60만 분의 1.

상위 조합은 확률상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카인은 순식간에 패를 바꿔 쳐 조합을 완성했다.

“올인.”

그리고 테이블 중앙에 칩을 밀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칩이 서로 부딪쳐 떨어졌다.

“재밌군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올인이라니.”

필레어스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

바람잡이들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모두 올인이니 더 볼 것도 없겠군요. 패를 공개하시죠.”

킹을 포함한 바람잡이들부터 패를 공개했다.

트리플과 스트레이트.

그리고 풀하우스.

강하긴 하지만 포카드에는 비빌 수 없는 조합이었다.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은 제게 미소를 지은 것 같습니다.”

필레어스가 소름 돋는 미소와 함께 패를 공개했다.

하트 J.

하트 Q.

한 장씩 카드가 펼쳐질 때마다 군중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 숨 쉬는 것도 잊고 설마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트 K.

하트 A.

모든 카드가 공개되었을 때 장내는 완전한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미 공개되어 있던 하트 10에서부터 카드가 쭉 이어졌다.

“말도 안 돼!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잖아!”

“내가 살아생전에 저걸 실제로 본다고?”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혼란스러운 것은 테이블 참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페이드가 보낸 신호는 분명 7 포카드였다.

의문과 당황의 눈빛을 보내자 그는 시선을 피했다.

마치 보호받으려는 듯한 몸짓으로, 필레어스의 경비들 근처에 다가가 섰다.

배신.

모두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계획이 너무 쉽게 풀렸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를 속이는 데 집중해, 정작 이쪽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조작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로티플이라니.”

“가능성이 없진 않을 거 같은데.”

65만 분의 1 확률.

실제로 팀원들은 카드를 분배하는 필레어스의 손동작에서 미세한 위화감을 감지했다.

이제까지와 달리.

마지막 라운드에서 단 한 차례.

하지만 상황이 주는 긴장과 흥분 탓에 위화감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또한 이제껏 스페이드가 제 역할을 잘 수행해왔기에 방심한 것도 있었다.

“의심스럽기는 하지.”

“그것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패가 떴으니까.”

덱을 조작했음은 분명하다.

악소문이 퍼질 것도 확실하다.

카지노는 그것을 감수하고라도 승부에서 이기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만큼 지금 테이블 위에 쌓여 있는 판돈은 어마어마했다.

“그럼 이 칩은 제가 모두 가져가겠습니다.”

“잠깐.”

카인의 목소리가 테이블 위로 한껏 뻗던 필레어스의 양팔을 멈춰 세웠다.

“내 패를 아직 확인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미 최강의 조합이 나왔는데?”

필레어스는 코웃음을 쳤다.

상대가 패를 바꿔치기하리란 사실은 스페이드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바꿔친 조합이 10 포카드란 사실 역시, 정해둔 신호를 통해 스페이드에게 몰래 전달받을 수 있었다.

‘표시목이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하마터면 꼼짝도 없이 당할 뻔했지.’

필레어스는 조롱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쓸만한 조합이 나오셨던 거겠죠. 아쉬우시면 공개하셔도 됩니다. 봐 드리긴 할 테니까요.”

“배려인가. 고맙군.”

카인이 덮여 있는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페이드 J.

스페이드 Q.

카드가 공개된 순간 필레어스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러면 10 포카드가 나올 수 없다.

스페이드를 돌아보자 그 역시 한껏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페이드 K.

이제 남은 비공개 카드는 단 한 장.

군중은 떠들던 것을 멈춘 채 다시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인이 마지막 카드를 집었다.

“이 카드가 뭔지 궁금하지 않나?”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내기 하나 하지. 완성될 조합이 뭔지 맞추는 걸로. 나는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에 걸겠다. 내가 이기면 그쪽이 내 선물 하나를 받아 줬으면 좋겠군.”

필레어스는 공황 상태에 가까웠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이게 로티플일 리가 없잖아. 내 계산상 말이 안 된다고. 이건 정말….”

“유감이군. 배팅 실력이 형편없어서.”

카인이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스페이드 A.

기존에 있던 스페이드 10과 합쳐서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완성되었다.

같은 조합일 시 스페이드가 모든 문양을 이기니, 문자 그대로 최강 패였다.

“세상에!”

“로티플이 한 테이블이 두 번이나 나온다고?”

사람들의 탄성과 고함이 터져 나오고 분위기가 반전될 때.

카인은 신속하게 칩 하나를 쥐어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필레어스의 손에 억지로 쥐인 뒤, 그의 손을 감싸 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크아악!”

“판돈을 모두 잃었지. 아무것도 없는 너에게 남기는 인정이니 감사히 받도록 해라.”

필레어스가 몸부림을 쳤지만, 카인의 악력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경비들이 달려들 때 카인은 손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필레어스의 손바닥에는 이미 지독한 화상이 남은 상태였다.

“끄윽! 내 손! 내 손이─!”

테이블이 흔들렸다.

쓰지 않았던 덱이 무너지고 흩날렸다.

카인은 즉시 몸을 움직여 CCTV로부터 테이블을 가렸다.

카인의 의도를 알아챈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가렸다.

카인은 덱에서 나온 중복 패를 아공간으로 흡수했다.

단 몇 초 만에 완벽한 증거인멸이 이뤄졌다.

“카드를 찾아! 분명 패를 바꿔치기한 거라고! 이 사기꾼 새끼들이!”

필레어스가 고통스런 와중에도 외침을 질렀다.

경비들이 카인을 덮치려는 순간 군중 틈에서 에스텔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카인 옆에 도착한 그녀는 경비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평소 다루던 메이스나 봉이 아닌 검.

카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그녀의 의지였다.

경비들은 그녀의 검 앞에 주춤했다.

그 사이 테이블로 간 나머지 경비들이 외쳤다.

“주, 중복되는 카드가 없습니다. 덱에서 나온 카드로 만들어진 조합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멍청한 새끼가! 그게 말이 돼? 로티플이 그렇게 쉽게 나올 패냐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럼 자기 건 말이 된다는 건가?”

“덱을 섞을 때 손기술을 쓴 게 맞다니까.”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도 모른 채, 필레어스는 경비들에게 윽박을 질렀다.

“몸을 뒤져! 바꿔치기한 카드가 품에 있을 테니까!”

“죽고 싶으면 한 발짝도 다가오지 마요.”

카인이 에스텔에게 속삭였다.

“괜찮다. 검문에 응하지. 서로 의심을 완벽히 떨쳐야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 테니까.”

에스텔은 누군가 카인의 몸에 손을 댄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어쨌든 지시에 따랐다.

카인과 팀원들을 대상으로 몇 차례고 검문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숨겨둔 카드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모, 몸에도 없습니다. 마나 탐지기에도 일체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놀라기는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의 당시 자신들에게 보였던 기술은 소매에 있던 것과 카드를 바꿔치는 기술이었으니까.

그들은 아공간의 존재를 몰랐기에, 카인이 카드를 숨겨두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럼 로티플이 진짜로 완성되었다고? 그것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필레어스는 화상을 입은 손을 부여잡고 카인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운명.

그리고 상대에 대한 분노.

상황에 대한 당황과 혼란.

여러 감정으로 범벅이 되어, 볼썽사납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이런 씨발!”

필레어스가 카인을 내리칠 듯이 주먹을 크게 치켜들었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하지, 필레어스. 자네가 졌네. 완벽한 패배야.”

킹이었다.

그가 얼굴에 손을 대어 잡아당기자 가죽이 벗겨지며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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