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로얄 슬롯 (2)
“손님.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경비 셋이 남자 손님을 에워 쌌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문이라고요?
“예. 사무실로 가서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에스텔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앞엔 꽤 많은 양의 칩이 쌓여 있었다.
참가자 모두가 블랙잭을 잠시 중단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한 딜러와, 평소 감정 동요가 거의 없는 카인만 제외하고는.
‘검문이라. 카지노 측에 흠 잡힐 짓을 했나 보군.’
블랙잭을 치는 동안에는 남자에게서 별다른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남자가 짓고 있는 초조한 표정은 사기꾼의 그것이다.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왔다.
다른 테이블에서 딜러와 경비의 눈을 속여 사기를 쳤다는 것.
의자 옆 남자의 가방에 수북하게 담긴 칩이 카인의 생각에 어느 정도 신빙성을 더해줬다.
‘욕심이 컸군. 저만큼 따고도 곧장 떠나지 않아 덜미를 잡히다니.’
곧장 떠나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나.
“하! 검문 이유부터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CCTV에 찍힌 게 있어서 말입니다. 함께 가서 확인해주셔야겠습니다.”
남자의 큰소리에도 경비들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것만 끝나고 따라가겠습니다.”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돌연 테이블 위의 칩을 움켜쥐어 경비들을 향해 던졌다.
턱!
“크윽!
“누, 눈이!”
마나가 실린 칩에 정확히 눈을 명중 당한 경비들이 눈가를 움켜쥐고 신음을 흘렸다.
그들로서도 방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속도의 기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가방을 챙긴 남자가 경비들을 밀치고 뛰쳐나갔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경비들이 다급하게 무전을 날렸다.
“1층 C번 블록! 목표 대상이 도주한다!”
“출구를 봉쇄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군중을 헤치고 순식간에 출구 쪽으로 거리를 좁혔다.
“잘 있어라, 멍청이들…!”
남자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발치에서 바람이 일었고, 그대로 넘어져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툭! 투둑! 투두둑!
가방이 허공을 날며 흩뿌려진 칩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보기 드문 진귀한 광경에 탄성을 터트리거나, 눈치를 보며 멀리 떨어진 칩을 몰래 주워가거나.
에스텔의 반응은 카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당신이 한 거예요?”
“…….”
그녀는 어디서 꺼냈는지 선글라스를 낀 채 팝콘을 먹고 있었다.
“내가 쓴 마법이 아니다.”
“진짜요? 저런 빠른 표적 상대로 마법 명중시키는 거 엄청 어려운 일이잖아요?”
“물론 어려운 일이긴 하다만.”
경비들이 쓰러진 남자를 덮쳐, 자비 없이 진압봉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억! 억! 자, 잘못 했습니다! 아악!”
뼈 부러지는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으로 구성된 연주가 카지노를 울렸다.
봉을 멈추지 않는 것은 손님들에게 어느 정도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함도 있을 터였다.
몽둥이찜질은 수십 초가 지나서야 멈추었다.
“놓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멀리서 딜러 복장을 한 젊은 남자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나타났다.
사기꾼을 일으켜 끌고 갈 준비를 하던 경비 중 상급자로 보이는 자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필레어스 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잡지 못했을 겁니다.”
필레어스라 불린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보고를 받았습니다. 포커를 치는 중 ‘위상 변화’ 마법으로 장난을 치는 것 같다고요. 제가 직접 받은 손님은 아니었습니다만, 뒤에서 지켜본 결과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맞더군요.”
위상 변화는 근거리에 위치한 사물과 사물 간의 위치를 바꾸는 마법이었다.
필레어스가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사기꾼의 품 안에서 몇 뭉치의 트럼프 덱이 나와 그의 손안으로 빨려들었다.
“흐음. 잘 만들긴 했지만, 저희 카지노에서 쓰는 것과는 다른 제품이군요. 뒷면의 재질이 다릅니다.”
필레어스는 사기꾼 앞으로 다가가 카드 한 장을 그의 얼굴 앞에 뽑아들었다.
“로얄 슬롯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법 실력도, 준비한 소품도 형편없으니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필레어스의 손에서 흘러나온 붉은 마나가 카드를 감쌌다.
쉬익!
카드가 휘둘러지고, 사기꾼의 얼굴엔 엑스자 모양의 상처가 생겨났다.
“크악!”
주변에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 중 비위가 약한 이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았다.
“끌고 가서 폐기처분 하십시오.”
지시를 받은 경비들이 사기꾼을 끌고 출구로 사라졌다.
청소부들이 나타나 바닥에 묻은 피를 지우고, 카지노는 금세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찾은 것 같군.’
***
카인은 그날 새벽까지 카지노에 머물렀다.
여러 종의 게임을 즐기고, 각 층을 돌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했다.
특히 필레어스의 주위를 맴돌며 그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던 걸요. 카지노의 실질적인 관리자라고요. 마법 실력도 뛰어난 편이고.”
로얄 슬롯 인근에 위치한 호텔 방이었다.
에스텔은 카지노에서의 여운이 남은 듯 테이블 앞에 앉아 딜러를 흉내 내며 카드 셔플을 하고 있었다.
차라락─
카드 한 장이 소파에 앉아 있는 카인 쪽으로 튕겼다.
카인은 그것을 집어 앞면을 보았다.
조커였다.
“카지노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마법사는 마법사로 잡는다는 말이겠지.”
“아무래도 그 사람이 후보로 가장 적합하겠죠?”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마법사로 잡는다.
그건 이쪽에도 적용이 되는 말일 것이다.
자신은 지금 필레어스를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카지노를 상대로 큰 승부를 벌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딜러가 받을 수 있는 배팅에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물론 그 한도는 굉장히 높다.
카지노 운영 중 반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다.
하지만 카인이 원하는 것은 정말 카지노 기둥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정도의 배팅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보스인 알파치노가 친히 행차를 하실 테니까 말이다.
“실무자인 만큼 배팅 한도를 높일 권한도 가지고 있을 거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니 도발을 한다면 물러나지 않고 응해올 가능성이 크다.”
“내일이 기대되네요.”
카인이 손가락으로 카드를 튕겼다.
날아간 카드는 에스텔 앞에 앞면으로 떨어졌다.
조커였던 카드는 에이스로 바뀌어 있었다.
***
다음날 오전.
필레어스의 테이블은 1층 카지노 북쪽에서도 정중앙에 있었다.
종목은 포커였으며, 그의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칩을 보고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되려 자신의 칩을 탕진하고 줄줄이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주위에서 게임을 관전하는 이의 숫자가 다른 테이블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카인은 관중 틈에서 슬쩍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손을 씻고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켜 물기를 말렸다.
카드 한 장을 꺼내 거울에 비추었다.
스페이드 8이었던 카드는 카인의 손 안쪽에 들어갔다 나오자 다른 문양과 숫자의 카드로 바뀌었다.
결코 잡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손기술 따위가 아니라 아공간이니까.
물건의 출입시 순간적으로 마나가 일렁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극히 낮다.
라티움의 석학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작품인 만큼, 시중에 유통되는 마나 탐지기로는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검증은 어제 이미 마친 상태였다.
카인이 몸을 돌려 아무도 없는 화장실을 나가려던 그때, 입구 쪽에서 들어오던 남자가 어깨를 부딪쳤다.
툭!
“어이쿠, 죄송….”
사과와 함께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남자.
카인이 눈을 번뜩이며 남자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벽에 밀어붙였다.
쿵!
남자의 손에는 카인의 품속에 있던 칩홀더가 쥐어져 있었다.
나이는 대략 40대 중반.
약삭빠른 인상의 마른 사내였다.
“무슨 짓이지?”
카인이 으르렁거렸다.
사내는 소매치기를 들킨 것이 오히려 기쁜 듯한 얼굴이었다.
“여, 역시! 이렇게 감이 예리한 사람일 줄 알았다니까! 크윽! 일단 놓고 얘기하시오! 놓고!”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카인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입구 쪽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다,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소. 제, 제안할 것이 있어서.”
“따라다니는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게 그쪽이었군.”
“제, 제발 이것 좀 놓고….”
카인 역시 입구 쪽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직 없음을 확인했다.
손아귀의 힘을 조금 풀고 물었다.
“제안이라. 말해봐라. 귀가 뜨일 만한 제안이 아니면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질 거다. 나는 내 물건에 누가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진심으로 그러할 카인의 기세에 사내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 돈을 벌고 싶지 않소? 낮은 판돈으로 수백 번 게임을 해봐야 죽어도 벌 수 없을 큰돈 말이오.”
돈이라.
돈 자체는 큰 관심이 없었다.
숨만 쉬어도 47번 구역의 여러 시설에서 수익이 들어오고, 헥사메디컬의 주식은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내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계속 얘기해봐라.”
“카지노를 상대로 판을 짤 계획이오. 당신 같이 흔들림 없는 배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 크윽!”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사내는 다시 조여오는 카인의 손아귀에 침음을 흘렸다.
‘판이라.’
일단 사내의 실력은 인상적이었다.
뒷골목 생활을 할 당시 꽤 많은 소매치기를 보았지만, 사내만큼 손동작이 정교한 이는 없었다.
비록 붙잡히기는 했지만.
어제의 미행 역시 처음 몇 시간 동안은 눈치채지 못했다.
‘기본적인 실력은 있다는 이야기겠지. 카지노를 상대로 판을 짤 계획이라.’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카인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지. 자리를 바꿔 조용한 곳에서.”
***
사내는 카인을 폐건물로 인도했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구역 외곽이었다.
끼익─ 끼익─
녹이 슨 철제 계단은 밟을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젠장. 악력이 왜 이렇게 세오? 마나를 쓰는 것 같지는 않더만, 타고난 힘이 장사인가?”
카인은 투덜거리는 사내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무력적인 부분에선 문제가 없을 터였다.
눈앞의 사내 역시 마나유저이긴 하나 그리 강해 보이진 않았고, 만일을 대비해 에스텔에게 주변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한 상태였다.
몇 층을 오르자 탁 트인 콘크리트 공간이 나타났다.
벽이 무너져 바깥이 훤히 내다보였고, 중앙에는 난로나 테이블, 소파 따위의 집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편한 곳에 앉으시오. 여기가 멤버들이 사용하는 아지트요. 각자 숙소가 따로 있지만 회의를 할 때는 여기서 만나오.”
남자는 난로를 켜고 냉장고 쪽으로 다가갔다.
“술 필요하오?”
“뭐든.”
남자는 반쯤 비어있는 보드카를 꺼내 얼음과 함께 잔을 채웠다.
탁─
카인이 앉아 있는 소파 앞 테이블에 자신의 것까지 두 개의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시원하게 자신의 잔을 비웠다.
“오전부터 술이라.”
“걱정하지 마시오. 절대 취하지는 않으니까. 일할 때 먹는 각성제 정도라 생각하면 되오.”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사내의 표정과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혹시 약물이 타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인은 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난 스페이드요.”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트럼프 카드의 스페이드였다.
“닉네임인가 보군.”
“맞소. 당신도 본명을 댈 필요는 없소. 적당히 부를 수 있는 호칭이면 뭐든 좋소.”
“잭으로 하지.”
“J인가. 좋소.”
스페이드는 보드카를 한 잔 더 비우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현재 자신을 포함해 4명의 인원이 모여 있으며, 딜러 하나를 상대로 한 사기극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4명은 모두 기존에 알던 인원인가?”
“초면이오. 그게 더 좋지 않소? 일이 끝나면 각자 몫을 가지고 흩어질 사이니.”
그리고 마지막 멤버를 몇 주간 물색하고 있었으며, 카인의 카드 실력이 눈에 띄었다는 것.
“기복 없는 카드 실력이 인상적이었소. 사기꾼이 잡혔을 때 별로 동요하지도 않더군. 큰 계획에는 당신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카드를 플레이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럿 필요하오.”
스페이드가 덧붙였다.
“손기술 역시 인상적이었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타이밍에 좋은 패가 나오더군. 소매에 있던 카드와 패를 바꿔 친 것 아니오? 카지노 측이 의심할 틈 없이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솜씨도 일품이었소.”
“…….”
꽤나 눈썰미가 좋았다.
카드를 바꿔 친 장소가 소매가 아니라 아공간임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나 같은 이가 여럿 필요하다면, 기존 인원들 역시 실력이 뒷받침된다는 얘기겠군.”
“맞소.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실력 검증이 끝난 이들이오.”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들과 함께 행동할 이유를 찾자면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만큼 사기극의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는 점일 것이다.
아무래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 딜러와 경비들의 시선이 분산될 테니까.
하지만 홀로 행동해도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판을 크게 키워 확실하게 카지노의 시선을 끌 자신 역시도.
‘굳이 수락할 이유가 없다.’
대화의 방향을 거절로 돌리기 위해 카인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카지노를 상대로 판을 벌이려면 그만한 자금이 있어야 할 텐데.”
적어도 수억 실링 단위는 되어야 할 것이었다.
수백만이나 수천만 실링 정도는 거부들의 손에 의해 종종 배팅 되기도 하는 금액이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에겐 자금을 대주는 ‘킹’이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카인은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사실 이 판의 진짜 기획자는 그 사람이요. 만나서 얘기해보겠소?”
섭외를 위한 신뢰 표시라며, 스페이드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이야기해주었다.
로얄 슬롯은 레드스컬이 운영하는 시설이며, 판돈이 커지면 레드스컬의 보스와 승부를 벌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
“그만큼 판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거요. 충분히 목숨을 걸어볼 만한 일이지.”
그 모두 킹이라는 인물이 이야기해준 사실이라고 했다.
“적어도 수십억 단위까지는 올라가겠지. 어떻소. 이제 좀 구미가 당기오?”
“…….”
“아니면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는 건 어떻소?”
카인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직접이라.”
과연 그런 것이었다.
위층에서 줄곧 느껴지던 기척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