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74화 (174/227)

#174. 원소장의 이해와 실제 (4)

빙(氷)계 원소장.

전(電)계 원소장.

두 개의 원소장이 충돌하는 순간.

비올라는 본능적으로 방호를 전개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원소가 일으키는 충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만 하시죠.”

대신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두 원소장 사이에 또 다른 원소장이 끼어들어 있었다.

마치 두 개의 해역이 맞물리는 지점 사이에 또 하나의 해류가 끼어든 것처럼.

거대한 벽의 형태로.

카인의 원소장 자체는 찬연한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몇 층 아래에 제 연구실이 있어서 말입니다. 두 분이 마법을 사용하시면 피해 범위에 들어갈 것 같군요.”

놀란 것은 아이타르와 라이티노 역시 마찬가지로,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노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당황과 놀라움이 대신했다.

“허…?”

“이게 무슨….”

감지력이 뛰어난 두 장로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카인의 원소장 안에 자신들의 것과 같은 전(電)계 원소와 빙(氷)계 원소가 한데 섞여 일렁이고 있음을.

아이타르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본래 원소장은 하나의 주원소만 쓰이는 것이 절대적인 법칙.

물론 주원소를 여럿 쓰는 것이 이론상 불가능하진 않다.

다수의 주원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불가능으로 취급될 뿐.

헌데 지금 그 상식이 깨졌다.

불과 이십 대 후반의 젊은 교수에 의해서.

“……!”

라이티노는 카인을 쏘아보았다.

흥분과 불안 가득한 눈빛.

원소장 거둬. 빨리.

메시지는 명확했다.

카인이 적어도 두 개의 주원소를 다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장(場) 단위로 구현하는 수준일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원석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으로 감정되었으니 기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원석을 라이벌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자신의 불안감을 뒷받침하듯 아이타르 빌어먹을 늙은이가 요한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지 않은가.

스스스─

두 장로의 전투 의지는 깔끔하게 증발된 상태였다.

대기 중의 원소가 제 주인들의 몸으로 돌아가며 원소장은 모두 사라졌다.

비올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기들이 조금 깨지고 쓰러졌을 뿐, 장로급 두 명이 부딪친 것치고는 굉장히 양호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자네 지금….”

아이타르가 이채 어린 눈으로 카인을 보며 말했다.

뒷말을 예상한 라이티노가 두 사람 사이에 급히 끼어들었다.

“요한! 다친 데는 없나! 어서 이 숨쉬기만 해도 역한 공간에서 나가세!”

“아니, 잠깐. 이 친구 방금 원소가 분명 두 종류….”

“원소가 뭐? 두 종류? 한 종류였는데?”

“아냐, 방금 분명 원소가 둘….”

“허! 이 늙은이가 노망이 나더니 이젠 헛것을 느끼나.”

아이타르는 카인을 보았다.

그는 입을 다물고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았다.

비올라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재능이 크지 않아 원소장 내에 퍼져있던 미세한 원소들을 구별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잘못 느꼈단 말인가?’

아이타르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이것 말씀이십니까.”

그때 카인이 다시 한번 원소장을 전개했다.

빙(氷)계 원소와 전(電)계 원소.

두 원소로 이루어진 원소장이었다.

라이티노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고, 아이타르는 반색하며 소리쳤다.

“그래! 그거 말일세!”

거듭 감탄하던 그가 라이티노를 보며 추궁하듯 물었다.

“직접 데려온 사람이니, 자네는 알고 있었겠구만? 그렇지?”

“아,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고말고.”

아이타르의 시선이 카인을 향했다.

그는 덥석 카인의 손을 잡았다.

“자네, 벽 바깥에서 왔다고 했나? 제약회사의 대표이고? 마법은 언제부터 배웠나? 스승은 누구인가?”

라이티노가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번개같이 휘둘렀다.

아이타르가 손을 뒤로 빼고, 지팡이는 허공을 갈랐다.

“넘볼 생각하지 말게. 내가 발굴한 원석, 아니 친구니까.”

아이타르가 눈을 흘겼다.

“이 친구 실력이 이 정도였다면 진작 말해야 했을 것 아닌가. 낙하산이 아니라 정식 절차를 거쳤어도 채용될 것이 분명한데.”

“연공실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는데 어떻게 말을 해?”

라이티노가 지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괜히 제자 후보를 내보였다 뺏길 걱정을 했다고는 죽어도 말하기 싫었다.

아이타르가 카인을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실력을 감추고 있는 줄은 몰랐네. 해임 건은 없던 걸로 하지. 강의 평가는 죽을 쒀도 되네.”

“아뇨. 괜찮습니다. 강의 평가 조건은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아니, 그걸 왜 거절하나?”

카인이 말없이 원소를 거둬들였다.

곁눈질로 원소장을 계속 살피던 아이타르가 아쉬운 눈치로 신음을 흘렸다.

“양측이 합의한 시험을 통과하면 제게 불만을 가진 자들도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타르가 별도의 조치 없이 카인의 교수직을 인정한다면, 그건 오히려 불만을 더 키우는 일이었다.

라이티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나? 강의 평가에서 4.5점을 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네.”

“자네는 5점 만점에 3.5점을 넘어본 적이 없지. 성격이 그 모양이니 학생들이 안 좋아하는 걸세.”

“좀 닥치게. 주둥이를 비틀기 전에.”

카인의 두 사람의 대화를 무시하고 다음 말을 이었다.

“4.5점을 넘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심사회 때 논문을 내고 싶습니다.”

매 학기 끝마다 이뤄지는 심사회.

교수들이 새로운 저작을 발표하는 일종의 세미나였다.

아이타르의 눈빛이 흥미롭다는 듯이 변했다.

“논문이라니?”

“예. 준비 중이던 논문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방금 제가 사용했던 이중 원소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두 장로가 동시에 말을 뱉었다.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다고 했지. 그 시작이 되겠구만.”

“원소장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 논문으로 확인하라는 뜻인가?”

카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의 말씀 모두 맞습니다. 특히 원소장의 경우 궁금한 게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해 드리는 것보단 정제된 글로 보여드리는 게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카인을 사이에 두고, 두 장로는 치열하게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이 그어져 버렸기에, 두 장로는 더 이상 원소장에 관해 묻지 못했다.

“하나만 묻겠네.”

“예. 아이타르 장로님.”

“자네가 라이티노의 제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네. 사실인가?”

카인이 라이티노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제가 벽 안쪽에서 활동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 라이티노 장로님입니다. 앞으로도 큰 도움을 받을 것이고, 마법적으로도 배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이와 같은 관계를 사제지간이라 표현하더군요.”

카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라이티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동시에 아이타르는 깊은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아직 제자라 명시한 상태는 아닙니다.”

***

상황이 정리되고 아이타르의 연구실을 나오는 길.

라이티노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카인에게 섭섭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자가 되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고 하지 않았나?”

“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닙니다.”

라이티노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곧바로 돌아온 카인의 말에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회합’에는 확실히 제자 신분으로 참여하겠습니다. 잠시 동안이나마 말입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예. 그리고 이중 원소장에 관한 건 당분간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아,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소문이 퍼지면 마법계가 발칵 뒤집힐 걸세. 하지만 그 시기는 자네가 정해야겠지.”

“감사합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두 사람이 탑승한 엘리베이터는 바로 한 층 아래 라이티노의 단독 층에서 멈췄다.

“나는 강의가 있어 준비를 마치고 바로 들어가야 하네.”

“알겠습니다.”

복도 멀리 사라지는 라이티노의 모습을 보며 카인은 생각했다.

‘황제에게는 분명 보고를 올릴 것이다.’

그것 역시 카인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적당한 관심을 끌어 앞으로의 활동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안배라 할 수 있었다.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였다.

우웅─

카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원소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찬연한 푸른 빛.

기감이 뛰어난 이들은 13종의 주원소가 그 안에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중 원소장 정도로 충분하겠지.’

가진 패를 모두 공개하는 것은 위험했다.

위협을 느낀 황제가 마음을 바꿔 제거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관심을 끌되 위험 요소로 인식되지 않을 선.

그것이 딱 이중 원소장이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카인의 연구 층에 도착했다.

카인의 의지에 따라 실내 가득 포화 상태였던 원소가 회로에 다시 빨려들었다.

문이 열리고 카인이 내렸다.

타박. 타박.

엘리베이터는 다시 승객을 찾아 움직였다.

마치 이 공간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

마탑 강의가 없는 주말.

카인은 에스텔과 함께 차를 타고 황무지를 달렸다.

운전은 에스텔이 맡고, 카인은 조수석에서 논문 다발을 검토하고 있었다.

“차에서라도 조금 쉬는 게 낫지 않아요? 눈을 붙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거나. 요즘 잠을 거의 안 자잖아요.”

카인의 수면 시간은 하루 4시간으로 줄은 상태였다.

병행하는 일이 많아지며 시간을 초와 분 단위로 쓰고 있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중요한 건 수면 시간이 아니라 수면의 질이다. 그리고 이유 없이 멍 때리는 건 삶에 대한 죄악이다.”

“우와. 죄악까지야. 난 그럼 엄청난 죄인인데요.”

카인에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스텔은 그가 집중할 수 있도록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차라락─

논문 페이지가 쉼 없이 넘어갔다.

세간에 이미 발행되어 있던 ‘이중 원소장’에 관한 자료들.

물론 실제로 구사할 수 있는 이가 없었으므로 ‘추측’이나 ‘이론’에 불과했다.

‘기존 자료 중 그리 설득력이 높은 것은 없다. 논문이 일으킬 반향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르겠군.’

논문은 학계에서의 입지 확보 외에 황제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도 있었다.

아시모프의 별채에서 백진우일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는 모두 검문을 끝낸 상태였다.

다음 활동 범위는 과외 교사가 된 후 율리아의 별채가 될 테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황궁 전체를 수색하고, 궁극적으론 마나를 탈취하기 위해 황궁 지하의 마나 탱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마나 탱크는 황제의 신임을 받는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관리한다. 황제가 탐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런 점에서 ‘이중 원소장’ 논문은 짧은 시간 내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도착했어요.”

에스텔의 목소리에 카인이 고개를 들었다.

운전 중인 차는 구역 안쪽에 진입해, 창밖에 여러 건물이 비치고 있었다.

77번이라는 꽤 높은 구역 번호치고는 건물들의 외관이 상당히 화려한 편이었다.

숙박업소의 비율이 높았으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역시 구역 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이 많았다.

에스텔은 거대한 건물 앞 주차 공간에 차를 멈춰 세웠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건물 입구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이곳도 오랜만이네요.”

“와본 적이 있나?”

“네. 전투 사제로 임무를 다닐 때 한 번요. 당신은요?”

“그럴 리가.”

“왜요? 한 번쯤은 와봤을 거 같은데.”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같은 이치지.”

에스텔은 카인의 말을 이해했다.

신이나 운 따위의 외부적 요인에 기대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두 사람은 계단 끝에 올라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슬롯머신 형상을 한 건물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었다.

간판이 황금빛을 발했다.

「로얄 슬롯」

레드스컬의 보스가 운영하는 대륙 최대 규모의 도박 시설이었다.

“들어가지.”

“나 저번처럼 또 잭팟을 터트리면 어떡하죠?”

두 사람은 입구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안쪽에선 돈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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