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73화 (173/227)

#173. 원소장의 이해와 실제 (3)

“어떤 후회나 반성의 태도도 보이지 않는 엘 렉스터는 벌점을 10점 추가하네.”

벌점의 총합은 20점.

당장 교내 봉사 100시간 명령이 내려지는 점수였다.

웅성거림 속에 엘이 외쳤다.

“잠깐만요. 벌점 10점을 추가한다고요?”

“이제 대답을 하는군.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본인이 받은 벌점에 불만이 있나?”

엘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 당연하죠.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건 인정해요. 인정한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벌점 20점은 아니죠.”

“강의 중 학생에게 벌점을 주는 건 순전히 교수 재량이지. 교칙에 위반될 건 없네.”

엘과 카인 사이의 설전이 오갔다.

“교칙 3조 2항에 따르면 학생에게 한 번에 부여할 수 있는 벌점은 10점이 한계에요.”

쉴 새 없이 쏘아붙이는 쪽은 엘이었다.

하지만 이미 승기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강의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바로 밑의 3항에 상황에 따라 두 배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쓰여 있을 걸세.”

엘이 어떤 논리를 꺼내 들든, 카인이 담담한 어투로 그것을 박살 내고 있었으니까.

“20점은 마탑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전례가 없다고 그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네.”

높디높은 성벽에 조약돌을 전력투구하는 인상이었다.

엘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에 못 이겨 붉어져만 갔다.

그녀가 씩씩대며 말했다.

“저희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는 아시죠?”

“알고 있네. 렉스터 가문은 대대로 높은 수준의 마법사를 배출해온 것으로 유명하지.”

넬은 엘의 옆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안 좋은 버릇인데.’

결국 또 가문의 이름을 팔아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다.

몇 초 차이로 태어난 자신의 이 쌍둥이 누이는.

“벌점 10점은 인정할게요. 하지만 20점은 불가능해요. 저희 가문의 명예도 있으니까요.”

카인이 잠시 대답에 뜸을 들이는 것을 보며 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렉스터 가문의 이름 앞에선 이 교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기가 어쩌겠어. 우리 아버지는 백작위를 가진 고위 귀족에 마법계에 영향력이 큰 유명 인사인데.’

특히 마탑의 주인인 아이타르 장로와 깊은 친분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나온 카인의 말은 엘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문의 명예라. 렉스터 백작님이 지금 상황을 아시면 몹시 유감이시겠군.”

“네?”

“명예를 드높여야 할 딸이 가문의 이름을 팔아 상황을 모면하려는 추태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야.”

엘의 얼굴의 왈칵 구겨졌다.

강의실 곳곳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려 쏘아보자 곧 멈추기는 했지만.

“강의를 마저 진행해야 하니 잘못을 인정하고 자리에 앉게.”

엘은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인이 몸을 돌려 강단으로 돌아가려 할 때, 큰소리로 외쳤다.

“귀족 간에 지켜줘야 할 선이 있다는 걸 모르시나 봐요. 슬럼 출신이 막 신분 상승을 해서 그런가.”

순간 강의실 공기가 조용해졌다.

카인의 몸이 다시 엘을 향해 빙글 돌았다.

학생들 모두 그가 화가 났으리라 예상했지만,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귀족이라.”

카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말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엄밀히 말해 자네는 귀족이 아니지 않은가? 귀족은 자네 아버님인 렉스터 백작님이시지.”

제국의 작위는 세습되지 않는다.

카인의 말은 그 점을 꼬집고 있었다.

***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네. 과제는 다음 시간까지 받는 걸로 하지.”

카인은 강의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아아아아─!

몇 발짝 지나지 않아 강의실 안에서 분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가볍게 무시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연구실로 돌아가기 전, 20층에 있는 CCTV 관리실로 향했다.

“아, 새로 부임하신 요한 교수님이시군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나이든 관리인이 정중한 태도로 카인을 맞았다.

“며칠 전 영상 중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단순한 확인이기에 별도의 권한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관리인은 카인이 원하는 날짜의 녹화 테이프를 찾아 장치에 삽입해주었다.

카인의 조교가 근무하는 1조교실의 영상이었다.

“…….”

카인은 한 지점에서 영상을 멈추고 반복 재생했다.

「원소장 구조 해체서-전(電)」

조교의 손에 들린 책이었다.

그는 책장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 들고 있던 책을 꽂아 넣고 다른 책을 꺼냈다.

「원소장 구조 해체서-화(火)」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작아 들리진 않았으나, 입 모양으로 몇 단어를 식별할 수 있었다.

낙하산. 슬럼.

그것만으로 그가 악의를 가지고 책을 바꿔 준비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확인했습니다.”

카인은 관리실을 나와 연구실로 가기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띵─

그리고 41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아! 요한 교수님! 지금 돌아오시는 길이군요!”

목소리는 시선 아래에서 들려왔다.

평균보다 조금 작은 신장의 여성.

아이타르의 수석조교 비올라였다.

“강의가 끝날 시간이라 연구실에 방문했는데 계시지 않아서 돌아오던 길이에요.”

위잉─

문이 닫히려 해 카인이 손을 뻗어 열림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아이타르 님이 뵙고 싶어하셔요. 신입 교수와 면담을 하는 것도 그분의 일이거든요.”

“위에 계십니까.”

“네!”

“바로 올라가시죠.”

비올라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우웅─

“제 조교 말입니다.”

“킬라드 말씀이신가요?”

“자르겠습니다. 조교는 제가 직접 구하도록 하죠.”

“아, 그건 상관없는데 혹시 무슨 이유로….”

“4일 전 날짜. 오후 2시 23분 1조교실 CCTV를 확인하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띵─

대답과 동시에 카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비올라는 약간 당황스런 기분으로 카인을 쫓아갔다.

“넓군요. 확실히 마탑의 최상층답습니다.”

“아, 네? 네. 다른 층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기는 해요. 아이타르 님 혼자서 사용하시는 층이니까요.”

외곽을 따라 둥글게 이어진 고리형 복도에 안쪽을 향해 방 여럿이 나 있는 구조였다.

비올라는 그중 가장 큰 문 앞에 멈춰 노크를 했다.

똑똑─

“비올라입니다. 요한 교수와 함께 왔습니다.”

─ 들어오게.

끼익─

“그럼 말씀 잘 나누세요.”

카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밖에서 문을 닫아주었다.

안쪽에 위치한 테이블 한쪽에서 백발의 노인이 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이타르 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편히 앉아 있게. 즐기는 차 종류가 있나?”

카인은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 연구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책상과 책장 따위의 집기들.

전체적으로는 주인을 닮아 차분한 인상의 공간이었다.

코에 스치는 향을 맡고, 대답했다.

“54번 구역 특산 락토알이군요. 지금 끓이시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자네 차에 대해서 좀 아나?”

“잘 아는지는 모르겠으나 즐기는 편입니다.”

꽤 희귀한 차 종을 카인이 단번에 알아보자 아이타르는 반색했다.

그러다 자신이 상대에게 해야 할 말을 깨닫고는 헛기침을 삼킨 뒤 목소리를 다시 내리깔았다.

“뭐, 어느 정도 지식은 있는 것 같구만.”

잔을 들고 다가오는 아이타르를 보고 카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을 받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뒤 악수를 청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만나서 반갑네.”

가벼운 악수가 오가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그윽한 차향이 연구실에 퍼졌다.

잔을 홀짝이며 아이타르가 말했다.

“신입 교수와 면담을 하는 것도 내 업무 중 하나지. 늦어서 미안하네. 첫 강의 전에 만났어야 하는데, 최근 좋지 못한 일을 당해 경황이 없었네.”

카인이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 일에 대해선 저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몹시 유감입니다.”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 시간만 있었다면 누구보다 화려한 재능을 꽃피웠을 아이인데 말이야.”

작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크게 슬픈 기색은 없었다.

칩거를 하는 동안 감정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활동이 많다고 들었네. 바쁜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일이지. 바로 본론으로 가겠네. 자네의 인사 처리는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졌네.”

카인은 차를 한 모금 넘겼다.

“아이타르 님의 결재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군요.”

“맞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라이티노에게 인사권을 위임하긴 했네만, 교수 임명과 같은 중요 건은 결재를 거치도록 이야기해두었었네.”

“라이티노 장로는 그 지시 사항을 무시했을 테고 말입니다.”

“그래. 그 새… 아니, 라이티노 장로가 독단적인 면이 있어서 말일세.”

아이타르가 다시 헛기침을 삼켰다.

“자네도 알겠지만 모든 일엔 형식과 절차라는 것이 있지 않나.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나도 자네가 충분히 교수 자격을 얻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네.”

“비정상적으로 절차가 생략되어 저도 의문스러운 점은 있었습니다.”

상황을 순순히 인정하고 공감하는 카인의 태도에, 아이타르는 화가 누그러드는 것을 느꼈다.

도리어 아무 잘못 없는 학생을 다그치고 있는 기분.

“그렇다고 부임을 취소하겠다는 말은 아니네. 이미 강의까지 들어간 마당에 말일세. 하지만 아무래도 교수나 교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네.”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곤란하시겠군요. 마탑 운영에 기여 해온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그래도 어느 정도 불만을 진정시켜 타협을 보는 걸로 했네.”

아이타르는 조건을 내걸었다.

“자네가 지금 두 개의 강의를 맡고 있지.”

학기가 끝나고 이뤄지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에서 각각 4.5점 이상의 평균 평점을 받을 것.

“어려운 조건이군요.”

“우리 학생들이 까탈스럽기로 유명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세.”

카인은 여유 시간 때 읽어두었던 마탑의 운영 자료를 상기했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

최근 몇 년 사이 최고 점수는 엘렌 교수가 받은 4.7점.

객관적 관점에서 4.5점 이상을 받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평가 점수가 미달 되면 자네를 해임 처리하기로 했네. 하지만 조건을 통과하기만 하면 불만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걸세.”

카인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점수를 받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강의의 질을 높여야 하기에 그만큼 시간을 빼앗길 것이 분명했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 라이티노 님!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되…!

파직―!!!

연구실 문이 한순간 검게 타버려 재가 되었다.

훤히 드러난 직사각형 공간 너머 잔뜩 화가 난 라이티노의 모습이 보였다.

파지직―!! 파직―!!

그의 손에는 섬뜩한 보랏빛을 내는 전류 줄기가 덩굴처럼 감겨 있었다.

눈은 반쯤 뒤집혀 있었다.

“해임? 해임이라고? 해이임?”

“이 미친 영감탱이가 문을…!”

아이타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이티노가 연구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아이타르와 마주 섰다.

“우리 애한테 지금 해임이라고 했나? 해임?”

두 사람은 충돌하기만 기다리고 있던 부싯돌처럼 맞붙었다.

“허? 그래. 해임이라고 했다. 내가 지금 누가 싼 똥을 치우고 있는 줄 알아! 어디서 큰 소리야, 큰 소리가!”

라이티노의 몸에서 방출된 전류가 대기를 잠식하고 바닥을 기었다.

아이타르 역시 어느새 눈에서 시퍼런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쩌적!

그의 발을 중심으로 바닥이 얼어가기 시작하고, 허공에 얼음 결정이 피기 시작했다.

“요한 교수! 이리 오게! 저런 말라 비틀어진 가지 같이 생긴 인간하곤 말도 섞는 게 아닐세!”

“미친! 삼 일 삶은 양배추같이 생긴 게 어디서 외모 지적질이야!”

참으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채 고급스런 교양어로 상대를 인신모독했다.

책장이 무너지고 벽에 균열이 생겼다.

탑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비올라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카인을 바라보았다.

‘제발 말려주세요.’

카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말린다고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해보자는 거지!”

“그래! 이 기회에 요양 좀 보내줄 테니까!”

전(電)계 원소와 빙(氷)계 원소.

두 원소가 얽혀 일어나는 작은 폭발 사이.

잠시 생긴 사고의 여유 공간에 카인은 다른 생각을 채워나갔다.

‘청장을 제거하는 계획은….’

“죽여! 진짜 죽여보라고!”

“하라면 내가 못 할 줄 알고!”

두 장로의 외침과 함께 연구실은 푸른빛과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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