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72화 (172/227)

#172. 원소장의 이해와 실제 (2)

“강의를 시작하지. 7페이지를 펴도록.”

학생들은 책을 펴는 중에도 카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든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한 시선으로, 강의실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카인은 그런 분위기에서 홀로 동떨어진 것처럼 담담한 투로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우리가 가진 회로에는 마나가 축적된다. 원소를 선별하고, 지정된 좌표로 쏘아내어 융합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마법’이라 부른다.”

단상 앞으로 나가 뒷짐을 지고, 책상 사이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외부에서 원소를 융합할 시, 상대 마법사에 의해 ‘파훼’될 위험이 있다.”

카인이 한 학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커드 테일러. 경지에 이른 마법사들은 ‘파훼’를 피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무엇인지 알고 있나?”

이름이 불린 학생은 깜짝 놀랐다.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 네. 대기 중에 결합 직전의 원소를 다량 퍼트려 일종의 장(場)을 형성하는 방법입니다.”

카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결합 직전의 원소가 사방에 존재하기에 상대로서도 더욱 반응하기 어려워진다. 비유하자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지뢰를 사방에 퍼트려 놓는 셈이다.”

카인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강단 앞에 마나로 이루어진 수식이 한 자 한 자 쓰여지기 시작했다.

“전(電)계 원소를 선별해 체외로 방출하는 기본적인 수식은 다음과 같다.”

화이트보드를 쓰지 않은 것은 학생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였다.

마나 글씨도 악필이긴 하나, 손으로 직접 쓴 것보단 훨씬 나은 편이었으니까.

“나 저번에 엘렌 교수님이 이런 식으로 마나를 쓰시는 걸 봤어.”

“그래도 저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었잖아. 색도 훨씬 옅었고.”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마나를 대기 중에 글자 형태로 고정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쯤은 학생들도 알고 있었다.

강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허공에 수놓아진 그림과 수식이 카인의 손짓에 따라 수시로 형태를 바꾸었다.

“이러한 기예를 원소장이라고 부르며, 사용자의 회로 특질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보인다.”

카인의 중저음 목소리가 학생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전(電)계 원소의 경우 회로의 특질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이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며….”

중요한 부분은 단어에 강세를 주어 강조하고, 어려운 부분은 쉬운 단어나 명쾌한 비유를 사용해 이해를 도왔다.

카인의 강의 속도 자체는 굉장히 빨랐지만, 이해되지 않거나 설명을 놓치는 부분은 발생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머릿속에 지식이 쑤셔 박혀져, ‘강제’로 이해되는 느낌.

원소장에 관한 다른 강의에서는 이런 단순명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이미 사전 지식이 있는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리고 설명을 한 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리나케 필기를 시작했다.

쓱. 스슥.

강의실엔 필기구가 움직이는 소리와 카인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어느새 모두가 카인의 강의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

강의실 맨 뒷자리엔 남학생 둘과 여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다.

여학생은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시선으로 카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남학생 중 하나에게 속삭였다.

“넬, 어떻게 생각해?”

질문을 받은 남학생이 답했다.

“어떻게 생각하긴. 강의를 굉장히 잘하시네. 많이 놀라고 있는 중이야, 엘.”

넬과 엘.

렉스터 가문의 이란성 쌍둥이.

라크센이라는 신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마탑 최고의 인재라 칭송받던 두 명이었다.

라크센이 죽고 ‘최고’ 자리가 다시 돌아왔지만, 본인들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엘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마음에 안 들어. 단어 하나 놓치지 않겠다고 다들 저렇게 집중하는 꼴이라니.”

넬이 답했다.

“상황이 재미없긴 한데, 강의에 흠잡을 데 없는 건 사실이잖아.”

쌍둥이 앞자리에 있던 남학생이 덧붙였다.

“전에 교수랑은 다른 느낌이긴 해. 일단 학생들이랑 기 싸움하려는 모습은 크게 안 보이는 것 같고.”

리암 폴링턴.

마찬가지로 귀족가의 자제.

뛰어난 마법 실력.

쌍둥이와 묶여 삼총사라 불렸다.

온갖 분란과 말썽을 일으키고 다니기에,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의 의미로.

엘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기 싸움하려는 모습은 안 보인다고?”

엘의 손가락이 허공에 수놓아진 마법 글씨를 척 가리켰다.

“멀쩡한 화이트보드는 놔두고 저렇게 마법으로 글씨를 쓰는 이유가 뭐겠어. ‘내 실력은 이 정도다’ 하고 기선 제압을 하려는 거지.”

넬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리암. 엘 좀 말려봐. 이러다 또 교수 한 분 사표 쓰면, 우리 징계 위원회에 불려 가는 게 3번째라고.”

리암이 픽 웃었다.

“왜? 재밌을 거 같은데? 불려 가도 잘 빠져나가면 그만이지.”

“…니들 마음대로 해라.”

엘은 마법 글씨를 노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저 글씨를 봐. 개발새발 막 휘갈긴 필체. 나는 내 편한 대로 쓸 테니 너희들이 알아보든 말든 신경 안 쓴다는 거지. 학생에 대한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어.”

리암이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뱉으며 엘을 부추겼다

“그렇네. 사람인 이상 저런 악필은 말이 안 되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닌….”

엘이 손을 번쩍 들었기에, 넬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강의실 모두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카인 역시 책상 사이를 거닐던 것을 멈추고 엘을 보았다.

“엘 렉스터. 질문하도록.”

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학생들 이름이랑 얼굴을 다 외우고 들어온 거야?’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지금부터 잔뜩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 줄 생각이니까.

“교수님께서는 지금 ‘전(電)계 원소장’에 관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본래 담당은 ‘화(火)계 원소장’ 강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엘이 숨을 고르고 재빨리 덧붙였다.

“일단 가지고 들어오신 교재가 그렇고, 준비된 ‘전(電)계 원소장’ 교재를 몇 분간 살핀 뒤에 강의를 시작하셨으니까요.”

카인은 말없이 엘을 바라보았다.

흥미롭게 듣고 있으니 계속해보라는 투였다.

‘뭐지. 이 인간 왜 반응이 없어?’

거기서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다른 학생들 모두가 보고 있어 멈출 수 없었다.

“자기 전공이 아닌 원소장에 관해서도 알고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이론뿐이라면 말입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했다.

보통 머리로는 힘들다는 전제가 붙을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감을 얻은 엘이 이야기에 박차를 가했다.

“교수님께선 분명 여러 분야에 학식이 뛰어나실 거라 생각됩니다. 석화증 치료제의 개발자이자 뛰어난 마법사로 알려져 계시니까요.”

카인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전(電)계 원소장’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갈등이 심화 될 기미를 보였다.

학생들은 걱정 반 흥분 반으로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리암이 엘을 지원하듯 앞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지 않습니까?”

리암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電)계 원소장’ 수업인 만큼, ‘전(電) 원소장’을 전공하고 실제로 ‘사용’하실 수 있는 교수님에게 수업을 듣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동조를 구하듯 말하는 모습이었다.

카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어린 나이에 제법이군. 분위기를 조장하려면 무엇을 노려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같은 상황이었다면 자신 역시 비슷한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강의 역시 ‘서비스’의 일종.

같은 ‘소비자’인 동기들에게 ‘서비스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갈등 구도에서 편을 가르고 아군을 만드는 방법은 언제나 효과적이다.

다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엘의 쌍둥이 넬이었다.

그는 무언가 반쯤 포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 강의 내용과 관련해 사전에 전달이 잘못된 거라면, 오늘 수업은 휴강을 하고 학사처에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엘이 말을 받았다.

“맞아요. 저희에게도 검증된 전문가의 수업을 들을 권리라는 게 있으니까요. 비싼 등록금을 내는 만큼.”

강의실 내의 학생들은 모두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카인이 전(電)와 화(火)계 양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 원소장을 펼칠 수 있는 건 화(火)계 뿐일 거라고.

리암은 상황을 분석했다.

‘엘렌 교수님 같은 경우는 화(火)계와 수(水)계, 2개의 주원소를 다루시지. 하지만 가능한 원소장은 회로 내 원소 비율이 우세한 화(火)계 하나뿐이야.’

백번 양보해 요한 교수가 엘렌 교수와 같이 2개의 원소를 다루는 천재라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 해도 펼칠 수 있는 원소장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원소장은 처음 교재를 들고 들어온 ‘화(火)’일 테고.

상황 설계는 완벽하다.

이제 남은 것은 신입 교수가 꼬리를 말고 물러나는 일밖에 없다.

“엘 렉스터. 넬 렉스터. 리암 폴링턴.”

이름이 불린 세 학생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니까 자네들 말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이군.”

왜 불안한 걸까.

상황은 분명 이쪽에 유리한데.

엘이 책상 아래에 있는 손을 불끈 쥐고 말했다.

“네. 증명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자리… 어…?”

엘은 말을 멈추고 경악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뿐 아니라 강의실 내에 모든 학생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파직─ 파지직─!

강의실 곳곳에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사람 얼굴만 한 크기로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대체 어느 틈에….’

대기 중의 전(電)계 원소 농도가 짙어져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엘은 입술을 꾹 깨물고 카인을 노려보았다.

이 교수는 대화가 시작될 때부터 전(電)계 원소를 대기 중에 방출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강의실 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실력자란 소문은 확실히 사실이었어.’

원소에 대한 통제력이 극에 달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스파크가 튀고 있는 위치가 모두 절묘하게 학생이나 집기 사이라는 점에서, 능력을 다시 한번 가늠할 수 있었다.

“나 원소장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맥거핀 교수님 스파크는 주먹만 한 크기였는데.”

동기들은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처음엔 스파크에 닿을까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이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자네들 수준에 만족스럽겠나?”

말할 것도 없었다.

라이티노 장로가 아니라면, 이 정도 수준의 전(電)계 원소장을 펼칠 수 있는 교수는 마탑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파직!

계속해서 터지는 스파크.

주동자 셋은 대답이 없었다.

“리암 폴링턴. 이 정도면 내게 자네들을 가르칠 수 있는 영광을 줄 수 있겠나?”

리암의 얼굴이 붉어졌다.

“…훌륭하십니다.”

카인이 넬을 보았다.

“넬 렉스터.”

“어, 네, 물론입니다.”

넬은 아직 어안이 벙벙했다.

카인은 마지막으로 엘을 보았다.

“엘 렉스터.”

“…….”

엘은 끝까지 대답이 없었다.

카인은 그녀를 바라보다 다른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말해 두지만 나는 강의 중 방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흐름을 가장 중요시해서 말이지. 질문이 있다면 강의가 끝난 후에 받으니, 모두 알아두도록.”

카인의 시선이 다시 삼총사를 향했다.

“자네들의 의문은 그럴 수 있다 생각하네. 하지만 강의를 방해하며 까지 묻기엔 ‘확증’이 아니라 ‘상상’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삼총사는 안절부절못했다.

엄밀히 말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결과 소중한 강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지. 그리고 나는 자네들의 행동에서 다분한 의도를 느꼈네.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모욕을 주겠다는 의도 말이지.”

카인이 계단을 올라 삼총사와 거리를 좁혔다.

“리암 폴링턴. 내 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넬 렉스터. 말해보게.”

“죄, 죄송합니다.”

“엘 렉스터.”

“…….”

엘은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네들은 모두 벌점 10점이네.”

삼총사에게 사형 선고와 같은 카인의 말이 떨어졌다.

벌점은 마탑에 다니는 4년 동안 누적되며, 점수에 따라 청소나 퇴학 따위의 처벌을 받는다.

이제껏 수많은 말썽을 피우고 징계 위원회에 불려 갔지만, 항상 교묘한 방식으로 빠져나갔기에 삼총사의 벌점은 0점이던 상태였다.

“교,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10점은….”

리암이 허겁지겁 말했다.

퇴학 기준이 벌점 100점이기에 10점은 결코 작은 점수가 아니었다.

“불만인가?”

카인이 리암을 쏘아보았다.

멀리서 보는 것과 직접 시선을 마주치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맹수와 눈이 마주친 듯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리암은 급히 꼬리를 말았다.

“아, 아닙니다.”

“불만이 있다면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찾아오게.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지.”

카인이 걸음을 돌려 다시 강단 쪽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 몸을 돌리고 엘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어떤 후회나 반성의 태도도 보이지 않는 엘 렉스터는 벌점을 10점 추가하네.”

푹 숙여져 있던 엘의 고개가 그제야 번쩍 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