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69화 (169/227)

#169. 설계도 (2)

“데어 헤일리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라이티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친구는 지금 감옥에 있을 텐데?”

“예. 알고 있습니다. 얘기를 나누면 몰랐던 정보를 캐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이티노는 잠시 생각에 잠겨 턱을 쓰다듬었다.

요한 키리프.

벽 바깥의 지하 투기장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젊은 천재.

헥사메디컬의 대표로, 수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성.

뒷조사를 하고 있지만, 그의 과거에 관한 영양가 있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

확실한 것이라면, 그가 이쪽에 호의를 가지고 있으며, 신분 상승의 욕망을 품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

“전문가들이 이미 심문을 마쳤네.”

“헤일리에 관해 조사를 마치고, 그가 혹할 만한 신분으로 위장해 들어갈 생각입니다.”

라이티노가 뜸을 들이자 카인이 말을 이었다.

“황실 지하감옥의 출입 권한이 황제 폐하에게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제국에서 폐하의 가장 깊은 신임을 받는 분이 라이티노 님이라 들었습니다.”

가장 깊은 신임.

라이티노는 순간 씰룩이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허, 흠. 그렇긴 하네만.”

“라이티노 님이 폐하께 요청을 드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라이티노 님의 요청이니까요.”

실제로 그러하리라 생각하긴 했다.

요한이라는 인물과 설계도의 행방.

둘 모두 황제의 관심사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말이다.

‘가능은 한데 말이지.’

라이티노로서는 절대자인 황제에게 ‘요청’을 한다는 일 자체가 몹시 껄끄럽게 느껴졌다.

주제넘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

그러한 인상을 황제에게 조금이라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건 거절하는 게 맞지. 헤일리를 만난다고 설계도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야.’

라이티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심을 마쳤다.

미안하지만 이번 부탁은 들어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친우분들과의 회합에 제자 신분으로 참석하는 일은 아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내가 황제 폐하에게 당장 말씀을 올려보지.”

“감사합니다. 역시 라이티노 님이라면 배려를 베풀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식사를 하러 가시죠.”

말이 끝나자마자 카인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멀어져갔다.

라이티노는 자신이 무슨 말을 뱉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자, 잠깐! 가, 같이 가게!”

***

이틀 뒤.

황제의 집무실.

황제는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인에게 말했다.

“라이티노에게 들었네. 자네가 3년 전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간수장에게 얘기를 해두었으니 내려가 헤일리를 직접 만나 보게.”

황제로서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요한이라는 인재가 실제로 설계도의 행방을 알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만에 하나 헤일리가 신세계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해도 상관없었다.

방주에 탑승하지 못한 모든 이들은 세상의 멸망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일반인 기준에선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이야기.

요한은 헤일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의 정신 건강을 먼저 의심할 것이다.

또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요한이라는 인물이 프로젝트에 보이는 반응을 지켜볼 기회가 될 터였다.

“폐하의 은혜에 꼭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인은 고개를 꾸벅이고 황제의 집무실을 나섰다.

***

이틀 뒤.

카인은 간수장을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죄수들의 행동이 거칩니다. 조금 놀라실 수 있습니다.”

“예. 인지하고 있도록 하지요.”

탁.

계단이 끝나고 지하 밑바닥에 도착하자 긴 복도가 나타났다.

양옆으로 이어진 수감실.

다듬어지지 않은 돌벽과 바닥.

퀴퀴하게 풍겨오는 지하 깊은 곳 특유의 냄새.

카인은 천장에 점점이 이어진, 그리 밝지 않은 전등을 보며 말했다.

“시야가 침침한 느낌이 있군요.”

“폐하의 명으로 일부러 개량이나 증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지은 자에겐 그에 맞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폐하의 뜻입니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 지하감옥.

제국의 안위를 위협한 죄인들이 수감 되는 곳.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들어온 자도 분명 존재할 터.

‘자신의 눈 밖에 난 이들이니만큼 인간성을 짓밟겠다는 뜻이겠지.’

안쪽에서는 오물 냄새도 풍겨왔다.

수감실 관리가 의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있으리라.

“헤일리의 수감실은 더 안쪽입니다.”

카인은 간수와 함께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때.

쾅!

왼쪽 수감실에서 팔 하나가 뻗어 나와 어떻게든 카인의 얼굴을 움켜쥐려 했다.

“이봐! 나 좀 내보내 줘! 나 좀 꺼내 달라고! 얼굴을 아작내기 전에!”

쾅! 쾅!

방문객을 알아차린 다른 수감실에서도 손이 뻗어 나왔다.

“씨발 새끼야!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데!”

“황제한테 전해! 내가 여길 나가기만 하면 목을 따 버리겠다고!”

“바깥! 바깥소식을 좀 알려줘!”

수십 쌍의 팔이 허공을 움켜쥐는 풍경은 꽤나 기괴하고 소름 돋았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어서! 죄송합니다. 잠깐 물러나 계시면 제가 진정을 시키고….”

“괜찮습니다.”

카인은 간수를 제지했다.

눈앞에 꿈틀거리는 죄수의 손.

손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창살로 밀어붙였다.

“어, 어, 너…!”

“문장이 잘못된 것 같군. 아작내는 것이 아니라 아작나는 것일 텐데.”

카인의 반대편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우둑!

손가락이 생으로 꺾인 고통에 죄수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우둑! 우둑!

죄수는 모든 손가락이 꺾인 채 바닥에 쓰러졌다.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고개를 들었다가 카인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기 위해 두 다리를 움직여 몸을 뒤로 뺐다.

“또 누구 내게 환영 인사를 해주고 싶은 이가 있나?”

카인이 복도를 돌아보며 말했다.

창살 밖으로 나왔던 팔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복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죄수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카인이 간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간수는 약간 놀랐다는 투로 답했다.

“아닙니다.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그보다 죄수들을 다루는데 익숙하신 솜씨입니다.”

“예.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요. 벽 바깥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거친 녀석들을 상대해야 할 때가 있어서 말입니다.”

간수는 계속해서 카인을 안내했다.

적막해진 복도를 지나 코너를 몇 번 돌자, 외딴곳에 있는 수감실 하나가 나타났다.

“헤일리. 일어나라.”

간수가 창살을 흔들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죄수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의 고개가 힘없이 들려졌다.

텅 빈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했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면 됩니다.”

간수는 근처에 비치되어 있던 접이식 의자를 펴준 뒤 왔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카인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뒤 팔짱을 끼었다.

천장에 설치된 수 대의 CCTV.

‘이 낡아빠진 시설에 유일하게 새것인 물건이군. 그것도 헤일리의 수감실에만.’

소리까지 녹음되는 최신 기종에 촬영 범위는 이쪽까지 닿아 있었다.

황제가 설계도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렌즈 너머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백 퍼센트라 보아도 좋다.

황제는 특정 상황에 사람을 몰아넣고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부류의 인간이니까.

카인이 한참 말이 없자 헤일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요…? 내 기억에는 없는 이 같소만….”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방 한구석 식판에는 음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먹는 것이 좋을 텐데. 일단 살아 있어야 복수든 뭐든 꿈을 꿀 수 있는 법이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억났소. 무도회장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군.”

“요한 키리프. 헥사메디컬이라는 제약회사의 대표다.”

카인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 헤일리의 앞쪽에 던졌다.

다시 팔짱을 낀 카인의 손에는 아공간에서 나온 초소형 음성장치가 쥐어져 있었다.

CCTV에는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그리고 마탑의 교수로도 곧 부임할 예정이지.”

명함을 살피던 헤일리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이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푸흐흐… 마탑? 당신도 라이티노가 보내서 왔소? 하기야 이제까지 찾아왔던 이들 모두 황제와 그 패거리의 하수인들이었지.”

“경고하지. 폐하에 대한 호칭을 똑바로 해라.”

카인이 으르렁거렸다.

CCTV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헤일리의 비꼬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래, 뭐. 원한다면 맞춰주도록 하겠소. 폐하, 황제 폐하. 이렇게 부르면 되겠소?”

“……”

카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헤일리를 쏘아보다 한 차례 숨을 내쉬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 쪽을 찍고 있는 CCTV의 렌즈를 흘긋 살폈다.

라티움에서 제작한 최신 기종.

소리와 영상 모두 관리실로 전송되고 있을 것이다.

‘기술력의 한계로 영상 전송은 약간의 지연을 거친다. 그리고 어두운 조명 탓에 내 입술 모양까지 읽어내지는 못할 터.’

“다시 한번 말하지. 너의 역할은 묻는 말에 대답하기만 하는 것이다.”

딸칵.

음성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미리 녹음되어 있던 목소리가 대사를 이어나갔다.

“연구 자료는 어디에 숨겼지?”

카인은 동시에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약간의 소리를 내어, 헤일리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 티 내지 말고 질문에 답해라.

헤일리는 순간 몹시 당황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며, 몇 번 물어도 똑같소. 알려줄 생각이 없소.”

카인은 녹음기의 재생 구간을 조절해 적절한 답을 골랐다.

“버텨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 나는 너를 돕기 위해 왔다. 우리는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헤일리는 현재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본능적인 판단으로 일단 대답을 이어나갔다.

“버텨봐야 소용이 없다라. 그런 것치곤 당신네들, 아직 내 입에서 정보 한 톨 얻지 못했잖소?”

“정보라. 그보다 석화증에 걸려 몸이 굳어 가고 있지 않나?”

─ 첫 번째 설계도는 찾아냈다. 두 번째 설계도가 필요하다.

헤일리는 혼란스러웠다.

상대는 이쪽을 돕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아군이라고 부를 만한 이가 있었던가?

설계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황제가 꾸민 함정이라 보는 게 옳지 않은가.

‘하지만 황제는 설계도가 둘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모를 텐데. 일단 대답을….’

“몸이 굳는다고 신념까지 굳어버리진 않소.”

상대의 대사에 맞춘 연기.

하지만 울컥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의를 위해 황제와 마탑의 실체를 세상에 까발리려 했다.

하지만 벌을 받은 것은 도리어 자신이니, 신의 농간이 따로 없다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감옥 안에서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죽겠다는 얘기군.”

─ 황제가 꾸민 함정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겠지. 약속하지. 난 황제의 적이다. 최소한 설계도가 그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거다.

“차라리 그게 낫소.”

“폐하께서는 아량을 베풀어 네게 기회를 준다고 하셨다.”

─ 데어 헤일리. 태어났을 때 다리에 버려졌지.

“……!”

“연구 자료의 행방을 분다면, 내가 그쪽의 석화증을 치료해줘도 된다고 하셨지.”

─ 어머니의 물건으로 추정되는 반지 하나와 함께. 이후 뒷골목 생활을 하였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헤일리가 어떻게 자라 어떤 과정을 거쳐 라티움의 수석 연구원이 되었는지.

또 어떻게 황제의 음모를 깨닫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핵심만 짚어 빠르고 간결하게.

남은 절대 알지 못할 비밀들까지.

“은혜롭게도 감옥에서 풀어주겠다고도 하셨지. 비록 벽 안쪽에 두 번 다시 발을 딛지 못할 테지만.”

─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황제와 마탑, 교단의 음모에 관한 것 역시도.

얼떨떨한 얼굴로,

헤일리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요?”

그것은 석화증 치료를 언급한 ‘요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을 비롯한 모든 상황을 꿰고 있는 ‘카인’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카인은 답했다.

“요한 키리프. 헥사메디컬의 대표이자 석화증 치료제의 개발자.”

녹음기의 재생을 멈추고.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혹자는 나를 구원자라 부르기도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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