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68화 (168/227)

#168. 설계도 (1)

텅. 텅.

적막한 복도.

카인의 발소리가 울렸다.

허공에 빽빽하게 고여 있던 먼지가 그의 걸음을 피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탁.

카인의 발이 멈췄다.

복도 끝에 위치한 문이었다.

「3107호」

「데어 헤일리」

황궁 무도회 중 황제에게 끌려 나왔던 죄수 중 하나의 이름.

명패 아랫부분에는 두 개의 직함이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마법공학과 학과장」

「라티움 수석 연구원」

라티움의 연구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붙잡힌 것이 3년 전.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수도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 인사였다.

비록 지금은 황궁 지하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쓱.

명패 위를 손가락으로 훑자 먼지가 뿌옇게 묻어 나왔다.

3년 동안 쌓인 먼지일 터였다.

사건이 터짐과 동시에 압수 수색이 벌어지고, 이후 층 전체가 폐쇄되었을 테니까.

황제와 신세계 프로젝트.

방주와 마나 탱크의 설계.

대륙 전역에 세워진 여신상.

사건의 세부사항을 꿰고 있는 카인으로서는, 당시 벌어졌을 상황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문에는 출입 금지란 글씨가 쓰인 테이프가 엑스자로 붙어 있었다.

문고리 역시 동일한 테이프로 둘둘 감겨 있었다.

찌익─

문고리의 테이프를 뜯고, 마나를 주입해 잠금 마법을 해제했다.

끼익─

연구실 안은 휑했다.

서랍이나 책장 할 것 없이 모두 텅 비어 있었다.

데어 헤일리가 빼돌린 연구 자료를 찾기 위해 연구실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압수해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찾지는 못했을 테지.’

연구 자료를 찾았다면, 가치가 없어진 데어 헤일리는 이미 황제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터다.

카인은 차분한 동작으로 벽과 바닥의 타일을 하나씩 더듬어나갔다.

헤일리가 숨긴 연구 자료는 정확히 말하면 ‘설계도’였다.

마나 탱크의 마나를 인체에 적합한 성질로 바꿀 수 있는, 신형 변환 장치의 설계도.

‘현재 황제가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구형 변환 장치.’

황궁 지하에서 변환 장치를 사용해 매일 마나 탱크의 마나를 일정량 흡수하고 있다.

성장 한계가 막혀 있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황제가 마나 회로를 꾸준히 성장시켜올 수 있던 이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매일 흡수하는 마나의 양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황제는 그에 만족하지 못했다.

변환 장치의 개량을 라티움에 지시하였고, 그 결과 월등한 성능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개량형 장치는 황제의 손에 전해졌어야 했다.

‘헤일리가 신세계 프로젝트의 실체를 깨달아버리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되었겠지.’

신세계 프로젝트의 전말을 아는 이는 극소수.

방주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와 연구원들은 모두 방주의 목적을 잘못 알고 있다.

‘히스토리아의 공중 도서관’을 찾기 위한 인류의 도전이라고.

하늘을 떠도는 어딘가의 땅덩어리.

인류의 모든 역사와 지식이 기록된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전설.

최근 목격자가 늘어나며 학자들이 진지하게 검토와 연구를 시작한 설이었다.

카인은 계속해서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을 탐색해나갔다.

‘헤일리는 프로토타입을 파기하고 구속되기 직전 설계도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그때 타일 하나의 끝이 아주 미세하게 들려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나이프를 꺼내 타일 틈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뒤로 젖혀 타일을 들어 올렸다.

덜그럭.

타일 아래 나타난 작은 공간.

딱히 보관된 물건은 없었다.

경찰도 여기까진 찾아냈을 터였다.

아무것도 얻어가진 못했겠지만.

카인은 품에서 준비한 저울추를 몇 개 꺼내 무게를 계산했다.

그리고 공간 바닥의 한쪽 방향에 나누어 올렸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끼긱─

추가 올라간 쪽의 바닥이 천천히 내려가고 반대쪽 바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가로축을 공유해 위와 아래로 회전하는 것처럼.

와직!

아래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휙 돌아갔다.

정확히 일(1)자로 선 바닥.

드러난 아래 공간엔 바닥을 받치고 있던 걸로 추정되는 목재 막대가 두동강이 나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놓여 있는 얇은 종이 묶음.

돌아간 바닥의 모서리와 맞닿기 직전이었다.

바닥이 조금만 더 돌았다면 모서리 면의 분진과 종이가 마찰해 순식간에 불이 붙었으리라.

일종의 금고였다.

바닥에 올릴 추의 무게와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금고.

무게가 부족하면 막대가 부러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종이에 불이 붙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카인은 종이 묶음을 꺼내 빠르게 훑었다.

신형 마나 변환 장치의 설계도였다.

비록 앞부분으로, 전체 설계도의 절반에 불과하긴 하지만.

‘본래는 주인공 라크센이 훨씬 더 나중 시기에 얻었어야 할 물건.’

나머지 절반의 설계도를 찾아 변환 장치를 완성하고, 탱크에 축적된 마나를 탈취해 황제와 맞서 싸우는 것이 주인공의 정해진 행보였다.

‘…가히 초월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할 수 있지.’

카인은 설계도를 아공간에 넣었다.

‘나머지 절반의 위치는 33번 구역의 쓰레기장.’

정확한 좌표는 레드스컬 비자금을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직 물건을 은닉한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즉, 황궁 지하로 들어가 헤일리에게 좌표를 직접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광활한 넓이의 쓰레기장을 직접 뒤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황제를 죽이는 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항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려면….’

파직.

그때였다.

카인의 얼굴 바로 옆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파직. 파직.

고개를 돌리자 연구실 곳곳에서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너무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군.’

어느새 주변 마나의 농도가 치솟아 있었다.

원소 비율 역시 달라져 있었다.

공기 중의 마나는 모든 원소가 고르게 분포해 있는 것이 보통.

하지만 지금은 전(電)계 원소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카인은 빠르게 타일 바닥을 원상 복구한 뒤에 연구실 문 옆 벽에 바짝 몸을 붙였다.

파직!

전(電)계 원소가 저들끼리 충돌해 스파크를 만들었다.

원소장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원소장(場)」

회로의 마나를 대량 방출하여, 자신의 주속성 마법을 사용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구축하는 기예.

회로 레벨 4는 되어야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한 기술로, 개인의 회로 특질에 따라 고유 특성이 발현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의 CCTV는 점검 시간. 31층 복도의 CCTV는 작동하지 않는 걸 확인했다.’

31층에 진입하는 모습이 노출되진 않았을 터.

그렇다면 엘리베이터가 31층에 멈췄던 찰나의 순간을 누군가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교직원과 학생들 대부분이 빠져나간 저녁 시간임을 감안하면.

아니.

굳이 상황을 여럿 따지지 않더라도 상대가 누구인지는 이미 명확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원소 비율의 원소장을 펼칠 수 있는 이는 마탑에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카인은 회로의 가동을 잠시 멈추고 호흡을 참았다.

그리고 아주 느린 움직임으로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파직! 파지직!

반대쪽 복도 끝에 발광체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인물 하나가 온몸으로 전류를 뿜어내며 바닥 위를 둥둥 떠 이동해오고 있었다.

‘라이티노.’

그가 지닌 특성은 회로 내의 모든 주원소가 전(電)계 원소로 강제 변환되는 ‘원소 특이체.’

때문에 체내의 마나로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하면 저런 ‘전기 인간’ 의 형상이 되었다.

파직!

라이티노가 다가올수록 스파크의 크기가 커지고 빈도가 잦아졌다.

마치 하나의 전기 폭풍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파지직!

라이티노가 카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인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동공이 사라진 새하얀 눈동자.

대신 쉼 없이 번쩍이는 전기 파편들이 그 안에 가득했다.

“…….”

“…….”

카인의 몸은 완전한 무생물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눈 깜빡임은커녕 작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라이티노의 고개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는 몸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다시 멀어져갔다.

‘역시 앞을 보지 못하는군.’

원소장과 강화 마법을 사용할 때의 부작용이었다.

대신 신체의 감각이 극대화되고, 공기 중에 퍼진 전(電)계 원소로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라이티노가 사라진 후에 무사히 31층을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최대의 이득을 보는 것이 자신의 방식이었으므로.

부스럭.

카인은 몸을 움직여 기척을 냈다.

곧바로 대사를 위해 입술을 움직였다.

동시에 라이티노의 몸이 홱 돌았다.

파직!

카인의 코앞에 있는 전(電)계 원소가 뭉쳐 들었다.

파훼 따윈 불가능한 속도.

결합을 마친 원소가 폭발을 일으키려는 순간.

“라이티노님. 접니다.”

카인의 목소리와 함께 라이티노의 몸이 흠칫 떨렸다.

원소는 결합 직전 아슬아슬하게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탁.

라이티노의 발이 복도에 내려왔다.

전류는 몸속으로 빨려들고, 눈동자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허, 자네였나? 자네가 왜 여기 있나?”

허탈감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

그리고 아직 경계를 완전히 풀지 않은 눈빛은, 대답에 따라 자신의 행동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라이티노와 같은 인물을 다루는 방법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잠금 마법이 걸려 있었을 텐….”

“잠금 패턴이 형편없더군요. 마법을 해제하는 데 5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형편… 어?”

카인의 적반하장에, 자신의 노기를 표출하려던 라이티노는 도리어 당황해버렸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패턴은 유사성이 너무 강해 없으니만 못했습니다.”

“어… 그게 말일세.”

“누가 설계한 패턴인지가 참으로 궁금하군요.”

“설계자가 나이긴 하네만….”

라이티노는 이 상황에 주눅 들어야 할 쪽이 자신인지 순간 헷갈려 하며 말했다.

“그랬군요. 보완할 부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방법대로 하시면….”

그리고 이어진 카인의 보완책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과연…! 만들면서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자네 말대로 하면 … 아니, 아니! 자네가 왜 여기 있느냐는 말일세! 내 말은!”

카인의 눈동자가 라이티노를 빤히 응시했다.

“아! 그렇게 바라만 보지 말고 말 좀─!”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문을 들었습니다.”

라이티노가 잠시 멍한 표정을 했다가 말했다.

“소문?”

“예. 라티움의 연구 자료를 빼돌린 자가 있다는 소문 말입니다.”

카인은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무도회장에 올라왔던 두 죄수를 통해 소문을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노라고.

“전에 제 욕망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귀족 사회에서 가능한 높이 올라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입니다.”

연구 자료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황제가 분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료를 찾아 폐하의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들어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31층에 멋대로 들어온 것은 죄송합니다.”

“…….”

라이티노는 화가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폐하도 분명 눈여겨보라고 말씀하셨었지. 이변이 없으면 방주에 태우게 될 인재라고. 이미 설득을 마친 상태에 가깝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나.’

어차피 사라진 연구 자료의 정체는 일반인이 추측으로 맞힐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섰다.

그리고 요한이 방주에 탑승해 황제의 수족이 되는 일이 확정된다면, 그때는 자료의 정체를 알아도 큰 지장은 없을 터였다.

“그러면 나한테 미리 말하지 그랬나, 이 사람아.”

“죄송합니다. 모든 일엔 절차가 있는 법인데, 공명심이 앞서 그랬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라이티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면 이 젊은 천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뻔했지 않은가.

‘어쩌면 내 목도 달아날 수 있었겠지. 폐하가 누군가를 마음에 들어하는 일은 몹시 드무니 말이야.’

엘리베이터에서 31층 버튼을 아예 빼버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31층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포를 마탑 전체에 놓았었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탈취당한 설계도는 31층에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거기에 잠금 마법도 걸어놨었으니.

오늘 이렇게 사단이 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안도감을 곱씹던 중 순간 의문이 들었다.

“응? 자네 그런데 참 어디서 나타난 건가?”

“연구실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고 계신 모습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선뜻 말이 걸어지지 않더군요.”

“아, 아아. 놀랐겠구만. 미안하네.”

라이티노는 저 스스로 납득했다.

미처 원소를 뿌리지 못한 방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밀리미터 단위의 움직임조차 감지하는 것이 자신의 원소장이었으니까.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인간이 바위가 아닌 이상에야.’

“가지. 돌아가는 길이면 저녁 식사나 같이하세. 자네가 맡을 강의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하고….”

“그 전에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몸을 돌려 걸음을 떼던 라이티노를 카인의 목소리가 붙잡아 세웠다.

“뭔가?”

카인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듯이.

“데어 헤일리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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