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67화 (167/227)

#167. 모략 (5)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만약 그런 세상이 찾아온다면?”

신세계 프로젝트.

황실과 교단, 경찰청, 마탑이 협력해 오랜 시간 준비해온 초거대 프로젝트.

계획의 실행은 몇 년 이내.

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한다.

거대 여신상이 무너지고 분명 계획에 변화가 생겼을 테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획이 실행되는 순간 이 세계는 확실하게 멸망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멸망 후 재구성된 세계에, 하늘 높이 떠올라 있던 방주가 착륙할 것이었다.

황제의 말이 가진 함의는 그랬다.

신세계의 주민으로서 너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

카인은 짐짓 모른 척 말을 이었다.

“꿈만 같은 이야기군요. 땅 자체가 비옥해진다면 말씀대로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맞네. 현재 제국이 겪고 있는 사회 문제의 절반 이상은 해결될 걸세. 참으로 멋진 신세계이지.”

“참으로 그러하군요.”

정확히는 ‘벽 바깥’의 사회 문제를 뜻했다.

벽 안쪽 사람들이 식량으로 고통받을 일은 없었으니까.

카인이 흥미를 보이자 황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헌데 그러한 세계에 오직 소수만 도착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

“소수라면 어느 정도의 인원을 뜻합니까?”

“200명 정도라고 가정해 보세.”

“문명을 새로이 재건하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카인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말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기술자로 구성된 인원이라고 하면 적은 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리가 남을 수도 있겠군요.”

어떤 인물들로 채우느냐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숫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방주의 정원은 200명.

하지만 방주의 개조가 끝나면 50명의 정원이 추가될 것이다.

그 자리는 수족으로 부릴 젊은 인재들로 채울 생각이었다.

“신세계로 향하는 인원에 포함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텐가?”

꽤나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황제가 카인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한다는 방증이었다.

“…….”

순간 카인의 사고가 가속되었다.

자신의 목적은 복수를 이루고 현실 세계로 귀환하는 것.

남은 복수 대상은 ‘백진우.’

그리고 바마.

바마의 목줄은 이미 쥐고 있기에, 사실상 백진우만 찾는다면 복수는 종결된다고 할 수 있다.

‘복수는 황제의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끝날 것이다. 높은 확률로.’

복수를 마치고,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내가 떠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세계는 완전히 멈춰버릴 수 있다.

플레이어가 떠나는 순간 기능을 멈춰버리는 게임 속 세상처럼.

아무 일 없이 흘러갈 수도 있다.

현실 세계와는 관련 없는, 완전한 별개의 세상처럼.

‘가능성은 후자가 높다.’

자신 외에 또 다른 빙의자의 존재.

이 세계가 순전히 자신만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님이 증명된 셈이다.

카인은 결론을 내렸다.

「내가 떠나면 이 세계는 멸망한다.」

누군가 황제를 막지 않는 이상,

신세계 프로젝트가 실행될 테니까.

카인은 며칠 전 47번 구역으로 잠시 복귀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갑자기 왜 책을 읽냐고요?」

「내 업무가 끝나기 기다리기보단 다른 할 일을 하는 게 좋을 텐데.」

「괜찮아요. 당신 옆은 내가 지켜야죠. 책은 당신이랑 함께 다니려면 나도 교양을 좀 쌓아야겠다 싶어서요.」

─ 샌드웜 생태 분포도를 활용한 귀족사회 의복 양식 유행 양상에 관한 분석.

그녀는 어디서 이상한 제목의 논문을 가져와서 읽고 있었다.

염동으로 논문을 들어 올리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책이 나타났다.

─ 위험한 주인님.

「앗.」

「교양을 쌓을 필요는 없다. 굳이, 억지로는.」

카인은 그 말을 하다 멈칫했다.

복수의 끝이 머지않았고, 모든 일이 끝나면 더 이상 귀족 사회에 머물 일이 없다 생각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끝.

복수를 마치면 정말 그걸로 끝일까.

「내가 너의 새로운 신이 되어 주겠다. 결코 교도를 배신하지 않을 신이.」

과거 에스텔에게 했던 말.

자신은 현실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그녀는 다시 홀로 남는다.

「카인. 씨앗은 어디에 심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지금 지내는 47번 구역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에스텔뿐만이 아니다.

실버팽의 질문에, 씨앗을 심는 것은 일단 보류하라 순간 말해버렸다.

어차피 세계가 멸망하면 생명수 따위 아무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47번 구역 사업 보고서입니다. 시간을 절약하실 수 있도록 요약을 마쳐놓았습니다.」

그 밖에 많은 인물이 있었다.

밀시안. 피에타. 프로이드와 레니.

나일스. 슈프림 시큐리티의 대원들.

카인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들을 구원하고 싶은가?」

어설픈 동정심이나 배려심 따위로 인해 현실로 돌아가는데 발목을 잡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들었다.

책임감.

이곳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라 할 수 있었다.

긴 여정 동안 마주친 이들 역시 자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인물들이었다.

창조주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세계를 버리고 떠날 수 있는가.

세계의 존속을 지켜보는 일은 무사히 이야기의 결말을 짓는 것과 같을 지언대.

그 질문에, 카인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

황제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적인 사고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함께 하는 이들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그렇군.”

황제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학기 시작 일주일 전의 마탑.

엘렌 교수는 자신 옆에 선 남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쪽이 요한 교수님이 사용하실 연구실이에요.”

“…….”

카인은 연구실 문 앞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반응이 없었다.

엘렌 교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거렸다.

초조했다.

혹시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최근 들려왔던 소식들로 평온한 날이 없었다.

이 남자가 요한 키리프라는 이름으로 수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번 학기부터 마탑에 부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연구실 안내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덜컥덜컥 내려앉았던가.

‘얼굴을 자주 보게 될 거란 말이 이런 뜻이었냐.’

엘렌 교수는 분노 어린 시선으로 카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친오빠와의 만남을 미끼로 맹약을 맺게 한 정체불명의 괴물.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

목적 또한 알 수 없었다.

그저 예언자라는 인물을 찾고 있으며, 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것 같다는 사실 외에는.

‘오빠는 대체 언제 만나게 해줄 건데.’

사기꾼 같은 작자.

당시 상황이 급박해 고민을 깊이 하지 못하고 맹약을 맺은 것이 실수였다.

오빠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지만,

그 시기를 특정 짓지 않았으니까.

엘렌 교수는 카인의 뒤통수 뒤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한 대 치고 싶었다.

눈만 마주쳐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지만.

맹약 때문에 위해를 끼치지도 못하지만.

인간적으로 단 한 대만.

아니, 반인반수적으로 단 한 대만.

“교수들이 쓰는 연구실 중엔 최상층이라고 할 수 있나?”

카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엘렌 교수는 화들짝 놀라 급히 손을 내렸다.

“어? 예? 맞아요. 교수가 쓸 수 있는 층 중에는 41층이 가장 높은 층이에요.”

마탑의 꼭대기라 할 수 있는 42, 43, 44층은 라이티노나 아이타르와 같은 장로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내가 이곳을 쓰는 데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꽤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교수들의 연구실은 크게 3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층이 정해졌다.

마법 실력과 연구 실적.

그리고 대외적인 명성.

카인의 경우 사실상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경찰청에서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마법 실력이 검증되었다고 보긴 힘들었다.

연구 실적과 대외적인 명성.

두 요소 역시 ‘마법사’로서는 아직 쌓지 못한 상태였다.

당연히 마탑 내에서 카인의 부임과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존재했다.

엘렌 교수는 순간 혼란에 빠졌다.

‘그쪽 욕하는 사람이 엄청 많긴 한데요.’

낙하산식 인사 외에도, 출신과 관련해 조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슬럼 출신이라던데.」

「이런 인사 조치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네요.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그 실력도 아직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아니죠. 소문이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슬럼 출신.

엘렌 교수는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와 싸우고 맹약을 맺을 때 느꼈던 야성과 폭력성은, 벽 안쪽에서 자란 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출신과 관련한 조롱에 대해서는 그녀도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부임 초기.

아직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

수인의 피가 흐른다는 소문이 퍼져 자신도 멸시의 시선을 받곤 했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도 좋다. 정말 궁금하여 묻는 것이니.”

엘렌 교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카인이 말했다.

그녀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안 좋게 말하는 사람들이…없지는 않죠.”

“그들의 이름이 어떻게 되지.”

얼음처럼 서늘한 목소리.

엘렌 교수는 소름이 돋았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니잖아.’

해코지할 것이다.

이 남자는 자신의 앞길에 방해되는 자들을 남김없이 걷어찰 것이다.

공을 차듯이 뻥뻥.

뻥뻥뻥.

‘뻥뻥… 아니, 그래도 동료 교수들 이름을 팔 수는 없잖아.’

결심을 마친 엘렌 교수가 말했다.

“그냥 소문으로만 들은 거라….”

“너는 알고 있다.”

결심은 곧바로 흔들렸다.

“이름을 알지는 못하는….”

“아니, 너는 알고 있다.”

“정말….”

“죽고 싶나.”

카인의 시선을 마주하며, 엘렌 교수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

밀고자의 신분을 얻은 엘렌 교수는 핼쑥한 얼굴로 사라졌다.

“왜 옆 연구실이 비어있던 거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카인의 연구실 바로 옆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로.

그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카인은 자신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상과 텅 빈 서재.

뒤편에 위치한 창문과 블라인드.

특별한 것은 없는 풍경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빠르게 훑었다.

조교가 놓고 간 것으로, 곧 시작될 학기에 맡을 강의와 학생들 명단이었다.

머릿속에 입력을 마친 카인은 다시 복도로 나갔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31층’ 버튼을 눌렀다.

위잉─

39층.

마탑에 교수로 부임하는 목적은 율리아의 과외 교사가 되는 것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존재했다.

37층.

복수의 완료.

현실로의 복귀, 혹은 잔류.

‘둘 중 어느 선택지든 회로의 마나는 꾸준히 늘릴 필요가 있다.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날지 모르니.’

35층.

[ 회로 레벨 : 3 ]

[ 마나 7913 / 8213 ]

당장의 목표는 회로 레벨 4.

추가 특성 포인트의 획득.

더불어 라이티노나 아이타르와 같이 ‘원소장’을 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나치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회로의 마나는 이제 8천 대에 달해, 웬만한 적을 처치해서는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33층.

생각한 방안은 두 가지였다.

경찰청장과 같이 압도적 무력을 지닌 이를 해치우거나.

혹은 황제와 같이 ‘특정 방법’을 통해 마나 탱크의 마나를 흡수하거나.

31층.

띵─

카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엘리베이터는 다시 문이 닫혀 다른 층으로 향했다.

눈앞에 나타난 복도는 거대한 철문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걸려 있는 잠금 마법.

카인의 손바닥이 철문 위에 대어졌다.

사람들의 대화가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황궁 무도회.

황제가 두 명의 죄수를 끌고 왔던 그때.

「저 사람 데어 헤일리 아니야? 라티움 수석 연구원이었던.」

「연구 자료를 빼돌리다 적발되었다더니, 황궁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나 보군.」

마탑의 교수이자 라티움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그들이 사용하던 31층.

지금 이 철문 너머에.

황제의 마나 탱크를 빼앗을 단서가 존재했다.

끼기긱─

고난도의 잠금 마법은 카인의 손에 의해 몇 초 지나지 않아 해제되었다.

철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복도 너머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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